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30. 20:15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시편
목차
시편 106:13-31
찬송가 95장 나의 기쁨 나의 소망되시며
구원해 주십시오
시편 105편과 105편은 이스라엘 역사를 노래합니다. 이스라엘 역사를 여기서 노래하는 이유는 하나님의 구원을 노래하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출애굽시키신(105편) 것처럼 바벨론에서도 구원해 달라고 노래하는 것입니다. 시편 106편의 주제 중 하나는 이스라엘의 반역입니다. 반역에도 불구하고 언약을 기억하셔서 자기들을 구원해 달라는 마음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곧 잊어버리며
13 그러나 그들은 그가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리며 그의 가르침을 기다리지 아니하고
14 광야에서 욕심을 크게 내며 사막에서 하나님을 시험하였도다
15 그러므로 여호와께서는 그들이 요구한 것을 그들에게 주셨을지라도 그들의 영혼은 쇠약하게 하셨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을 "곧" 잊어버렸습니다. 자꾸 잊어버렸습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신 일은 8-11절에 나오는 홍해 구원 역사입니다. 이 강력한 구원 역사를 이스라엘 백성들은 금방 잊어버린 것입니다. 그들은 애굽에 내린 열 가지 재앙과 구원도 잊어버리고 홍해에서 애굽 군대가 바다에 몰살 당한 그 놀라운 구원도 잊어버렸습니다.
왜 잊어버릴까?
왜 자꾸 잊어버릴까요? 그것은 그 구원 사건의 의미를 깨닫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을 잊어버리기 때문에 우리는 자주 걱정하고 염려합니다. 그러나 걱정하고 염려할 것이 없습니다. 감사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놀라운 십자가의 구원으로 우리를 구원하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구원을 마음에 간직하고 새겨 생각하면 하나님께서 더 깊이 더 깊이 깨닫게 하십니다. 그렇게 알고 깨닫는 것만이 잊어버리지 않는 최선의 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으려면
그런데 누가 그렇게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을까요? 지혜와 지식이 있는 사람이 깨달을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지혜와 지식도 물론 중요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다가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닫고 하나님을 잊지 않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하나님의 말씀을 들으면 그것을 마음에 간직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뜻을 자꾸 궁구(窮究)해나가는 사람입니다. 사람이 그렇게 하는 이유는 다만 하나님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이 사랑은 인격적으로 깊고 친밀한 관계 안에서만 나타나는 것입니다.
사랑의 교제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 사랑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성부와 성자와 성령의 깊고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으로 들어간 사람들입니다. 그 안에서 하나님을 알고 싶어하고 기도하고 하나님의 뜻을 행하려고 할 때 성령님께서 적극적으로 우리를 깨닫게 하시고 우리에게 하나님의 사랑이 얼마나 깊은지를 알게 하십니다. 우리는 삼위일체 하나님의 친밀한 사랑의 관계 안에 있는 참으로 복된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에게 말씀을 공부하는 것은 일이 아닙니다. 기쁜 것입니다. 가장 소중한 것입니다. 이것은 구약 성도가 아주 희미하게 누렸던 것입니다. 그것을 우리는 훨씬 더 밝고도 명확하게 누립니다. 이것이 천국에서는 가장 작은 자라도 세례 요한보다 크다는 말씀의 의미입니다.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런 친밀한 사랑의 관계를 누리고 있습니까?
영혼이 쇠약해지는 일
이런 사랑의 관계를 누리는 사람은 영혼이 쇠약해지지 않습니다(15절). 주의해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욕심을 내면서 하나님을 시험하는 것입니다(14절). 하나님이 우리 중에 계신가 안 계신가, 우리를 사랑하시는가 아닌가, 이런 것을 나의 욕심을 채우는 용도로 사용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여호와께서는 우리가 요구한 것을 주십니다. 하지만 거기까지입니다. 우리 영혼은 부요해지지 못합니다. 오히려 쇠약해집니다(15절 하). 육체의 욕심은 성령을 거스릅니다. 하지만 성령님을 따라 하나님을 알고 싶고 더욱 사랑하는 사람은 하나님과의 관계가 더욱 돈돈해집니다. 영혼이 쇠약해지지 않고 하나님으로 충만해집니다. 하나님을 시험하는 신앙 생활을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을 사랑하는 신앙 생활을 해야 합니다.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16 그들이 진영에서 모세와 여호와의 거룩한 자 아론을 질투하매
17 땅이 갈라져 다단을 삼키며 아비람의 당을 덮었고
18 불이 그들의 당에 붙음이여 화염이 악인들을 살랐도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욕심을 크개 낸(14절) 결과는 그들의 영혼이 쇠약해지는 것이었습니다(15절). 그것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자를 대적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그들은 모세와 아론을 질투했습니다(16절). 모세와 아론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이었습니다. 하나님과 화목한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과도 화목합니다. 하지만 하나님과 반목하고 있는 사람들, 영혼이 쇠약해져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께서 세우신 사람들과도 반목합니다.
그 때 기적이 일어나서 다단과 아비람의 무리가 죽었습니다. 그 기적은 땅이 갑자기 갈라져서 그들을 산 채로 땅 속으로 떨어지게 한 기적이었습니다(17절). 그리고 불 심판이 임했습니다(18절).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를 나타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사람도 대적합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의 결국은 하나님의 진노를 당하는 것입니다. 땅이 삼키는 것은 지옥으로 떨어지는 것을 눈에 보이게 나타낸 사건입니다. 불이 그들을 사른 사건도 마찬가지입니다. 지옥에 떨어지는 것을 상징하는 사건인 것입니다. 이것은 다 하나님의 진노가 얼마나 무서운가를 보여줍니다.
누가 하나님의 사람인가?
이 시대, 하나님께서 세우신 하나님의 사람은 누구일까요? 목회자일까요? 물론 그럴 수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가 사는 신약 시대는 그것이 조금 복잡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 각 사람에게 성령님을 보내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 시대에는 그 때처럼 하나님께서 모세와 같은 선지자나 아론과 같은 제사장을 세우심으로 우리를 인도하시지 않으십니다. 이것이 좀더 복잡해진 이유는 이 시대 수많은 거짓 목자들이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 행세를 하면서 양들을 괴롭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목회자에 대입시키는 것은 무리가 있습니다.
하지만 누구든지 믿는 사람을 대적하는 일에 대해서는 두려움을 느껴야 합니다. 왜냐하면 예수님께서 그것을 말씀하셨기 때문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누구든지 나를 믿는 이 작은 자 중 하나를 실족하게 하면 차라리 연자 맷돌이 그 목에 달려서 깊은 바다에 빠뜨려지는 것이 나으니라(마 18: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이 시대 하나님의 사람은 목회자에 국한되지 않습니다. 오히려 예수님을 믿는 작은 사람이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그런 사람을 대적하는 일을 조심해야 합니다. 믿는 사람은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한 사람입니다(빌 4:8).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을 대적하거나 실족하게 하는 일을 하지 않습니다.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19 그들이 호렙에서 송아지를 만들고 부어 만든 우상을 경배하여
20 자기 영광을 풀 먹는 소의 형상으로 바꾸었도다
21 애굽에서 큰 일을 행하신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
22 그는 함의 땅에서 기사와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신 이시로다
하나님을 잊은 백성은 모세와 아론을 대적했습니다(16-18절). 그런 그들은 또한 우상을 만들어서 섬겼습니다(19-22절). 여기서도 "그의 구원자 하나님을 그들이 잊었나니"라고 말씀합니다(21절). 사람이 우상을 만들어 섬기는 이유는 하나님을 잊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잊는 것은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기억하지 못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어기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하지 말라고 하신 말씀을 마음에 담고 생각하지 않았기 때문에 하나님께서 우상 숭배를 얼마나 가증하게 여기시는지도 깨닫지 못했습니다. 이것이 그 원인입니다. 즉 하나님을 사랑하지 않은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
사람은 자기가 사랑하는 사람이 싫어하는 것은 절대 행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거기에까지 도달하기는커녕 하나님께서 무엇을 싫어하시는지도 몰랐습니다. 사람이 누구를 사랑하면 그가 무엇을 좋아하는지, 무엇을 싫어하는지 아는 법입니다. 그리고 그것에 맞춰서 그를 기쁘게하려고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께 철저하게 무관심했습니다.
하나님께서 함의 땅에서 기사를 행하셨습니다(22절). 이것은 애굽 땅에 있는 우상을 심판하신 것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홍해에서 놀랄 만한 일을 행하셨습니다(22절). 이것도 하나님께서 죄와 사망 세력을 멸하신 놀라운 일이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이것을 깨닫지 못하고 잊어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사랑하지 않았습니다. 우리도 혹시 그렇게 하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의 노를 돌이켜
23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으나 그가 택하신 모세가 그 어려움 가운데에서 그의 앞에 서서 그의 노를 돌이켜 멸하시지 아니하게 하였도다
하나님께서는 진노하심으로 그들을 멸하리라 하셨습니다(23절). 여기서 하나님의 진노는 일리가 있는 진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언약을 체결하는 중에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이것을 사람의 예 대로 말하자면 이 일은 결혼식 중에 신부가 다른 남자와 바람을 핀 것과 같은 것입니다. 어찌 진노하지 않으실 수 있으실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 때 이미 멸망을 받아도 아무 할 말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 때 모세가 하나님의 앞에 서서 하나님의 노를 돌이켰습니다. 자기 이름을 생명책에서 지워버려 주옵소서, 이렇게 까지 하면서 하나님 앞에서 그들을 위해서 중보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
모세의 이런 중보는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진다는 것은 영원히 하나님의 진노 가운데에서 무한한 고통을 당할 것을 감수한다는 뜻입니다. 그것은 한낱 사람인 모세로서는 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을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실행하셨습니다. 즉 십자가에서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남김없이 다 마시신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하나님으로부터 끊어지는 지옥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그분은 하나님으로서 보통 사람은 영원히 받아도 다 받지 못할 지옥의 무한한 고통을 다 받으셨습니다. 생명책에서 이름이 지워지는 것의 결과를 다 받으신 것입니다. 그렇게 하시고 당신님의 백성을 구원해 주셨습니다. 생명책에 우리 믿는 사람들의 이름을 기록해 놓으셨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우리가 받은 구원입니다.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24 그들이 그 기쁨의 땅을 멸시하며 그 말씀을 믿지 아니하고
25 그들의 장막에서 원망하며 여호와의 음성을 듣지 아니하였도다
26 이러므로 그가 그의 손을 들어 그들에게 맹세하기를 그들이 광야에 엎드러지게 하고
27 또 그들의 후손을 뭇 백성 중에 엎드러뜨리며 여러 나라로 흩어지게 하리라 하셨도다
정탐꾼이 돌아와서 가나안 땅을 악평했을 때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자의 장막에서 하나님께서 주신 그 기쁨의 땅을 멸시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악한 신처럼 생각하고 말했습니다(24절). 하나님께서 여기서 죽게 하시려고 애굽에서 이끌여내셨다는 얼토당토한 말을 입밖으로 내뱉었습니다. 그렇게 하나님을 원망했습니다(25절 상). 그들은 하나님께서 하신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25절 하). 그 결과 그들은 광야에서 엎드러졌습니다(26절). 그들이 말한 대로 되었습니다. 다만 자기 자식들에 대해서 한 말은 하나님께서 듣지 않으셨습니다(27절). 하나님께서는 그 자녀들을 가나안 땅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런데 이들이 후손에 대해서 한 말은 나중에 이루어졌습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가게 된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서 믿음의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사랑해서 나오는 말을 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믿지 못해서 나오는 불신앙의 말, 좌절의 말, 원망의 말은 참 무서운 말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불신앙의 말보다 기쁨과 감사가 들어있는 말, 찬양의 말을 해야 합니다. 그런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은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받은 구원에 감격하며 감사하는 사람입니다.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28 그들이 또 브올의 바알과 연합하여 죽은 자에게 제사한 음식을 먹어서
29 그 행위로 주를 격노하게 함으로써 재앙이 그들 중에 크게 유행하였도다
30 그 때에 비느하스가 일어서서 중재하니 이에 재앙이 그쳤도다
31 이 일이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대대로 영원까지로다
이스라엘 백성은 브올의 바알과 연합했습니다(28절). 이것은 모압 평지에서 일어난 일입니다. 이것은 모압 왕 발락이 발람의 계략으로 이스라엘 백성들을 실족하게 한 사건입니다. 그 때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다 멸망할 뻔했습니다. 그 때 일어난 한 사람이 있으니 그 사람은 비느하스입니다(30절). 비느하스가 일어나서 중재함으로 재앙이 그쳤습니다(30절). 그가 하나님의 마음으로 진중에서 간음을 행하던 시므리과 고스비를 죽였습니다(민 25:8, 15). 그 일로 하나님께서 노를 돌이키셔서 이스라엘 백성들을 멸하지 않으셨습니다. 이 일도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키는 일입니다.
죄 죽임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우리 안에 있는 죄를 다 죽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노를 일으키는 모든 죄를 죽이셨습니다. 지금 우리 안에 죄성이 남아 있습니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싸웁니다. 하지만 죄와 싸울 때, 힘겹다고 생각하지 마십시오. 왜냐하면 그 죄에 십자가를 딱 적용시키면 그 죄가 전혀 힘을 발휘할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죄를 죽이신 십자가입니다. 그러므로 죄가 마음 안에서 요동칠 때마다 십자가를 적용시키면 죄는 곧 죽어버립니다. 십자가는 죄의 결과만을 소멸시킨 것이 아니라 죄의 능력까지도 소멸시켰습니다. 할렐루야!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우리에게 임하지 않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살면서 죄와 싸울 때마다 주 예수 그리스도와 십자가를 의지하시기 바랍니다.
그의 의로 인정되었으니
이 일이 의로 인정되어서 대대로 영원까지 이르렀습니다(31절). 이것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의 의입니다. 그리고 이 의를 우리에게 적용시키셨습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의 의로 의롭다함을 얻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도 죄와 이렇게 맹렬하게 싸울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죄를 이렇게 가차없이 처단할 수 있는 사람들입니다. 물론 우리 힘으로 처단하는 것이 아니고 십자가로 처단하는 것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에게 그런 놀라운 은혜를 주셨습니다. 십자가의 은혜를 주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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