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디모데후서 3장 10-17절 | 이단자들처럼 되지 말고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2024. 11. 17. 07: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디모데후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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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디모데후서 3:10-17

    찬송가 205장 주 예수 크신 사랑


    이단은 더 나아가지 못할 것임

    바울은 디모데에게 말세에 고통하는 때가 이르면 사람들이 어떻게 변하는지에 대해서 가르쳤습니다. 그 특징은 열아홉 가지 악덕으로 표현되었습니다(3:2-5). 바울은 디모데에게 "이같은 자들에게서 네가 돌아서라"라고 권면했습니다(3:5 하). 특별히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의 능력은 부인하는 이단자들에게서 돌아서라고 하면서 그들은 더 나아가지 못할 것이고 그들의 어리석음이 드러날 것이라고 합니다(3:9).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10   나의 교훈과 행실과 의향과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11   박해를 받음과 고난과 또한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과 어떠한 박해를 받은 것을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나를 건지셨느니라

     

    디모데는 바울이 어떤 교훈을 베풀었고 바울의 행실은 어떠했는지, 또한 바울의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보고 알았습니다(10절). 디모데는 바울의 교훈(διδασκαλίᾳ)을 듣고 알았습니다. 이 교훈은 바울의 설교에 잘 나타납니다. 또한 디모데는 바울의 행실(ἀγωγῇ)을 알았습니다. 행실이라는 말(ἀγωγή)은 어떤 사람이 행동하는 방식을 가리킵니다. 행동하는 방식을 보면 저 사람이 어떤 교육을 받았는지가 나타납니다. 바울의 행실은 그가 성령님의 인도와 가르침을 받았다는 것을 나타냈습니다. 디모데는 바울의 의향(προθέσει)을 알았습니다. 이 의향이라는 말(πρόθεσις)은 목적을 위해서 어떤 의도를 가지는 것입니다. 이것은 숨겨 놓는 것이 아니고 드러내는 것입니다. 드러내서 내가 이런 목적을 가지고 있다고 밝히는 것을 가리켜서 프로쎄시스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디모데는 바울이 어떤 목적을 가지고 살았는지를 보고 알았습니다.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와

    디모데는 또한 바울의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를 보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의향은 그의 전도 목적이다. 바울은 이런 전도생활을 위하여 각양 고난을(11절) 믿음과 오래 참음과 사랑과 인내로 잘 견디었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4쪽). 중요한 것은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이런 것들을 보고 배웠다는 것입니다. 

     

    디모데는 바울이 고난 당하는 것도 보았습니다(11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4-645쪽).

    "박해를 받음과 고난" 이것은 그 아랫말 "안디옥과 이고니온과 루스드라에서 당한 일"이란 말로 다시 설명된다. 바울이 위의 몇 곳에서 많은 박해를 받은 사실은 사도행전에 기록되어 있다(행 16-17장). "네가 과연 보고 알았거니와"(παρηκολούθησάς)라는 것은 접근하여 따랐다는 뜻을 가진다. "보고 알았다"라고 함은 이 말의 의역(意譯)이고 문자역은 아니다. 디모데는 사도 바울을 수종하면서 그의 고난 받는 정황을 잘 살핀 것이다. 그러므로 그 자신도 옳은 복음을 위하여는 고난을 각오해야 된다. 

    "주께서 이 모든 것 가운데서 건지셨느니라" 바울은 그 전도사역에 있어서 위험한 일을 당할 때에 늘 하나님의 구원을 받았다. 하나님께서는 믿는 자를 구원해 주시마고 약속하셨으니, 그 약속을 어기실 리는 만무하다. 바울에게 이루어진 하나님의 신실하신 구원은 그것을 본 디모데에게 수난(受難)의 용기와 인내를 더해주섰을 것이다. 

    뜻이 있는 삶, 목적이 있는 삶

    12   무릇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자는 박해를 받으리라

     

    바울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뜻하는(θέλοντες) 사람, 즉 거기에 뜻을 두고 그것을 소망하는 모든 사람(πάντες)들은 박해를 받을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삶은 그냥 사는 대로 살아지는 삶이 아닙니다. 의도를 갖고 노력하는 삶입니다. 뜻하는 지점, 소망하는 지점이 명확한 삶입니다. 반드시 이루고자 하는 목표와 목적이 있는 삶입니다.

     

    목표와 목적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사는 것입니다. 먼저 이런 삶은 그리스도 예수와 연합되어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사는 삶이기 때문입니다. 이 삶은 예수님의 말씀이 그 사람 안에서 작동하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말씀을 따르고 지키기 위해서 예수님을 힘입는 삶입니다. 예수님의 말씀대로 예수님을 따라가는 삶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을 존중하고 하나님을 향한 경외심을 가지고 헌신하면서 사는 삶입니다.

     
    바울은 그런 삶을 살았습니다. 특별히 바울은 그리스도께서 자기를 이방인의 사도로 세우셨음을 확신하고 주님의 뜻에 순종하며 나아갔습니다. 이방인의 사도로서 복음 전파 사역에 헌신했습니다. 그렇게 복음을 전파하면서 그는 박해를 받았습니다. 세상이 복음을 반대하기 때문에 박해를 받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5쪽). 

    죄악 세상은 복음과 반대되는 것이기 때문에 정조(貞操) 있는 신앙생활에는 언제나 핍박이 동반(同伴)한다. 그러므로 참 신자는 핍박받음을 자연스럽게 여길 것이고 놀랄 것은 없다. 

    무색무취의 그리스도인

    그리스도인이라고 하면서 무색무취로 살아가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분명히 너희는 세상의 소금이요 빛이라고 하셨는데 소금이면서도 맛을 잃고 빛이면서도 빛을 잃고 사는 사람들이 많은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맛을 내야 하고 빛을 비춰야 합니다. 그런데 이것은 그냥 산다고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고 거기에 뜻을 두고 애써야 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애를 쓸 때 세상이 그를 반대하고 그 지점에서 박해가 따라옵니다. 그러므로 박해는 그리스도인이라면 필연적으로 받는 것입니다. 

    스스로 속는 이단자들

    13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하나니

     

    악한 사람들과 속이는 자들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경건하게 살고자 하는 사람들과 반대되는 사람들입니다. 이들은 악한 사람들인데 왜냐하면 이들이 곧 속이는 사람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사실 이들은 자기가 남을 속이고 있다는 것을 모릅니다. 왜냐하면 이들 스스로는 자기가 옳다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자기는 옳고 다른 사람이 그르다라고 생각하기 때문에 이들은 자기가 악한지 모르고 또한 자기가 다른 이들을 속이는지도 모릅니다. 즉, 그들이 스스로가 먼저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자기 스스로가 속고 있다는 것을 자기만 모르는 경우도 많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5쪽). 

    비진리를 진리라고 하며 남을 속이는 이단자들은 우선 자기 자신이 속는 생활을 하고 있다. 자기가 하는 일이 옳은 듯이 생각하지만 실상은 그것이 그릇된 것이니 스스로 속는 것이다. 

     

    맞는 말씀입니다. 이단자들은 자기가 이단이라고 절대 생각하지 않습니다. 자기가 다른 교훈을 가르친다고 깨닫지 못합니다. 깨닫는다면 다른 교훈 가르치는 것을 중단하고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은 "더욱 악하여져서 속이기도 하고 속기도" 합니다. 점점 더 악한 지경으로 들어가는 것입니다.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14   그러나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 너는 네가 누구에게서 배운 것을 알며

     

    바울은 디모데를 이단자들과 대조합니다. 이단자들과 다르게 "너는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라고 합니다. 디모데가 배우고 확신한 일은 바로 성경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6쪽). 

    여기 "누구에게서"란 말은 비교적 신임성이 박약한 사본들에 기록되어 있다. 이것이 본래의 원본이라면, 디모데가 바울에게서 배운 것을 의미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그보다 권위 있는 사본들에는 "어떤 것들에서"(παρὰ τίνων)라고 기록되어 있는데, 이것은 다음 귀절에 나오는 "성경"(ἱερὰ γράμματα=성경들)을 가리킨다. 바울은 여기서 성경의 특수한 권위를 생각하는 의미에서 디모데에게 "어떠한 것들에서" 네가 배웠는지를 알라고 다짐한다. 

    스스로 속지 않는 길

    그러므로 이단자가 속는 것은 성경 아닌 것에 속는 것입니다. 성경에서 말씀하지 않은 것을 말씀했다고 생각하고 속는 것입니다. 반면 우리가 배우고 확신하는 것은 성경 말씀 전체입니다. 성경에서 가르치는 것을 꼭 붙들고 있음으로 우리는 속지 않을 수 있습니다. 이단에게 뿐만 아니라 스스로에게도 속지 않을 수 있는 것입니다. 스스로에게 속는 사람은 스스로를 의롭다고 여깁니다. 이것부터가 성경에서 벗어난 생각입니다. 성경 말씀을 꼭 붙드는 사람은 절대 스스로를 그렇게 과장하지 않습니다. 

    성경은 능히

    15   또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나니 성경은 능히 너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에 이르는 지혜가 있게 하느니라

    성경은 능히

     

    디모데는 어려서부터 성경을 알았습니다. 이것은 아주 중요합니다. 성경은 어려서부터 배워야 합니다. 성경을 알면 어떻게 되는지가 이어서 나옵니다. 먼저 성경은 능력이 있습니다. 성경은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능력이 있습니다. 사람을 지혜롭게 해서 도달하게 하는 곳은 구원입니다. 이것이 성경의 능력입니다. 사람이 스스로 능력이 있어서 지혜로워지고 구원에 이르는 것이 아닙니다. 성경이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능력이 있고 그 능력으로 사람을 지혜롭게 해서 구원에 도달하게 하는 것입니다. 

     

    그 구원은 믿음으로 받는 것입니다. 그리고 믿음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습니다. 즉 그리스도 예수를 믿는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것입니다. 종합하자면 성경은 사람으로 하여금 그리스도 예수를 발견하게 합니다. 예수님께서 구원자이신 줄 깨닫게 합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을 믿게 합니다. 그 믿음으로 구원에 이르게 합니다. 이것이 성경이 사람을 지혜롭게 하는 능력입니다. 

    이단자들은 그리스도를 강조하지 않음

    이것이 이단자들과 확연히 다른 것입니다. 이단자들은 그리스도를 강조하지 않습니다. 성경을 가르치면서도 예수님 말고 다른 것을 더 중요하게 가르칩니다. 그러면서 사람이 스스로 의로워질 수 있는 것처럼 설교합니다. 그렇게 설교하면서 자기는 의롭다고 생각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이것이 바로 스스로 속는 것입니다. 반면 진리에 거하는 사람은 성경으로 그리스도 예수님을 강조합니다. 오직 예수님 안에 구원의 길이 있다고 선포합니다.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더욱 의지하게 하고 믿게 합니다.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16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 교훈과 책망과 바르게 함과 의로 교육하기에 유익하니
    17   이는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며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8쪽).

    이 말씀(πᾶσα γραφὴ θεόπνευστος)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기운 부신 것이니"라고 직역된다. 이 점에 있어서 벵겔은 "성경은 기록될 때에 하나님이 영감(靈感)하신 것이지만, 그것을 읽을 때에도 영감을 주시는 책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의 감동은 한 단어로 하나님과 영이 합해진 말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영감하셨다는 뜻입니다. 여기서 "영"이라는 말은 성령님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성령께서 성경을 기록하셨다는 뜻도 됩니다. 사람이 성경을 썼을 때 그 사람을 사용하셔서 성경을 쓰게 하신 분이 성령님이시라는 것입니다. 이처럼 성경은 온전히 사람의 저작이면서도 또한 온전히 성령님, 즉 하나님의 저작입니다. 여기에서 벵겔의 말이 맞게 됩니다. 즉, 성경을 읽을 때에 그 말씀의 뜻을 깨달으려면 성령께서 깨닫게 해주셔야 합니다. 즉 읽을 때에도 영감을 주셔야만 깨달을 수 있는 책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은 능력이 있습니다(15절 δυνάμενά). 

    유익하니

    성경은 유익합니다. 그 어떤 책을 읽는 것보다 유익합니다. 성경이 주는 유익은 교훈(διδασκαλίαν)과 책망(ἐλεγμόν)과 바르게 함(ἐπανόρθωσιν)과 의 안에서 양육함(παιδείαν τὴν ἐν δικαιοσύνῃ)을 위한 유익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8쪽). 

    "교훈"은 진리 지식 재료들을 공급하여 깨닫게 하는 것이고, "책망"은 과오에 대한 반성을 일으키는 것이고, "바르게 함"은 허물을 고치게 함이고, "의로 교육함"은 의롭게 되도록 훈련시킴이다. 위의 네 가지 일은 쉬운 데서 어려운 데로 향하여 단계적으로 이끌어 간다. 그러나 그 어려운 것도 하나님의 감동으로 실현되는 것이니만큼 어떤 의미에서는 쉬운 것이다.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

    성경이 그렇게 유익을 주는 목적은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하기 위해서입니다(17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디모데후서 주석, 648쪽). 

    "하나님의 사람" 곧, 복음 사역자는 성경을 가지고서야 비로소 완전한 교역을 실시할 수 있다. "모든 선한 일을 행할 능력을 갖추게 하려 함이라" 이 문구는 위의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한다는 말에 대한 해설이다. "하나님의 사람으로 온전하게" 함은 그가 모든 선한 사역을 할 수 있도록 자격을 구비(具備)시킴이다. 여기 "온전하게 함"이란 말(ἐξηρτισμένος)은 자격이 구비됨을 의미한다. 

     

    이런 의미에서 바울은 디모데에게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고 권면합니다(14절). 즉 이 말은 성경에 꼭 붙들려 있으라는 뜻입니다. 교역자는 교역을 감당할 때에 성경으로 능력을 힘입고 성경으로 온전하게 됩니다. 성경의 가르침을 받고 책망을 받으며 고쳐지고 의 안에서 훈련을 받습니다. 그러므로 교역자는 항상 성경에서 답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성경으로 교역자를 다루어 가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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