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4장 13-25절 |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등불 비유, 예수 그리스도

2024. 2. 17. 10:52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4:13-25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과 죄 사함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받아서 깨닫는 사람이 있고 깨닫지 못하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사람은 돌이켜 죄 사함을 받습니다. 하지만 깨닫지 못하는 사람은 돌이키지 않으므로 죄 사함을 받지 못합니다(4:11-12).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깨닫는 것은 죄 사함과 연관됩니다. 죄를 사해주시는 권세를 가지신 분은 예수님이십니다(2:10). 그러므로 죄 사함을 받는 사람은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깨닫는 사람입니다.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믿고 받아들여 믿는 사람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입니다. 13절 이하에서는 이 비밀이 어떻게 나타나기도 하고 감춰지기도 하는지에 대해서 예수님께서 비유를 해석해 주십니다.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모든 비유를 아는 열쇠임

    13   또 이르시되 너희가 이 비유를 알지 못할진대 어떻게 모든 비유를 알겠느냐

     

    씨 뿌리는 자의 비유는 모든 비유를 아는 열쇠입니다. 모든 비유를 아는 열쇠는 바로 20절에 나옵니다. 즉 "듣고 받아 ... 결실을 하는" 것입니다. 결실은 바로 돌이켜서 죄 사함을 받는 것입니다(4:12). 돌이켜 죄 사함을 받는다는 것은 이스라엘 역사에도 나타난 것입니다. "하나님 나라"를 나타내 보였던 구약의 이스라엘 역사에도 이런 장면이 있습니다. 이사야서에 보면 백성들이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하고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할 것이라고 하면서(사 6:9) 남은 자(사 6:13)가 있다고 합니다. 남은 자는 듣고 깨닫는 자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와 구원의 서정

    그 중에 십분의 일이 아직 남아 있을지라도 이것도 황폐하게 될 것이나 밤나무와 상수리나무가 베임을 당하여도 그 그루터기는 남아 있는 것 같이 거룩한 씨가 이 땅의 그루터기니라 하시더라(사 6:3)

     

    그 남은 자를 거룩한 씨라고 합니다. 이들은 나중에 바벨론 포로 상태에 있다가 귀환합니다. 돌이키는 것입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는 것은 죽음을 상징합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떨어져 나갔기 때문입니다. 포로 귀환은 그 죽음에서 해방되는 것입니다. 에스겔서에서는 포로 귀환을 무덤을 열고 나오는 것과 같다고 합니다(겔 37:13). 무덤을 열고 나올 때 일어나는 일은 다음과 같습니다. 

     

    내가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가 살아나게 하고 내가 또 너희를 너희 고국 땅에 두리니 나 여호와가 이 일을 말하고 이룬 줄을 너희가 알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겔 37:14)

     

    성령께서 사람 속에 오십니다. 그래서 살아납니다. 살아나서 어떻게 됩니까? "너희가 알리라"라고 합니다. 깨닫는다는 뜻입니다. 여호와께서 이 일을 말씀하시고 이루신 것이구나(겔 37:14 하)라는 것을 깨닫습니다. 여호와께서 누구신지를 아는 것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나라의 비밀"이라는 말씀의 맥락입니다. 예수님이 누구신지를 아는 것이 무엇인지가 이미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 나타났습니다. 예수님을 알려면 성령께서 사람 속에 들어오셔서 역사하셔야 합니다. 그래야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복음을 듣고 깨달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아는 것은 모든 비유를 깨닫는 것으로 연결됩니다. 이스라엘 역사에 죽음과 부활, 중생과 죄 사함의 비밀이 담겨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의 역사를 온전히 이루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이 예수님을 믿고 받아들이는 것이 죄 사함을 받는 길입니다. 죄 사함을 받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뜻입니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자는 예수님의 가족이 됩니다. 즉 예수님과 한 몸이 됩니다(3:35).

    씨 뿌리는 자의 비유 해석

    14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리는 것이라
    15   말씀이 길 가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었을 때에 사탄이 즉시 와서 그들에게 뿌려진 말씀을 빼앗는 것이요
    16   또 이와 같이 돌밭에 뿌려졌다는 것은 이들을 가리킴이니 곧 말씀을 들을 때에 즉시 기쁨으로 받으나
    17   그 속에 뿌리가 없어 잠깐 견디다가 말씀으로 인하여 환난이나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는 곧 넘어지는 자요
    18   또 어떤 이는 가시떨기에 뿌려진 자니 이들은 말씀을 듣기는 하되
    19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이 들어와 말씀을 막아 결실하지 못하게 되는 자요
    20   좋은 땅에 뿌려졌다는 것은 곧 말씀을 듣고 받아 삼십 배나 육십 배나 백 배의 결실을 하는 자니라

    씨 뿌리는 자는 예수님,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

    뿌리는 자는 말씀을 뿌린다고 합니다(14절). 그러므로 씨는 곧 말씀입니다. 여기 말씀은 로고스(λόγος)입니다. 2장 2절에서 "도"라고 번역된 바로 그 단어입니다. 그러므로 말씀을 뿌리는 분은 가까운 문맥으로는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 로고스를 말씀하셨다고 2장 2절에 나오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 뿌리신 말씀은 하나님 나라의 복음입니다(1:15).

    길 가

    하나님 나라의 복음을 들은 사람들은 네 가지로 나뉩니다. 길 가는 말씀을 튕겨내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마음 안에 들어가지 못합니다. 그 결과 사탄이 즉시 와서 그 말씀을 빼앗습니다. 마음이 단단하기 때문입니다. 마음이 단단한 사람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의 특징이 마음이 완고해져서 보아도 알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요 12:40; 시 115:8). 즉 그가 우상을 숭배하기 때문에 말씀이 그 마음에 들어가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가 숭배하는 우상은 사탄의 도구입니다. 그러므로 사탄이 그 말씀을 빼앗았다고 할 수 있습니다. 

    돌밭

    돌밭은 말씀의 뿌리가 없는 사람입니다. 말씀이 뿌리를 내려서 물 근원에 닿아야 하는데 닿지 못합니다(17절). 예레미야는 이스라엘 백성이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렸다고 고발했습니다(렘 2:13; 17:13). 예수님께서는 예수님을 믿는 자는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7:38). 이렇게 볼 때 말씀이 뿌리를 내리지 못했다는 것은 말씀이 깊이 내려가서 예수님께 닿지 못했다는 뜻입니다. 말씀이 깨달아지면 예수님을 알게 됩니다. 예수님을 알면 알수록 모든 것을 믿음으로 하게 됩니다. 거기에서 싹이 나고 열매가 맺어야 합니다. 그런데 말씀이 돌밭에 뿌려진 사람은 그 말씀이 예수님께 닿지 않은 상태로 싹이 납니다. 당장 행동이 변하고 뭔가 선한 일들을 행하기 시작합니다. 뿌리 내리는 에너지가 위로만 향하기 때문에 훨씬 빨리 성장하는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것이 믿음으로부터 나온 것이냐 하는 증거는 없습니다. 환난과 박해가 일어나는 때에 믿음으로 행했는지가 증명됩니다. 그 때 믿음으로 행한 사람은 인내합니다(롬 5:3; 살후 1:4). 그렇게 환난은 인내를 낳고 인내는 연단을 낳습니다(롬 5:3). 연단은 믿음의 증명입니다. 

    가시떨기

    가시떨기는 말씀을 듣기는 하지만 그 말씀을 막아버리는 사람입니다(18-19절). 가시는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유혹과 기타 욕심입니다. 재물이 없으면 염려합니다. 재물이 많아지면 재물을 우상으로 섬기는 유혹을 받습니다. 재물이 많아질수록 욕심이 더 커집니다. 세상의 염려와 재물의 욕심은 해를 가립니다. 싹이 위로 잘 자라려면 해가 비치고 비가 내리는 것을 경험해야 합니다. 해와 비는 하나님께서 은혜로 내려주시는 것입니다(마 5:45). 열매는 어떻게 맺히냐면 하나님께서 은혜 주시는 것을 경험해야 맺힙니다. 그런데 재물에 집중하면 하나님의 은혜가 보이지 않습니다. 지금 누리는 것들이 재물이 많아서 누리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마땅한 영광을 재물에 돌리고 있으니 믿음이 자라지 못하고 결국 결실하지 못합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4장 13-25절 |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등불 비유, 예수 그리스도

    좋은 땅

    좋은 땅은 위에 나온 다른 땅과 모든 면에서 반대됩니다. 길가처럼 말씀을 튕겨내지 않고 말씀을 듣고 받습니다. 즉 마음에 말씀을 깊이 간직하고 그 뜻을 생각합니다. 생각하면서 그 말씀이 예수님을 뜻하는 것임을 깨닫습니다. 그렇게 해서 돌밭과 반대로 그 뿌리가 예수님께 닿습니다. 모든 면에서 예수님을 믿고 의지합니다. 가시떨기와는 반대로 위로는 싹이 나서 하나님께서 주시는 햇빛과 비에 흡족해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받아 누리면서 자연스럽게 열매를 맺습니다. 아래로는 예수님을 믿고 위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합니다. 그 결과 말씀이 어떻게 이뤄지는가를 경험합니다. 씨는 식물이 되고 식물은 다시 씨를 맺습니다. 씨의 상태로 머물지 않고 열매를 맺어 온 우주를 이롭게 하는 식물이 됩니다. 사도 바울은 이것을 부활에 비유했습니다(고전 15:36-38). 이 모든 일은 다 믿음으로 은혜로 되는 일입니다. 이스라엘 역사의 맥락에서 보면 이 일은 성령께서 우리 속에 들어오셔서 하시는 일입니다. 

    등불 비유

    21   또 그들에게 이르시되 사람이 등불을 가져오는 것은 말 아래에나 평상 아래에 두려 함이냐 등경 위에 두려 함이 아니냐
    22   드러내려 하지 않고는 숨긴 것이 없고 나타내려 하지 않고는 감추인 것이 없느니라
    23   들을 귀 있는 자는 들으라

     

    예수님께서는 씨 뿌리는 자의 비유와 연관된 또 하나의 비유를 말씀하십니다. 그것은 등불의 비유입니다. 사람은 등불을 켜서 위에 둡니다(21절). 위에 두는 이유는 어두운 곳에 빛으르 비추기 위함입니다(22절). 빛을 비추지 않으면 잘 안 보이기 때문입니다. 등불은 잘 안 보이는 것을 비추는 도구입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비유로 말씀하시는 것은 숨긴 것을 드러내시기 위함입니다. 어두운 곳에 빛을 비추어서 하나님 나라의 비밀을 드러내시고 그것을 깨닫게 하시고자 비유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드러내려고 하셨다는 것은 숨긴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 나타내려고 하신다는 것은 감추인 것이 있다는 뜻입니다(22절). 그 숨긴 것과 감추인 것을 예수님께서 드러내시고 나타내셨습니다. 들을 귀가 있는 사람은 그것을 듣고 깨달을 것입니다(23절). 

    헤아림

    24   또 이르시되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 너희의 헤아리는 그 헤아림으로 너희가 헤아림을 받을 것이며 더 받으리니

     

    24절은 아리송합니다. 너희가 무엇을 듣는가 스스로 삼가라라는 말씀은 듣는 것을 가만히 보라는 뜻입니다. 사람이 무엇을 듣고 깨달으면 어떤 이미지를 떠올립니다. 듣은 것을 보게 되는 것입니다. 예를 들어서 출애굽기에서 성막의 가로 세로 너비가 몇 규빗이다 이런 말씀을 읽으면 그것을 기초로 성막을 그려보는 것입니다. 그렇게 들은 것을 볼 때 내가 정확하게 이해했는가 헤아려보아야 합니다. 24절에 있는 헤아리다라는 말은 자(μέτρον)로 재본다는 뜻입니다(μετρέω). 자는 기준입니다. 우리에게는 명확한 기준이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기준이십니다. 그러므로 24절의 뜻은 내가 들은 것을 잘 보면서 이 말씀이 예수 그리스도와 맞는가를 생각해 보라는 뜻입니다.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재는 것처럼 나도 예수 그리스도를 기준으로 측량됩니다.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25   있는 자는 받을 것이요 없는 자는 그 있는 것까지도 빼앗기리라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를 깨달아 아는 사람은 말씀을 들으면 들을수록 더 알게 됩니다. 그것이 있는 자는 받을 것이라는 말씀의 뜻입니다. 깨달음은 깨달음을 낳습니다. 깨달음의 상승작용입니다. 그러나 깨닫지 못하면 그나마 아리송하게 알고 있는 것도 사라지게 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깨닫고 기준으로 딱 가지고 있지 않은 사람은 자기들이 가지고 있었던 종교적인 깨달음까지도 다 빼앗기게 됩니다. 예루살렘에서 온 서기관들이 딱 그런 모양입니다(3:2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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