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4. 27. 10:12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목차
누가복음 11:37-54
찬송가 595장 나 맡은 본분은
예수님을 믿지 않는 사람들
예수님 당시에도 예수님을 믿지 않고 의심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이 귀신의 왕 바알세불을 힘입어서 귀신을 쫓아낸다고도 하고(11:15) 하늘로부터 오는 표적을 구하기도 했습니다(11:16).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아들로서 사탄을 제어할 권세를 가지시고 오신 여자의 후손이셨습니다(11:27-28). 이분을 믿지 않는 사람들은 나중 형편이 훨씬 더 심하게 될 것입니다(11:26). 또한 예수님을 믿고 표적을 구하는 자들에게 예수님께서는 요나의 표적을 말씀하셨습니다(11:29). 요나의 표적은 니느웨가 망한다고 요나가 전했을 때 그 악한 이방인이었던 니느웨가 회개한 표적입니다. 이 표적과 더불어 남방 여왕이 솔로몬에게 온 이야기를 하시면서 장차 이방인이 회개하고 하나님 나라 안으로 들어올 것을 말씀하셨습니다(11:31-32). 이것은 이스라엘 사람들의 기대와는 정반대의 상황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자기들이 하나님 나라 백성으로서 이방을 심판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이 생각과는 반대로 이방인들이 이스라엘을 심판할 것입니다(11:32). 이들이 악한 세대인 이유는 이들의 눈이 가려져 있었기 때문입니다(11:33-36). 이들이 눈이 어떻게 가려져 있었는지가 37절 이하에 나옵니다.
겉을 씻지만
37 예수께서 말씀하실 때에 한 바리새인이 자기와 함께 점심 잡수시기를 청하므로 들어가 앉으셨더니
38 잡수시기 전에 손 씻지 아니하심을 그 바리새인이 보고 이상히 여기는지라
39 주께서 이르시되 너희 바리새인은 지금 잔과 대접의 겉은 깨끗이 하나 너희 속에는 탐욕과 악독이 가득하도다
40 어리석은 자들아 겉을 만드신 이가 속도 만들지 아니하셨느냐
41 그러나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 그리하면 모든 것이 너희에게 깨끗하리라
악한 세대의 눈은 율법으로 가려져 있었습니다. 이들은 예수님께서 손 씻지 아니하심을 보고 이상하게 생각했습니다. 당시 유대인들은 율법에 의거해서 손을 씻지 않으면 먹지 않았습니다. 이 습관은 위생적으로도 좋은 습관입니다. 그러나 이 좋은 습관을 이들은 다른 사람을 정죄하는데 사용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들의 생각을 아시고 일부러 손을 안 씻으신 것 같습니다. 예수님께서 손을 씻지 않으시고 식사하신 이유는 이들이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그 속은 더러움을 드러내시기 위함이었던 것입니다(39절).
바리새인들은 손을 씻고 잔과 대접을 깨끗이 씻었습니다. 하지만 그 속을 씻는 일에는 관심이 없었습니다(39절). 설거지를 하면서 자주 하나님께 기도할 때, "주여, 저의 마음도 이렇게 씻어 주옵소서"라고 합니다. 이런 기도는 좋은 기도입니다. 겉을 깨끗하게 하는 것으로 속까지 깨끗하게 되기를 구하는 것은 자기 속이 얼마나 더러운지 아는 사람이 하는 행동입니다. 이런 사람은 눈이 밝은 사람입니다. 눈이 밝기 때문에 온 몸이 밝은 것입니다(11:34). 자기 자신에 대한 정확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데 그 인식은 바로 내가 겉은 깨끗하게 하지만 속으로는 죄인이라는 인식입니다. 이런 인식을 가진 사람은 겉을 만드신 하나님께서 속도 만드셨음을 압니다(40절). 속을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사람 안에 무엇이 있는지 아십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바리새인의 속에 무엇이 있는지 아셨습니다. 바리새인은 속에 있는 것으로 옳은 일을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 안에 있는 것으로 구제하라"라는 말씀은 사람을 대접하거나 자선을 행할 때 그 마음 안에 있는 선한 것으로 행하라는 뜻입니다. 선한 마음의 동기로 행하면 다른 것은 다 깨끗합니다(41절). 예수님께서 씻지 않은 손으로 드시는 것은 전적으로 깨끗한 것인데 왜냐하면 예수님의 마음 동기는 항상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을 향한 사랑의 마음으로 모든 일을 행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 병자를 고치신 일이나 천국 복음을 전하신 일이나 심지어 씻지 않은 손으로 음식을 드시는 모든 일이 다 깨끗했습니다.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42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는 드리되 공의와 하나님께 대한 사랑은 버리는도다 그러나 이것도 행하고 저것도 버리지 말아야 할지니라
43 화 있을진저 너희 바리새인이여 너희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기뻐하는도다
44 화 있을진저 너희여 너희는 평토장한 무덤 같아서 그 위를 밟는 사람이 알지 못하느니라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에게 화를 말씀하십니다. 그들은 겉으로 박하와 운향과 모든 채소의 십일조를 잘 드렸지만 속에 있는 것인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은 버렸습니다(42절). 겉으로 드러나는 십일조는 속에 있는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람으로부터 나오는 것이어야 했습니다. 그들은 속았습니다. 그들이 겉으로 행하는 것이 선했기 때문에 그 속까지 선한 줄로 속은 것입니다. 하지만 속까지 만드신 하나님께서는 절대 속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하나님께 뭔가를 드리는 그 사람 안에 공의와 하나님에 대한 사랑이 있는지 다 아십니다. 바리새인들에게 화가 있는 것은 그들이 자기들의 겉모양으로 스스로 속고 있기 때문입니다.
바리새인들은 회당의 높은 자리와 시장에서 문안 받는 것을 좋아했습니다(43절). 이것이 그들에게 합당하지 않다는 것을 그들은 몰랐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안에는 시체가 썩는 것 같이 더러운 것이 가득했기 때문입니다(44절). 사람들은 그것을 몰랐기 때문에 그들에게 높은 자리를 권하고 문안했던 것입니다. 누구든지 높은 자리에 앉거나 문안을 받을 때에 스스로를 높이는 마음이 듭니다. 그런 것이 자꾸 반복되면 내가 그런 대접을 받아도 되는 사람인 것으로 착각합니다. 그 결과 스스로 속아서 자기 속에서 시체가 썩는 것같은 부패한 본성이 있다는 것을 잊어버립니다. 이것은 그 사람에게 큰 화가 됩니다. 예수님을 의지하지 않게 되기 때문입니다.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45 한 율법교사가 예수께 대답하여 이르되 선생님 이렇게 말씀하시니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니이다
46 이르시되 화 있을진저 또 너희 율법교사여 지기 어려운 짐을 사람에게 지우고 너희는 한 손가락도 이 짐에 대지 않는도다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있던 율법교사 중에서 한 사람이 예수님께 "우리까지 모욕하심"이라고 말합니다(45절). 정중하게 그만하시라는 의미로 그렇게 말씀드린 것 같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사람으로서 하나님을 말리는 불경한 죄였습니다. 하나님께서 화를 말씀하실 때에는 겸손하게 들어야 합니다. 스스로를 돌아보아야 합니다. 아무리 정중하게 말리는 것이라도 죄인인 사람은 하나님의 심판 선고에 끼어들 수 없습니다. 물론 그것을 모르고 한 일이지만 이것을 몰랐다는 것은 이 사람도 스스로를 의롭게 여겼다는 뜻이 됩니다. 스스로를 의롭게 여겼기 때문에 예수님을 말린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에게도 화를 말씀하십니다. 율법교사는 율법을 가지고 사람에게 어려운 짐을 지웠습니다. 그렇게 하고서는 자기는 그 짐을 같이 감당하지 않았습니다(46절). 이것은 예수님과는 정반대로 행하는 것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율법의 입법자이십니다. 율법을 정하신 분이시니까 그 율법으로 사람에게 짐을 지우는 것 같은데 실상은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스스로 율법 아래 오셔서 율법의 모든 의를 다 성취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모든 사람을 율법의 짐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모든 율법의 정죄에서 해방시키셨습니다. 이제 그 누구도 율법을 짐으로 여기지 않도록 하셨습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께 감사해서 기쁘게 지키는 것이 되게 하셨습니다.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47 화 있을진저 너희는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드는도다 그들을 죽인 자도 너희 조상들이로다
48 이와 같이 그들은 죽이고 너희는 무덤을 만드니 너희가 너희 조상의 행한 일에 증인이 되어 옳게 여기는도다
49 그러므로 하나님의 지혜가 일렀으되 내가 선지자와 사도들을 그들에게 보내리니 그 중에서 더러는 죽이며 또 박해하리라 하였느니라
50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이 세대가 담당하되
51 곧 아벨의 피로부터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을 당한 사가랴의 피까지 하리라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과연 이 세대가 담당하리라
율법교사들은 율법으로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선지자들을 죽인 자들은 율법교사의 조상들입니다(47절). 혈통으로 조상이 아니라 율법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를 죽였다는 뜻에서 조상인 것입니다. 선지자가 하나님의 말씀으로 부패한 종교를 치면서 그 죄를 지적할 때 율법교사였던 제사장들은 그가 성전을 치면서 예언했다고 그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예레미야의 경우가 그랬습니다. 이런 식으로 하나님께서 보내신 선지자들을 율법교사들이 죽였습니다. 그래 놓고 그들은 의로운 양 선지자들의 무덤을 만들었습니다. 자기들이 그 시대에 있었으면 선지자들을 죽이지 않았을 거라고 하면서 선지자를 기리는 무덤을 만든 것입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는 행위가 자기가 선지자를 죽인 자의 후손임을 나타내는 행위였습니다. 왜냐하면 스스로 의롭다면서 무덤을 만들었기 때문입니다. 스스로 의롭다고 하는 측면에서 그들은 옛날 선지자를 죽인 자들과 똑같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선지자들과 사도들을 보내셨습니다(49절). 그들을 보내실 때 그들이 율법교사들에게 죽임 당하고 박해 받을 것을 아셨습니다(49절 하). 하지만 그들을 보내셨는데 그 이유는 부패한 종교를 드러내시고 사람들을 바른 길로 인도하시기 위함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창세 이후로 흘린 모든 선지자의 피를 당시 세대가 담당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50절). 그 선지자는 아벨부터 시작하고 사가랴에서 마칩니다(51절). 제단과 성전 사이에서 죽임 당한 사가랴는 역대하 24장 20절 이하에 나오는 여호야다의 아들 스가랴입니다. 이 일은 유다의 요아스 왕 때 일어난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아벨부터 사가랴까지 말씀하신 것은 히브리어 구약성경과 연관됩니다. 히브리어 구약 성경의 첫 책은 창세기이고 마지막 책은 역대기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구약 성경의 처음부터 끝까지 나오는 모든 순교자의 피를 그 세대가 담당할 것이라는 뜻으로 그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실로 그 세대는 그 모든 피의 정점을 찍었는데 그 세대에 의해서 예수님께서 피를 흘리시고 십자가에 못 박혀 죽임 당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아들을 죽이는 가장 큰 악을 범했습니다.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52 화 있을진저 너희 율법교사여 너희가 지식의 열쇠를 가져가서 너희도 들어가지 않고 또 들어가고자 하는 자도 막았느니라 하시니라
53 거기서 나오실 때에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이 거세게 달려들어 여러 가지 일을 따져 묻고
54 그 입에서 나오는 말을 책잡고자 하여 노리고 있더라
예수님께서는 율법교사들이 지식의 열쇠를 가지고 있는 사람들인데 그 열쇠로 들어가지 않으면서 다른 사람이 들어가는 것도 막았다고 하셨습니다(52절). 그들이 가진 지식의 열쇠는 바로 구약 성경입니다. 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증언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예수님을 믿도록 인도했어야 했습니다. 그러지 못하고 그들은 구약 성경을 가지고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54절). 이것은 그들만 지식으로 들어가지 못한 것이 아니고 백성들도 들어가지 못하게 막은 것이었습니다(52절). 구약 성경 안에는 하나님과 하나님께서 보내신 예수님에 대한 풍성하고도 충만한 가르침이 들어 있었습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영생입니다. 그러나 당시 구약 성경을 가지고 사람들을 가르쳤던 율법 교사들은 그 지식 안으로 들어가지 않았습니다. 구원으로 영생으로 가지 않은 것입니다. 자기들만 안 간 것이 아니고 사람들이 못 가게 그 길을 막아버렸습니다.
이렇게 해서 서기관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을 대놓고 대적하게 되었습니다(53절). 이들이 예수님을 노골적으로 대적하게 된 것은 예수님께서 그들의 죄를 지적하셨기 때문입니다. 이것이 드러난 죄인과 숨겨진 죄인의 차이입니다. 드러난 죄인은 스스로도 자기가 죄인인 줄 알고 다른 사람도 그 사람이 죄인인 줄 압니다. 그 결과 그는 예수님께 나아와서 회개하는데 주저하지 않습니다(7:39). 그러나 숨겨진 죄인은 스스로도 죄인인 줄 모르고 다른 사람도 그가 죄인인 줄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가 얼마나 흉악한 죄인인지 아십니다. 그 흉악성은 다른 모든 죄인보다 훨씬 큰데 그 이유는 그들이 하나님을 직접 대적하기 때문입니다. 이것보다 더 큰 죄는 없습니다. 이런 흉악한 죄인인데도 그들은 스스로를 죄인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하나님을 위한다고 생각하고 하나님 앞에 의롭다고 생각합니다. 그 결과 그들은 더 하나님을 대적합니다. 예수님을 안 받아들이고 믿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죄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길에서 당시 종교 지도자들의 죄를 다 드러내셨습니다. 그 결과 예수님은 십자가의 길로 한걸음 더 가까이 가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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