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 12. 26. 16:04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빌립보서
목차
빌립보서 4:1-23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그리스도인의 소망
우리의 낮은 몸은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될 것입니다(3:21). 부활의 몸을 입는 것이 그리스도인이 가져야할 참된 소망입니다. 그리스도인은 땅의 일을 생각하고 부끄러운 것을 영광으로 삼지 않습니다(3:19). 바울은 이어서 빌립보 성도들에게 주 안에 서라고 권면합니다.
주 안에 서라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고 사모하는 형제들, 나의 기쁨이요 면류관인 사랑하는 자들아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1절)"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사랑합니다. 바울은 사랑하기 때문에 권면합니다. 또한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사모합니다. 사모한다(ἐπιπόθητος)는 것은 깊은 애정으로 갈망한다, 그리워한다는 뜻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또한 바울의 기쁨이요 면류관이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을 생각할 때마다 기뻤습니다. 빌립보 성도들은 바울의 자랑이었습니다. 그들에게 바울은 이와 같이 주 안에 서라고 합니다. "서라(στήκω)"는 말은 굳건하게 서라는 뜻입니다. 앞의 내용을 생각할 때 시민권이 하늘에 있음을 알고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리며 살아계신 주 예수님과 항상 교제하며 동행하라는 뜻입니다.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내가 유오디아를 권하고 순두게를 권하노니 주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 또 참으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 복음에 나와 함께 힘쓰던 저 여인들을 돕고 또한 글레멘드와 그 외에 나의 동역자들을 도우라 그 이름들이 생명책에 있느니라(2-3절)"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 바울은 주님 안에서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합니다. 1절에 나오는 "주 안에"가 다시 나옵니다. 주님과 교제함이 깊어지면 같은 마음을 품을 수 있습니다. 주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 사이에 계시면서 동시에 사람과 사람 사이에도 계십니다. 바울은 또한 "나와 멍에를 같이한 네게 구하노니"라고 합니다. 이 사람이 누구인지는 모릅니다. 하지만 이 편지를 받는 사람들은 알았을 것입니다. 유오디아와 순두게는 복음을 위하여 힘쓰면서 어떤 의견 차이를 보였습니다. 그들이 의견 차이를 보인 일은 주님을 위한 일이었습니다. 바울은 같은 마음을 품으라고 권면한 다음 그 여자들을 돕는 사람을 붙여줍니다. 이 사람은 바울의 멍에를 같이한 사람으로서 바울과 동일한 마음으로 빌립보 교회를 돌보는 사람이었을 것입니다. 글레멘드와 바울의 동역자들도 도우라고 합니다. 바울은 그들의 이름이 생명책에 있음을 확신합니다. 생명책은 하나님께서 영생을 주시기로 예정하신 사람들의 이름이 쓰인 책입니다. 그들의 행위가 그들의 믿음을 나타내 보여주기 때문에 바울은 이렇게 담대하게 말할 수 있었습니다.
기뻐하라
"주 안에서 항상 기뻐하라 내가 다시 말하노니 기뻐하라(4절)" 바울은 다시 기뻐하라고 권면합니다. 이번에는 항상이 강조됩니다. 주님 안에 있는 자는 언제나 기뻐합니다. 이어서 다시 말한다고 할 때 말한다에는 미래시제가 쓰였습니다. "말할 것이니"라는 뜻입니다. 기뻐하라고 이미 말했고 또 앞으로도 기뻐하라고 말할 것이라고 합니다. 기쁨은 그리스도인의 표지와도 같은 것입니다. 앞에서 말했듯이 그리스도께서는 장차 하늘로부터 임하셔서 우리의 낮은 몸을 영광스러운 부활의 몸으로 변화시키실 것입니다. 그러니 지금도 기뻐하고 앞으로도 계속 기뻐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관용과 재림
"너희 관용을 모든 사람에게 알게 하라 주께서 가까우시니라(5절)" 여기서 관용(ἐπιεικής)은 율법의 정신을 이루는 것과 연관된 말입니다. 율법을 엄밀하게 적용하고 정죄하면 관용이 없는 것입니다. 관용하라는 것은 조금 달라도 잘 참아주면서 율법 안에 담긴 참 의미를 성취하라는 뜻입니다. 이 권면은 유오디아와 순두게에게도 필요한 권면입니다. 이 권면의 맥락은 주님의 가까우심입니다. 주님께서 가까우시다는 것은 일차적으로는 재림을 뜻한다고 볼 수 있습니다. 그에 파생되는 의미는 성도 개인의 종말입니다. 성도들은 죽으면 주님을 만나게 됩니다. 주님 앞에 갔을 때 자기가 옳다고 주장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습니다. 주님을 만나면 내가 한평생 주님의 관용에 의지하여 살았음을 깨닫게 됩니다. 그러므로 다른 사람에게 관용을 베풀라는 것입니다.
염려하지 말라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6절)" 염려는 기쁨을 앗아갑니다. 믿는 사람이 기뻐할 수 있는 이유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않을 수 있기 때문입니다. 어떻게 염려하지 않을 수 있을까요? 염려가 생기지 않는 것일까요? 아닙니다. 모든 사람에게 염려가 항상 찾아옵니다. 마찬가지로 믿는 사람에게도 염려는 계속 생깁니다. 다만 믿는 사람은 그 염려를 자기가 가지고 있지 않고 하나님께 아룁니다. 염려를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은 문제 해결에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마 6:27). 문제를 해결하고 싶으면 염려거리를 가지고 하나님께 나아가면 됩니다. 믿는 사람은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를 할 수 있습니다. 기도는 일반적으로 하나님께 아뢴다는 것을 뜻하고 간구는 특정한 소원을 가지고 하나님께 아뢴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연약한 줄을 아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 구할 때에는 받은 줄 믿고 감사함으로 구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7절)" 그렇게 기도와 간구로 하나님께 나아가서 아뢴 사람에게는 신기한 일이 일어납니다. 바로 평강이 임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평강은 모든 지각에 뛰어난 평강입니다. 여기서 평강은 모든 일이 잘 돌아가는 상태를 뜻합니다. 하나님께는 안 돌아가는 일이 없습니다. 모든 일은 하나님 앞에서 다 풀립니다. 그러므로 기도하는 사람에게 하나님의 평강이 임하면 그 마음과 생각에 믿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위로 받는 것은 하나님의 평강이 모든 지각에 뛰어나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아시는 분이십니다. 무심하신 분이 아니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염려하는 것 이상으로 모든 문제를 아시고 그 핵심을 파악하고 계십니다. 그 문제에 평강이 임하겠다는 확신이 생기면 문제가 아직 해결되지 않았더라도 마음과 생각에 믿음이 가득하게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이렇게 지키십니다. 그러니 기뻐하지 않을 수 없는 것입니다.
두 번째 끝으로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8절)" 3장 1절의 "끝으로" 이후 두 번째 "끝으로"가 4장 8절에 등장합니다. 바울은 이제 편지를 마치려고 합니다. 앞에서 말한 내용은 기뻐하라고 하면서 개들이라고 일컬어지는 거짓 선생들을 삼가라는 것이었습니다. 이번 권면 내용은 모든 일에 있어서 믿음 있는 사람처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무엇에든지
"무엇에든지"가 여섯 번 나옵니다. 무엇에든지는 무엇이든지라는 말입니다. 첫 번째는 무엇이든지 참되라(ἀληθής)는 것입니다. 참되다는 것은 진실하다는 말입니다. 두 번째는 무엇이든지 경건하라(σεμνός)고 합니다. 이 말은 중요하다, 무겁다, 장엄하다 라는 뜻을 가진 말로 두려움으로 존중받을만 하다는 뜻입니다. 세 번째는 무엇이든지 옳으라(δίκαιος)고 합니다. 이 말은 하나님의 뜻과 말씀에 일치한다는 뜻입니다. 의롭다는 뜻입니다. 네 번째는 무엇이든지 정결하라(ἁγνός)입니다. 이 말은 순수함을 뜻합니다. 흠이 없다는 뜻입니다. 특별히 내면과 외면이 모두 흠 없고 순수하다는 의미입니다. 다섯 번째는 무엇이든지 사랑 받을 만하라(προσφιλής)입니다. 이 말은 받아들여질 만하다, 기뻐할 만하다라는 뜻입니다. 여섯 번째는 무엇이든지 칭찬 받을 만하라(εὔφημος)입니다. 이 말은 좋은 명성으로 보고된다는 뜻입니다. 교회의 좋은 명성이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린다는 뜻입니다. 더 나아가서 천사가 하나님께 교회를 보고할 때 저 교회는 좋은 교회입니다 라고 보고한다는 뜻입니다. 후자의 의미가 더 중요합니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 여섯 가지를 항상 생각해야 합니다.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생각해야 합니다. 무슨 덕에서 덕(ἀρετή)은 탁월함입니다. 무슨 기림에서 기림(ἔπαινος)은 칭찬, 승인이라는 뜻입니다. 무슨 탁월함이나 무슨 칭찬이 있든지 앞에 있는 여섯 가지를 생각하라는 것입니다.
이미 사도 바울에게서 본 것임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9절)" 위에 나오는 여섯 가지를 항상 생각하면서 행하는 것은 곧 사도 바울이 행한 대로 행하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빌립보 교회에 그러한 본을 보였습니다. 이미 보았다는 면에서 위에 나오는 권면은 실체가 있는 권면입니다. 사도 바울은 그렇게 하면 평강의 하나님께서 너희와 함께 계실 것이라고 축복합니다. 평강의 하나님은 모든 일이 다 잘 돌아가게 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다시 이어진 후원
"내가 주 안에서 크게 기뻐함은 너희가 나를 생각하던 것이 이제 다시 싹이 남이니 너희가 또한 이를 위하여 생각은 하였으나 기회가 없었느니라(10절)" 바울은 빌립보 교회를 크게 기뻐한다고 합니다. 그 이유는 빌립보 교회가 바울을 다시 돕게 되었기 때문입니다. 다시 싹이 난다는 것은 겨우내 굳었던 땅에서 다시 싹이 움트는 것과 같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그들의 후원이 끊어졌다가 다시 이어지는 것을 뜻합니다. 그들의 후원이 끊어졌던 이유는 기회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그들의 마음이 식어서가 아니었습니다.
자족과 능력
"내가 궁핍하므로 말하는 것이 아니니라 어떠한 형편에든지 나는 자족하기를 배웠노니 나는 비천에 처할 줄도 알고 풍부에 처할 줄도 알아 모든 일 곧 배부름과 배고픔과 풍부와 궁핍에도 처할 줄 아는 일체의 비결을 배웠노라(11-12절)" 바울은 자족하는 사람입니다. 궁핍해도 궁핍하지 않은 사람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바울이 빌립보 교회의 후원을 칭찬하는 것은 궁핍함 때문이 아닙니다. "내게 능력 주시는 자 안에서 내가 모든 것을 할 수 있느니라(13절)" 바울은 모든 일을 할 수 있습니다. 돈이 없어서 일을 못하는 경우는 없다는 뜻입니다. 물질적 원조가 없어서 일을 못하지 않습니다. 왜냐하면 바울에게 능력을 주시는 이가 계시기 때문입니다. 바울이 일할 수 있는 것은 주님께서 능력을 주시기 때문이지 물질적인 원조 덕분이 아닙니다.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
"그러나 너희가 내 괴로움에 함께 참여하였으니 잘하였도다 빌립보 사람들아 너희도 알거니와 복음의 시초에 내가 마게도냐를 떠날 때에 주고 받는 내 일에 참여한 교회가 너희 외에 아무도 없었느니라(14-15절)" 바울은 지금 괴로운 상태에 있습니다. 갇혀있기 때문입니다. 갇힌 상태에서 필요한 여러 가지 것들이 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의 그러한 괴로움에 후원으로 참여했습니다. 빌립보 교회는 바울이 유럽에서 복음을 처음 전하고 떠날 때에 바울을 후원한 유일한 교회였습니다.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도 너희가 한 번뿐 아니라 두 번이나 나의 쓸 것을 보내었도다 내가 선물을 구함이 아니요 오직 너희에게 유익하도록 풍성한 열매를 구함이라(16-17절)" 바울이 데살로니가에 있을 때에 빌립보 교회는 두 번이나 바울이 쓸 것을 보냈습니다. 이것은 바울을 유익하게 했을뿐만 아니라 빌립보 교회에 유익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 하나님께서 그 모든 것의 열매를 풍성하게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내게는 모든 것이 있고 또 풍부한지라 에바브로디도 편에 너희가 준 것을 받으므로 내가 풍족하니 이는 받으실 만한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을 기쁘시게 한 것이라 나의 하나님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영광 가운데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하나님 곧 우리 아버지께 세세 무궁하도록 영광을 돌릴지어다 아멘(18-20절)" 이 구절에는 바울의 마음이 담겨 있습니다. 바울은 빌립보 성도들이 풍성한 복을 받기를 그 누구보다 소망하고 원합니다. "그 풍성한 대로 너희 모든 쓸 것을 채우시리라" 여기에 축복하는 바울의 마음이 담겨 있는 것입니다. 필요를 채움 받은 사역자는 채워준 성도들이 쓸 모든 것을 하나님께서 풍성하게 채워달라고 기도하기 마련입니다. 빌립보 성도들의 이같은 헌신은 향기로운 제물이요 하나님께서 기쁘시게 받으신 것이었습니다. 물질로 후원하고 후원 받고 축복하는 모든 일에서 바울은 하나님께서 모든 영광을 받으시기를 기원합니다. 이 모든 일을 이루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후원할 힘을 주신 분도 하나님이시요, 후원을 받아 사역을 감당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시요, 축복하게 하시는 분도 하나님이신 것입니다. 그렇다면 후원자들의 모든 필요가 채워져서 영광 받으시는 분도 하나님이십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성도에게 각각 문안하라 나와 함께 있는 형제들이 너희에게 문안하고 모든 성도들이 너희에게 문안하되 특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이니라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너희 심령에 있을지어다(21-23절)" 바울은 문안 인사로 편지를 마칩니다. 예수님 안에 있는 성도는 서로 문안해야 합니다. 바울은 특별히 가이사의 집 사람들 중 몇을 언급합니다. 가이사의 집 사람들은 황제와 연관된 친척이나 그 집의 관리들을 뜻합니다. 복음이 최하층민부터 최상류층까지 힘있게 전해진 것입니다. 빌립보는 로마와 동일한 자치권을 받은 도시입니다. 많은 로마의 군인들이 빌립보에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가이사 집 사람들과 특별한 괸계가 있는 이들이 있었습니다. 바울은 주 예수 그리스도의 은혜가 그들의 심령에 있기를 기원하면서 편지를 마칩니다. 여기서 심령은 "영"을 뜻합니다. 이 기원은 그들의 전 인격에 그리스도의 은혜가 가득하기를 기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은혜
빌립보 교회를 향한 사도 바울의 절절한 마음이 느껴집니다. 빌립보 교회는 사도 바울에게 큰 사랑을 보였습니다. 그 사랑은 후원으로 나타났습니다. 바울은 후원을 받고 기쁨으로 빌립보 교회를 축복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모든 일을 주관하셨습니다. 사역자에게는 모든 필요를 채워주시고 교회에는 복이 되도록 하셨습니다. 이 또한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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