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12. 29. 16:03ㆍ사역 및 일상
2025년 12월 29일, 드라마 <응답하라 1988> 마지막회를 보고
유튜브 알고리즘이 나를 10년 전, 아니 37년 전으로 데려다 놓았다. 방영 10주년을 맞았다는 드라마 <응답하라 1988>. 영상 속 시대 배경인 1988년은 내가 초등학교 6학년이던 해다. 드라마 속 주인공들은 나보다 대여섯 살 많은 고등학생이었지만, 그 시절의 공기는 나에게도 여전히 유효하다.
쌍문동처럼 즐거웠던 오산
나는 쌍문동 골목 친구들처럼 한 동네에서 자라진 못했다. 1988년, 오산에서 수원으로 이사를 왔기 때문이다. 하지만 이사 오기 전 오산에서의 기억은 사계절의 색채로 선명하다. 봄에는 골목을 뛰어다니며 게임을 했고, 여름에는 자전거 페달을 밟으며 바람을 갈랐다. 가을 걷이가 끝난 논은 우리들의 아지트였다. 볏단을 쌓아 집을 짓고 그 속에서 뒹굴며 온몸으로 계절을 만끽했다. 겨울이면 꽁꽁 언 논두렁 위에서 스케이트를 지치고 쥐불놀이를 했다. 그때는 몰랐지만, 돌아보니 그 시절엔 '마을 공동체'가 살아 있었다. 드라마 속 아이들처럼, 우리는 골목에서 자랐고 골목이 우리를 키웠다.

골목 식구들과 같았던 교회 식구들
수원으로 이사를 온 뒤, 나에게 '쌍문동 친구들'이 되어준 건 교회의 형, 누나, 그리고 친구들이었다. 중고등학교 6년 동안 우리는 교회라는 지붕 아래서 또 다른 가족이었다. 수련회 밤을 꼴딱 새우고, 성탄절이면 함께 모여 밥을 먹고 잠을 잤다. 서로의 집을 제집처럼 드나들며 마음을 나누던 그 시절. 그것이 얼마나 찬란한 행복이었는지 그때는 미처 알지 못했다. 지금은 다들 어디서 무엇을 하며 살고 있을까.
지금의 행복
물론 나는 지금 행복하다. 사랑스러운 아내와 예쁜 두 딸, 그리고 화목한 가정. 불확실했던 청춘의 불안은 사라지고, 은혜로 채워진 확실한 행복을 누리고 있다. 그런데 문득 우리 큰아이가 벌써 고1, 내년이면 고2가 된다는 사실에 놀란다. 내가 추억하고 있는 그 시절의 나보다 내 딸이 더 자라버린 것이다. 시간은 야속하리만치 빠르다.

가슴이 아렸다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 덕선이가 어른이 되어 다시 쌍문동 골목을 찾는다. '재개발'이라는 글씨와 함께 폐허처럼 변해버린 텅 빈 골목. 하지만 방문을 여는 순간, 그 안에는 1988년의 친구들이 "영웅본색 보자"며 덕선이를 기다리고 있다.
그 장면에서 가슴 한구석이 찡하게 아려왔다. 왜였을까. 단지 지나간 청춘에 대한 미화 때문만은 아닐 것이다. 그것은 '상실감'이었다. 밥숟가락 개수까지 알 정도로 깊이 연결되었던 관계, 찐득한 공동체의 상실. 어른이 되어갈수록 마음을 나눌 사람은 줄어들고, 교회 안에서의 교제조차 피상적으로 흘러가는 현실에 대한 목마름이 내 안에 있었나 보다. 폐허가 된 것은 쌍문동 골목이 아니라, 어쩌면 빗장을 걸어 잠근 우리들의 마음일지도 모른다.

가슴이 아렸던 이유
그런데 그 먹먹함 끝에 하나님께서 주신 마음이 있다. "지금 네 앞에 있는 그들을 사랑하라."
지금 내가 사역하는 현장의 용사들이 바로 그 시절, 그 찬란한 청춘을 보내고 있다. 나의 어린 시절이 그토록 그립고 애틋한 것처럼, 지금 이 순간이 훗날 그들에게 사무치게 그리운 시절이 될 것이다.
내가 왜 오늘 글을 써야겠다고 생각했는지 이제 알겠다. 과거의 상실감에 머물지 말고, 지금 내게 맡겨진 이들을 더 뜨겁게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신호다. 용사들의 이름을 한 번이라도 더 부르고, 그들의 눈을 맞추고, 복음을 전해야겠다. 나의 두 딸에게, 그리고 우리 용사들에게 '사랑할 기회'가 있을 때 후회 없이 사랑을 쏟아부어야겠다.
폐허가 된 골목의 환영(幻影)이 아니라, 지금 살아 숨 쉬는 이들에게 사랑을 전하는 것. 그것이 응답하라 1988을 통해 하나님께서 나의 2025년에 주신 응답이다.

기도
하나님 아버지, 사람이 젊은 시절을 가슴 아려하면서 그리워하고 그 추억을 아름답게 느끼는 이유를 이제 알았나이다. 이는 주님께서 모든 나이 드는 사람으로 하여금 그런 감정을 갖도록 하신 것이니이다. 주께서 그런 감정을 주신 이유는 지금 그 청춘을 지나고 있는 젊은이들을 더 깊이 사랑하라고 하심이니이다. 이러한 깨달음을 주시니 감사하옵나이다. 주여, 우리 교회를 드나드는 주의 청년들에게 교회 안에서 찐한 추억을 마련하여 주옵소서. 게임도 하고 즐겁게 웃고 떠들고 고민도 털어놓고 함께 기도하는 추억을 주시옵소서. 이 일을 위해서 예배당이 올라가는 줄 아옵나이다. 그들의 추억에 앞으로 완공될 예배당이 있게 하시오니 감사하옵나이다. 이들이 거기에서 교회 공동체의 사랑을 느끼게 하옵시고 그 사랑으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사랑을 경험하게 하옵소서. 그렇게 해서 그들에게 그 어떤 복보다 귀한 영생의 복을 주옵소서.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하옵나이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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