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4장 26-34절 | 농사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

2024. 2. 18. 10:28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4:26-34

    찬송가 210장 시온성과 같은 교회


    비유로 가르치심의 의미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4:11).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시면서 동시에 감추시기 위함입니다(4:12). 비유를 듣고 깨달은 자는 하나님 나라를 깨닫습니다. 반면 비유를 듣지만 깨닫지 못하는 자들이 있습니다. 깨닫지 못하는 것 자체가 심판입니다(4:12). 비유는 한 쪽으로는 구원을 다른 한 쪽으로는 심판을 선포하고 있는 것입니다. 26절 이하에서도 하나님 나라 비유가 계속됩니다. 

    농사의 비유

    26   또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사람이 씨를 땅에 뿌림과 같으니
    27   그가 밤낮 자고 깨고 하는 중에 씨가 나서 자라되 어떻게 그리 되는지를 알지 못하느니라
    28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되 처음에는 싹이요 다음에는 이삭이요 그 다음에는 이삭에 충실한 곡식이라
    29   열매가 익으면 곧 낫을 대나니 이는 추수 때가 이르렀음이라

    하나님 나라가 농사에 비유됩니다. 농사를 지을 때 씨는 사람이 뿌립니다. 그런데 거두게 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다고 합니다(28절). 그렇게 보인다는 뜻입니다. 땅이 스스로 열매를 맺는 것처럼 보이는 이유는 하늘에서 해가 적절하게 비치고 비가 하늘에서 적절하게 내리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그 모든 과정을 알지 못합니다. 씨를 뿌렸지만 씨가 어떻게 자라는가 알지 못합니다(27절). 싹이 나고 이삭이 나오고 곡식이 나오는데 당장 하루하루 보면 그것이 안 보입니다. 그런데 추수 때가 이르면 열매가 다 익어 있습니다. 

    좋은 땅과 농사의 비유

    하나님 나라가 이러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앞에서 좋은 땅을 말씀하셨습니다. 씨가 좋은 땅에 심기면 위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아래로는 예수님을 믿음으로 씨에서 뿌리가 나고 싹이나서 아래 위로 자랍니다. 씨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 모든 것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십니다. 성령 하나님께서 우리 마음에 오셔서 예수님을 믿게 하십니다. 믿음을 주십니다. 때때로 필요한 은혜를 적절하게 공급하십니다. 때로는 마음을 바꾸시고 때로는 상황을 여서서 하나님의 은혜를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을 이루십니다. 죄 사함을 받고 구원을 얻게 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자라게 하심

    사람의 구원이 하나님의 일이라는 것이 26-27절에 다시 한 번 강조되어 나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 구성원들을 어떻게 채우시는가,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어떻게 이루시는가, 마치 작물이 자라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사람이 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하신다는 것입니다. 씨가 좋은 땅에 떨어졌을 때에 아래로는 뿌리가 내리고 위로는 싹이 나고 줄기가 자라서 열매를 맺는 모든 과정을 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우리는 그것에 감사하면 됩니다. 믿음 주신 것도 감사하고 자라게 하시는 것도 감사하고 열매를 맺게 하시는 것도 감사한 것입니다. 다만 하루하루를 놓고 보면 변화가 보이지 않습니다. 자라는 것 같지도 않습니다. 그런데 때가 되면 열매가 익어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일하시는 방식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4장 26-34절 | 농사의 비유와 겨자씨의 비유,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

    성화는 눈에 잘 안 보임

    사람은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있습니다. 부정적인 사람이 긍정적이 될 수 있습니다. 가난한 사람이 부자가 될 수 있습니다. 악한 마음이 선한 마음이 될 수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스스로 거룩하게는 될 수 없습니다. 거룩하게 되는 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믿음이 점점 자라고 성화를 이루어서 하나님께서 기뻐하시는 열매를 맺는 것은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그것은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하시는 이 일은 눈에 잘 안 보입니다. 내가 거룩해졌는가 하루하루 관찰하면 변화가 눈에 잘 안 보입니다. 그러나 때가 되면 열매가 맺혀 있습니다. 추수 때가 되면 자기 스스로도 자기가 맺은 열매에 놀라게 될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는 방식입니다. 

    겨자씨의 비유

    30   또 이르시되 우리가 하나님의 나라를 어떻게 비교하며 또 무슨 비유로 나타낼까
    31   겨자씨 한 알과 같으니 땅에 심길 때에는 땅 위의 모든 씨보다 작은 것이로되
    32   심긴 후에는 자라서 모든 풀보다 커지며 큰 가지를 내나니 공중의 새들이 그 그늘에 깃들일 만큼 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계속 말씀하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겨자씨 한 알과 같다고 하십니다. 겨자씨는 그 어떤 씨보다 작은 씨입니다(31절). 겨자씨의 크기는 쌀알보다 훨씬 작습니다. 그 작은 알갱이가 땅에 심기면 그 어떤 풀보다 커집니다. 작게는 1m 크게는 3m까지 자랍니다. 자란 후에는 벼보다 큽니다. 크게 자라면 사람 키보다 높이 자랍니다. 예수님께서는 겨자가 자라면 큰 가지가 나오고 새들이 깃든다고 말씀하십니다(32절). 그래서 이것이 나무로구나 이렇게 오해합니다. 하지만 겨자는 나무가 아닙니다. 1년 생 풀입니다. 그런데 나중에 마르게 되면 줄기가 단단해져서 새들이 거기에 깃들 수 있습니다. 새들이 깃들 수 있는 풀인 것입니다. 

    작게 시작하는 하나님 나라

    하나님 나라는 아주 작게 시작합니다. 굉장히 작아서 아무도 그것이 크게 자라리라 기대하지 않습니다. 쌀알과 겨자씨를 놓고 어떤 것이 크게 자랄까 물어보면 상식적으로 쌀알이 더 크게 자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자라고 보면 겨자가 더 크게 자랍니다. 아주 작고 미미하게 시작하지만 그 나중은 그 어떤 풀보다 커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크기가 됨

    앞에서 사람 스스로는 거룩해질 수 없다고 했습니다. 그런데 거룩해지는 것은 사람이 그 어떤 노력으로 이루는 것보다 훨씬 큰 것입니다. 아무리 큰 부자라도 거룩하지 못한 사람은 거룩한 그 누구보다 작은 사람입니다. 거룩한 사람이 아무리 가난하다 하더라도 거룩하지 못한 세계 제 일의 부자보다 큰 것입니다. 그런 거룩함을 하나님께서 이루십니다. 사람들이 보기에는 아주 작고 하찮게 시작하지만 막상 자라고 나면 사람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크기가 됩니다. 사람의 노력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단단함이 생깁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비유로 가르치신 이유

    33   예수께서 이러한 많은 비유로 그들이 알아 들을 수 있는 대로 말씀을 가르치시되
    34   비유가 아니면 말씀하지 아니하시고 다만 혼자 계실 때에 그 제자들에게 모든 것을 해석하시더라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예수님은 많은 비유를 베풀어 주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비유로 말씀하신 이유는 "그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대로" 가르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우리가 보는 세상과 질적으로 다른 나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관하시는 영적 세계는 우리가 상상할 수 없이 크고 오묘하고 놀라운 일들로 가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비유가 아니면 그것을 가르칠 방도가 없습니다. 직설적으로 A는 B다 이렇게 가르칠 수가 없는 것입니다. 영적 세계를 그렇게 가르치면 아무도 그것을 알아들을 수조차 없을 것입니다. 그러나 농사에 관한 이야기는 알아들을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영적 세계에 관한 가르침이지만 농사 이야기이기 때문에 들을 수는 있는 것입니다.

    깨닫는 것

    그런데 들을 수 있는 것과 깨닫는 것은 또 별개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농사에 비유해서 말씀하셨다고 해도 그것이 무슨 뜻인지를 깨닫기는 어렵습니다. 마음에 간직해서 깊이 생각해야 합니다. 그런데 그렇게 생각해도 스스로는 깨달을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혼자 계실 때 제자들이 나아와 예수님께 뜻을 묻고 예수님께서는 그 뜻을 해석해 주셨습니다. 

    비유의 해석을 써 놓지 않은 이유

    마가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해석을 같이 써 놓았습니다. 하지만 등불의 비유(4:21-25)나 농사의 비유(26-29절), 겨자씨의 비유(30-32절)은 그 해석을 써 놓지 않았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것을 해석하셨지만(34절 하) 그 해석을 써 놓지 않은 것입니다. 다른 복음서 저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왜 그랬을까요? 그 답은 씨 뿌리는 자의 비유에 있습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를 깨달으면 뒤에 있는 비유들을 깨달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4:13). 비유를 깨닫는 열쇠는 "말씀을 듣고 받아(4:20)"에 있습니다. 말씀을 듣고 마음에 품어 생각하고 그 뜻을 하나님께 구하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면 예수님께서 혼자 계실 때 그 말씀을 풀어주셨던 것처럼 성령께서 보혜사로서 진리의 성령님으로서 그 말씀을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성령님과 교제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그 과정에서 믿음이 자라고 하나님 나라가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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