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2. 09:09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목차
누가복음 13:1-21
찬송가 96장 예수님은 누구신가
시대를 분간하라
예수님께서는 시대를 분간하라고 하셨습니다(12:56). 당시 사람들은 예수님으로 인해서 도래한 종말이라는 시대를 분별해야 했습니다. 이제 구원은 이전보다 더 시급한 문제가 되었습니다(12:58-59). 그들이 고대하던 메시아가 이미 왔기 때문입니다(12:35-48). 종말이 시작되어서 모든 사람은 법정으로 끌려가는 중입니다. 그 도중에 구원의 길을 찾아야 합니다. 구원의 길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의지하는 것입니다. 이것 밖에는 구원의 길이 없습니다. 그 때 어떤 두어 사람이 예수님께 어떤 질문을 합니다(1절).
죄와 회개
1 그 때 마침 두어 사람이 와서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로 예수께 아뢰니
2 대답하여 이르시되 너희는 이 갈릴리 사람들이 이같이 해 받으므로 다른 모든 갈릴리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3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4 또 실로암에서 망대가 무너져 치어 죽은 열여덟 사람이 예루살렘에 거한 다른 모든 사람보다 죄가 더 있는 줄 아느냐
5 너희에게 이르노니 아니라 너희도 만일 회개하지 아니하면 다 이와 같이 망하리라
빌라도가 한 일
1절에 "빌라도가 어떤 갈릴리 사람들의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은 구체적으로 무슨 일인지 알기 어렵습니다. 추정하자면 다음과 같습니다. 빌라도는 당시 유대 지역을 다스리는 로마 총독이었습니다. 그는 유대인의 종교나 문화를 존중하지 않았습니다. 또한 로마에 대항하는 사람들의 소요는 무자비하게 진압했습니다. 당시 갈릴리는 유대지역보다 로마의 통제가 약한 지역이었습니다. 그 갈릴리 사람들이 유대 예루살렘으로 와서 제사를 드리려고 했는데 빌라도는 그 사람들을 반란세력으로 오해했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성전에서 제사드릴 때 죽였을 것입니다. 그래서 그들의 피가 제물에 뒤섞였기 때문에 "피를 그들의 제물에 섞은 일"이라고 표현했다고 추정됩니다. 이 일의 구체적인 전말은 이런 추정 외에는 알 수 없습니다. 하지만 이 일은 당시 유대 사회에 굉장히 치욕적인 일로 여겨졌습니다. 두어 사람은 이 일을 예수님께 여쭈면서 예수님의 정치적인 입장을 물었습니다. 예수님께 당장이라도 로마를 뒤엎어야 하지 않겠느냐라고 물어본 것입니다. 그들이 생각하는 로마를 뒤엎어야 하는 명분은 로마가 하나님께 드리는 예배를 경시하고 모독했다는 것입니다.
로마보다 죄가 문제임
이에 대해서 예수님은 이 문제를 죄와 연관시키십니다. 사람들은 로마의 만행에 치를 떨면서 동시에 갈릴리 사람들이 해를 받은 것을 죄와 연결시켰습니다. 그들이 무고하게 죽었다면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것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불의하신 것은 상상할 수도 없기 때문에 그 갈릴리 사람들이 무고하게 죽은 것이 아니고 죄가 있어서 죽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이들이 로마를 뒤엎을 생각을 하는 것도 하나님의 거룩하심을 로마가 대적하고 침범했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하나님 편에 있으면서 양쪽을 판단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이런 생각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죄를 짓는 것은 그 갈릴리 사람들이나 로마만이 아니고 너희도 포함된다고 하십니다. 사람은 대부분 스스로 의롭다고 생각하면서 재판장의 자리에 앉아서 판단합니다. 이런 사람의 습성 때문에 회개의 기회를 놓칩니다. 로마를 뒤엎기 전에 먼저 회개해야 합니다. 로마에 대해서 분노한다면 그 마음 그대로 나의 죄에 대해서 통회해야 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로마를 뒤엎으시러 오신 것이 아니고 죄 문제를 해결하셔서 사람들을 구원하러 오셨습니다. 우리가 분별해야 하는 종말의 시대는 회개의 시대입니다. 우리가 거룩해지는 것은 끊임없는 회개와 믿음의 성장으로 이루어집니다. 이것이 이 시대에 우리가 힘써야 하는 것입니다.
실로암 망대가 무너진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4절). 이 사건도 사람들은 그 사람들이 죄가 많아서 죽은 것이라고 해석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볼 것이 아닙니다. 그들의 자리에 내가 들어가도 이상하지 않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회개가 정말 시급하구나 생각해야 합니다(3, 5절). 시대를 분간하는 사람은 회개가 시급한 줄을 아는 사람이고 실제로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회개의 열매
6 이에 비유로 말씀하시되 한 사람이 포도원에 무화과나무를 심은 것이 있더니 와서 그 열매를 구하였으나 얻지 못한지라
7 포도원지기에게 이르되 내가 삼 년을 와서 이 무화과나무에서 열매를 구하되 얻지 못하니 찍어버리라 어찌 땅만 버리게 하겠느냐
8 대답하여 이르되 주인이여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 내가 두루 파고 거름을 주리니
9 이 후에 만일 열매가 열면 좋거니와 그렇지 않으면 찍어버리소서 하였다 하시니라
회개에는 열매가 따라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이것을 비유로 설명하셨습니다. 주인은 열매가 없는 무화과를 찍어버리라고 하고 포도원지기는 "금년에도 그대로 두소서"라고 간청합니다(7절). 이 무화과나무에게는 시시각각 종말이 다가오고 있는 것입니다. 이 종말을 늦추고 있는 것은 포도원지기의 긍휼과 사랑입니다. 포도원지기는 성삼위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하심을 가리킵니다. 하나님은 아무도 멸망하지 않고 다 회개하여 구원 얻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나타난 뜻입니다. 그러나 실제로는 그렇게 되지 않습니다. 그렇게 되지 않고 얼마는 구원을 받고 얼마는 버림을 받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감추어진 뜻입니다. 우리는 누가 구원을 받았고 버림을 받았는지에는 관심을 두지 말아야 합니다. 그것보다 하나님의 나타난 뜻에 의지하여 회개하고 열매 맺기에 힘써야 합니다. 회개의 열매는 하나님을 사랑하여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가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 과정에서 이웃 사랑의 열매도 맺힙니다.
참된 안식일
10 예수께서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가르치실 때에
11 열여덟 해 동안이나 귀신 들려 앓으며 꼬부라져 조금도 펴지 못하는 한 여자가 있더라
12 예수께서 보시고 불러 이르시되 여자여 네가 네 병에서 놓였다 하시고
13 안수하시니 여자가 곧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는지라
14 회당장이 예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을 분 내어 무리에게 이르되 일할 날이 엿새가 있으니 그 동안에 와서 고침을 받을 것이요 안식일에는 하지 말 것이니라 하거늘
15 주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외식하는 자들아 너희가 각각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이끌고 가서 물을 먹이지 아니하느냐
16 그러면 열여덟 해 동안 사탄에게 매인 바 된 이 아브라함의 딸을 안식일에 이 매임에서 푸는 것이 합당하지 아니하냐
17 예수께서 이 말씀을 하시매 모든 반대하는 자들은 부끄러워하고 온 무리는 그가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니라
예수님께서는 안식일에 한 회당에서 열여덟 해 동안 귀신 들려 꼬부라져서 펴지 못하던 여자를 고쳐주셨습니다(11-12절). 그 여자는 말씀을 듣자마자 몸을 펴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습니다(13절). 이것을 본 회당장은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병 고치시는 것에 화를 냈습니다. 화를 내면서 무리에게 안식일 계명을 지키라는 듯이 말했습니다(14절). 이 사람은 하나님을 향하여 열심이 있는 것처럼 보였지만 그것은 사실 하나님과 상관없는 열심이었습니다. 유대인은 열 가정 마다 회당 하나를 두었고 거기에 회당장을 두어 회당의 질서 유지나 관리를 맡겼습니다. 회당장은 마을에서 존경을 받는 사람이었습니다. 이 회당장이 하나님을 정말 사랑하고 이 여자를 사랑했다면 예수님께서 병 고치신 것을 보고 예수님께 감사하고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러지 않았습니다. 이 회당장은 하나님보다 자기 자신을 더 사랑하고 높이는 사람이었습니다. 사람들의 존경이 예수님께로 향하는 것을 참지 못했을 수도 있습니다.
만약에 안식일에 회당 예배에 갔는데 꼬부라져서 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고 생각해 봅시다. 사람들이 참된 안식을 누릴 수 있을까요? 없습니다. 안식은 그냥 쉬는 것으로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안식은 모든 것이 잘 돌아가야 이루어집니다. 꼬부라져서 펴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는 것은 일이 잘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입니다. 그것을 그냥 두고 안식할 수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안식일에 자기의 소나 나귀를 외양간에서 풀어내어 물을 먹인다는 말씀이 그런 뜻입니다(15절). 아무리 안식일이라도 가축의 생명에 지장이 있도록 하면 안 되는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생명이 심히 침해 당하고 있었습니다. 사탄에게 매여서 꼬부라져 펴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것을 회당에서 뻔히 보고 있는데 안식일이라고 그냥 두는 것은 말이 안 되는 것입니다. 회당장은 그런 일을 하라고 사람들에게 화를 낸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을 심히 오해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제정하신 안식일의 참된 의미를 몰랐거나 알았어도 싫어했던 것입니다.
심각한 것은 예수님을 반대하는 자들이 많았다는 것입니다(17절). 예수님으로 인해서 편이 갈라졌습니다. 예수님을 위하는 사람이 있고 예수님을 반대하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것이 종말에 일어날 일입니다. 예수님을 위하는 사람은 예수님께서 하시는 모든 영광스러운 일을 기뻐하고 동참합니다(17절 하).
하나님 나라
18 그러므로 예수께서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가 무엇과 같을까 내가 무엇으로 비교할까
19 마치 사람이 자기 채소밭에 갖다 심은 겨자씨 한 알 같으니 자라 나무가 되어 공중의 새들이 그 가지에 깃들였느니라
20 또 이르시되 내가 하나님의 나라를 무엇으로 비교할까
21 마치 여자가 가루 서 말 속에 갖다 넣어 전부 부풀게 한 누룩과 같으니라 하셨더라
꼬부라진 여자를 고치신 후에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가 어떠한지 비유로 가르치셨습니다. 두 가지를 말씀하셨는데 하나는 겨자씨이고 다른 하나는 누룩입니다. 둘 다 심히 작다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겨자씨는 그 어떤 씨보다 작습니다. 그 작은 씨가 땅에 떨어져서 자라면 나무가 됩니다(19절). 겨자는 1년생 식물로 나무가 되지 못합니다. 19절에서 나무가 된다는 것은 구약에서 나라를 나무로 비유한 것과 같은 의미입니다. 하나님 나라가 큰 나무가 되어서 많은 이들이 거기에 깃들일 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누룩도 심히 작습니다. 작아서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누룩은 확실하게 작용해서 빵을 부풀립니다. 그처럼 하나님 나라도 처음에는 미약하고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확실하게 작용합니다. 누룩으로 빵이 부푸는 것처럼 하나님 나라가 작용한다고 모든 사람이 알 수 있게 됩니다.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들은 마치 겨자씨와 같고 누룩과도 같습니다. 미천한 사람들입니다. 전혀 주목할만한 사람들이 아닙니다. 그런데 이 사람들로 인해서 하나님 나라가 세워지고 전파될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전세계에 복음이 전해지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이 만방에 알려질 것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로 피하여 오는 사람들이 많아질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충만한 수가 채워질 것입니다. 당시에는 사회 지도층으로부터 반대를 받았지만 시간이 흐르면 전세계 모든 사람이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듣게 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러한 시대에 살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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