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마가복음 9장 14-29절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는 기도

2024. 3. 5. 16:14성서유니온 매일성경/마가복음

목차


    마가복음 9:14-29

    찬송가 292장 주 없이 살 수 없네


    서기관들에 대해서 이야기하면서 산에서 내려옴

    제자들은 변화산에서 내려오면서 예수님께 서기관들의 가르침에 대해서 물었습니다. "어찌하여 서기관들이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하리라 하나이까"라고 물은 것입니다(9:11). 서기관들은 메시아에 대해서는 알고 있었지만 정작 메시아이신 예수님을 알아보지는 못했습니다. 그들의 가르침대로 엘리야가 먼저 왔지만 함부로 대우했습니다. 그런데 그것도 기록된 대로 된 것이었습니다. "기록된 바와 같이 사람들이 함부로 대우하였느니라(9:13)" 결국 당시 종교지도자들은 예수님을 십자가에 내어주고 멸시했습니다(9:12). 그 세대는 믿음 없는 세대였습니다(19절). 

    큰 무리와 제자들과 서기관들, 그리고 변론

    14   이에 그들이 제자들에게 와서 보니 큰 무리가 그들을 둘러싸고 서기관들이 그들과 더불어 변론하고 있더라

     

    예수님과 제자들이 산에서 내려오셨을 때 제자들과 서기관들이 변론하고 있었습니다. 내려오면서 마침 서기관들 이야기를 하셨던 참이었습니다. 그런데 내려와서 보니 서기관들이 제자들과 변론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무엇을 변론했을까요? 앞의 문맥으로 보면 서기관들은 이론에는 뛰어났습니다. 즉 그들은 메시아가 오기 전에 엘리야가 먼저 와야 한다는 것은 알고 가르쳤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실제로 어떻게 이루어지는 지는 몰랐습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서기관들은 변론에는 능했으나 능력은 없었습니다.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치지 못한 것은 제자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제자들은 귀신 들린 사람들을 고친 경험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어쩐 일인지 이 아이는 고치지 못했습니다. 양쪽 다 고치지는 못하고 변론만 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예수님을 보고 심히 놀라는 모든 사람들 

    15   온 무리가 곧 예수를 보고 매우 놀라며 달려와 문안하거늘

     

    그렇게 하고 있는데 예수님께서 그들에게로 다가오셨습니다. 거기 있었던 모든 사람들이 예수님을 보고 매우 놀랐습니다. 이 말은 충격을 받으면서 놀랐다는 말입니다. 왜 놀랐을까요? 아마도 서기관들과 제자들이 변론한 내용 때문일 것입니다. 변론 내용은 이어지는 구절에 나옵니다. 변론이 일어난 이유는 제자들의 무능 때문입니다. 제자들의 무능은 곧 선생님의 무능으로 연결됩니다. 온 무리가 예수님을 보고 깜짝 놀란 이유는 제자들이 수세에 몰려 있었기 때문입니다. 제자들과 서기관들은 귀신 들린 아이를 고칠 수 있다, 또는 없다 이런 변론을 했을 것입니다. 그 변론 중에 예수님이 오셔도 안 된다는 말이 나왔을 것입니다. 이어지는 이야기가 이런 상황을 강력하게 시사합니다. 

    변론에서 수세에 몰렸던 제자들

    16   예수께서 물으시되 너희가 무엇을 그들과 변론하느냐
    17   무리 중의 하나가 대답하되 선생님 말 못하게 귀신 들린 내 아들을 선생님께 데려왔나이다
    18   귀신이 어디서든지 그를 잡으면 거꾸러져 거품을 흘리며 이를 갈며 그리고 파리해지는지라 내가 선생님의 제자들에게 내쫓아 달라 하였으나 그들이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19   대답하여 이르시되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에게 참으리요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하시매
    20   이에 데리고 오니 귀신이 예수를 보고 곧 그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는지라 그가 땅에 엎드러져 구르며 거품을 흘리더라
    21   예수께서 그 아버지에게 물으시되 언제부터 이렇게 되었느냐 하시니 이르되 어릴 때부터니이다
    22   귀신이 그를 죽이려고 불과 물에 자주 던졌나이다 그러나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

     

    변론에서 제자들이 수세에 몰렸습니다. 서기관들은 이 아이를 고칠 수 없다고 했습니다. 예수님이 오셔도 안 된다고 했을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 변론을 들은 아버지는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 우리를 불쌍히 여기사 도와 주옵소서"라고 도움을 요청합니다. 말의 뉘앙스를 잘 보세요. 혹시 고칠 수 없으시다면 다른 도움이라도 베풀어 달라 뉘앙스입니다. 아이 아버지가 왜 이렇게 되었을까요? 변론 때문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변론만 무성해짐

    변론은 믿음 없는 세대의 특징입니다(19절). 믿음이 없으니까 변론만 가득하게 됩니다. 된다, 아니다 안 된다, 이런 말만 무성한 것입니다. 믿음이 있으면 뭔가 이루는 것이 있을텐데 이루는 것이 없으니 말만 많아지는 것입니다. 

    아이 아버지에게서 믿음의 기도를 끌어내시는 예수님

    23   예수께서 이르시되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 하시니
    24   곧 그 아이의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이르되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하더라
    25   예수께서 무리가 달려와 모이는 것을 보시고 그 더러운 귀신을 꾸짖어 이르시되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아 내가 네게 명하노니 그 아이에게서 나오고 다시 들어가지 말라 하시매
    26   귀신이 소리 지르며 아이로 심히 경련을 일으키게 하고 나가니 그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많은 사람이 말하기를 죽었다 하나
    27   예수께서 그 손을 잡아 일으키시니 이에 일어서니라

     

    예수님께서는 귀신 들린 아이를 데리고 온 아버지의 말을 들으시고 그에게 믿음을 촉구하십니다(23절). 아버지의 모습이 우리의 모습과 너무 비슷합니다. 하나님, 이것 하실 수 있으시면 좀 도와주세요, 이런 식입니다. 쉬울 것 같은 문제는 크게 기도하고 안 될 것 같은 문제는 "혹시 하나님께서 뜻이 있으시면 좀 해결해 주세요"라고 기도합니다. 이에 대해서 예수님께서는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히 하지 못할 일이 없느니라"라고 꾸짖으셨습니다. 예수님께 하실 수 있거든 뭐라도 해 주세요라고 하는 것은 예수님을 모욕하는 것과도 같습니다. 예수님께는 불가능한 것이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믿고 무엇을 요청할 때는 확실히 이루어질 줄 믿고 확신하면서 구해야 합니다. 그것이 기도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기도에 그러한 믿음이 있어야함을 가르쳐주시는 것입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예수님의 말씀을 들은 아이 아버지는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고 절박하게 소리를 질렀습니다. 이것도 기도입니다. 이 기도는 아주 중요한 기도입니다. 우리는 성화되면서 성삼위 하나님을 점점 더 깊이 알게 됩니다. 알면 알수록 믿음이 자랍니다. 그런데믿음이 자란다고 해서 완만한 우상향 곡선을 그리는 것이 아닙니다. 부침이 심하게 있으면서 꾸준히 상승추세로 나아가는 것이지 아무 부침이 없이 자라는 믿음은 없습니다. 믿음의 점진적인 성장이 바로 성화입니다. 성화는 불신앙에 들어갔다가 회개하고 다시 믿음으로 돌아오는 것을 반복하는 것입니다. 그것을 반복하지만 몇 년 전, 몇 십년 전을 놓고 보면 믿음이 현저하게 자라 있는 것을 보게 됩니다. 믿음은 그런 식으로 성장합니다. 

    매일성경 | 마가복음 9장 14-29절 |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라는 기도

     

    그렇기 때문에 믿음이 좋은 때도 있고 믿음이 약해지는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인생에서 어려운 일이 계속되면 누구라도 믿음이 약해집니다. 이 아이의 아버지는 믿음이 약해질 때로 약해져 있었습니다. 게다가 서기관들의 변론까지 들은 상태입니다. 그러니 절박한 마음으로 소리를 지르면서 기도할 수밖에 없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이 기도는 우리의 기도임

    이 기도는 역설적인 기도입니다. 믿는데 믿음이 없다고 하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믿습니다. 그런데 가만히 보면 믿음이 없는 것 같습니다. 그럴 때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 제가 믿습니다! 저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옵소서! 믿음을 달라는 기도는 언제나 응답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바라시는 것이 바로 믿음이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아이 아버지를 몰아 세우셔서 그에게서 언제나 응답될 수밖에 없는 기도, 참으로 귀한 기도를 끌어내셨습니다. 예수님께서 이렇게 하신 것은 이 사람만을 위한 것이 아니고 오고 오는 모든 세대 성도들을 위해서 그렇게 하신 것입니다. 

    믿음 없는 세대의 모습

    그 세대가 얼마나 악했는지 아이가 죽은 것 같이 되어 잠잠해졌을 때 많은 사람들이 그 아이가 죽었다고 말했습니다(26절). 그만큼 서기관들의 변론이 독소로 작용하고 있었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그 독에 오염되어 있었습니다. 그들은 여전히 믿음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그 세대는 말 못하고 못 듣는 귀신에 붙잡힌 아이와 같았습니다. 사람들은 그 아이를 보고 자기들의 모습을 보았어야 했습니다. 그 세대는 예수님께서 행하시는 기적을 보고 권능의 말씀을 듣고도 제대로 보지 못하고 알아듣지 못했습니다.

    기도 외에는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28   집에 들어가시매 제자들이 조용히 묻자오되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
    29   이르시되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예수님께서 집에 오셨을 때 제자들은 예수님께 자기들은 왜 그 귀신을 못 쫓아냈는지 조용히 여쭈어 보았습니다. 그 때 예수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기서 이런 종류란 무엇을 뜻하는 것일까요? 바로 말 못하고 못 듣는 종류를 말합니다. 이것은 믿음이 없는 것입니다. 믿음이 없으면 말을 못하고 듣지도 못합니다. 증언하지 못하고 증언을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것입니다. 그런 자들에게 나아가서 말하게 하고 잘 듣게 하는 방법은 기도 밖에는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믿게 하셔서 말하게 하시고 듣게 하셔야 합니다. 사람이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아이 아버지가 소리를 질러 기도하게 하셨습니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 없는 것을 도와 주소서" 이러한 기도가 터져 나와야 믿음이 생기는 것입니다. 믿음이 생겨야 말도 하게 되고 복음도 알아 듣게 되는 것입니다. 

    부르짖어 기도해야 할 때

    시편 31편을 보면 이 아버지의 절규와 비슷한 내용이 나옵니다. 시편 31편의 저자는 다윗입니다. 다윗은 당시에 큰 곤경에 들어가 있었습니다. 다윗의 대적들이 다윗을 심히 괴롭혀서 다윗은 심한 고통을 겪었습니다(시 31:4, 9). 다윗은 뼈가 쇠할 정도로 슬퍼하는 나날을 오랫동안 보냈습니다(시 31:10). 다윗의 대적들 때문에 욕을 당하고 비방을 당했습니다. 고난이 심하여 다윗은 믿음을 거의 잃을 뻔했습니다. "내가 놀라서 말하기를 주의 목전에서 끊어졌다 하였사오나(시 31:22 상)"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기도하기를 멈추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더 큰 소리로 외쳐 기도했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큰 소리로 부르짖었습니다. "내가 주께 부르짖을 때에(시 31:22 중)" 그 때 하나님께서는 다윗의 간구를 들으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도입니다. 기도는 언제 더 크게 해야 하느냐, 바로 믿음이 사라지는 것 같을 때 더 크게 소리질러서 해야 합니다. 그 때가 바로 부르짖어 기도할 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기도를 절대 물리치지 않으십니다. 반드시 응답하십니다. 응답하셔서 믿음을 더하시고 모든 문제를 해결해 주십니다. 믿음 문제는 기도로만 해결할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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