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5. 15. 07:35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누가복음
목차
누가복음 18:15-30
찬송가 94장 주 예수보다 더 귀한 것은 없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과 재림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중이십니다. 가시는 길에서 재림의 때를 말씀해 주셨습니다. 예루살렘으로 가시는 것과 재림은 밀접하게 연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예루살렘으로 가셔서 십자가를 지시고 죽임 당하셨다가 부활하시고 승천하실 것입니다. 예루살렘으로 가는 길은 하나님께로 올라가는 길입니다. 하나님께로 올라가신 예수님은 다시 오실 것입니다.
세상 통치와 죄의 부패성
예수님께서 다시 오실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은 항상 기도하고 낙심하지 않습니다(18:1). 그들은 이 세상 통치에 괴로워합니다. 뿐만 아니라 자기 안에 있는 죄의 부패성 때문에도 괴로워합니다. 이 두 가지의 특징은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고 사람을 무시한다는 것입니다(18:2). 이 괴로움을 가지고 하나님께 항상 나아가서 원한을 풀어달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는 세리의 "하나님이여 나를 불쌍히 여기소서 나는 죄인이로소이다"라는 기도를 포함합니다(18:13). 하나님께 원한을 풀어달라는 기도는 죄에서 건지시고 의를 이루어달라는 기도이기 때문입니다. 이렇게 날마다 기도하는 사람이 믿음이 있는 사람입니다(18:8).
어린 아이와 하나님 나라
15 사람들이 예수께서 만져 주심을 바라고 자기 어린 아기를 데리고 오매 제자들이 보고 꾸짖거늘
16 예수께서 그 어린 아이들을 불러 가까이 하시고 이르시되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
17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누구든지 하나님의 나라를 어린 아이와 같이 받아들이지 않는 자는 결단코 거기 들어가지 못하리라 하시니라
예수님께 사람들이 어린 아이를 데리고 오자 제자들이 꾸짖었습니다(15절). 제자들 생각에 지금은 한가하게 어린 아이를 돌볼 때가 아니었을 것입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큰 일을 위해서 예루살렘으로 가고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 일은 예수님께서 메시아로 자기 민족을 로마의 압제로부터 구원하시는 엄중한 일입니다. 제자들은 이런 큰 일을 하러 가시는 분에게 어린 아이를 안아달라고 하다니 제정신인가 하는 생각을 했을 것입니다.
그런 제자들과는 달리 예수님께서는 어린 아이들을 가까이 하셨습니다. 그들을 안으시고 안수하시고 축복해 주셨을 것입니다. 그러시면서 "어린 아이들이 내게 오는 것을 용납하고 금하지 말라 하나님 나라가 이런 자의 것이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16절). 제자들도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이루러 가신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생각하는 하나님 나라와 예수님께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나라는 달랐습니다. 그들은 하나님 나라를 메시아가 정치적인 우두머리가 되어 나라를 이루는 것으로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일을 영적으로 이루셨습니다.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영적으로 이루셨기 때문에 누구든지 그 나라 안에 들어올 수 있게 되었습니다. 만약 정치적으로 이루셨다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고자 하는 사람은 제자들이 사람들을 꾸짖었던 것처럼 꾸짖음을 당해야 했을 것입니다. 자기가 그 나라에 얼마나 유용한가를 증명해야 했을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루시는 큰 일에 얼마나 보탬이 되는가로 그 나라에 들어갈 수 있느냐 없느냐가 정해졌을 것입니다. 제자들은 어린 아이들은 전혀 보탬이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 나라는 그 나라에 보탬이 되는 사람들이 들어가는 곳이 아닙니다. 그 나라는 그 나라를 받아들이는 사람이 들어갑니다(17절). 어린 아이는 어느 문화에 있든지 그 문화를 받아들입니다. 가르침에 순응합니다. 그리고 그것이 전부인 줄 압니다. 이것이 믿음의 모양입니다. 믿는 사람은 예수님을 받아들입니다. 예수님의 가르침에 순응하고 예수님을 전부로 생각합니다. 내가 보탬이 되어야겠다는 생각은 전혀 없습니다. 그냥 보여주는 대로 따라합니다. 무지성으로 따라한다는 것이 아니고 자기 공로의식이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참 믿음은 이렇게 자기 공로 의식이 전혀 없이 보탬이 되려는 마음 없이 하나님 나라를 그저 받아들입니다.
내가 무엇을 하여야
18 어떤 관리가 물어 이르되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
19 예수께서 이르시되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
20 네가 계명을 아나니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 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 하였느니라
21 여짜오되 이것은 내가 어려서부터 다 지키었나이다
22 예수께서 이 말을 들으시고 이르시되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 주라 그리하면 하늘에서 네게 보화가 있으리라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 하시니
23 그 사람이 큰 부자이므로 이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하더라
어린 아이와 대조되는 한 사람이 등장합니다. 그 사람은 18절 이하에 나오는 어떤 관리입니다. 이 관리는 예수님에게 "선한 선생님이여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묻습니다(18절). 이 사람이 예수님을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네가 어찌하여 나를 선하다 일컫느냐 하나님 한 분 외에는 선한 이가 없느니라(19절)"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선하지 않다는 말씀이 아닙니다. 네가 나를 사람 선생으로 보면서 어찌 선하다는 말을 나에게 붙이느냐 이런 뜻입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으로서 무한히 선하신 분이십니다. 그러나 이 관리는 예수님을 그렇게 보고 선한 선생님이라고 부른 것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지적하신 것입니다.
여기에 이 사람의 선과 악의 기준이 드러납니다. 이 사람은 상대적으로 선을 바라봅니다. 다른 사람보다 선하면 선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선을 절대적인 기준으로 보십니다. 이 기준으로 보면 선한 이는 오직 삼위일체 하나님밖에는 없습니다. 이렇게 사람의 기준과 하나님의 기준은 다릅니다.
사람의 기준으로 보니까 자기가 뭔가를 하면 영생을 얻을 것이라고 생각합니다(18절). 이런 생각은 하나님 나라에 뭔가 보탬이 될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내가 하나님께 유용하게 쓰일 수 있다는 생각입니다. 이 생각을 내려 놓아야 합니다. 능력은 하나님께 있습니다. 내가 나의 능력으로 거기에 뭔가를 보태서 하나님께 빚을 지울 수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다 은혜로 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를 해서 영생을 얻어낼 수는 없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이 관리에게 계명을 지키라고 말씀하십니다(20절). 이에 대해서 이 관리는 그 계명들을 자기가 어려서부터 다 지켰다고 합니다. 이 사람이 계명을 다 지켰다는 것은 일면 훌륭한 일입니다. 이 사람은 자기가 보기에도 그렇고 다른 사람이 보기에도 신실해 보였을 것입니다. 문제는 그것이 상대적인 기준으로 그렇다는 것입니다. 절대적인 기준으로는 하나님의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할 사람이 없습니다. 오직 한 사람 우리 주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의 계명은 모든 면에서 항상 모든 것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하고 이웃을 사랑할 것을 요구합니다. 모든 일을 언제나 사랑으로 행할 것을 요구하는 것입니다. 그 요구에 완전히 부합해서 산 사람은 오직 예수님 밖에는 없습니다. 그런데도 이 관리는 이 계명을 다 지켰다고 하는 것입니다. 그러니까 이 사람의 신실함은 다른 사람보다 비교적 신실하다는 수준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네게 아직도 한 가지 부족한 것이 있으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참 친절하게 대답해 주셨습니다. 사실 이 사람의 부족함은 한 가지가 아닙니다. 너무도 큰 부족함입니다. 그런데 그 부족함을 알 수 있는 것은 한 가지 말씀을 따르느냐 아니냐로 알 수 있습니다. 그 한 가지 말씀은 "네게 있는 것을 다 팔아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라"입니다(22절). 이것은 20절에 나오는 간음하지 말라, 살인하지 말라, 도둑질하지 말라, 거짓 증언하지 말라, 네 부모를 공경하라는 계명 안에 들어 있는 것입니다. 이 계명 안에는 이웃을 네 몸과 같이 사랑하라는 하나님의 뜻이 담겨있습니다. 이 뜻대로 행하자면 그에게 있는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자들에게 나눠주는 것은 당연한 것입니다. 이 관리는 "내가 무엇을 하여야 영생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그 할 일을 알려주셨습니다. 그런데 이렇게 계명을 지켰다고 해서 영생을 얻을 수 있는 것은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리고 와서 나를 따르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22절). 여기에 영생의 길이 있습니다. 뭔가를 하는 것으로는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예수님을 받아들이고 따라야 영생을 얻습니다. 이 관리는 어린 아이 같지 않습니다. 어린 아이는 하나님 나라를 그저 받아들입니다. 하지만 이 관리는 하나님 나라를 자기 힘으로 얻어내려고 합니다. 자기 행위로 보상을 받으려고 합니다. 이 사람이 생각하는 영생은 자기 행위에 대한 보상입니다. 이렇게 해서 영생을 얻을 사람은 한 사람도 없습니다. 영생은 하나님의 선물입니다. 이 선물을 주시기 위해서 하나님께서는 우리 주 예수님을 보내주시고 모든 의를 이루게 하셨습니다. 누구든지 그것을 믿기만 하면, 다른 말로 받아들이기만 하면 영생을 얻게 하셨습니다. 그런데도 사람들은 받아들이기보다 얻어내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 안에 뿌리깊이 박혀 있는 율법주의, 공로주의입니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심히 근심했습니다(23절). 왜 근심했을까요? 예수님의 말씀을 자기 힘으로 지킬 수 있는가를 생각한 것입니다. 자기 힘으로 지키기에는 그가 가진 재물이 너무 많았습니다. 그가 포기해야 할 것이 너무 컸습니다. 어떤 사람이든지 큰 것을 포기하는 것은 심히 어렵습니다. 그것은 사실 사람의 힘으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성령께서 강림하신 후에 사람들은 자발적으로 자기 재산을 팔아서 사도들에게 가져다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 때도 그것을 자기 힘으로 한 사람이 있었습니다. 아나니아와 삽비라가 그들입니다. 이들은 하나님께 엄중한 심판을 받았습니다. 이 관리가 심히 근심한 결과 자기의 모든 것을 다 팔아서 가난한 사람에게 나누어주었다고 할지라도 이 사람은 영생을 얻지 못합니다. 영생을 얻는 것은 행위로 되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오직 은혜로 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영생을 얻지 다른 것으로는 영생을 얻을 수 없습니다.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24 예수께서 그를 보시고 이르시되 재물이 있는 자는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기가 얼마나 어려운지
25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쉬우니라 하시니
26 듣는 자들이 이르되 그런즉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나이까
27 이르시되 무릇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느니라
28 베드로가 여짜오되 보옵소서 우리가 우리의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나이다
29 이르시되 내가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집이나 아내나 형제나 부모나 자녀를 버린 자는
30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내세에 영생을 받지 못할 자가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는 그 관리를 보시고 재물이 있는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기가 심히 어렵다고 하십니다(24절). 낙타가 바늘귀로 들어가는 것이 부자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는 것보다 쉽다고 하십니다(25절). 이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러면 도대체 누가 구원을 얻을 수 있느냐고 묻습니다(26절). 이렇게 묻는 이유는 그들이 부자라서가 아닙니다. 이 세상에 조금이라도 재물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작은 것이라도 자기 소유에 대한 애착을 가지지 않은 사람은 없습니다. 그것을 다 포기해야한다면 도대체 누가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단 말입니까, 이런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사람이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은 하실 수 있다고 답하십니다(27절). 예수님께서도 그것을 사람이 할 수 없다는 것을 아십니다. 사람이 그 어떤 소유도 없이 살 수는 없다는 것을 아시고 인정하시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 소유가 하나님보다 중하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하지 않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사람은 하나님 나라에 자기 힘으로는 도저히 들어갈 수 없습니다. 이 문제를 해결해 주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들여보내시면 그는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들여보내실 때 그의 마음을 감화하셔서 오직 예수님만 의지하고 모든 것을 버리게 하십니다. 그런 큰 은혜를 주셔서 하나님 나라에 들어가게 하시는 것입니다. 사람은 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하실 수 있으십니다.
예수님의 그 말씀을 들은 베드로는 자기들이 모든 것을 다 버리고 주를 따랐다고 합니다(28절).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나라를 위하여 무엇이든 버린 사람은 현세에 여러 배를 받고 영생을 받는다고 말씀하십니다(29-30절). 이것은 교회 공동체를 말씀하신 것입니다. 집을 버리면 교회가 집이 됩니다. 아내를 버리면 교회가 아내가 됩니다. 형제를 버리면 교회가 형제가 되고 부모나 자녀를 버리면 교회가 부모나 자녀가 됩니다. 교회 안에서 그 모든 것이 채워지는데 훨씬 많이 채워집니다. 그것이 현세에 여러 배를 받는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교회는 그리스도를 머리로 한 한 몸인 공동체입니다. 이 교회가 우리의 집이고 아내이고 형제이고 부모이고 자녀입니다. 그렇게 예수님과 연합되어 교회가 된 사람은 다 영생을 받습니다. 모든 것을 버렸다는 것이 공로가 되어서 영생을 받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은혜를 주셔서 버리게 하시고 교회 안으로 들어오게 하셔서 영생을 받는 것입니다. 베드로는 이것을 마치 공로인 것처럼 이야기했지만 실제로는 하나님께서 거저 주신 은혜입니다. 사람으로서는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하게 하셔서 은혜로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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