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29. 20:28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5:16-32
찬송가 145장 오 거룩하신 주님
지옥 형벌을 면한 우리들
빌라도는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히게 넘겼습니다(15:15). 대신 바라바는 명절에 죄수 한 사람을 놓아주는 전례를 따라서 놓아주었습니다(15:6, 15). 여기서 명절은 유월절입니다. 바라바는 유월절과 예수님의 혜택을 보았습니다. 그는 유월절과 예수님 덕분에 십자가 형을 면제 받았습니다. 바라바는 우리를 가리킵니다. 바라바는 스스로 구원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실패했습니다. 실패의 결과는 십자가에 매달려 저주를 당하는 것이었습니다(신 21:23). 그런 바라바를 대신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십자가의 형벌은 지옥 형벌과도 같습니다. 마찬가지로 우리는 스스로를 구원할 수 없습니다. 그런 우리를 위해서 예수님께서 십자가의 형벌, 지옥 형벌을 당하셨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에서는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하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예수님을 조롱하는 로마 군인들
16 군인들이 예수를 끌고 브라이도리온이라는 뜰 안으로 들어가서 온 군대를 모으고
17 예수에게 자색 옷을 입히고 가시관을 엮어 씌우고
18 경례하여 이르되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 하고
19 갈대로 그의 머리를 치며 침을 뱉으며 꿇어 절하더라
20 희롱을 다 한 후 자색 옷을 벗기고 도로 그의 옷을 입히고 십자가에 못 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브라이도리온(16절)은 로마 총독의 관저를 의미합니다. 이 관저를 중심으로 로마 군대가 주둔했습니다. 이곳은 식민 통치의 중심지였습니다. 군인들은 거기로 예수님을 끌고 갔습니다. 마치 전쟁 포로처럼 예수님을 끌고 간 것입니다. 끌고가서는 온 군대를 모았습니다. 군대를 모은 이유는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군인들은 예수님께 자색 옷을 입혔습니다(17절 상). 자색 옷은 왕이 입는 옷입니다. 당시 자색 옷을 만들기 위해서는 큰 돈이 들었습니다. 자색 염료가 굉장히 비쌌기 때문입니다. 이 옷은 전리품이었을 것입니다. 이들은 예수님을 조롱하기 위해서 그런 비싼 옷을 동원했습니다. 제대로 조롱하려고 한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의 머리에 가시관을 엮어서 씌웠습니다(17절 하). 예수님께서는 왕관 대신에 머리를 온통 피범벅으로 만드는 가시관을 쓰셨습니다. 군인들은 그런 예수님께 경례를 하면서 "유대인의 왕이여 평안할지어다(18절)"라고 말하면서 조롱했습니다. 자기들의 힘을 과시하면서 유대인의 약함을 비웃고 조롱한 것입니다.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의 모습
그들은 갈대로 예수님의 머리를 치고 침을 뱉었습니다(19절). 예수님께서는 완전히 무력한 상태로 모욕을 당하는 자리에 들어가셨습니다. 그 모욕을 다 당하셨습니다. 그들은 꿇어 절하는 것으로 희롱을 다 했습니다(19-20절). 이 모습은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의 모습과도 같습니다. 사람이 우상에게 꿇어 절하는 이유는 스스로가 신이 되고자 하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우상을 자기 마음대로 할 수 있습니다. 그러면서도 그것에게 절합니다. 자기 의지를 관철하기 위해서 절하는 것입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포로로 잡아서 자기들 마음대로 하면서도 희롱의 의미로 절까지 했습니다. 그들은 유대인의 왕보다 그들이 더 우위에 있음을 그런 식으로 표현했습니다.
하나님을 향해서 반역을 저지를 때의 모습
군인들의 모습은 사람이 하나님을 향해서 반역을 저지를 때 범하는 모습입니다. 사람은 하나님을 모욕하면서도 입으로는 샬롬을 말합니다. 하나님께 합당한 영광을 돌리지 않으면서 마치 대단한 영광을 돌리는 것처럼 행세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주관하신다고 말하면서도 그 홀을 빼앗아서 하나님의 머리를 치려고 합니다. 꿇어 절하면서도 마음 속에는 반역을 품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뜻보다 자기 뜻을 이루려고 하는 것입니다.
당하신 모욕을 선으로 바꾸신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모욕을 허용하셨습니다. 십자가 사건으로 하나님을 향한 사람의 반역이 얼마나 큰 것인가를 알리셨습니다. 그러시면서 동시에 사람의 반역을 그대로 당하셨습니다. 그 반역의 끝까지를 다 당하신 것입니다. 십자가로 그 모든 반역을 다 당하셨지만 그 반역을 구원으로 바꾸셨습니다. 사람은 십자가를 보면서 자기의 반역죄가 얼마나 큰 것인가를 깨달아야 합니다. 동시에 하나님께서 그 반역죄를 바꾸셔서 역으로 반역자들을 구원하신 은혜가 얼마나 큰지를 알아야 합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
21 마침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인 구레네 사람 시몬이 시골로부터 와서 지나가는데 그들이 그를 억지로 같이 가게 하여 예수의 십자가를 지우고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기 위해서 끌려 가시기 전에 예수님은 이미 기력이 다 쇠하셨습니다. 피를 너무 많이 흘리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몸은 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미 피범벅이었습니다. 가시관 때문에 머리로부터 피가 흘렀고 채찍질을 심하게 당했기 때문에 터진 살에서 피가 흘렀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로 쓰일 그 무거운 나무를 지고 가실 수 없으셨습니다.
그 때 구레네 사람 시몬이 지나가다가 억지로 예수님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습니다(21절). 그가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것은 사람으로서 예수님께 도움을 드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은 사람들이 하나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못 박아 죽이려는 악행에 억지로 동참한 것입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이 대신 십자가를 운반한 것은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수 없으실 만큼 쇠약해 지셨다는 것을 알려주는 것입니다.
루포의 아버지
루포는 로마서 16장 13절에 등장합니다. 거기서 사도 바울은 "주 안에서 택하심을 입은 루포와 그의 어머니에게 문안하라"라고 씁니다. 구레네 사람 시몬은 나중에 예수님을 믿어 교회의 일원이 되었던 것으로 보입니다. 그는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가장 가까이에서 그것을 지켜본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예수님의 부활을 믿고 교회의 일원이 된 것입니다. 십자가와 부활은 참으로 일어난 역사적인 사건입니다.
골고다, 해골의 곳
22 예수를 끌고 골고다라 하는 곳(번역하면 해골의 곳)에 이르러
군병들은 예수님을 끌고 골고다라고 하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골고다는 마치 해골처럼 불쑥 튀어나온 언덕입니다(22절).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일은 모든 이들에게 공개된 일입니다. 은밀히 행한 일이 아닙니다. 당시 팔레스타인 지방에 살던 유대인이라면 누구나 알도록 알려진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십자가를 누구나 볼 수 있는 곳에 세우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대속의 죽음을 널리 알리셨습니다.
몰약을 탄 포도주
23 몰약을 탄 포도주를 주었으나 예수께서 받지 아니하시니라
몰약을 탄 포도주는 일종의 마취제입니다. 십자가 형벌이 너무 고통스러웠기 때문에 마취제를 준 것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받지 않으셨습니다. 온전한 정신으로 하나님의 모든 진노를 다 당하시기 위함입니다. 예수님께서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를 다 당하셨기 때문에 우리는 나음을 입고 형벌을 면하게 되었습니다.
옷을 나누고 제비를 뽑음
24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눌새 누가 어느 것을 가질까 하여 제비를 뽑더라
군인들은 십자가에 못 박고 그 옷을 나누었습니다. 예수님의 옷은 통으로 짠 옷이기 때문에 찢어 나누지 않고 제비를 뽑았습니다. 이것은 이미 시편 22편 18절에서 예언된 것이었습니다. 시편 22편에는 십자가에서 예수님께서 고통 당하실 때 어떤 마음이셨는지 상세하게 기록되어 있습니다.
제삼시가 되어
25 때가 제삼시가 되어 십자가에 못 박으니라
군인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박은 시각은 제삼시였습니다. 제삼시는 오전 9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오전 9시부터 오후 3시까지(15:34) 여섯 시간 동안 십자가에 못 박힌 채 매달려 있으셨습니다. 여섯 시간 동안 온 인류의 죄를 향한 하나님의 무한하신 진노를 다 당하신 것입니다. 그 무한한 진노를 다 당하실 수 있으셨던 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기 때문입니다.
유대인의 왕
26 그 위에 있는 죄패에 유대인의 왕이라 썼고
십자가 형벌에서 십자가 위에는 그 죄인의 죄가 무엇인지 죄패를 써 붙여 놓습니다. 예수님의 죄패에는 유대인의 왕이라는 글자가 쓰였습니다. 이 글자는 세 나라의 말로 쓰였습니다. 히브리어, 헬라어, 라틴어로 기록된 것입니다(요 19:20). 하나님께서는 예수님께서 유대인의 왕이심을 그렇게 선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유대인의 왕이기 때문에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유대인의 왕은 일차적으로는 유대인을 구원할 메시아를 뜻합니다. 유대인은 하나님께서 친히 언약을 맺으신 언약 백성을 상징합니다. 그러므로 유대인의 왕이라는 말은 언약 백성을 구원할 메시아라는 뜻입니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께서 구원하시기로 택하신 자들을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는 왕이셨습니다. 그들을 그들의 죄에서 구원하시기 위해서 십자가에 달리셔서 저주를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죄로 인해서 당할 저주를 당신님께서 대신 당하심으로 우리를 그 죄에서 구원해 주셨습니다.
강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심
27 강도 둘을 예수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으니 하나는 그의 우편에, 하나는 좌편에 있더라
예수님의 우편과 좌편에는 강도들이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27절). 예수님께서는 강도로 취급을 받아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하나님의 성전을 강도의 소굴로 만든 종교지도자들이 받아야만 하는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영광을 가로채는 강도와도 같은 사람들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셨습니다. 하나님과 이웃에게 해만 끼치는 불법자들인 강도와 같은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을 대신 받으신 것입니다.
조롱하는 사람들
28 1)(없음)
29 지나가는 자들은 자기 머리를 흔들며 예수를 모욕하여 이르되 아하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향해서 머리를 흔들면서 예수님을 모욕했습니다(29절). 유대인들은 십자가에 무력하게 못 박혀 죽는 메시아를 인정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강력한 왕을 바라고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너무 무력하게 잡히셨고 무력하게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 그들의 예수님을 향한 기대는 실망으로 바뀌었습니다. 그 실망은 예수님에 대한 조롱으로 바뀌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향해서 아하 하면서 성전을 헐고 사흘에 짓는다는 자여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고 조롱했습니다(29-30절). 그러나 그들은 예수님께서 정말 성전을 허시고 계신다는 것을 몰랐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 나아갈 길을 여시고자 십자가에서 성전을 헐고 계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서 숨을 거두실 때 성전 휘장이 위에서부터 아래로 찢어진 것이 그것을 의미합니다. 옛 성전은 십자가로 폐지되었습니다.
스스로를 구원하라는 조롱
30 네가 너를 구원하여 십자가에서 내려오라 하고
31 그와 같이 대제사장들도 서기관들과 함께 희롱하며 서로 말하되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
대제사장들과 서기관들도 백성들과 함께 조롱했습니다. 그들은 "그가 남은 구원하였으되 자기는 구원할 수 없도다(31절)"라고 조롱했습니다. 그들의 조롱에도 구원의 핵심이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남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당신님의 독생자, 유일하신 아드님을 희생하셨습니다. 유일하신 아드님을 구원할 능력이 없으셔서 그런 것이 아닙니다. 그것이 남을 구원할 가장 지혜로운 방법이기 때문에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아드님께서 남을 구원하시고 자기를 구원하시지 않으신 것 이것이 복음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하나님께 기도하시면서 십자가를 면하기를 바라시면서도 하나님의 뜻대로 되기를 구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당신님을 구원하려고 하지 않으셨습니다. 택하신 모든 사람을 구원하고자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받드셔서 자기 자신 구원하기를 포기하셨습니다. 남을 구원하시기 위해서 자기를 구원하지 않으신 것입니다.
이스라엘 왕의 전쟁
32 이스라엘의 왕 그리스도가 지금 십자가에서 내려와 우리가 보고 믿게 할지어다 하며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힌 자들도 예수를 욕하더라
그들은 예수님이 만약 이스라엘의 왕이시고 그리스도라면 십자가에서 내려와서 적을 다 무찔러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렇게 하면 믿겠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이 방법은 무력으로 상대방을 압제하는 방법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방법은 힘으로 누르는 방법이 아닙니다. 내어주시고 희생하시는 방법입니다. 죽임을 당하심으로 죽음을 죽이시는 방법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죽음을 죽음으로서 죽이시는 싸움을 하고 계셨습니다. 그 일을 이스라엘의 왕으로서 행하신 것입니다. 사람들은 그것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스라엘 왕이라면 이렇게 해야 한다는 고정관념으로 예수님을 조롱하고 욕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가장 지혜로우신 방법으로 죽음을 정복하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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