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8. 13:29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마가복음 15:1-15
찬송가 143장 웬말인가 날 위하여
불의한 재판
예수님께서는 불의한 재판을 받으셨습니다. 예수님을 치는 증언들은 온통 거짓 증언들이었습니다(14:56-57). 결국 예수님께 사형죄가 선고되었습니다. 그 이유는 예수님께서 진리를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께서 하나님의 아드님이신 것과 메시아이신 것을 드러내어 말씀하셨습니다(14:62). 이 말씀은 참이요 진리였습니다. 그런데 이 말씀 때문에 사람들은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예수님께서 사형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14:64). 예수님께서 당하신 재판은 이토록 불의한 재판이었습니다. 그 불의한 재판 자리에서 예수님께서는 갖은 모욕과 수모를 당하셨습니다(14:65). 그런 불의한 재판이 끝나고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은 예수님을 빌라도에게 넘겨주었습니다. 그 때는 다음 날 새벽입니다(1절). 그러니까 이들은 예수님을 밤중에 잡아다가 재판을 했던 것이고 그 다음 날 새벽에 빌라도에게 넘겨서 죽이고자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죽이는데 혈안이 된 사람들처럼 공식적 재판 절차라고 할 수 없을 정도로 빠르게 사형을 집행하고자 했습니다.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1 새벽에 대제사장들이 즉시 장로들과 서기관들 곧 온 공회와 더불어 의논하고 예수를 결박하여 끌고 가서 빌라도에게 넘겨 주니
2 빌라도가 묻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네 말이 옳도다 하시매
3 대제사장들이 여러 가지로 고발하는지라
4 빌라도가 또 물어 이르되 아무 대답도 없느냐 그들이 얼마나 많은 것으로 너를 고발하는가 보라 하되
5 예수께서 다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아니하시니 빌라도가 놀랍게 여기더라
빌라도는 예수님께 "네가 유대인의 왕이냐"라고 물었습니다(2절 상). 그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네 말이 옳도다(2절 하)"라고 답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이 맞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유대인에게 왕으로 보내신 분이십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토록 바라던 다윗과 같은 왕을 보내신 것입니다. 모든 압제를 끊고 이스라엘을 자유롭게 할 왕으로 예수님께서는 오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으로서
예수님께서 끊으신 압제는 죄로 인한 압제였습니다. 이것이 모든 압제의 근본입니다. 인간이 당하는 모든 불행은 다 죄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 죄를 없이하시고자 오셨습니다. 다윗이 유대인의 왕으로서 이룬 업적은 다 예수님을 가리키는 것이었습니다. 다윗은 이스라엘 주변을 평정하고 온 백성이 안전하게 거하도록 했습니다. 그 후에 그 아들 솔로몬은 예루살렘에 성전을 지었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크신 영광으로 성전에 거하셨습니다. 이 모든 것은 예수님을 가리키는 모형이었습니다.
죄를 멸하심
예수님께서 평정하신 것은 바로 죄입니다. 죄가 우리의 궁극적인 원수입니다. 그 원수를 멸하시고 모든 택하신 백성들을 안전하게 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어떤 위협에도 안전합니다. 그렇게 하시고 우리 가운데 성령께서 임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영으로 우리에게 임재하시어 우리로 예배를 받으시고 영광을 받으시도록 하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으로 오셔서 역사의 의미를 성취하셨습니다. 모든 역사가 의미를 가지는 이유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이루신 일 때문입니다. 역사의 목적이고 역사의 종착지입니다. 그것은 바로 죄를 멸하는 것과 새로운 우주를 창조하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와 부활로 이 모든 것을 이루셨습니다. 역사의 궁극적인 목적을 이루신 것입니다.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들
유대인의 왕이 이방인 빌라도에게 심문을 받고 있습니다. 그런데 그를 고발하여 사형을 시켜달라고 구한 이들은 유대인들입니다(3절). 사람들은 이렇게 무지합니다. 자기들의 왕으로 보낸 이를 자기들 손으로 잡아서 로마의 손을 빌어서 죽게할 정도로 무지한 것입니다. 그렇게 무지하고 무능한 사람들을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습니다. 그러니까 뭔가 지혜로워서 또는 그들이 원해서 죄를 사해주시고 그들을 구원해 주시는 것이 아니고 무엇이 문제인지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아니 자기들을 위한 메시아를 죽음으로 넘기는 죄인들을 위해서 십자가를 지신 것입니다(롬 5:8).
십자가를 앞에 두시고도
빌라도는 예수님께서 아무 말씀으로도 대답하지 않으시자 놀랐습니다(5절). 보통 죄수들은 자기의 결백을 주장하기 마련입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죽음을 면하기 위해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당시 십자가 형은 굉장히 끔찍했습니다. 당시 사람들이라면 그 누구라도 십자가 형만큼은 피하고 싶어했습니다. 십자가 형이 얼마나 끔찍했는지 그런 모양을 보는 것도 혐오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판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도 예외없이 십자가형만은 피하려고 했습니다. 그런데 예수님께서는 정반대의 모습을 보이신 것입니다. 빌라도는 그런 예수님의 모습에 놀랐습니다.
불의한 재판
6 명절이 되면 백성들이 요구하는 대로 죄수 한 사람을 놓아 주는 전례가 있더니
7 민란을 꾸미고 그 민란중에 살인하고 체포된 자 중에 바라바라 하는 자가 있는지라
8 무리가 나아가서 전례대로 하여 주기를 요구한대
9 빌라도가 대답하여 이르되 너희는 내가 유대인의 왕을 너희에게 놓아 주기를 원하느냐 하니
10 이는 그가 대제사장들이 시기로 예수를 넘겨 준 줄 앎이러라
11 그러나 대제사장들이 무리를 충동하여 도리어 바라바를 놓아 달라 하게 하니
12 빌라도가 또 대답하여 이르되 그러면 너희가 유대인의 왕이라 하는 이를 내가 어떻게 하랴
13 그들이 다시 소리 지르되 그를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14 빌라도가 이르되 어찜이냐 무슨 악한 일을 하였느냐 하니 더욱 소리 지르되 십자가에 못 박게 하소서 하는지라
15 빌라도가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하여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는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겨 주니라
빌라도는 무리에게 만족을 주고자 바라바는 놓아 주고 예수님은 채찍질하고 십자가에 못 박히도록 넘겼습니다(15절). 그는 의롭지 못했습니다. 의로운 재판관이 아니었습니다. 의는 마땅히 행해야 하는 것을 행하는 것입니다. 죄가 없으면 놓아주는 것이 의입니다. 죄 있는 사람을 벌하는 것이 의입니다. 그런데 빌라도는 거꾸로했습니다. 죄 있는 바라바는 놓아주고 죄 없으신 예수님께는 십자가 형벌을 내렸습니다. 그는 의보다 정치를 더 중요하게 생각했습니다. 민란이 나면 자기의 정치적 입지가 흔들리게 됩니다. 그에게는 그것이 가장 중요한 문제였습니다. 그 결과 불의하게 재판을 끝냈습니다.
바라바
바라바는 민란을 꾸미고 민란중에 살인한 사람이었습니다(7절). 바라바는 민란으로 로마로부터의 해방을 꿈꾼 사람입니다. 이 모습은 모든 사람의 모습입니다. 바라바는 마태복음 27장 17절에 보면 바라바 예수라고도 나옵니다. 예수는 구원자라는 뜻입니다. 또한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바라바는 아버지의 아들로서 구원자입니다. 이 이름에 모든 사람이 바라는 것이 담겨 있습니다.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는 사람들
모든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합니다. 스스로를 자기가 처한 곤경에서 구원하려고 애를 쓰는 것입니다. 당장 서점에서 많이 팔리는 책을 보면 그것을 알 수 있습니다. 이렇게 하면 당신을 사회, 경제적인 곤경에서 구원해 줄 수 있습니다, 이런 책들이 베스트셀러가 되는 것입니다. 그 중에는 읽을만한 좋은 책들도 많습니다. 사람의 태도를 변화시킴으로 실제로 사람을 곤경에서 벗어나게 도와주는 책들이 있는 것입니다. 그러나 자기를 죄로부터 구원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놓임과 넘겨짐
바라바는 놓아주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 넘겨졌습니다. 바라바는 우리 모두를 뜻합니다.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애를 쓰는 우리 모두가 바라바입니다. 그런데 아무리 구원하려고 애를 써도 구원할 수 없습니다. 십자가 형으로 죽어야 마땅한 우리입니다. 그런데 우리가 십자가 형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참 구원자이신 예수 그리스도 덕분입니다.
유월절 어린 양으로
이 일은 유월절에 일어난 일입니다(6절 상). 이스라엘이 애굽에서 나올 때 이스라엘의 모든 장자 대신에 어린 양이 죽임 당했습니다. 죽임 당한 어린 양 덕분에 모든 장자는 살았습니다. 이처럼 바라바는 살고 예수님은 십자가에 달려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월절 어린 양으로서 죽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우리와 아무 상관 없는 죽음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나를 놓아주시기 위해서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나와 직접 관련이 있는 죽음입니다. 예수님이 아니었으면 우리가 십자가에 달려서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받는 자가 되었어야 했습니다. 저주를 받은 자가 되었어야 했던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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