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14장 53-72절 | 불의한 재판 자리에서 진리를 말씀하심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심

2024. 3. 27. 20:43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4:53-72

    찬송가 395장 자비하신 예수여


    우리 죄를 지심

    예수님을 따르던 제자들은 다 도망갔습니다(14:50). 예수님은 강도 취급을 당하시면서 잡혀가셨습니다(14:48).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들었던 사람들이 예수님을 강도로 여겨서 죽음에 넘겼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달리셨습니다. 강도 죄를 당신님에게 적용하는 것을 묵묵히 감당하셨습니다(사 53:12). 그렇게 우리의 죄를 지셨습니다.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53   그들이 예수를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가니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이더라

     

    예수님을 잡은 무리들은 예수님을 끌고 대제사장에게로 갔습니다. 그러자 그곳으로 대제사장들과 장로들과 서기관들이 다 모였습니다. 당시 이스라엘을 다스리던 사람들이 모인 것입니다. 하나님의 백성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이 모여서 하나님의 아들을 정죄하는 재판을 열었습니다. 

    멀찍이 따라가는 베드로 

    54   베드로가 예수를 멀찍이 따라 대제사장의 집 뜰 안까지 들어가서 아랫사람들과 함께 앉아 5)불을 쬐더라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습니다. 당당히 따라가지 못했습니다. 그는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힘 있게 호언 장담했었습니다(14:31). 그러나 그의 호언장담은 지켜지지 못했습니다. 그래도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라도 따라가지 않았느냐고 생각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이것은 어떻게 보면 더 나쁜 행동입니다. 왜냐하면 다른 제자들은 적어도 자기들이 예수님을 안다는 것을 드러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도망한 것입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것을 숨기고 먹찍이 따라갔습니다. 

    불의한 재판

    55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를 죽이려고 그를 칠 증거를 찾되 얻지 못하니
    56   이는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는 자가 많으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못함이라
    57   어떤 사람들이 일어나 예수를 쳐서 거짓 증언 하여 이르되
    58   우리가 그의 말을 들으니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더라 하되
    59   그 증언도 서로 일치하지 않더라

     

    대제사장들과 온 공회가 예수님을 죽이려고 증거를 찾았습니다(55절). 그러나 그 증언이 서로 일치하지 않았습니다(56절 하). 증언들이 다 거짓증언이었기 때문입니다(56절 상). 이 재판은 불의한 재판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공정한 재판으로 정죄되신 것이 아니라 불의한 재판으로 정죄되셨습니다. 

    거짓 증언

    증언들 중에서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내가 헐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58절)"라는 증언이 있었습니다. 이것도 거짓 증언입니다. 예수님께서 이런 말씀을 하신 일이 있는데(요 2:19 참조) 왜 이 증언이 거짓증언일까요? 이 증언이 거짓 증언인 이유는 그들이 이것으로 예수님을 고발하려고 하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이 말씀은 놀라운 진리를 담고 있는 말씀입니다. 진리, 즉 참인 말씀입니다. 이 말씀을 가지고 예수님을 죽일 증거로 삼으려고 하기 때문에 이 증언은 거짓 증언입니다(57, 59절). 

    성전과 십자가

    예수님께서 손으로 지은 이 성전을 헐라고 하신 것과 손으로 짓지 아니한 다른 성전을 사흘 동안에 지으리라 하신 것은 예수님의 십자가와 부활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옛 성전을 폐하시기 위해서 오셨습니다. 옛 성전은 십자가에서 폐지되었습니다. 하나님께 나아가기 위해서 제물의 피를 드리는 제도는 이제 종결되었습니다. 이제는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 즉 예수님의 부활의 몸 안에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모든 죄를 속량하시고 부활하셔서 모든 피조세계를 새롭게 창조하셨습니다. 새롭게 창조하신 피조 세계 안에 우리도 들어갑니다. 우리는 모든 죄를 속량 받은 사람으로서 그리고 동시에 새롭게 재창조된 피조물로서 하나님께 믿음으로 나아갈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예수님께서 십자가와 부활로 이루신 일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려 숨지셨을 때 성전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로 찢어졌습니다. 이것은 성전이 그 기능을 다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몸이 죽음을 맞을 때 성전도 죽음을 맞이한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예수님께서는 성전을 허셨습니다. 그리고 손으로 짓지 아니한 성전을 사흘 동안에 일으키셨습니다. 즉 부활의 몸을 입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은 성전과 깊이 관련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강도의 소굴을 폐하시고 만민이 기도하는 집을 세우신 것입니다(11:17). 

    내가 그니라

    60   대제사장이 가운데 일어서서 예수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아무 대답도 없느냐 이 사람들이 너를 치는 증거가 어떠하냐 하되
    61   침묵하고 아무 대답도 아니하시거늘 대제사장이 다시 물어 이르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
    62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그니라 인자가 권능자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름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 하시니

    대제사장은 예수님께 "네가 찬송 받을 이의 아들 그리스도냐(61절)"라고 물었습니다. 이 물음은 직설적인 물음입니다. 그 물음에 예수님께서는 진리를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내가 그니라(Ἐγώ εἰμι)"라고 대답하셨습니다. 이 말씀은 "나는 스스로 있는 자니라(출 3:14)", 즉 "나는 나다"라는 뜻입니다. 당신님께서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증언하신 것입니다. 이어서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인자"라고 칭하셨습니다. 인자는 다니엘서 7장 13절에 의거해서 하나님의 아들을 가리키는 칭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이 다니엘 7장 13절과 14절을 인용한 말씀입니다. "인자가 권능의 우편에 앉은 것과 하늘 구룸을 타고 오는 것을 너희가 보리라(62절)" 다니엘서에서 예언한 인자는 바로 예수님인 것입니다. 

    가르쳐주셨건만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누구신가를 계속 물었습니다. 표적을 구하기도 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드러내 놓고 가르쳐주시지 않으셨습니다. 그러시다가 재판 자리에서 당신님께서 누구신지를 명백하게 드러내셨습니다. 그들이 성경을 정말 알았더라면 그리고 하나님을 경외했더라면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충격을 받았어야 합니다. 예수님께 꿇어 엎드렸어야 합니다. 그러나 그들은 오히려 예수님을 정죄했습니다. 

    신성모독 죄로 정죄함 

    63   대제사장이 자기 옷을 찢으며 이르되 우리가 어찌 더 증인을 요구하리요
    64   그 신성모독 하는 말을 너희가 들었도다 너희는 어떻게 생각하느냐 하니 그들이 다 예수를 사형에 해당한 자로 정죄하고
    65   어떤 사람은 그에게 침을 뱉으며 그의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치며 이르되 선지자 노릇을 하라 하고 하인들은 손바닥으로 치더라


    대제사장은 자기 옷을 찢었습니다(63절). 못 들을 말을 들었다고 생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예수님의 말을 신성모독 하는 말로 여겼습니다(64절). 예수님의 말씀은 진리입니다. 그 무엇 하나 버릴 수 없는 진리입니다. 완전히 다 이루어지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그 말씀으로 예수님을 정죄해서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64절).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이 누구신지를 드러내셨기 때문에 사형 선고를 받으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경외한다는 미명 하에 하나님께 사형 선고를 내렸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완악함입니다. 

    온갖 수모를 다 당하심

    사람이 얼마나 악한지 하나님의 아드님께 침을 뱉었습니다(65절 상). 얼굴을 가리고 주먹으로 쳤습니다. 그러면서 선지자 노릇을 하라고 조롱했습니다(65절 중). 가장 낮은 사람들도 나서서 손바닥으로 예수님을 쳤습니다(65절 하). 예수님은 어떻게 더 낮아질 수 없이 낮아지셨습니다. 종의 형체를 가지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완전하게 업신여김을 당하셨습니다. 

    베드로의 부인

    66   베드로는 아랫뜰에 있더니 대제사장의 여종 하나가 와서
    67   베드로가 불 쬐고 있는 것을 보고 주목하여 이르되 너도 나사렛 예수와 함께 있었도다 하거늘
    68   베드로가 부인하여 이르되 나는 네가 말하는 것이 무엇인지 알지도 못하고 깨닫지도 못하겠노라 하며 앞뜰로 나갈새6)
    69   여종이 그를 보고 곁에 서 있는 자들에게 다시 이르되 이 사람은 그 도당이라 하되
    70   또 부인하더라 조금 후에 곁에 서 있는 사람들이 다시 베드로에게 말하되 너도 갈릴리 사람이니 참으로 그 도당이니라
    71   그러나 베드로가 저주하며 맹세하되 나는 너희가 말하는 이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하니
    72   닭이 곧 두 번째 울더라 이에 베드로가 예수께서 자기에게 하신 말씀 곧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하심이 기억되어 그 일을 생각하고 울었더라

     

    예수님께서 진리를 선포하심으로 정죄를 당하실 때 베드로는 예수님을 부인했습니다. 여종에게 두 번 부인하고(66, 69절) 사람들에게는 저주하며 맹세하기까지 하면서 예수님을 알지 못한다고 했습니다(71절). 예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지도자들에게 정죄를 당하셨습니다. 사람들에게 침 뱉음을 당하셨습니다. 얼굴을 가린 채로 얼굴에 주먹질을 당하셨습니다. 심지어 하인들에게까지 손지검을 당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 그렇게 수모를 겪으실 때 그의 수제자 베드로는 그 수모를 더했습니다. 예수님을 세 번 부인하고 마지막에는 저주하며 맹세까지 한 것입니다. 예수님을 끝까지 따라 죽는 데까지 이르면서 예수님께 힘이 되어드리겠다고 호언장담한 베드로는 온데간데 없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악함과 약함입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14장 53-72절 | 불의한 재판 자리에서 진리를 말씀하심으로 온갖 수모를 당하심

    돌이키도록

    그런 베드로를 예수님께서는 사랑하셨습니다. 베드로에게 이미 예고하신 것입니다. "닭이 두 번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 이 예고 덕분에 베드로는 돌이킬 수 있었습니다. 예수님의 예고는 정죄를 위한 것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자기의 무능을 깨닫고 예수님께로 돌이키도록 하기 위한 장치였습니다. 

    십자가의 은혜

    예수님께서는 홀로 십자가의 길로 가셨습니다. 그 어떤 사람도 예수님께 힘이 되어 드리지 못했습니다. 홀로 모든 죄의 짐을 다 지셨습니다. 성경대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구원에 있어서 그 누구도 공로를 주장할 수 없습니다. 모든 것이 은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수모를 당하시면서도 침 뱉고 주먹과 손바닥으로 치는 사람들을 끝까지 참으셨습니다. 그들에 대해서 그 어떤 적개심도 드러내지 않으셨습니다. 오히려 그렇게 하는 사람들을 포함해서 당신님을 십자가에 못 박는 사람들을 위해서 그들의 죄를 사하여 달라고 기도하셨습니다(눅 23:34). 이것이 바로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입니다.

     

    글이 유익하셨다면 구독과 공감(❤️) 공유 부탁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