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시편 106편 1-12절 | 홍해에서 구원을 베푸신 하나님

2024. 8. 29. 18:5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시편

목차


    시편 106:1-12

    찬송가 488장 이 몸의 소망 무언가


    시편 문맥

    시편 제사권은 바벨론 포로로 잡혀가 있는 상황을 배경으로 합니다. 이런 상황에서 모세가 등장하고(90편) 출애굽 사건이 등장합니다(105편). 이런 편집 안에는 하나님께서 애굽이라는 강대국을 꺾으시고 이스라엘 백성을 구원하셨던 것처럼 바벨론에서 구원해달라는 의미가 담겨 있습니다. 같은 의미로 시편 106편은 이스라엘의 반역 역사를 노래합니다. 이스라엘의 거듭된 반역에도 하나님께서 참으시고 참으시고 참으셔서 구원하셨다는 것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시편 제사권에 있는 시는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봅니다. 

    찬양과 감사

    1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시편 106편은 "할렐루야 여호와께 감사하라"로 시작합니다. 할렐루야는 "여호와를 찬송하라"라는 뜻입니다. 그러니까 시편 106편은 찬송을 명령하는 것으로 시작하는 것입니다. 찬송을 명령한 시인은 감사를 명령합니다. 찬송과 감사는 믿는 우리가 하나님께 마땅히 드려야 하는 것입니다. 우리 입에서는 찬송이 끊이지 말아야 하고 우리 마음으로부터 우러나오는 감사가 말과 행동에 항상 담겨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

    찬송과 감사를 드려야 하는 이유는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선하다"라는 것은 "좋다"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십니다. 

     

    모든 좋은 것의 근원이신 하나님의 인자하심은 영원합니다. 인자하심은 원어로 헤세드(חֵסֵד)입니다. 헤세드는 선함, 친절함이라는 뜻인데, 이 말은 특별히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가리키는 말입니다. 그러므로 인자하심이 영원하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과 맺으신 언약을 반드시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반드시 지키시는데 영원히 지키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언약을 지키시는 동인(動因)은 당신님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지극하신 사랑입니다. 

    여호와의 권능

    2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말하며 주께서 받으실 찬양을 다 선포하랴

     

    선하시며 인자하심이 영원하신 하나님께서는 권능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의 권능은 시편 105편에 구체적으로 나와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건지실 때 하나님께서는 놀라운 기적을 베푸심으로 당신님의 권능을 친히 보여주셨습니다. "누가 능히 여호와의 권능을 다 말하며" 그 권능은 말로 다 표현할 수 없는 권능이었습니다. 

    찬양

    하나님의 권능으로 구원을 받은 백성은 하나님께 찬양을 드릴 수밖에 없습니다. 그런데 그 누구도 하나님께 드릴 찬양을 다 선포할 수는 없습니다. 찬양을 드려도 드려도 다 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그것을 어떤 시인은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 말로다 표현 못하네(찬송가 304장)"라고 썼습니다. 

    찬양은 가치있는 일임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보다 가치있는 일은 없습니다.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이 가장 가치있는 일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사람입니다. 즉 하나님을 기계적으로 찬양할 수 없는 존재라는 말입니다. 진정 마음에서 우러나오지 않는 찬양은 외식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한 일은 하나님을 아는 일입니다. 하나님을 경험하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세상에 보내신 목적을 깨닫는 일입니다. 그 목적대로 살면서 하나님께서 나를 만들어가기 원하시는 모양대로 만들어져 가는 일입니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서 가장 중요합니다. 사람은 체험한 만큼 아는 만큼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정의와 공의

    3   정의를 지키는 자들과 항상 공의를 행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살아야 하나님을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언약 조항을 주셨습니다. 그 언약 조항을 주신 하나님의 마음을 경험하려면 그 조항을 지켜보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언약 조항의 핵심은 인애와 정의와 공의입니다. 즉 헤세드(חֵסֵד)와 미슈파트(מִשְׁפָט)와 체데카(צְדָקָה)인 것입니다. 헤세드는 언약에 신실한 사랑을 뜻합니다. 우리는 이런 사랑을 받은 사람으로 다른 사람에게 헤세드를 보여야 합니다. 즉 다른 사람을 사랑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정의와 공의를 지켜야 합니다. 정의는 실생활에서 하나님의 법이 적용되어 나타나는 것입니다. 공의는 하나님의 법이 당위라는 것을 알고 그 뜻을 깊이 깨달아서 나의 정체성으로 삼는 것입니다. 어떤 학자는 이것을 사랑과 행동과 지속성이라는 말로 잘 정리했습니다. 

    복이 있도다

    "복이 있도다" 이렇게 사는 사람이 복이 있는 사람입니다. 다른 것이 복이 아닙니다. 무엇이 있는 것, 많은 것을 가진 것이 복이 아니고 있든지 없든지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고 하나님의 뜻에 맞는 사람이 되어가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그 과정에서 부가 있어야 한다면 있게 되는 것이고 부가 없어야 한다면 없게 되는 것입니다. 있건 없건 하나님을 사랑하고 정의와 공의를 행하는 것이 복입니다. 

    주의 구원

    4   여호와여 주의 백성에게 베푸시는 은혜로 나를 기억하시며 주의 구원으로 나를 돌보사
    5   내가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고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 하사 주의 유산을 자랑하게 하소서

     

    여기서 시인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고 주의 구원으로 자기를 돌보아 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4절). 그래서 "주의 택하신 자가 형통함"을 보게 해달라고 구하고 있습니다. 여기서 "주의 택하신 자"는 우리 아버지 하나님께서 보내신 아드님이신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먼저는 예수 그리스도께서 형통하셔야 합니다. 왜냐하면 모든 택한 백성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주의 나라의 기쁨을 나누어 가지게"되기 때문입니다. 주의 나라의 기쁨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성취되고 우리에게 수여됩니다. 그러므로 하나님 나라를 구하는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를 구하고 믿습니다. 그 결과 택함을 입은 자들은 "주의 유산"을 자랑합니다(5절). 

    주의 유산

    여기서 유산(נַחֲלָה)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각 지파에게 주신 가나안 땅의 각 부분을 가리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의 소유로 분정하신 것입니다. 우리는 이 땅에서 이미 분정된 유산을 받아 누리면서 삽니다. 그리고 그 유산의 극치는 부활 때 받습니다(시 16:6, 11 참고). 우리는 이미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새 생명을 받았습니다. 이 생명으로 우리는 하나님을 위해서 살면서 이 땅에서부터 영생을 누립니다. 그것이 극치를 이루는 때는 하나님의 나라가 권능으로 임하는 때입니다. 즉 우리 주의 재림 때입니다. 우리는 그 때를 바라보면서 "주의 유산을 자랑"합니다. 

    범죄

    6   우리가 우리의 조상들처럼 범죄하여 사악을 행하며 악을 지었나이다

     

    하나님의 백성은 복됩니다. 그런데 그 복을 차단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죄입니다. 사람이 죄를 범하면 하나님과 멀어집니다. 하나님과 인격적인 교제를 하지 못하게 됩니다. 하나님을 알고 경험해야 하는데 그러지를 못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범죄는 복을 앗아갑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간 이유는 그들이 범죄했기 때문입니다. 6절은 그것을 말씀하는 것입니다. 

    홍해에서

    7   우리의 조상들이 애굽에 있을 때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며 주의 크신 인자를 기억하지 아니하고 바다 곧 홍해에서 거역하였나이다

     

    사람이 범죄하고 악을 행하는 이유는 "깨닫지 못하며" 즉 깨닫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생각하는 능력을 주신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을 간직하고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주의 깊게 잘 보고 깨닫게 하시기 위해서입니다. 사람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기이한 일을 깨달아야 합니다. 깨달으라고 말씀을 주시고 깨달으라고 기이한 일을 행하시는 줄을 알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에 대한 이해가 없으니까 하나님의 크신 인자도 기억하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애굽에서 열 가지 재앙으로 애굽을 치신 것을 보고도 깨닫지 못하니까 홍해에서 애굽 군대의 말발굽 소리에 하나님을 원망합니다. 그렇게 하나님께 거역합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유는 당장 눈 앞에 있는 어려움만 크게 보이기 때문입니다. 그 너머에 계시는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알아차리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거역하는 이유를 한 마디로 하면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성령님께서 우리에게 작용하심으로 생깁니다. 그런데 그 믿음은 자라야 합니다. 경험이 쌓여야 믿음이 자랍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추억이 계속 있어야 합니다. 문제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그런 추억이 많았음에도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다는 것입니다. 그 이유는 생각하지 않고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주의 기이한 일들을 깨닫지 못하여" 이 말씀을 깊이 생각해 보세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8   그러나 여호와께서는 자기의 이름을 위하여 그들을 구원하셨으니 그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하려 하심이로다
    9   이에 홍해를 꾸짖으시니 곧 마르니 그들을 인도하여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게 하사
    10   그들을 그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시며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고
    11   그들의 대적들은 물로 덮으시매 그들 중에서 하나도 살아 남지 못하였도다
    12   이에 그들이 그의 말씀을 믿고 그를 찬양하는 노래를 불렀도다

     

    백성들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거역했지만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구원하셨습니다. "자기 이름을 위하여" 구원을 베푸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믿었기 때문에 우리를 구원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원인이 우리에게 있지 않습니다. 원인이 하나님, 당신님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는 이유는 우리에게 하나님의 이름을 붙여 놓으셨기 때문입니다. 구약에서는 "이스라엘" 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있습니다. 신약에는 "그리스도인" 안에 하나님의 이름이 들어있습니다. 이렇게 우리를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컬어 놓으시고 그 이름을 위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구원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당신님의 이름을 붙여 놓으시고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하나님의 "큰 권능을 만인이 알게" 됩니다(8절 하).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는 사람들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이름을 알리는 방법은 구원을 받는 방법입니다. 우리가 뭔가 능력이 있어서 사람들을 돕고 사람들이 도움을 받아서 우리를 보고 하나님을 아는 그런 방법이 아닙니다. 오히려 반대입니다. 우리가 약해서 멸망당할 위기에 처합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 우리를 극적으로 구원하십니다. 만인은 그것을 보고 하나님을 압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알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약할 그 때에 가장 강합니다. 이것이 바로 우리에게 주어진 역설입니다. 

    홍해를 꾸짖으심

    하나님께서는 홍해를 꾸짖으셨습니다. 홍해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합니다. 바다와 바람이 하나님을 대적하는 세력을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들이 아무리 하나님을 거세게 대적할지라도 하나님의 뜻을 한치라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정확하게 하나님의 뜻대로 움직입니다. 사망이 지금 왕노릇하는 것 같아도 사망은 하나님의 뜻을 한치의 오차도 거스를 수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완벽하게 안전합니다. 우리는 죽을 때 "바다 건너가기를 마치 광야를 지나감" 같이 할 것입니다. 안전하게 죽음을 통과해서 주 예수 그리스도의 품에 안길 것입니다(9절). 

    미워하는 자,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심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을 "그들을 미워하는 자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 그 원수의 손에서 구원하셨습니다(10절). 그들은 바로 애굽 군대입니다. 애굽 군대도 죄와 사망을 상징합니다. 그런데 애굽 군대는 바다에 빠져 죽습니다. 하나도 살아남지 못합니다(11절). 이것도 역설입니다. 죄와 사망을 죽이는 것이 바로 죄와 사망이라는 역설입니다. 사탄은 예수 그리스도를 죽였습니다. 그 결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죽음이 죽었습니다. 사탄이 권세로 삼아 부리던 죄와 사망이 죽었습니다. 죽음이 죽음을 죽인 것입니다. 이것이 역설입니다. 사탄은 이제 아무 힘이 없습니다. 그저 하나님의 심판을 두려워하며 절망하고 있을 뿐입니다. 그런 의미에서 사탄의 시험은 그의 마지막 발악입니다. 

    믿음, 그리고 찬양의 노래

    그러한 구원을 경험한 하나님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합니다. 우리는 우리가 구원 받기 합당해서 구원을 얻은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택하심으로 구원을 얻은 사람들입니다. 죄와 사망에서 구원을 얻은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말씀을 믿습니다(12절). 믿음으로 찬양의 노래를 부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렇게 구원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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