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누가복음 17장 20-37절 | 인자의 날에 일어나는 일들

2025. 5. 13. 08:34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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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누가복음 17:20-37

    찬송가 176장 주 어느 때 다시 오실는지


    구원은 혈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십니다. 가시는 중 사마리아와 갈릴리 접경 지역을 지나가셨는데 거기에서 나병 환자 열 명을 고쳐주셨습니다. 그런데 그 중 한 사람만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려고 돌아왔습니다(17:17-18). 그 사람은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 사마리아 사람에게만 예수님을 향한 사랑과 감사의 마음이 생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사람에게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라고 하셨습니다. 이 사람은 나병에서 깨끗함을 받았을뿐만 아니라 영생도 얻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열 명 중 한 사람에게만 예수님을 믿고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마음을 주셨는데 그는 유대인이 사람 취급하지 않았던 사마리아 사람이었습니다. 이로써 구원은 혈통으로 이루어지는 것이 아님을 알 수 있습니다. 오히려 구원은 사람들이 멸시하는 사람에게 임합니다. 세리와 죄인과 이방인에게 임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잃어버린 자들을 찾으시기 위해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때

    20   바리새인들이 하나님의 나라가 어느 때에 임하나이까 묻거늘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하나님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요
    21   또 여기 있다 저기 있다고도 못하리니 하나님의 나라는 너희 안에 있느니라

     

    바리새인들은 예수님께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 때를 여쭈었습니다. 어느 시점에 하나님 나라가 임하는가를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때와 시기는 우리가 알 바가 아닙니다(행 1:7). 사람은 때를 궁금해 합니다. 여기서 때를 궁금해 한다는 것은 미래 일을 궁금해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미래를 미리 아는 것을 허락하지 않으십니다. 사람은 현재를 살아야 하는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미래에 대해서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소망하는 것입니다. 이 소망은 하나님의 약속을 근거로 합니다. 이 약속을 믿음으로 미래를 내다보고 소망하면서 현재를 사는 것이 사람이 사는 방식입니다. 그런데 만약에 사람이 때와 시기를 안다면 현재를 충실하게 살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현재에 충실하게 살아갈 기준을 우리에게 나타내 보여 주셨습니다. 그것이 바로 십계명에 나타난 하나님의 뜻입니다. 이 하나님의 뜻에 충실하게 현재를 살아가는 것이 우리에게 속한 일입니다. 미래의 일은 감추어진 일로 하나님께 속한 일입니다.

    감추어진 일은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속하였거니와 나타난 일은 영원히 우리와 우리 자손에게 속하였나니 이는 우리에게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행하게 하심이니라(신 29:29)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는 볼 수 있게 임하는 것이 아니라고 하시고 너희 안에 있다고 하신 것(20-21절)은 신명기 말씀 그대로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율법을 잘 안다고 하는 바리새인들이지만 그들은 외우고 있었던 신명기 말씀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들과 언약을 맺으시고 율법을 주셨습니다. 언약을 맺으셨기에 이미 하나님께서는 그들 안에 계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들 안에 계시기 때문에 그들은 율법을 행해야 합니다. 그들이 율법을 가졌다고 한다면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그들 안에 있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바리새인들에게는 여기까지만 말씀하시고 제자들에게는 더 깊이 말씀해 주셨습니다. 하나님 나라는 나중에 볼 수 있게 임하는데 그 일을 말씀해 주신 것입니다. 그 때는 우리 주 예수께서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을 믿고 따르는 사람에게만 주셨는데 그 이유는 아직 예수님의 때가 이르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인자의 날

    22   또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때가 이르리니 너희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하되 보지 못하리라
    23   사람이 너희에게 말하되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하리라 그러나 너희는 가지도 말고 따르지도 말라
    24   번개가 하늘 아래 이쪽에서 번쩍이어 하늘 아래 저쪽까지 비침같이 인자도 자기 날에 그러하리라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에게 어떤 시기를 말씀하시는데 그 시기에는 인자의 날 하루를 볼 수 없는 시기입니다(22절). 제자들은 인자의 날 하루를 보고자 합니다(22절). 그 날을 소망하고 기다립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들이 보라 저기 있다, 보라 여기 있다 이렇게 말할 때 귀가 솔깃합니다(23절). 그러나 인자의 날은 사람들이 예상할 수 없는 날이고 모든 사람에게 밝히 보이는 날입니다(24절). 

     

    예수님께서 재림의 날을 "인자의 날"이라고 하신 것은 다니엘서 7장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13   내가 또 밤 환상 중에 보니 인자 같은 이가 하늘 구름을 타고 와서 옛적부터 항상 계신 이에게 나아가 그 앞으로 인도되매
    14   그에게 권세와 영광과 나라를 주고 모든 백성과 나라들과 다른 언어를 말하는 모든 자들이 그를 섬기게 하였으니 그의 권세는 소멸되지 아니하는 영원한 권세요 그의 나라는 멸망하지 아니할 것이니라

     

    하늘 구름을 타고 오시는 인자 같은 이는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구약에서 구름은 하나님의 임재를 나타내므로 예수님은 곧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가 볼 수 있도록 임하는 때는 곧 인자가 하늘 구름을 타고 임하시는 때, 인자의 날입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이미 우리 안에 있습니다(21절). 하지만 눈에 보이게 임하는 하나님 나라가 있는데 그 나라는 장차 임할 것입니다. 그 나라가 임하는 때는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때입니다. 그 때 사람들은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것을 눈으로 볼 것입니다. 

    십자가 고난과 부활 승천이 있어야 함

    25   그러나 그가 먼저 많은 고난을 받으며 이 세대에게 버린 바 되어야 할지니라

     

    인자의 날은 영광스러운 날입니다. 그 영광의 날이 이르기 전에 예수님께서는 많은 고난을 받으시고 버림을 당하셔야 합니다(25절). 예수님께서는 이 말씀대로 십자가에서 고난을 당하시고 사람들에게 버림을 받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부활하시고 하나님께로 올라가셨습니다. 올라가신 때부터 지금까지 예수님께서 언제 오셔도 이상하지 않는 때가 지속되고 있습니다. 

    은혜를 입은 사람들과 그렇지 못한 사람들

    26   노아의 때에 된 것과 같이 인자의 때에도 그러하리라
    27   노아가 방주에 들어가던 날까지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가더니 홍수가 나서 그들을 다 멸망시켰으며
    28    롯의 때와 같으리니 사람들이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짓더니
    29   롯이 소돔에서 나가던 날에 하늘로부터 불과 유황이 비오듯 하여 그들을 멸망시켰느니라
    30   인자가 나타나는 날에도 이러하리라

     

    이 때 사람들은 노아의 때 사람들과 같고(26-27절) 롯의 때 사람들과 같습니다(28-30절). 그 때 사람들은 심판을 생각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먹고 마시고 장가 들고 시집 갔습니다(27절). 먹고 마시고 사고 팔고 심고 집을 지었습니다(28절). 모든 사람의 눈이 가려져서 하나님도 심판도 생각하지 않고 그저 육신으로 산 것입니다. 그런데 그 모든 사람이 다 멸망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노아와 그 가정에게 은혜를 베푸시고 롯과 그 가정에 은혜를 베푸셨습니다.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심판을 면하게 하셨습니다. 그들이 은혜를 입지 않았더라면 그들도 그 세대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심판을 받아 멸망했을 것입니다. 이처럼 예수님께서 재림하시는 날에도 오직 은혜 받은 이들만 심판에서 건짐을 받을 것입니다. 노아의 때와 롯의 때에 소수만 구원을 얻었던 것처럼 그 때에는 적은 사람만 구원을 얻을 것입니다. 

     

    31   그 날에 만일 사람이 지붕 위에 있고 그의 세간이 그 집 안에 있으면 그것을 가지러 내려가지 말 것이요 밭에 있는 자도 그와 같이 뒤로 돌이키지 말 것이니라
    32   롯의 처를 기억하라
    33   무릇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자는 잃을 것이요 잃는 자는 살리리라

     

    인자의 날에는 재앙의 징조가 모든 사람에게 보일 것입니다. 그 때 자기 목숨을 보존하려고 하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31-33절). 그런 징조가 보일 때 마저 자기 목숨을 보전하고자 한다는 것은 그가 이 땅에서 철저하게 육신으로 살았다는 의미입니다. 만약에 그가 은혜를 받은 사람이라면 징조가 보일 때 목숨을 보전하려 하지 않고 하나님께 긍휼을 구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롯의 처를 기억하라고 하십니다(32절). 롯의 처는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 당할 때 뒤를 돌아보았고 그대로 소금 기둥이 되었습니다. 그는 소돔과 고모라에 속한 사람이었습니다. 롯과 함께 가정을 이루고 살았지만 소속이 달랐습니다. 롯은 아브라함에게 속해서 긍휼을 입어 구원을 얻었지만 그의 아내는 소돔과 고모라에 속해서 심판을 받았습니다. 재앙의 징조를 보면서 목숨을 보전하고자 하는 것은 그가 이 땅에 속했다는 증거입니다. 이 땅의 삶에 애착을 가지고 그것을 더 연장하고 어떻게 해서든지 땅을 붙들고 살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반면 목숨을 잃는 자는 하늘 소망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날마다 이 땅에 대한 애착을 버리고 하나님께로 향해 가는 길을 묵묵히 걸어가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에게도 목숨이 소중하지만 하나님보다 소중하지는 않습니다. 이 사람이 가장 사랑하는 것인 이 세상이나 이생의 자랑이 아니요 하나님이기 때문입니다. 

     

    34   내가 너희에게 이르노니 그 밤에 둘이 한 자리에 누워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
    35   두 여자가 함께 맷돌을 갈고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얻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니라
    36   (없음)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은혜를 입은 사람은 데려감을 얻고 은혜를 입지 못한 사람은 버려둠을 당합니다(34-35절). 은혜를 입은 사람과 버려둠을 당하는 사람의 겉모습은 똑같습니다. 한 자리에 누워서 자고 함께 맷돌을 갑니다. 한 가정에서 살지만 한 사람은 은혜를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같은 동네에서 살면서 이웃 사촌으로 친하게 지내지만 한 사람은 은혜를 입었고 다른 한 사람은 버림을 받았습니다. 누가 은혜를 입은 사람일까요? 나타난 뜻에 의하면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수님을 믿고 의지하며 하루하루를 충실하게 살아야 합니다. 그것이 우리에게 속한 일입니다. 누가 은혜를 입은 사람이고 누가 버림을 당한 사람인지는 하나님께서 감추셨습니다. 감추셨기 때문에 믿지 못하느냐 그렇지 않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선하십니다. 신실하십니다. 진실하십니다. 우리는 이것을 믿는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예수님을 믿음으로 구원을 확신할 수 있습니다. 

     

    36절은 없음으로 나오는데 이것은 사본에 따라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어떤 사본에는 "두 사람이 밭에 있으매 하나는 데려감을 당하고 하나는 버려둠을 당할 것이요"가 있습니다. 그리고 다른 많은 사본들에는 이 구절이 없습니다. 그래서 36절을 없음으로 해 놓고 각주를 달아놓은 것입니다.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됨

    37   그들이 대답하여 이르되 주여 어디오니이까 이르시되 주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의 가르침을 들은 이들은 예수님께 "주여 어디오니이까"라고 여쭈었습니다. 어디로 데려감을 당하나이까 이런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주검이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모이느니라"라고 대답하십니다. 이 대답은 욥기 39장의 말씀을 인용하신 것입니다. 

    27   독수리가 공중에 떠서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드는 것이 어찌 네 명령을 따름이냐
    28   그것이 낭떠러지에 집을 지으며 뾰족한 바위 끝이나 험준한 데 살며
    29   거기서 먹이를 살피나니 그 눈이 멀리 봄이며
    30   그 새끼들도 피를 빠나니 시체가 있는 곳에는 독수리가 있느니라

     

    이 말씀의 요지는 독수리가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만들고 멀리 보고 시체가 어디 있는지를 알아서 거기에 모이는 것이 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독수리를 그렇게 만드셨듯이 은혜 입은 사람들을 데려가실 때에도 하나님의 지혜로 데려가신다는 뜻입니다. 독수리가 멀리 보듯이 은혜 입은 사람들은 하나님을 바라볼 것이고(벧후 3:13)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일을 볼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들에게는 그날이 도둑같이 임하지 않게 됩니다(살전 5:4). 그러므로 "주여 어디오니이까"라고 하면서 불안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을 믿는 우리는 이런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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