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1장 1-23절 | 약속의 땅에서 생명을 귀중히 여길 것에 대한 언약 조항들

2024. 4. 4. 16:52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21:1-23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살인하지 말라

    신명기 12-26장에는 세세한 언약 조항이 나옵니다. 그 중에서 19장 1절부터 21장 9절까지는 여섯 째 계명과 연결됩니다. 여섯 째 계명은 살인하지 말라입니다. 19장 1-13절과 21장 1-9절에서는 여섯 째 계명이 분명하게 나타납니다. 

    살인자를 모르는 경우

    1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어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피살된 시체가 들에 엎드러진 것을 발견하고 그 쳐죽인 자가 누구인지 알지 못하거든
    2   너희의 장로들과 재판장들은 나가서 그 피살된 곳의 사방에 있는 성읍의 원근을 잴 것이요
    3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장로들이 그 성읍에서 아직 부리지 아니하고 멍에를 메지 아니한 암송아지를 취하여
    4   그 성읍의 장로들이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뿌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그 송아지를 끌고 가서 그 골짜기에서 그 송아지의 목을 꺾을 것이요
    5   레위 자손 제사장들도 그리로 갈지니 그들은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사 자기를 섬기게 하시며 또 여호와의 이름으로 축복하게 하신 자라 모든 소송과 모든 투쟁이 그들의 말대로 판결될 것이니라
    6   그 피살된 곳에서 제일 가까운 성읍의 모든 장로들은 그 골짜기에서 목을 꺾은 암송아지 위에 손을 씻으며
    7   말하기를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
    8   여호와여 주께서 속량하신 주의 백성 이스라엘을 사하시고 무죄한 피를 주의 백성 이스라엘 중에 머물러 두지 마옵소서 하면 그 피 흘린 죄가 사함을 받으리니
    9   너는 이와 같이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정직한 일을 행하여 무죄한 자의 피 흘린 죄를 너희 중에서 제할지니라

     

    19장에서는 살인자가 누구인지 아는 경우 어떻게 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반면 21장 본문은 살인자를 모르는 경우에 대한 것입니다. 살인자를 모르더라도 그 사건을 미해결 사건으로 그냥 두면 안 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무죄한 피 흘림은 땅을 더럽게 하기 때문입니다(23절). 살인자가 누군지 모르는 경우 피에 대한 책임은 모든 백성에게 돌아갑니다(8절). 잘못하면 이스라엘 전체가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죄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 아래 들어가게 됩니다(8-9절). 그렇기 때문에 살인자가 누구인지 모른다면서 그냥 넘어가는 것은 나라 전체를 위태롭게 하는 일입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기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리는 것을 굉장히 싫어하십니다. 반드시 그 죄의 값을 물으십니다. 언약 공동체 안에 속한 모든 사람의 생명은 하나님께 굉장히 소중합니다. 그들이 받은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즉 우리 믿는 자들이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생명을 풍성하게 누리기를 원하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우리를 향한 뜻은 재앙이 아니고 평안입니다. 

    공동체가 치러야 하는 의식

    살인자를 못 찾았을 때 피 흘린 죄는 공동체가 의식을 행함으로 감당합니다. 이 의식의 목적은 피 흘린 죄를 제거하는 것(9절)과 그 죄가 사함을 받는 것(8절)입니다. 이 사건은 장로들(2, 3, 6절)과 재판장들(2절)과 제사장들(5절)이 참석해야 했습니다. 이것은 성읍의 지도자들에게 일정 책임을 묻는 것입니다. 그들이 속한 성읍을 잘 다스렸으면 이런 사건이 발생하지 않았을 것이라는 의미도 됩니다. 

    의식이 상징하는 것 두 가지

    이 의식은 두 가지를 상징합니다. 첫째는 밝혀지지 않은 살인자의 처형이라는 상징입니다. 3절의 송아지는 살인자를 상징합니다. 그 송아지는 4절에서 도살 당합니다. 이것이 살인자의 처형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송아지를 죽이는 것은 희생제사가 아닙니다. 하지만 효과는 동일합니다. 왜냐하면 살인 죄에 대한 죄책이 속량되기 때문입니다. 둘째는 비 거주지역에서 발생한 살인의 재현이라는 상징입니다. 이 의식은 물이 항상 흐르고 갈지도 않고 씨를 뿔린 일도 없는 골짜기로 이 사건을 가지고 갑니다(4절). 거기에서 송아지의 목을 꺾습니다. 그렇게 해서 무죄한 자의 피를 흘린 것이 야기하는 모든 위협을 공동체로부터 제거합니다. 흐르는 물에 흘려보내는 것이 그것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죽임 당한 송아지의 사체 위에서 손을 씻는 것(6절)도 그 죄를 흘려 보낸다는 의미를 가집니다. 

    피 흘린 죄를 사하려면

    이 의식으로 밝혀지지 않은 살인자는 상징적으로 처형을 당합니다. 그리고 피 흘린 죄는 물에 씻겨 나갑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 의식으로 하나님께 용서를 구했습니다(8절). 용서를 구하면서 맹세를 해야 했습니다. "우리의 손이 이 피를 흘리지 아니하였고 우리의 눈이 이것을 보지도 못하였나이다(7절)"라고 말해야 했습니다. 그래야 피 흘린 죄에 대하여 사함을 받을 수 있었습니다.

     

    매일성경 | 신명기 21장 1-23절 | 약속의 땅에서 생명을 귀중히 여길 것에 대한 언약 조항들

    지도자들이 책임을 느껴야 했음

    한 사람의 죽음 앞에서 사회의 모든 지도자들이 모여야 했습니다. 정치 지도자인 장로와 사법 지도자인 재판관과 종교 지도자인 제사장이 다 모여서 한 사람의 죽음에 대한 책임을 느껴야 했습니다. 책임을 느끼면서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해야 했습니다. 

    생명을 귀하게 여겨야 함

    이 말씀처럼 우리는 피 흘린 죄에 대한 집단적 책임 개념을 회복해야 합니다. 생명이 잃어버려진 것에 대해서 책임감을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을 두려워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그에 대하여 책임을 물으신다는 것을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한 사람을 귀하게 여기시는 만큼 우리도 귀하게 여겨야 합니다. 신약에 가면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라고 말씀합니다. 신명기 말씀은 육체적 생명만 말씀합니다. 하지만 이 말씀은 육체적 생명과 함께 영적 생명도 포함합니다. 

    전쟁 포로를 어떻게 대해야 하는지에 대하여

    10   네가 나가서 적군과 싸울 때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그들을 네 손에 넘기시므로 네가 그들을 사로잡은 후에
    11   네가 만일 그 포로 중의 아리따운 여자를 보고 그에게 연연하여 아내를 삼고자 하거든
    12   그를 네 집으로 데려갈 것이요 그는 그 머리를 밀고 손톱을 베고
    13   또 포로의 의복을 벗고 네 집에 살며 그 부모를 위하여 한 달 동안 애곡한 후에 네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의 남편이 되고 그는 네 아내가 될 것이요
    14   그 후에 네가 그를 기뻐하지 아니하거든 그의 마음대로 가게 하고 결코 돈을 받고 팔지 말지라 네가 그를 욕보였은즉 종으로 여기지 말지니라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과 연관된 언약 조항이 계속됩니다. 살인하지 말라는 계명 안에 전쟁과 포로에 관한 조항이 들어가는 것입니다. 10-14절은 전쟁포로를 최대한 존중할 것을 말씀합니다. 전쟁의 포로로 여자를 잡아 왔을 때 그를 착취하면 안 됩니다. 만약 그에게 마음이 간다면 그를 아내로 삼아야 합니다(11절). 아내의 지위를 보장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내의 지위를 보장한다고 해서 급하게 일을 진행하면 안 됩니다. 여자는 지금 전쟁이라는 충격적인 상황을 겪었기 때문입니다. 이 상황에 적응하고 부모를 위해서 애곡할 시간을 주어야 합니다. 그 시간은 한 달입니다(13절). 시간이 흐르면 상처는 아물게 되어 있습니다. 어느 정도 마음을 추스른 다음에 일을 진행시켜야 합니다. 그 여자가 포로라고 해서 함부로 건드리면 안 됩니다. 반드시 애곡한 후에 시간을 준 다음에 그에게 들어가야 합니다(13절). 

    약자를 보호하는 율법

    그런데 남자가 마음이 변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변했으니 이제 다시 포로로 그를 취급하면 되느냐, 안 됩니다. 그에게 주어진 아내의 지위는 변하지 않습니다. 만약 마음이 변한다면 그 여자를 자유인으로 놓아주여야 합니다(14절). 이렇게 율법은 약자를 보호합니다. 약자를 보호하는 율법이 15절 이하에 계속 이어집니다. 

    장자의 권리

    15   어떤 사람이 두 아내를 두었는데 하나는 사랑을 받고 하나는 미움을 받다가 그 사랑을 받는 자와 미움을 받는 자가 둘 다 아들을 낳았다 하자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이 장자이면
    16   자기의 소유를 그의 아들들에게 기업으로 나누는 날에 그 사랑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삼아 참 장자 곧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보다 앞세우지 말고
    17   반드시 그 미움을 받는 자의 아들을 장자로 인정하여 자기의 소유에서 그에게는 두 몫을 줄 것이니 그는 자기의 기력의 시작이라 장자의 권리가 그에게 있음이니라

     

    15-17절은 아들을 부당한 아버지로부터 보호하는 율법입니다. 15절에 보면 일부다처제가 등장합니다. 본래 성경은 일부다처제에 대해서 호의적이지 않습니다. 예외적으로 허용될 뿐입니다. 일부다처제 아래에서는 갈등의 소지가 많습니다. 한 여인을 다른 여인보다 사랑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 자녀들도 편애할 수 있습니다. 본문은 이런 편애가 발생할 때를 가정합니다. 편애가 발생할 때에라도 장자의 권리는 빼앗을 수 없습니다(16-17절). 어머니가 아버지에게 사랑 받지 못하는 것을 보는 자녀는 고통스러울 것입니다. 그 고통에 더해서 유산 상속까지 차별을 당해서는 안 됩니다. 

    르우벤의 경우

    르우벤은 야곱의 장자였습니다. 장자였지만 장자의 권리는 요셉에게 돌아갔습니다. 이것은 어떻게 보아야 할까요? 먼저 그 사건은 율법 이전의 사건입니다. 율법이 오기 전에는 그것을 죄로 보기 어렵습니다. 둘째로 르우벤은 아버지에게 큰 죄를 범했습니다. 셋째로 실질적인 장자의 역할을 한 사람은 요셉입니다. 요셉은 애굽에 팔려갔습니다. 팔려갔지만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를 애굽에 먼저 보내시기 위한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먼저 보내신 이유는 그가 애굽의 총리가 되어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구원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계시로서의 의미가 있는 사건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요셉에게 장자의 권리가 주어졌습니다.

    예외적인 것을 법으로 따르면 안 됨

    본문의 규정은 야곱 가정의 경우와는 다릅니다. 야곱 가정은 성경에 기록되어서 계시로 쓰임 받았습니다. 요셉은 오실 예수님을 가리키는 사람이었습니다. 하지만 보통 가정은 다릅니다. 보통 가정이 야곱 가정을 가지고 와서 자기 마음대로 장자의 권리를 자기가 원하는 사람에게 주겠다고 하면 안 됩니다. 예외적인 것을 법칙인 양 따르면 안 되는 것입니다. 

    패역한 아들

    18   사람에게 완악하고 패역한 아들이 있어 그의 아버지의 말이나 그 어머니의 말을 순종하지 아니하고 부모가 징계하여도 순종하지 아니하거든
    19   그의 부모가 그를 끌고 성문에 이르러 그 성읍 장로들에게 나아가서
    20   그 성읍 장로들에게 말하기를 우리의 이 자식은 완악하고 패역하여 우리 말을 듣지 아니하고 방탕하며 술에 잠긴 자라 하면
    21   그 성읍의 모든 사람들이 그를 돌로 쳐죽일지니 이같이 네가 너희 중에서 악을 제하라 그리하면 온 이스라엘이 듣고 두려워하리라

     

    앞에서는 아버지의 횡포에 당하는 아들에 관해서 다룹니다. 이어지는 18절부터 21절에서는 패역한 아들에 관한 내용입니다. 여기서 나오는 아들은 아이가 아닙니다. 장성한 청년입니다. 아들이 장성하면 부모를 거역할 수 있습니다. 부모는 약해지고 아들은 강해지는 것입니다. 그 아들을 부모가 열심히 훈육했지만 순종하지 않을 경우 그는 성문에 끌려가서 장로들의 재판을 받아야 합니다(19-20절). 

    공동체의 의무

    이 율법은 가정의 훈육과 징계의 중요성을 인정합니다. 하지만 패역한 아들을 가정 혼자 짊어지게 하지 않습니다. 전체 공동체가 가정을 함께 돌보도록 합니다. 큰 공동체가 작은 공동체인 가정의 질서가 바르게 세워지도록 돕습니다. 패역한 아들의 비행은 전체 공동체에 심각한 해악이 됩니다. 그 아들이 제 5계명을 노골적으로 위반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계명을 이렇게 위반하는 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유발합니다. 온 공동체는 이것을 심각하게 여겨야 합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둘 다

    아들을 고소할 때에는 반드시 아버지와 어머니가 함께 해야 합니다(19절). 그렇게 하는 이유는 아들을 보호하기 위해서입니다. 아버지와 어머니 모두가 함께 아들을 고소할 때에만 그 고소가 효력이 있습니다.

    적용된 예는 없음

    이스라엘 역사에서 이 율법이 실제로 적용되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이 율법은 존재 자체로 제 5계명의 엄중함을 드러냅니다. 자녀의 비행으로 고통을 당하는 현대의 많은 부모들에게 이 계명이 함의하는 바는 크다고 할 수 있습니다. 

    나무에 달린 자

    22   사람이 만일 죽을 죄를 범하므로 네가 그를 죽여 나무 위에 달거든
    23   그 시체를 나무 위에 밤새도록 두지 말고 그 날에 장사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을 더럽히지 말라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음이니라

     

    22-23절의 법은 시체를 잘못 처리해서 약속의 땅이 더럽혀지지 않도록 하라고 합니다. 처형된 범죄자는 그 시체를 나무에 매달았습니다(22절). 사람들에게 보여서 범죄를 예방하기 위함입니다. 그런데 해가 지면 그 시체를 바로 내려야 했습니다(23절 상). 해가 지도록 시체를 매달아 두는 것은 땅을 더럽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땅을 더럽힌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런 행위를 가증하게 보신다는 뜻입니다. 이 법은 사형 당한 자의 가족이 그 이상의 정서적 고통을 당하지 않도록 보호했습니다. 또한 사형 당한 자가 죽음의 형벌을 넘어서는 수치를 당하지 않도록 했습니다. 

    하나님의 저주

    원문에는 23절에 "나무에 달린 자는 하나님의 저주다"라고 쓰여 있습니다. 이것은 두 가지로 해석될 수 있습니다. 하나는 "나무에 달렸기 때문에 하나님께 저주를 받은 자다"이고 다른 하나는 "하나님께 저주를 받았기 때문에 나무에 달렸다"입니다. 두 가지 중에서 대부분의 학자들은 후자의 해석을 따릅니다. 이 말씀은 신약에서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신 그리스도의 죽음을 해석할 때 사용됩니다(행 5:30; 10:39 이하; 밷전 2:24). 바울은 이 구절을 율법의 저주와 연결시킵니다(갈 3:13). 

    우리를 위해 저주를 당하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우리를 위해서 모든 죄에 대한 저주를 당하셨습니다. 저주를 당하심으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나무에 달리심으로 죄의 저주를 당하셨다는 것을 모든 사람에게 보이셨습니다. 누구든지 그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믿기만 하면 율법의 저주, 죄를 범한 저주에서 놓여나게 하셨습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공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