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0장 1-20절 | 전쟁 규범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2024. 4. 3. 18:5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20:1-20

찬송가 586장 어느 민족 누구게나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지 말라

이스라엘은 언약 백성으로서 무죄한 피를 흘리면 안 됩니다(19:10, 13). 하나님께서는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땅에서 생명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 나라의 공동체는 그 생명을 해하면 안 됩니다. 이웃의 경계표를 움직이지 말라는 말씀과(10:14) 거짓 증언을 하지 말라는 말씀도 그 안에 들어갑니다(10:19). 하지만 이스라엘은 이 법령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나중에 아합 왕 때 나봇은 경계표를 움직이려는 아합에 의해서 무참하게 살해됩니다. 그 때 쓰인 방법이 거짓 증언입니다(왕상 21장). 이어지는 20장의 말씀은 하나님의 언약 원리가 전쟁에 어떻게 적용되는가를 보여줍니다.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1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우려 할 때에 말과 병거와 백성이 너보다 많음을 볼지라도 그들을 두려워하지 말라 애굽 땅에서 너를 인도하여 내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하시느니라

 

이스라엘은 전쟁을 수행할 때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특별히 적군의 병거와 백성이 자기들보다 많은 상황이어도 두렵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애굽 땅에서 그들을 인도해 내신 하나님께서 그들과 함께 하시기 때문입니다(1절). 하나님께서는 애굽 땅에서 친히 전쟁을 수행하셨습니다. 당시 세계 최강대국 애굽을 열 가지 재앙으로 치셨습니다. 애굽 왕 바로는 끝까지 이스라엘 백성들을 보내려고 하지 않았지만 항복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함께 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두렵지가 않은 것입니다. 

제사장이 동행하는 전쟁

2   너희가 싸울 곳에 가까이 가면 제사장은 백성에게 나아가서 고하여 그들에게

3   말하여 이르기를 이스라엘아 들으라 너희가 오늘 너희의 대적과 싸우려고 나아왔으니 마음에 겁내지 말며 두려워하지 말며 떨지 말며 그들로 말미암아 놀라지 말라
4   너희 하나님 여호와는 너희와 함께 행하시며 너희를 위하여 너희 적군과 싸우시고 구원하실 것이라 할 것이며

 

전쟁에 제사장이 동행합니다. 제사장의 동행은 하나님의 동행을 상징합니다. 제사장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전쟁에 나온 백성들을 안심시킵니다(3절). 제사장이 그들에게 해줄 말은 첫째,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와 함께 행하신다는 것입니다. 둘째, 하나님께서 너희를 위하여 적군과 싸우신다는 것입니다. 셋째, 너희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4절). 전쟁 현장은 참혹합니다. 그 참혹한 현장에 하나님께서 함께 계신다는 것은 큰 위로가 됩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신다는 것은 반드시 생명을 보존한다는 뜻은 아닙니다. 그것보다 훨씬 더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그것이 5절부터 이어집니다. 

 

매일성경 | 신명기 20장 1-20절 | 전쟁 규범 안에 들어 있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전사하면 안 되는 사람들

5   책임자들은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낙성식을 행할까 하노라
6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 과실을 먹을까 하노라
7   여자와 약혼하고 그와 결혼하지 못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전사하면 타인이 그를 데려갈까 하노라 하고

 

전쟁 때 제사장은 하나님께서 그들과 동행하시고 적군과 싸우시고 그들을 구원하신다고 전해야 합니다(4절). 이 말씀의 뜻은 일차적으로는 그들의 생명을 보존하신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 말씀은 생명을 잃지 않고 보존하신다는 의미보다 더 깊습니다. 왜냐하면 5절부터 "전사하면"이라는 말이 나오기 때문입니다. 전쟁에 참전하는 누구든지 전사할 수 있는 것입니다. 

언약 백성의 지위

5절부터는 전사하면 안 되는 사람이 나옵니다. 전사하면 안 되는 사람은 첫째, 새 집을 건축하고 낙성식을 행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둘째, 포도원을 만들고 그 과실을 먹지 못한 사람입니다. 셋째, 여자와 약혼하고 결혼하지 못한 사람입니다. 이 사람들은 징집이 면제되었습니다. 왜냐하면 이들은 전사하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이들이 전사하면 안 되는 이유는 다른 사람이 이들이 행한 수고의 열매를 누리게 되기 때문입니다. 수고의 열매를 누리지 못하는 것은 언약을 배반한 사람이 당하는 저주입니다(신 28:30). 이들이 징집에서 면제되는 이유는 하나님 나라를 위한 전쟁이 저주로 여겨지면 안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서 수행하는 전쟁은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의 복을 누리기 위한 것입니다. 저주 때문에 일어나는 일이 아닙니다. 그렇기 때문에 영예로운 전사가 저주로 여겨져서는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함께 행하시면서 적군과 싸우시고 그들을 구원하시겠다는 말씀은 언약 백성이 하나님의 언약에서 떨어지지 않게 하시겠다는 의미입니다. 생명 보존보다 훨씬 깊은 의미입니다. 전쟁에서 싸우다가 죽더가도 그 죽은 자가 하나님의 언약에서 떨어져 나가지 못하게 하나님께서 붙드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언약 안에 있는 사람은 그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돌보시고 다시 살리시고 영생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의 죽음이 저주처럼 여겨지면 안 됩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임

8   책임자들은 또 백성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자가 있느냐 그는 집으로 돌아갈지니 그의 형제들의 마음도 그의 마음과 같이 낙심될까 하노라 하고
9   백성에게 이르기를 마친 후에 군대의 지휘관들을 세워 무리를 거느리게 할지니라

 

집으로 돌려보내는 사람이 한 부류 더 있습니다. 그들은 바로 두려워서 마음이 허약한 사람입니다(8절). 그들을 돌려보내는 이유는 다른 이들에게 두려움이 전염되기 때문입니다. 전쟁에서 두려움은 싸우기도 전에 패배로 이어집니다. 게다가 이들이 수행하는 전쟁은 하나님 나라의 전쟁입니다. 믿음으로 수행하는 전쟁인 것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의 반대입니다. 

멀리 있는 성읍을 칠 때

10   네가 어떤 성읍으로 나아가서 치려 할 때에는 그 성읍에 먼저 화평을 선언하라
11   그 성읍이 만일 화평하기로 회답하고 너를 향하여 성문을 열거든 그 모든 주민들에게 네게 조공을 바치고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12   만일 너와 화평하기를 거부하고 너를 대적하여 싸우려 하거든 너는 그 성읍을 에워쌀 것이며
13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 성읍을 네 손에 넘기시거든 너는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이고
14   너는 오직 여자들과 유아들과 가축들과 성읍 가운데에 있는 모든 것을 너를 위하여 탈취물로 삼을 것이며 너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적군에게서 빼앗은 것을 먹을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화평을 선언해야 했습니다(10절). 화평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을 섬긴다는 조건으로 수락됩니다(11절). 누구를 섬기는가에 따라서 그 땅의 문화가 바뀝니다. "너를 섬기게 할 것이요" 이 말은 곧 그들이 하나님을 섬기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곧 그들이 이교도의 문화에서 하나님을 섬기는 문화로 들어온다는 뜻입니다. 

 

만약에 화평하기를 거부하면 그 성읍을 에워싸고 전쟁을 수행합니다(12절). 하나님께서 그 성읍을 이스라엘의 손에 넘기셔서 그 성읍이 함락되면 이스라엘은 칼날로 그 안의 남자를 다 쳐죽여야 합니다(13절). 여자들과 유아들은 살렸습니다(14절). 이것은 민간인은 살리고 전투병력은 다 죽이는 것입니다. 여자들과 유아들은 이스라엘에 귀속되어서 변화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하지만 남자들은 언제든지 전투 병력이 되어서 반역을 꾀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성경은 이들을 하나님 나라를 반역하고 악을 선택하는 당사자들로 봅니다. 

가나안 땅에 거하는 민족들은 진멸해야 함

15   네가 네게서 멀리 떠난 성읍들 곧 이 민족들에게 속하지 아니한 성읍들에게는 이같이 행하려니와
16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이 민족들의 성읍에서는 호흡 있는 자를 하나도 살리지 말지니
17     족속과 아모리 족속과 가나안 족속과 브리스 족속과 히위 족속과 여부스 족속을 네가 진멸하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명령하신 대로 하라
18   이는 그들이 그 신들에게 행하는 모든 가증한 일을 너희에게 가르쳐 본받게 하여 너희가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 범죄하게 할까 함이니라

멀리 있는 성읍과는 평화 조약을 맺을 수 있습니다. 하지만 그 땅의 원주민은 진멸해야 합니다(15-17절). 왜냐하면 그들이 이스라엘을 타락시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18절). 삶의 터전을 우상숭배자들과 공유하면 안 됩니다. 사람은 주변 사람에 의해서 영향을 잘 받습니다. 가장 지혜로운 사람이었던 솔로몬도 그 주변이 이방신을 섬기는 여인들로 가득하게 되자 이방신을 섬기게 되었습니다. 우상숭배자들과 교제하는 것은 죄를 범하겠다는 말과 같은 말입니다. 이스라엘은 결국 이 말씀을 지키지 못하고 우상숭배의 범죄에 빠지게 됩니다. 

자연에 보복을 가하지 말아야 함

19   너희가 어떤 성읍을 오랫동안 에워싸고 그 성읍을 쳐서 점령하려 할 때에도 도끼를 둘러 그 곳의 나무를 찍어내지 말라 이는 너희가 먹을 것이 될 것임이니 찍지 말라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너희가 어찌 그것을 에워싸겠느냐
20   다만 과목이 아닌 수목은 찍어내어 너희와 싸우는 그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들어 그 성읍을 함락시킬 때까지 쓸지니라

 

전쟁을 수행할 때 주변의 자연은 보호해야 합니다(19-20절). 그 자연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누리라고 주신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것들은 사람의 먹을 것이 되고 성읍을 치는 기구를 만드는 재료가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성읍에 속해있다는 이유로 거기에 있는 나무를 다 훼손하면 안 됩니다. 사람의 복수심은 생각보다 큽니다(19절, 들의 수목이 사람이냐 어찌 그것을 에워싸느냐).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그 복수심이 자연으로 향하는 것을 막으시는 것입니다. 

진멸하라는 말씀에 대하여

많은 사람들이 신명기에 나오는 전쟁에 대한 규범을 오해합니다. 진멸하라는 말씀 때문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구약의 하나님은 사랑의 하나님이 아니라고까지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오해입니다. 전체적으로 보아야 합니다. 진멸하라는 말씀은 가나안 족속에게만 적용됩니다. 그들을 진멸해야 하는 이유는 이스라엘의 정복 전쟁이 그들에 대한 심판의 의미를 가지기 때문입니다(18:12). 그들을 진멸하기 전에 먼저 그들은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먼저 가나안 족속들에게 두려운 마음이 들게 하셨습니다(수 2:11). 두려운 마음이 들 때 그들은 맞서기를 포기하고 그 땅에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게 하지 않은 사람들에게 하나님께서는 왕벌을 보내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그들이 그 땅에서 더 이상 가증한 악을 범하지 못하도록 쫓아내셨습니다(수 20:12). 이 때에도 가나안 족속들은 진멸을 당하지 않고 그 땅에서 나갈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진멸하라는 말씀은 최종적인 말씀입니다. 모든 가나안 족속들이 진멸을 당한 것이 아닙니다. 끝까지 완고하게 버티면서 하나님을 대적한 사람들이 진멸을 당한 것입니다. 

전쟁이라는 참혹한 일에서도

신명기의 전쟁규범은 굉장히 인도적입니다. 전쟁을 수행하기 전에 먼저 평화를 선포해야 합니다. 전쟁보다 협상을 옹호하는 것입니다. 비폭력을 선호하는 것입니다. 만약 항복하지 않으면 전투 병력인 남자만 죽입니다. 민간인은 다 살립니다. 신명기 21장 10-14절에 보면 여성 포로를 대할 때 잘 대우하라고 나옵니다. 그러므로 나머지 포로들도 인간으로 존중하면서 잘 대해야만 했습니다. 평화를 선포하고 그들에게 조공을 받는 이유는 그들이 이스라엘을 섬기면서 하나님을 섬기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이것은 그들에게 복이 되는 일입니다. 성경에 나오는 예로는 기브온 족속이 있습니다(수 9:21). 

하나님의 언약 원리가 적용됨

20장은 삶의 모든 영역을 지배하는 하나님의 언약 원리가 전쟁에도 적용된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언약 원리는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입니다. 전쟁에서도 이 원리가 적용될 수 있습니다. 전쟁하기 전에 먼저 평화를 선포하고 그들이 이스라엘을 섬기도록 하는 것은 그들로 하여금 하나님을 섬기게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말씀이 이렇게 적용됩니다. 이웃 사랑도 마찬가지입니다. 이웃을 사랑하라는 말씀은 모든 상황에서 이웃에게 친절하게 대하라는 뜻이 아닙니다. 사랑 안에 징벌과 징계가 포함됩니다. 배교자와 우상숭배자, 살인자를 처벌하는 것이 이웃 사랑 안에 포함되는 것입니다. 이런 원리를 넓게 적용하면 가나안 족속들의 악을 제하는 것도 이웃 사랑의 범주에 들어갑니다. 

 

신명기는 이스라엘 안에 거주하는 외국인을 사랑하고(10:19) 법적으로 보호하라고 명령합니다(24:19). 이런 의미에서 전쟁의 상황에서도 이웃 사랑이 실천되었습니다. 먼저 전쟁이라는 대의 때문에 언약 백성의 소중한 삶이 희생되면 안 되었습니다(5-8절). 또한 포로로 잡혀 온 여자들에게 사랑을 베풀어야 했습니다(21:11-14). 

전투하는 교회

이 땅의 교회는 전투중입니다. 이 전투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끝납니다. 그 전에 모든 믿는 사람들은 이 땅에서 전투하면서 살아갑니다. 이 전투에서 우리는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와 함께 행하시고 우리의 적과 싸우시며 우리를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특별히 우리가 언약 백성의 지위에서 떨어져 나가지 않도록 보호하십니다. 이 세상의 악과 싸울 때 그 악이 너무 거대하여 두렵다고 느낄 때 기억해야 할 것은 임마누엘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싸우시고 끝끝내 나를 구원하신다는 것입니다.

거룩한 복음의 강설

이 말씀대로 악과의 싸움에서 두려워하지 않으려면 영적인 안목을 가지고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계신다는 것을 평소에 느끼면서 살아야 합니다. 그래야 비상상황에서 두려워하지 않을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에게는 제사장의 역할이 중요했습니다. 제사장들이 이스라엘 백성을 평소에 잘 가르쳐야 했던 것입니다. 우리에게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 복음의 말씀을 항상 들어야 합니다. 그래야 예수님께서 임마누엘로서 우리와 함께 거하신다는 확신을 가질 수 있습니다. 

징집 면제와 일상의 복

교회의 일이 종종 전쟁에 비유될 때가 있습니다. 가령 초청주일을 한다거나 특별집회를 할 때가 그렇습니다. 그럴 때 성도들은 마치 전쟁에 동원되는 것과 같은 대접을 받습니다. 교역자들은 말할 것도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전 교역자들은 인생을 전쟁처럼 살았습니다. 이런 현실에서 신명기의 전쟁 지침은 우리에게 충격을 줍니다. 신명기는 전쟁이라는 대의에 모든 이를 동원하지 말라고 합니다. 오히려 면제해주라고 합니다. 일상의 삶에서 하나님의 복을 누리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합니다. 우리 믿음 생활에 있어서 이 두 가지에 균형이 잘 잡혀 있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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