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14장 32-42절 | 겟세마네 기도로 이루신 놀라운 구원

2024. 3. 25. 07:51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14:32-42

    찬송가 364장 내 기도하는 그 시간


    스스로 시험을 극복할 수 없음

    베드로는 자기가 예수님과 함께 죽을지언정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힘있게 말했습니다. 다른 제자들도 베드로처럼 말했습니다(31절). 그러나 결과는 우리가 아는 대로입니다. 베드로는 예수님을 멀찍이 따라갔다가 세 번이나 예수님을 부인합니다. 다른 모든 제자들도 마찬가지입니다. 아무도 예수님과 함께 죽으려고 하지 못했습니다. 이처럼 사람은 시험을 자기 스스로 극복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본문은 시험을 어떻게 극복할 수 있는지를 말씀합니다. 시험을 극복하는 방법은 예수님의 본을 따라서 기도하는 것입니다(38절). 그런데 제자들은 기도하지 못했습니다(37, 40절). 기도하지 못했지만 그들은 결과적으로 시험을 극복했습니다. 어떻게 그렇게 되었을까요? 예수님께서 그들을 위해서 기도하셨기 때문입니다(눅 22:32).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2   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예수께서 제자들에게 이르시되 내가 기도할 동안에 너희는 여기 앉아 있으라 하시고
    33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심히 놀라시며 슬퍼하사
    34   말씀하시되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 되었으니 너희는 여기 머물러 깨어 있으라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겟세마네 동산에서 기도하실 때 심히 놀라시고 슬퍼하셨습니다. 여기서 심히 놀라셨다는 것은 두려움으로 충격을 받으셨다는 뜻입니다(ἐκθαμβέομαι). 십자가의 죽음을 굉장히 두려워하신 것입니다. 슬퍼하사(ἀδημονέω)는 심적으로 크게 고통스러워하셨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의 죽음에 압도되셨습니다. 얼마나 두려움 가운데 고통스러우셨는지 제자들에게 그 마음을 토로하셨습니다.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라고 번역되었는데 여기서 심히 고민하여(περίλυπος)는 슬픔에 포위되어 있다는 뜻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장차 다가올 죽음을 생각하시면서 영혼에 깊은 고통을 느끼셨습니다. 두려움으로 충격을 받으시고 심적으로 크게 고통을 겪으시면서 슬픔에 포위되셨습니다. 얼마나 고통스러우셨는지 제자들에게 깨어 있으라고 부탁할 정도였습니다. 

    예수님께서 맞이하신 죽음

    믿는 자에게 죽음은 사랑하는 예수님께로 가는 관문입니다. 그래서 담담하게 죽음을 맞이하는 신자들이 많습니다. 불신자도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신자의 죽음은 영원한 고통 속으로 들어가는 죽음입니다. 그들이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 것은 그것이 어떤 것인지 모르기 때문입니다. 알든 모르든 사람도 이렇게 죽음을 담담하게 맞이하는데 하나님의 아들이신 예수님께서 왜 이렇게 죽음을 생각하시면서 고통스러워하실까요? 예수님께서 맞이하신 죽음은 사람으로서는 상상할 수 없이 고통스러운 죽음이기 때문입니다. 그 죽음에 모든 사람이 범한 죄에 대한 형벌이 다 쏟아졌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죄를 멸하시는 하나님의 무한 진노를 다 받으셨습니다. 그 고통은 모든 사람이 다 지옥에서 영원히 고통을 받아도 다 받지 못할 고통이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영원한 지옥의 고통, 그 이루 말할 수 없이 큰 고통을 다 받으신 것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35   조금 나아가사 땅에 엎드리어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기를 구하여
    36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큰 고통인지 아셨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될 수 있는 대로 이 때가 자기에게서 지나가시기를 구했습니다(35절). 예수님께서는 하나님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한 것을 아셨습니다(36절 상). 하나님은 전능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께는 모든 것이 가능합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다고 해서 원하는 대로 다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의 뜻이기 때문입니다. 모든 것이 가능하지만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것이 이루어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라고 기도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무한 진노의 잔이 자기에게서 옮겨지기를 원하셨습니다. 하지만 자기가 원하는 것을 내려 놓으시고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것이 이루어지기를 기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뜻을 이루시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이루라고 하신 일들을 빠짐없이 이루셨습니다. 하나님께서 뜻하시는 것이 곧 예수님께서 뜻하시는 것과 동일했습니다. 그런데 십자가의 죽음이 얼마나 고통스러운 죽음이었는지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피하고 싶으셨습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그 길을 가시면서 피하고 싶으신 그 마음을 하나님께 그대로 아뢰셨습니다. 

    마음을 아뢰면서 

    예수님께서는 참 사람이시요 참 하나님이십니다. 예수님 안에는 사람으로서의 의지와 하나님으로서의 의지가 함께 있습니다. 예수님의 사람으로서의 의지는 항상 하나님의 의지에 순종하셨습니다. 이 기도에는 예수님의 사람으로서의 의지가 담겨 있습니다.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의 잔을 사람으로서 감당하는 것이 얼마나 두려운지 그 잔을 옮겨 달라는 것입니다. 하지만 그 마음을 하나님께 아뢰면서 하나님의 뜻이 이루어지기를 동시에 구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실로 하나님 아버지를 당신님의 목숨보다 더 사랑하셨습니다. 마음과 뜻과 목숨과 힘을 다 하여 하나님을 사랑하신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에는 온 인류를 향한 사랑이 담겨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예수님께서는 이웃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전적으로 무능한 사람

    37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38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어 기도하라 마음에는 원이로되 육신이 약하도다 하시고

     

    예수님께서는 십자가를 앞두시고 큰 전투를 치르고 계셨습니다. 이 전투는 하나님의 뜻에 자기 자신을 쳐서 끝까지 복종하시는 전투입니다. 이 전투에 온 인류의 운명이 달려 있었습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14장 32-42절 | 겟세마네 기도로 이루신 놀라운 구원

    예수님께서는 이 전투를 홀로 치르셨습니다. 제자들은 아무 도움이 되지 못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위해서 기도하기는커녕 자기들을 위해서 기도하지도 못했습니다(38절). 이것이 사람의 연약함입니다. 마음은 기도하기를 원하나 육신이 약하여 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에서도 사람의 비참함이 드러납니다. 사람은 전적으로 무능합니다. 이 무능한 사람에게 삼위일체 하나님께서 모든 일을 주관하셔서 사람에게 은혜로 구원을 베푸셨습니다. 이 얼마나 놀라운 은혜인지요. 

    세 번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심

    39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40   다시 오사 보신즉 그들이 자니 이는 그들의 눈이 심히 피곤함이라 그들이 예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을 알지 못하더라
    41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42   일어나라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

     

    예수님께서는 세 번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셨습니다(39절). 처음 기도와 두 번째 기도와 세 번째 기도를 마치신 후 예수님께서는 굳세게 일어나셨습니다. "일어나 함께 가자 보라 나를 파는 자가 가까이 왔느니라(42절)"라고 말씀하시면서 일어나셨습니다. 세 번의 기도로 예수님의 의지가 하나님의 의지에 굳게 결속되었습니다. 제자들이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40절). 아무도 하나님께서 이루시는 구원에 보탬이 되지 못했습니다. 제자들이 자는 모습은 예수님께서 큰 고통으로 기도하신 모습과 대조됩니다. 예수님께서는 그들이 깨어 있기를 바라셨지만 그들은 약하고(38절) 피곤하여(40절) 잠시 동안도 깨어 있지 못했습니다. 성 삼위 하나님께서 시작하신 구원역사는 오로지 성 삼위 하나님께서 이루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예수님

    깨어 있어야 할 때가 있고 자고 쉴 때가 있습니다. 그런데 사람은 이 때를 잘 맞추지 못합니다.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때를 정확하게 맞추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때가 왔도다"라고 하시면서 죄인의 손에 팔리러 당당하게 일어나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기도의 때에 기도하시고 일어서야 하실 때에 일어서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우리의 구원을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구원을 누리는 사람들입니다. 이 구원을 누리면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떠한 수고로 이 놀라운 구원을 이루셨는가를 잊으면 안 됩니다. 우리가 한 것은 아무 것도 없습니다. 우리는 예수님께 무엇으로 대답할 줄 알지 못할 정도로 아무 한 일이 없습니다(40절 하). 하지만 예수님께서는 이러한 우리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우리를 위해서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홀로 모든 일을 다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이러한 예수님을 믿습니다. 그러니 불안해 하지 않아도 됩니다. 예수님께서 우리를 시험의 때에 붙잡아 주실 것입니다. 우리를 잃어버리시지 않으실 것입니다. 꼭 붙드시고 끝까지 믿음을 지키게 하실 것입니다. 오직 성 삼위 하나님께만 영광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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