매일성경 | 예레미야 33장 14-26절 |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2024. 7. 18. 15:1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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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33장 14-26절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예수 그리스도

    예레미야가 시위대 뜰에 갇혀 있을 때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두 번째로 임했습니다(33:1). 두 번째로 임한 말씀에서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을 가리켜서 "일을 행하시는 여호와, 그것을 만들어 성취하시는 여호와, 그의 이름을 여호와라 하는 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33:2). 즉 하나님께서는 모든 일을 계획하시고 계획하신 대로 이루시는 하나님, 약속을 지키시는 전능하신 하나님이심을 말씀하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가지고 계신 계획은 유다의 포로와 이스라엘의 포로를 돌아오게 하여 그들을 처음과 같이 세우는 것이었습니다(33:7). 이 계획대로 하나님께서는 반드시 이루실 것입니다. 이루셔서 당신님의 백성들로 하여금 기쁜 소리를 발하게 하실 것입니다(10-11절). 이 일은 예수 그리스도로 인해서 성취되었습니다. 14절 이하의 말씀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말씀입니다.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4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내가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르리라
    15   그 날 그 때에 내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리니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
    16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며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
    17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할 것이며
    18   내 앞에서 번제를 드리며 소제를 사르며 다른 제사를 항상 드릴 레위 사람 제사장들도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33장 1-13절에 "선한 말"로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 선한 말을 성취할 날이 이를 것이라고 하십니다(14절). 여기서 선한 말(הַדָּבָ֣ר הַטּ֔וֹב)에서 "말(דָבָר)"은 "말씀, 약속, 말한 대로 이루어지는 일"이라는 뜻을 가집니다. 그러므로 이 말에는 말씀하신 하나님께서 그것을 이루실 것이 포함됩니다. 또한 그것은 "선한(טוֹב)" 말입니다. 하나님께서 세상을 창조하실 때 보시기 좋았더라 하실 때, 좋았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하나님께서 창조 때 있었던 에덴을 회복시키신다는 뜻을 함축합니다. 그 선한 말은 곧 "이스라엘과 유다 집에 대하여 일러 준" 말입니다. 에덴으로 회복되는 대상은 바로 "이스라엘 집과 유다 집"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에덴의 회복을 누릴 것이라는 뜻입니다. 그 회복은 10-11절에 나온 대로 기쁨의 회복입니다. 에덴의 뜻이 즐거움과 기쁨입니다. 그러므로 말 그대로 에덴의 회복을 하나님께서 성취하시겠다고 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

    하나님께서 에덴의 회복을 성취하실 때 행하시는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다윗에게서 한 공의로운 가지가 나게 하시는 것입니다(15절). 그렇게 해서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하시는 것입니다. 다윗에게서 나는 한 공의로운 가지는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오셔서 이 땅에 하나님의 정의와 공의를 이루실 것입니다. 그것을 이루신 방법은 바로 십자가입니다. 이 예언은 예수님에게서 성취되었습니다. 

    여호와는 우리의 의

    이어서 나오는 말도 신약시대를 가리킵니다. "그 날에 유다가 구원을 받겠고"라고 말씀하십니다. "예루살렘이 안전히 살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들은 하나님의 백성들입니다. 하나님의 백성들이 구원을 받고 안전하게 살 수 있는 이유는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성에 살기 때문입니다(16절). 그들이 사는 곳, 즉 "이 성"의 이름이 바로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자들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삽니다. 말 그대로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살 때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는 우리의 의"라는 믿음으로 삽니다. 우리는 죄인이지만 그 죄의 형벌을 예수님게서 다 받으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성취하신 완전하신 의를 우리에게 전가시키셨습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정죄를 받지 않습니다. 의롭다 하심을 얻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의이시기 때문입니다. 여기에서 우리의 안전이 완전하게 보장됩니다. 이것이 구원이고 이것이 안전하게 살 길입니다.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리라

    이어지는 17절 말씀은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로 시작합니다. 즉 일을 이루시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이 일은 반드시 이루어진다는 뜻입니다. 그런데 그 일은 바로 "이스라엘 집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다윗에게 영원히 끊어지지 아니"하는 일입니다. 지금 이스라엘은 바벨론에게 포위를 당해서 곧 그 왕위의 명맥이 끊어지게 생겼습니다. 실제로 왕위는 시드기야로 끊어지고 맙니다. 이런 상황에서 여호와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왕위가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고 하십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영적으로 해석해야 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윗의 왕권을 받으셔서 그 위가 영원할 것을 바라보는 말씀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윗 왕과 같이 왕으로 좌정하셔서 당신님의 백성들을 안전하게 보호하시고 인도하실 것입니다. 그 일을 영원히 행하실 것입니다. 17절의 말씀은 그것을 가리킵니다. 그러므로 우리의 안전 보장은 영원한 안전 보장입니다. 여호와께서 우리의 의가 되심, 즉 예수 그리스도께서 영원히 우리의 의가 되심은 영원한 것입니다. 그런데 메시아는 왕으로서 뿐만 아니라 제사장으로서도 일하십니다. 18절이 그것을 말씀합니다. 

    제사장이신 예수님

    18절에는 하나님 앞에서 제사를 드릴 제사장들이 영원히 끊어지지 않는다고 말씀합니다. 제사로는 특별히 번제와 소제를 말씀하십니다. 번제는 모든 것을 다 태워 드리는 제사입니다. 소제는 농사 지은 곡식을 곱게 갈아서 드리는 제사입니다. 그러므로 소제는 내 삶의 열매, 특별히 나의 노동과 시간의 열매를 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이 두 제사는 모든 제사를 포괄합니다. 이 말씀은 예수 그리스도로 성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의 귀한 생명을 드리셨습니다. 당신님의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리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우리의 죄를 다 사하셨습니다. 또한 모든 행하신 일의 열매, 즉 모든 의를 다 드리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의 의가 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지금도 하나님 곁에서 속죄의 효력을 보이고 계십니다. 이 일은 영원히 계속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영원한 제사장이신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안전합니다. 

    정의와 공의

    박윤선 목사님은 "그가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할 것이라(15절)" 이 말씀을 "그가 그의 말씀과 성령에 의하여 그 백성을 다스리심에 대한 예언"이라고 주석합니다. 맞는 말씀입니다. 정의와 공의는 우리에게 실현되어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영원히 의롭다함을 얻습니다. 의롭다함을 얻은 백성은 말씀과 성령에 의해서 다스림을 받아 이 땅에 정의와 공의를 실행합니다. 

    의가 교회에 전가된다

    또한 박윤선 목사님은 "이 성은 여호와는 우리의 의라는 이름을 얻으리라(16절)" 이 부분을 주석하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주님의 이름이 그의 백성(예루살렘 성으로 대표됨)과 관련된 일들은 성경에 종종 나타난다(렘 14:9; 15:16; 25:29; 단 9:18-19; 대하 7:14; 사 63:19; 암 9:12). 이렇게 주님의 이름을 붙이는 목적은 주님의 축복이 그들에게 임한다는 뜻인 동시에(민 6:27) 그들이 주님께 속했다는 뜻이다(계 3:12; 22:3). 그뿐 아니라 그것은 주님과 교회가 일체라는 의미도 된다. 주님과 교회가 일체인 사실은 교회는 주님의 몸이요 그리스도는 교회의 머리라는 신약의 교훈도 잘 보여준다(고전 12:27; 엡 1:22-23; 4:12; 15, 16; 5:23, 28-32; 골 1:18, 24; 2:19). 그러므로 바울은 교회를 "그리스도"라고 까지 말한 바도 있다(고전 12:12). 물론 이 말은 교회가 본질적으로 그리스도라는 의미는 아니고 그리스도의 축복을 받아 그리스도에게 속한 자라는 의미이다. 교회는 주님에게 대하여 이와 같은 긴밀한 관계를 가지고 있으므로 그들이 주님을 믿을 때에 주님의 의가 교회에 전가(轉嫁)된다. 

     

    "의가 교회에 전가된다"는 말씀을 잘 생각해야 합니다. 우리는 자주 예수 그리스도의 의를 개인적으로만 전가 받는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박윤선 목사님 말씀처럼 그리스도의 의는 교회에 전가됩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와 한 몸인 공동체에 전가되는 것입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몸으로서 그 의를 전가 받는 것입니다. 이런 의미에서 우리는 "그리스도인"이라는 영광스러운 칭호로 불립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동일시 됩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참으로 큰 영광입니다. 

    낮과 밤이 지속되는 한

    19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0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가 능히 낮에 대한 나의 언약과 밤에 대한 나의 언약을 깨뜨려 주야로 그 때를 잃게 할 수 있을진대
    21   내 종 다윗에게 세운 나의 언약도 깨뜨려 그에게 그의 자리에 앉아 다스릴 아들이 없게 할 수 있겠으며 내가 나를 섬기는 레위인 제사장에게 세운 언약도 파할 수 있으리라
    22   하늘의 만상은 셀 수 없으며 바다의 모래는 측량할 수 없나니 내가 그와 같이 내 종 다윗의 자손과 나를 섬기는 레위인을 번성하게 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이 약속이 확실함을 자연을 빗대어 말씀하십니다. 낮과 밤이 지속되듯이(20절)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세우신 언약과 제사장에게 세우신 언약도 영원히 지속된다는 뜻입니다(21절). 지속될 뿐만 아니라 다윗 자손과 레위인은 번성할 것인데 하늘의 별이 셀 수 없고 바다의 모래가 측량할 수 없는 것처럼 셀 수 없이 번성할 것이라고 하십니다(22절). 이 말씀은 계시록에서 다음 말씀으로 되울립니다.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 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계 7:9)"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하나님께 나와서 하나님과 어린 양을 찬양할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러한 우리를 가리켜서 "왕 같은 제사장들"이라고 했습니다(벧전 2:9). 그러므로 이 말씀은 신약 시대에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우리를 가리킵니다. 우리는 낮과 밤이 지속되는 한 하나님의 언약 안에서 보호를 받으며 하나님의 언약대로 번성하여 많아져서 셀 수 없는 무리가 될 것입니다.

    언약의 유익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은 창조 질서에 있어서도 변하는 법이 없다. 그러므로 약 1:17에 말하기를 "그는 변함도 없으시고 회전하는 그림자도 없으시니라"라고 하셨다. 그와 같이 구원 질서에 있어서도 그는 계약하신 대로 성취하사, 다윗의 후손으로서 그리스도께서 오시도록 하실 것이라고 하신다. 여호와 하나님의 구원 운동은 자초지종(自初至終) 계약 운동에 의하여 실행되어 간다. 그는 말씀하신 대로 실행하시는 참되신 신으로서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시기로 하신 계약을 그대로 성취하셨다. 

    하나님께서 구속 사업을 계약적으로 이루어 가심에 대하여 우리들이 받는 혜택은 다음과 같다.

    1) 그가 계약하신 대로 독생자를 보내시어 구속 사업을 이루시는 것만큼 우리는 그 계약 성취에 대하여 믿음을 가지고 살게 된다. 구속 사업에 관련되어 있는 계약 성취는 현재뿐 아니라 미래, 또는 영원토록 우리와 관계되어 있는 축복을 내포하고 있다. 그것은 우리에게 요구되는 축복이다. 그러므로 우리는 그것에 대하여 믿음과 소망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2) 우리는 하나님의 구원 계약 성취의 사건들을 하나님의 계시의 말씀으로 받으며, 그 말씀을 통하여 거룩하여지는 은혜를 받는다. 벧후 1:4에 말하기를 "이로써 그 보배롭고 지극히 큰 약속을 우리에게 주사 이 약속으로 말미암아 너희가 정욕 때문에 세상에서 썩어질 것을 피하여 신성한 성품에 참여하는 자가 되게 하려 하셨느니라"라고 하셨다. 계약 성취의 말씀은 성령님의 능력으로 된 것인만큼, 그것을 믿는 영혼이 성령님의 성화(聖化)시키는 역사를 받는다. 이교(異敎)에서는 그 경전(經典)을 천래(天來)의 약속으로 여기지 않는다. 따라서 이교도들은 그들의 경전이 어떤 영력(靈力)을 가져온다고 생각하지도 않는다. 예컨대 불교와 같은 종교가 그러하다.

    3) 계약 성취로 성립된 구원은 신자들에게 위로를 준다. 곧, 환난(患難)의 시대나 시험의 시기에 우리의 심령을 기쁨으로 충만케 하여 끝까지 견디게 하여 준다. 그 이유는, 그 구원 축복들은 너무 크고 하나님께서 친히 계약하신 진실하신 것이며, 또한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그것들이 다 아멘이 되어 확실히 성립되도록 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계약하신 바는 변하는 법이 없거니와 어떤 우연적 사태로 인하여 방해를 받을 이유도 없다. 하나님의 약속은 우리 자신에게 있는 어떤 조건에 따라 좌우되지도 않는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리스도 안에서 필경 완성시키셨고 또 완성하실 것이다. 

     

    아파트를 매매하기로 계약을 했다고 해 봅시다. 계약을 할 때에는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그러면 양측과 그것을 아는 사람들은 모두 다 계약서에 적힌 대로 이루어질 줄을 믿습니다. 만약 계약을 파기한다면 계약서에 적힌 대로 일정 금액을 물어야 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계약이 파기되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이 계약은 절대적으로 이루어집니다. 아파트 매매 계약이 이루어질 줄 믿는다면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은 더더욱 확실하게 믿을 수 있습니다. 즉, 우리는 반드시 계약의 내용대로 영원히 복을 받는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고 소망으로 미래를 바라봅니다.

     

    또한 우리는 하나님의 약속이 성취되어 거룩해질 것을 믿습니다. 성령님께서 우리를 성화시키실 것을 믿는 것입니다. 비록 지금 죄 많은 모습으로 있지만 우리의 믿음은 우리가 영화되어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것을 소망으로 바라봅니다. 이것은 우리에게 큰 위로를 줍니다. 이 땅에서 우리는 환난과 시험의 때를 지나갑니다. 그 때 하나님의 약속이 우리를 견고하게 해줍니다. 그래서 환난의 때에 참 신자들은 말씀을 더욱 사모하고 붙들고 읽고 묵상합니다. 거기에서 힘과 위로를 받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약해질 때에도

    23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4   이 백성이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 한 것을 네가 생각하지 아니하느냐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25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내가 주야와 맺은 언약이 없다든지 천지의 법칙을 내가 정하지 아니하였다면
    26   야곱과 내 종 다윗의 자손을 버리고 다시는 다윗의 자손 중에서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의 자손을 다스릴 자를 택하지 아니하리라 내가 그 포로된 자를 돌아오게 하고 그를 불쌍히 여기리라

     

    환난이 올 때 사람들은 24절과 같이 말하기 쉽습니다. "여호와께서 자기가 택하신 그들 중에 두 가계를 버리셨다"라고 말하기 쉬운 것입니다. 그저 툭 하고 내는 말이 "하나님께서 나를 돕지 않으시니 나를 버리셨군요"라고 할 수 있는 것입니다. 아무리 택하신 백성이라도 환난 때에는 누구나 그렇게 말할 수 있습니다. 택하신 백성들이 환난을 당할 때에는 주변에서 그들을 멸시합니다. "그들이 내 백성을 멸시하여 자기들 앞에서 나라로 인정하지 아니하도다" 이런 상황이지만 참 은혜롭게도 하나님께서는 이 말에 대해서도 재차 아니라고 하시면서 언약이 변치 않을 것을 말씀하십니다(25-26절). 낮과 밤이 계속되고 천지가 법칙대로 돌아가는 것처럼 하나님의 그 백성을 향한 사랑과 언약은 계속될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누구나 믿음이 약해질 때가 있습니다. 그럴 때에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일하시고 계십니다. 그리고 끝끝내 언약을 이루시고 우리의 믿음을 다시 굳건하게 하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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