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30. 14:51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목차
누가복음 12:35-48
찬송가 104장 곧 오소서 임마누엘
하나님에 대해서 부요한 사람
예수님께서는 종교지도자들이 장차 박해할 것을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성삼위 하나님께서 그를 지키시니 헛되이 죽지 않는다고 하셨습니다(12:4-12). 예수님을 위해서 목숨을 버리는 것은 영광스러운 일입니다. 이런 이야기를 하시는데 한 사람이 자기 형에게 말씀해 주셔서 유산을 자기랑 나누게 해달라고 요청했습니다(12:13).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주의 깊게 듣지 않았습니다. 그 마음에는 오직 자기가 받을 유산 밖에는 없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맥락과 전혀 다른 것을 요청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이 사람에게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위하여 재물을 쌓아두고 하나님에 대하여 부요하지 못한 자의 어리석음을 말씀하셨습니다(12:21). 이어서 하나님에 대해서 부요한 사람은 목숨이 중한 줄 알고(12:23) 염려하지 않으며(12:25) 하나님 나라를 구한다고 말씀하셨습니다(12:31). 그렇게 하나님을 가장 귀하게 여긴다고 하셨습니다(12:33-34). 이런 사람은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를 생각하고 거기에 동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가장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은 깨어 있습니다(35절).
깨어 있는 종
35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으라
36 너희는 마치 그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와 문을 두드리면 곧 열어 주려고 기다리는 사람과 같이 되라
37 주인이 와서 깨어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나아와 수종들리라
38 주인이 혹 이경에나 혹 삼경에 이르러서도 종들이 그같이 하고 있는 것을 보면 그 종들은 복이 있으리로다
39 너희도 아는 바니 집 주인이 만일 도둑이 어느 때에 이를 줄 알았더라면 그 집을 뚫지 못하게 하였으리라
40 그러므로 너희도 준비하고 있으라 생각하지 않은 때에 인자가 오리라 하시니라
유대인의 결혼 풍습
예수님은 당시 유대인들의 결혼 풍습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의 태도를 말씀하십니다. 당시 유대인은 결혼 때 결혼 계약서를 작성했습니다. 이 계약을 케투바라고 불렀습니다. 이 계약서에는 신부의 경제적 보호를 보장하는 내용이 명시되어 있습니다. 신랑은 결혼식 전에 먼저 가족이나 친구와 함께 자기 집에서 잔치를 준비합니다. 준비한 다음 케투바라고 불리는 결혼 계약을 협상하고 지참금 관련한 논의를 합니다. 이 과정에서 시간이 지체될 수 있었습니다. 신부측에서도 시간이 지체될 수 있는데 미크베라고 불리는 신부의 정결 의식을 해야 했고 옷차림과 장신구 등을 신경써야 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신랑과 신부의 집이 거리가 멀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 이동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습니다. 당시에는 도보로만 이동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게다가 신랑의 행렬이 중요했는데 이 행렬은 밤에 횃불을 들고 음악을 연주하는 행렬이었습니다. 이 행렬은 축제 분위기 속에서 이루어졌는데 이 말은 곧 행렬의 이동속도가 느렸다는 뜻입니다. 이렇게 해서 당시 결혼식은 밤을 새는 경우가 많았습니다.
새벽에 돌아온 주인
36절에 주인이 혼인 집에서 돌아왔다는 것은 이런 유대 결혼 풍습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경이나 삼경은 당시 시간을 재는 것과 관련됩니다(38절). 유대인은 3경 체계를 사용했습니다. 3경 체계는 제1경이 오후 6-10시, 제2경이 오후 10시-오전 2시, 제3경은 오전 2-6시입니다. 로마식은 좀 달랐습니다. 로마는 4경 체계를 사용했는데 제1경이 오후 6-9시, 제2경이 오후 9-자정, 제3경이 자정-오전 3시, 제4경이 오전 3-6시였습니다. 유대식이든 로마식이든 이경이나 삼경은 자정에서부터 새벽 시간까지를 나타냅니다. 이 시간은 밤이 깊은 시간으로 밤에 이동하기 어려운 당시로서는 보통 하루 더 묵고 오는 것이 일반적이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주인은 하루 더 묵고 오지 않고 밤에 집에 도착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때에 종들이 깨어서 주인을 기다리고 있으면 그 종들에게 복이 있을 것이라고 하십니다(35-37절). 그 복은 놀라운 복인데 주인과 종이 바뀌는 복입니다. 주인이 그렇게 오면 "주인이 띠를 띠고 그 종들을 자리에 앉히고 수종들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37절).
종을 쉬게 하시는 예수님
원래는 주인이 언제 오든지 종은 깨어 있어야 하고 주인이 오면 종은 띠를 띠고 주인에게 수종들어야 합니다. 그러나 주인을 성실하게 기다린 종을 주인이 얼마나 귀하게 보는지 그 종을 앉히고 그 주인이 오히려 수종을 든다고 하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음과 같은 말씀이 있습니다. "또 내가 들으니 하늘에서 음성이 나서 이르되 기록하라 지금 이후로 주 안에서 죽는 자들은 복이 있도다 하시매 성령이 이르시되 그러하다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쉬리니 이는 그들의 행한 일이 따름이라 하시더라(계 14:13)" 예수님 안에서 죽는 사람은 복이 있는데 그들이 수고를 그치고 쉰다고 합니다. 그들은 인내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킨 사람들입니다(계 14:13). 예수님께서는 이들을 맞아 주시고 그들을 쉬게 하십니다(계 6:11 참조). 우리는 끝까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그 끝은 두 가지인데 첫째로는 우리가 죽을 날입니다. 우리 개인적인 종말입니다. 둘째로는 우리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입니다. 그 때까지 살아있으면 둘째 종말이 첫째 종말과 같은 날입니다. 우리는 죽는 순간 또는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순간까지 깨어 있어야 합니다. 깨어 있는 것은 허리에 띠를 띠고 등불을 켜고 서 있는 것입니다(35절). 항상 일할 준비를 하면서 등불을 밝히 켜서 종말을 바라보고 그 날의 기다리는 마음으로 살아야 합니다. 살 때에는 하나님의 계명과 예수님에 대한 믿음을 지켜야 합니다. 이것이 바로 준비하고 있는 것입니다(40절). 이렇게 준비하고 있는 사람에게는 죽음이나 재림이 아무리 갑자기 임한다고 하더라도 마치 도둑처럼 임한다고 하더라도 그것이 그 사람에게 해가 되지 않습니다(39절).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41 베드로가 여짜오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
42 주께서 이르시되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맡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
43 주인이 이를 때에 그 종이 그렇게 하는 것을 보면 그 종은 복이 있으리로다
44 내가 참으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주인이 그 모든 소유를 그에게 맡기리라
45 만일 그 종이 마음에 생각하기를 주인이 더디 오리라 하여 남녀 종들을 때리며 먹고 마시고 취하게 되면
46 생각하지 않은 날 알지 못하는 시각에 그 종의 주인이 이르러 엄히 때리고 신실하지 아니한 자의 받는 벌에 처하리니
47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하고 그 뜻대로 행하지 아니한 종은 많이 맞을 것이요
48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적게 맞으리라 무릇 많이 받은 자에게는 많이 요구할 것이요 많이 맡은 자에게는 많이 달라 할 것이니라
베드로는 이 비유를 듣고 예수님께 "주께서 이 비유를 우리에게 하심이니이까 모든 사람에게 하심이니이까"라고 여쭈었습니다(41절). 이 질문은 중요합니다. 이 질문에 대한 답은 또 다른 질문입니다. 예수님은 이 질문에 대해서 "진실한 청지기가 되어 주인에게 그 집 종들을 때를 따라 양식을 나누어 줄 자가 누구냐"라고 질문하십니다(42절). 그러므로 베드로의 질문에 대한 답은 이 비유의 대상이 중요한 것이 아니고 이 비유를 듣고 진실한 청지기가 되는 것이 중요하다입니다. 이 비유를 들은 사람은 두 부류로 나뉠 것입니다. 첫째 부류는 진실한 청지기가 되는 사람입니다(42절). 둘째 부류는 "주인이 더디 오리라"라고 생각하는 불의한 청지기로 사는 사람입니다(45절). 지혜 있고 진실한 청지기는 주인이 맡긴 일을 잘 감당하는 청지기입니다. 이 청지기는 주인을 깊이 신뢰하는 사람인데 주인의 뜻을 알고 그 뜻대로 행하는 사람입니다(47절). 주인의 뜻대로 행하는 것은 주인을 깊이 신뢰하고 믿기 때문입니다. 이 종은 종말이 올 줄을 알 뿐만 아니라 종말에 주인의 뜻이 이루어지리라는 것도 아는 사람입니다. 주인의 뜻을 알고도 준비하지 아니한 청지기는 똑같이 종말이 올 줄은 알았지만 "주인이 더디 오리라"라고 생각하면서 종말에 대한 의식대로 살지 않은 사람입니다(45절). 그렇기 때문에 주인의 뜻이 자기와 전혀 상관이 없었던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벌을 받고(46절) 많이 맞을 것입니다(47절).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
48절에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당시 상황으로 비추어 볼 때 이방인을 가리킵니다. 이방인은 예수님께의 초림을 알지 못했습니다. 반면 유대인은 메시아가 오실 것을 알고 있었습니다. 알고 있었지만 불성실한 종으로 행동했습니다. 그들은 남녀 종들을 때리고 먹고 마시고 취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박해하고 죽인 것입니다. 반면 이방인은 니느웨 사람들이나 남방 여왕처럼 때로 회개하기도 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찬송하기도 했습니다. 그 결과 유대인은 많은 벌을 받았지만 이방인은 복음을 받아들이고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왔습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 의와 불의를 따지자면 이방인이 더 불의했을 지는 몰라도 주인의 뜻을 아느냐 모르느냐로 보면 이방인은 몰랐기 때문에 적게 맞은 것입니다. 오히려 그들은 하나님 나라에 받아들여졌습니다. 우리도 이들 안에 포함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로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 안으로 받아들여졌습니다. 여기에 베드로의 물음(41절)에 대한 답이 또한 담겨 있습니다. 이 비유는 유대인을 향한 비유이기도 하고 "모든 사람" 즉 이방인을 향한 비유이기도 한 것입니다.
알지 못하고 맞을 일을 행한 종은 다르게 본다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이 죄인이라고 여기는 사람들일 수도 있습니다. 그들은 세례 요한이 회개의 세례를 전할 때 그에게 나아가 회개하고 세례를 받았습니다. 예수님께서 오셨을 때 예수님께 나아가 말씀을 듣고 나음을 받았습니다. 그들은 삶에서 갖은 고초를 당했습니다. 어쩌면 하나님께 징계를 당하는 사람과 같았습니다. 그러나 그것이 오히려 복이 되어서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믿었습니다. 반면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배척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마땅히 받아들이고 믿었어야 하는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좀더 고도의 것을 요구하셨습니다. 그것은 자기 자존심을 내려 놓고 자기가 가진 모든 소유를 버리는 것입니다. 이런 것은 사람으로서는 하기 어려운 것이었습니다. 하지만 그들은 율법을 맡아서 아는 사람으로서 많이 맡은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많이 맡은 사람에게 많이 달라고 하신 것입니다(48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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