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3. 30. 11:55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5:33-47
찬송가 144장 예수 나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심
예수님께서는 강도들과 함께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27절). 사람들은 십자가에 못 박히신 예수님을 조롱했습니다(29-32절). 그들은 자기들이 하는 말을 알지 못했습니다. 하지만 그 안에는 구원의 심오한 진리가 담겨 있었습니다.
정오에 온 땅에 어둠이 임함
33 제육시가 되매 온 땅에 어둠이 임하여 제구시까지 계속하더니
예수님께서는 제삼시에 십자가에 못 박히셨습니다(15:25). 그 때는 대략 오전 9시입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못 박히시고 세 시간이 지나서 제육시가 되었습니다. 제육시는 정오입니다. 해가 중천에 떠 있어서 가장 밝을 때입니다. 그런데 정오에 온 땅에 어둠이 임했습니다. 제육시에 임한 어둠은 제구시까지 계속되었습니다(33절).
흑암과 창조
이 어둠은 창조를 뒤로 돌리는 것입니다. 창세기 1장에 보면 땅이 혼돈하고 공허하며 흑암이 깊음 위에 있었다고 나옵니다(창 1:2). 그런 땅에 하나님께서 빛을 창조하심으로 질서를 부여하셨습니다. 흑암을 물리치셨습니다. 혼돈과 공허는 질서와 내용이 없다는 뜻입니다. 질서와 내용이 없으면 아무 의미도 없습니다. 거기에 하나님께서 빛으로 질서를 세우시고 내용을 가득 채우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창조로 의미 없음을 물리치시고 충만한 의미로 온 땅을 채우셨습니다. 그런데 그 땅에 다시 흑암이 덮였습니다. 이 흑암은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거스르는 것이었습니다.
아홉 번째 재앙
이스라엘 백성들이 출애굽할 때 아홉 번째 재앙이 흑암 재앙입니다. 애굽에 삼 일 동안 흑암이 임했었습니다. 그 흑암은 더듬을 만한 흑암이었습니다(출 10:21-22). 이 흑암 재앙 이후에 장자가 죽는 재앙이 임했습니다. 출애굽의 재앙도 십자가를 가리키고 있는 것이었습니다.
창조세계가 흑암으로 뒤덮힘
온 땅에 어둠이 임했다는 것은 온 우주가 멸망 당할 위기에 들어갔다는 의미입니다. 십자가는 죄에 대한 하나님의 진노가 어떤 것인지를 드러냅니다. 죄는 하나님을 향한 반역이요 적개심입니다. 하나님을 원수 삼는 것입니다. 죄를 허용해서 그 끝에 이르면 죄는 하나님을 죽이는데까지 이릅니다. 그것이 바로 십자가에서 나타난 일입니다. 하나님의 아들, 제 2위 하나님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 하나님을 죽이고자 했습니다. 하나님을 죽이면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모든 선한 것도 누릴 수 없게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흑암이 임한 것입니다. 흑암은 의미로 가득찬 창조세계를 빼앗긴다는 의미입니다. 마찬가지로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장자인 이스라엘을 보내라고 하셨을 때 애굽 왕 바로는 그것을 거절했습니다. 하나님께 반항하고 적개심을 품었습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께서 선하게 베풀어주신 창조세계를 빼앗기는 것입니다.
죄의 끝에는
만약 하나님의 진노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님께 쏟아지지 않았더라면 온 우주는 순식간에 멸망하였을 것입니다. 의미로 가득찬 온 우주가 혼돈과 공허로 돌아갔을 것입니다. 그만큼 죄의 결과는 엄청난 것입니다. 동시에 이것은 죄의 끝이 무엇인지를 알려줍니다. 죄의 끝은 하나님의 죽음입니다. 하나님의 죽음은 온 우주가 흑암과 공허로 돌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신 모든 선한 것이 다 혼돈과 공허와 흑암으로 돌아가게 됩니다.
흑암이 걷힘
그런데 제구시에 흑암이 걷힙니다. 제구시에 일어난 일 때문입니다. 제구시에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외치시면서 숨지셨습니다.
버림 당함과 하나님의 부재
34 제구시에 예수께서 크게 소리 지르시되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 하시니 이를 번역하면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 하는 뜻이라
제구시에 예수님께서는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지르셨습니다. 이 말은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는 뜻입니다(34절). 온 우주에 흑암이 임해서 온 우주가 멸망을 당해야 했는데 온 우주는 그대로 있고 하나님의 아들이 멸망을 당하셨습니다. 온 우주가 죄로 인해서 버림을 받아야 했는데 하나님의 아들 예수님께서 버림을 받으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죽음은 결국 하나님의 부재로 이어집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모든 선한 것이 없어지게 됩니다. 우리는 알게 모르게 지금도 하나님께서 베풀어주시는 선한 것으로 삶을 영위하고 있습니다. 아무리 고통스러운 처지에 있더라도 그 고통이 끝날 것이라는 희망은 항상 있습니다. 그런데 희망은 선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안 계시면 그 희망도 사라집니다. 그렇게 되면 고통이 고통을 더하는데 그 고통이 끝나리라는 희망도 없게 됩니다. 희망이 없는 고통이 얼마나 큰 고통일까요. 상상할 수 없습니다. 그런 고통이 바로 지옥의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부재라는 고통은 무한히 큰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무한히 큰 고통을 십자가에서 다 당하셨습니다. 이것은 예수님께서 하나님이셨기 때문에 가능한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거룩하셔서 죄와 함께 있으실 수 없으십니다. 죄를 다 태워 버리셔야만 합니다. 멀리 치우셔야만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런 의미에서 하나님의 부재라는 지옥 고통을 겪으셨습니다. 또한 죄를 다 태워 없애셔야만 하는 하나님의 진노를 다 당하셨습니다.
엘리야를 부른다
35 곁에 섰던 자 중 어떤 이들이 듣고 이르되 보라 엘리야를 부른다 하고
36 한 사람이 달려가서 해면에 신 포도주를 적시어 갈대에 꿰어 마시게 하고 이르되 가만 두라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 하더라
37 예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시니라
예수님께서 "엘리 엘리"라고 부르짖으시자 사람들은 엘리야를 부른다고 생각했습니다. 잘못 들은 것입니다. 그런데 여기에도 귀한 진리가 담겨 있습니다. 엘리야는 아버지의 마음을 자녀에게로 자녀들의 마음을 아버지에게로 돌리는 사람입니다. 만약 이 엘리야가 왔는데도 돌이키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저주로 그 땅을 치실 것입니다(말 4:6). 그런데 정말 엘리야가 와서 사람들에게 회개의 세례를 전했습니다. 그가 바로 세례 요한입니다. 그렇게 해서 땅은 저주를 면했습니다. 그런데 지금 예수님께는 엘리야가 오지 않았습니다. 엘리야가 와서 아버지의 마음을 아들에게로 돌이키는 사역을 하지 않은 것입니다. 그 결과 예수님께서는 저주를 당하셨습니다. 나무에 달려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신 21:23). 하지만 온 땅은 저주를 면했습니다.
예수님께서 큰 소리를 지르시고 숨지실 때 온 땅은 밝아졌습니다(33-34절). 제구시에 예수님께서 숨지시자 온 땅을 덮고 있던 흑암은 점점 물러갔습니다. 온 땅은 점점 밝아졌습니다. 온 땅이 저주를 면한 것입니다. 모든 저주는 예수님 한 분에게 쏟아졌습니다.
신 포도주
36절에 나오는 해면은 스펀지 같은 것입니다. 한 사람이 스펀지를 신포도주에 적셔서 갈대에 꿰어 올렸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높이 매달려 계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 올려드린 신포도주는 로마 군병들이 마시는 포도주인데 갈증을 해소해주는 음료입니다. 이렇게 행동한 것은 예수님을 불쌍히 여겨서가 아닙니다. 뒤에 나오는 대로 엘리야가 와서 그를 내려 주나 보자는 심정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에 보면 신 포도가 나옵니다.
29 그 때에 그들이 말하기를 다시는 아버지가 신 포도를 먹었으므로 아들들의 이가 시다 하지 아니하겠고
30 신 포도를 먹는 자마다 그의 이가 신 것 같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
신 포도를 먹으면 이가 십니다. 포도를 먹은 이의 이가 십니다. 그런데 이것은 자기의 죄로 죽는다는 것을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신포도주를 받으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뜻은 예수님께서 택하신 모든 이의 죄를 다 담당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의 죽음은 자기의 죄악으로 죽어야 하는 그 죽음을 대신하는 죽음이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신포도주를 받으심으로 모든 택하신 이들의 죄로 인해 죽임을 당하셨습니다. 그로 인해 하나님께서는 "다시는 그 죄를 기억하지 아니하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렘 31:34).
성소 휘장이 찢어짐과 백부장의 고백
38 이에 성소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 둘이 되니라
39 예수를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그렇게 숨지심을 보고 이르되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하더라
예수님께서 숨지셨을 때 성소의 휘장이 위로부터 아래까지 찢어져서 둘이 되었습니다. 성전 휘장의 두께는 약 15cm나 됩니다. 그 두꺼운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진 것입니다. 이 사건은 성전이 폐지된 것을 뜻합니다. 성전은 하나님께 나아가는 길입니다. 그 길에서 휘장은 하나님과 사람을 가로막는 것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휘장이 위로부터 찢어졌습니다. 위로부터 찢어졌다는 것은 그 휘장을 찢으신 분이 하나님이시라는 뜻입니다.
휘장이 찢어지고 예수님을 향하여 섰던 백부장이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라고 고백합니다(39절). 이 구절은 마가복음 서두와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마가복음 1장에 예수님께서 세례 받으시는 장면이 나옵니다. 세례를 받으시고 물에서 올라오실 때 하늘이 갈라집니다(1:10). 하늘이 갈라졌다고 할 때 갈라졌다는 말과 휘장이 찢어졌다는 말이 원어로 같은 말(σχίζω)입니다. 마가복음 1장에서는 하늘이 갈라지고 하늘로부터 소리가 들립니다. "너는 내 사랑하는 아들이라(1:11)" 그런데 오늘 본문에서는 땅에서부터 같은 소리가 들립니다. "이 사람은 진실로 하나님의 아들이었도다"
복음의 시작
마가복음은 "하나님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의 시작이라(1:1)"라고 시작합니다. 이 복음은 하늘에서부터 예수님에게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음성이 들리고 땅에서부터 예수님을 향하여 당신님은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라는 화답으로 시작됩니다. 성소 휘장이 열린 것은 하나님께서 계신 하늘이 열린 것과 같습니다. 백부장은 예수 그리스도의 얼굴에 있는 하나님의 영광을 알아보았습니다(고후 4:6). 하늘에서 예수님을 가리켜서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계시한 것을 땅에서 알아보고 하나님의 아들이라고 화답했습니다. 이 일이 십자가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이것이 바로 복음의 시작입니다. 이 복음이 우리에게까지 당도하여 우리도 예수님을 하나님의 아들로 알아보게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여자들과 여자의 후손
40 멀리서 바라보는 여자들도 있었는데 그 중에 막달라 마리아와 또 작은 야고보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와 또 살로메가 있었으니
41 이들은 예수께서 갈릴리에 계실 때에 따르며 섬기던 자들이요 또 이 외에 예수와 함께 예루살렘에 올라온 여자들도 많이 있었더라
이 사건을 많은 여자들이 보았습니다. 예수님께 가담했다는 이유로 남자들은 잡혀 들어가지만 여자들은 괜찮았습니다. 이것이 중동의 문화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많은 여자들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목격했습니다. 예수님은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입니다. 마가는 십자가 사건에 여자들을 기록함으로 예수님께서 여자의 후손으로 오신 메시아임을 나타냅니다. 여자의 후손의 발꿈치가 상했습니다. 이제 어찌될까요? 마가는 여자들을 등장시켜서 십자가로 끝이 아님을 암시하고 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지냄
42 이 날은 준비일 곧 안식일 전날이므로 저물었을 때에
43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이 사람은 존경 받는 공회원이요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
44 빌라도는 예수께서 벌써 죽었을까 하고 이상히 여겨 백부장을 불러 죽은 지가 오래냐 묻고
45 백부장에게 알아 본 후에 요셉에게 시체를 내주는지라
46 요셉이 세마포를 사서 예수를 내려다가 그것으로 싸서 바위 속에 판 무덤에 넣어 두고 돌을 굴려 무덤 문에 놓으매
47 막달라 마리아와 요세의 어머니 마리아가 예수 둔 곳을 보더라
예수님께서 십자가에 달리신 날은 안식일 전날입니다. 즉 금요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금요일 오전 9시에 십자가에 달리셔서 오후 3시까지 매달려 있으셨습니다. 거기에서 무한한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정오부터 오후 3시까지는 흑암이 온 땅을 덮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숨지시자 흑암은 걷히고 해가 다시 땅을 비추기 시작했습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빌라도에게 들어가서 예수님의 시체를 달라고 했습니다. 마가는 여기에 "당돌히"라는 말을 덧붙입니다. 이것은 실로 "당돌히" 행한 일입니다. 왜냐하면 이 일은 예수님께 가담했다는 죄목으로 모든 것을 다 빼앗기고 정죄를 당할 수도 있는 일이기 때문입니다.
요셉의 역할
성경에서 요셉은 야곱의 뼈를 고향으로 옮긴 인물입니다(창 50:5, 14). 야곱은 가나안 땅을 바라보면서 부활을 소망했습니다. 하나님의 땅에 묻힘으로 하나님께서 그 땅에 임하실 때 자기가 부활할 것을 믿음으로 바라본 것입니다. 그런 야곱의 뼈를 조상의 무덤에 장사한 사람이 바로 요셉입니다. 또한 요셉 자신도 자기의 뼈를 가나안으로 가져가라고 유언했습니다(창 50:25). 하나님께서 돌보시는 날을 요셉도 바라본 것입니다. 유다는 요셉을 팔아 넘겼지만 요셉은 나중에 아버지를 장사지냅니다. 가룟 유다가 예수님을 팔아 넘긴 것은 우연이 아닙니다. 마찬가지로 아리마대 요셉이 예수님을 장사지낸 것도 우연이 아닙니다.
여기에서 다른 요셉이 등장합니다. 요셉의 등장은 앞으로 심상치 않은 일이 일어날 것을 암시합니다. 요셉은 창세기에 나오는 요셉처럼 유력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는 공회원이었고 하나님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습니다(43절). 그는 예수님의 시체를 가져다가 세마포로 싸서 무덤에 넣어두고 돌을 굴려서 무덤 문에 놓았습니다. 예수님을 장사지낸 것입니다. 요셉은 그 이름 뜻이 더하시리라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요셉의 손에 장사 지낸바 되셨다가 부활하셨습니다. 부활의 첫 열매가 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러한 부활을 더하실 것입니다. 우리도 예수님처럼 죽음을 이기고 부활할 것입니다. 예수님 안에서 그렇게 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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