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9. 22:01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시편
목차
시편 107:1-22
찬송가 391장 오 놀라운 구세주
시편 제오권
시편 다섯 권으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이 다섯 권은 각각의 주제로 묶여있습니다. 그 중 제3권은 예루살렘의 멸망을 주제로 묶여있습니다. 이 말은 예루살렘이 멸망한 다음에 시편이 쓰였다는 것이 아닙니다. 나중에 시편을 수집하여 묶은 사람이 시편의 각 권을 이어지는 주제로 무묶었다는 의미입니다. 제4권은 포로기를 주제로 묶여있습니다. 그래서 제4권에서는 모세와 출애굽이라는 주제가 계속 등장합니다. 포로기에서의 해방, 즉 제2의 출애굽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제5권은 제2의 출애굽, 즉 포로 귀환 이후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주제로 합니다. 이것은 죄로부터 해방된 우리가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을 의미하기도 합니다.
시편 107편
시편 107편은 제5권의 첫 번째 시편입니다. 이 시편은 시편 106편의 응답이기도 합니다. 106편 47절에서 시인은 "여호와 우리 하나님이여 우리를 구원하사 여러 나라로부터 모으시고 우리가 주의 거룩한 이름을 감사하며 주의 영예를 찬양하게 하소서"라고 기도합니다. 이 기도에 대한 응답이 시편 107편입니다. 여러 나라로부터 모아달라는 간구는 바벨론 유배 상태에서,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난 상태에서 건져 달라는 간구입니다. 죽음에서 건져서 생명으로 인도해 달라는 간구입니다. 즉 구원해 달라는 것입니다. 구원을 받은 사람이 마땅해 해야 할 ㄱ덧은 바로 주의 영광을 찬양하는 것입니다. 시편 107편은 그런 의미에서 여호와께 감사하고 찬양합니다. 여호와께 속량 받은 것,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속량하신 것을 찬양하는 것입니다(2절). 여호와께서는 속량하시고 모으셨습니다(3절). 즉 택하신 백성들이 여호와 하나님의 목전에서 쫓겨나서 유배되었던 처지에서 건지시고 그들을 하나님께로 모으신 것입니다. 사망에서 생명으로 구원하신 것입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라
1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는 선하시며 그 인자하심이 영원함이로다
2 여호와의 속량을 받은 자들은 이같이 말할지어다 여호와께서 대적의 손에서 그들을 속량하사
3 동서남북 각 지방에서부터 모으셨도다
시인은 여호와께 감사하라고 명령합니다.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 이유는 그가 선하시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의 인자하심이 영원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인자하심은 히브리어로 헤세드(חֵסֵד)입니다. 이 헤세드는 언약에 신실한 사랑입니다. 이 사랑은 죄로부터 구속하는 사랑이고 죽음으로부터 건져서 보호하는 사랑이며 영적인 생명을 일깨우는 사랑입니다. 또한 죄로부터 속량하는 사랑입니다. 하나님의 이 사랑은 영원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 사랑 안에서 영원한 생명을 누립니다. 죄와 사망의 노예 상태에서 벗어나 영원하고 무한한 생명의 은혜를 누리는 상태로 들어갑니다. 우리가 구원을 얻은 것은 이 사랑 덕분입니다. 이러한 사랑을 우리에게 베푸시는 여호와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누가 여호와께 감사해야 하는가
누가 여호와께 감사하느냐가 2절에 나옵니다. 여호와께 감사하는 사람은 여호와의 속량을 입은 사람들입니다. 무엇으로부터 속량을 받았냐면 대적의 손으로부터 속량을 받았습니다. 대적의 손은 택하신 백성을 압제하는 손입니다. 택하신 백성을 압제하는 것이 죄와 사망 세력이라고 할 때 이 손은 죄의 권능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고린도전서 15장 56절에 보면 "사망이 쏘는 것은 죄요 죄의 권능은 율법이라"라고 말씀합니다. 율법이 사람을 정죄하기 때문에 죄의 권능을 율법이라고 한 것입니다. 죄는 선한 율법을 가지고 사람을 죽이는 권능으로 삼습니다. 그러면 우리는 어떻게 승리를 얻었습니까? 고린도전서 15장 57절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우리에게 승리를 주시는 하나님께 감사하노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승리를 얻었습니다.
속량
속량이 무엇인지가 3절에 나옵니다. 속량은 대적의 권능 아래에 있던 처지에서 하나님의 땅으로 옮기는 것입니다. 3절은 "그 땅으로부터 그가 모으셨다"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그 땅"은 대적의 땅입니다. 대적이 압제하던 땅인 것입니다. 거기에서 하나님의 땅으 옮겨진 것입니다. 대적이 다스리는 땅은 동서남북에 다 있습니다. 어디든지 하나님을 떠난 곳은 다 죄와 사망이 다스리는 곳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는 항상 하나님께 붙어 있기를 사모해야 합니다. 요한복음 5장 24절은 예수님의 말씀을 듣고 예수님을 보내신 하나님을 믿는 자는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라고 말씀합니다. 골로새서 1장 13절은 "그가 우리를 흑암의 권세에서 건져내사 그의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기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우리는 동서남북으로부터 하나님으로부터 떠난 곳, 죄와 사망이 압제하던 곳으로부터 하나님의 땅으로 생명으로 그 사랑의 아들의 나라로 옮겨진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범사에 감사합니다(1절, 살전 5:18).
모든 인생들이 겪는 일
4 그들이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하며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고
5 주리고 목이 말라 그들의 영혼이 그들 안에서 피곤하였도다
6 이에 그들이 근심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시고
7 또 바른 길로 인도하사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하셨도다
8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9 그가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이로다
4-9절은 모든 인생이 겪는 일을 묘사합니다. 모든 인생은 광야 사막 길에서 방황합니다. 이 땅에는 참된 안식처가 없습니다.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합니다(4절). 그 결과 주리고 목이 마릅니다. 육적으로 주리고 목마를 뿐만 아니라 특별히 그 영혼이 주리고 목마릅니다. 그래서 영혼이 그 안에서 피곤합니다(5절). 인생에게 임하는 이러한 고통은 사람으로 하여금 여호와를 찾아 부르짖게 합니다(6절). 하나님께서는 사람이 고통 당하는 것을 기뻐하시지 않으십니다(애 3:33). 사람이 복된 것을 누리고 기뻐하고 즐거워하는 것을 원하십니다. 사람이 고통을 당하는 것은 자기가 범한 죄 때문입니다(애 3:39). 그런데 그 고통이 선한 결과를 이루는데 그것은 사람으로 하여금 하나님을 찾도록 하는 것입니다. 6절은 계속 반복되는 어구입니다. 13절, 19절, 28절에 연거푸 등장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인생입니다. 인생은 고통스러우나 결국 하나님을 찾아 부르짖게 하고 하나님께서는 그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인생들을 그들의 고통에서 건지십니다.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하나님께 부르짖으면 고통에서 건짐을 받을 뿐만 아니라 바른 길로 인도되고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됩니다(7절). 거주할 성읍을 찾지 못하던 처지에서 부르짖고 응답 받음으로 거주할 성읍에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인생의 참 안식처는 오직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인자하십니다(8절 상). 또한 죄로 인해서 절대 구원을 받을 수 없을 것 같은 인생에게 기적을 행하셔서 당신님을 찬송하게 하십니다(8절 하).
사모하는 영혼에게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시며 주린 영혼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십니다(9절). 사람이 영혼의 갈급함을 느끼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더 사모하게 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모하는 영혼에게 만족을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무엇이든 사모한다면 그것은 좋은 것입니다. 다만 그 사모하는 것을 구할 때에 하나님께 구해야 합니다. 그것을 주시고 우리 영혼을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 한 분 이시기 때문입니다. 돈이나 명예나 권력이나 쾌락이 나의 영혼을 좋은 것으로 만족시켜주지 못합니다. 당장 보기에 좋은 것 같아도 결국 우리를 파멸로 이끕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정말 좋은 것으로 우리 영혼을 가득 채워주십니다.
좋은 것으로 채워주심
그러면 우리 영혼이 좋은 것으로 채워진다고 할 때 가장 좋은 것은 무엇일까요? 누가복음에 그 답이 나옵니다. "너희가 악할지라도 좋은 것을 자식에게 줄 줄 알거든 하물며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구하는 자에게 성령을 주시지 않겠느냐 하시니라(눅 11:13)" 하나님 아버지께 구할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는 가장 좋은 것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우리 영혼에 채워주십니다. 그 분은 바로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즉 하나님 당신님이 우리에게 가장 좋은 것입니다. 하나님으로 충만해지는 것이 가장 좋은 것입니다. 주린 영혼을 가득 채워주시는 선한 것(טוֹב)은 성령 하나님이십니다.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앚으며
10 사람이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 앉으며 곤고와 쇠사슬에 매임은
11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며 지존자의 뜻을 멸시함이라
12 그러므로 그가 고통을 주어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셨으니 그들이 엎드러져도 돕는 자가 없었도다
13 이에 그들이 그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들의 고통에서 구원하시되
14 흑암과 사망의 그늘에서 인도하여 내시고 그들의 얽어 맨 줄을 끊으셨도다
15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16 그가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으셨음이로다
15절,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이 말씀도 계속 반복됩니다. 8절, 15절, 21절에 연거푸 등장합니다. 이 말씀과 함께 반복되는 내용은 여호와께서 죄를 지은 자들(11절)에게 고통을 주셔서 그들의 마음을 겸손하게 하시고(12절) 그들로 하여금 환난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게 하셔서 그들을 고통에서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6절, 13절, 19절 28절).
사람의 구원
이것이 여호와의 인자하심이고 이것이 여호와께서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입니다(15절). 이것이 하나님의 인자하심인 이유는 사람은 이렇게 하지 않으면 구원을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절대 스스로 깨우쳐 돌이킬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깨닫게 하시는 은총을 베풀어 주셔야만 돌이킬 수 있습니다. 자기가 스스로 구원하려는 노력이 고통만 가중시킨다는 것을 경험해야 비로소 하나님께 전심으로 부르짖고 돌이키게 됩니다. 그것이 "겸손"입니다(12절).
성경에서 말씀하는 겸손
성경에서 말씀하는 겸손은 유교가 가르치는 겸손과 다릅니다. 유교의 겸손은 상대와 나를 비교해서 나 자신을 스스로 낮추는 것입니다. 그러나 성경의 겸손은 하나님만이 나를 구원하실 수 있으시다는 것을 깨닫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이라는 것을 아는 것입니다. 죄인은 전적으로 무능력합니다. 그것을 아는 것이 겸손입니다. 그러므로 겸손한 사람은 하나님께 부르짖습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부르짖는다는 것 자체가 기적입니다(15절). 하나님께서는 그렇게 부르짖게 하시고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해주십니다. 놋문을 깨뜨리시며 쇠빗장을 꺾어주십니다(16절). 흑암과 사망이(10절) 그를 가두 놓은 놋문, 쇠빗장을 깨뜨리시고 꺾으셔서 구원해 주시는 것입니다.
사람의 미련함과 비참함
17 미련한 자들은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기 때문에 고난을 받아
18 그들은 그들의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어 사망의 문에 이르렀도다
19 이에 그들이 그들의 고통 때문에 여호와께 부르짖으매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
20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 위험한 지경에서 건지시는도다
21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신 기적으로 말미암아 그를 찬송할지로다
22 감사제를 드리며 노래하여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
사람은 미련합니다. 미련하기 때문에 그들의 죄악의 길을 따르고 그들의 악을 범하면서 그것 때문에 고난을 받습니다(17절). 자기가 죄를 범하면 고난을 받는다는 것을 모릅니다. 처음에는 모르고 그렇게 합니다. 그러나 나중에 인생의 경험이 쌓아면 알면서도 그렇게 합니다. 왜냐하면 죄의 종된 처지에서 스스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입니다. 고난이 임할 것을 알면서도 죄악의 길을 가고 악을 범하는 것입니다. 참으로 비참한 인생입니다.
그렇게 해서 늙으면 모든 음식물을 싫어하게 되고 결국 사망의 문에 이릅니다(18절). 죽음을 깊이 생각할 그 때에 사람은 여호와께 부르짖게 됩니다(19절). 자기의 비참함을 깨닫고 그것을 해결해 주실 분이 오직 여호와 하나님이심을 비로소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렇게 깨닫고 인정하게 되는 것도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셔서 그렇게 할 수 있는 것입니다.
말씀을 보내어
하나님께서 사람을 구원하실 때 사용하시는 것이 말씀입니다(20절). 말씀을 듣게 하셔서 그 마음에 깨닫게 하시고 돌이켜 죄 사함을 받게 하시는 것입니다(막 4:12 참조). 사람이 위험한 지경에 빠지는 것은 듣는 귀와 깨닫는 마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들을 귀를 주시고 깨닫는 마음을 주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인생을 불쌍히 여기시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보내시고 성령으로 감동하셔서 그 위험한 지경에서 건져주십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인자하심과 인생에게 행하시는 기적입니다(21절). 그러므로 말씀을 듣고 회개할 마음이 생겼다면 그 때 우리가 해야 할 것은 찬송입니다. "그를 찬송할지로다(21절)" 그리고 감사입니다. "감사제를 드리며" 또한 새 노래로 찬양하는 것입니다. "노래하여" 그렇게 해서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합니다. "그가 행하신 일을 선포할지로다(22절)" 이것이 우리 인생의 목적입니다.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
하나님께서는 우리 인생으로 선을 이루십니다. 이것을 믿으셔야 합니다. 우리가 고통을 받을 때 하나님을 떠올리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풀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떠올렸다면 지체하지 말고 하나님께 부르짖어야 합니다. 믿음을 가지고 부르짖어야 합니다. 어떤 믿음을 가져야 합니까? "그가 그들의 고통에서 그들을 구원하시되(19절)" "그가 그의 말씀을 보내어 그들을 고치시고(20절)" 이러한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반드시 구원하실 것이다, 말씀을 보내셔서 고치실 것이다, 이런 믿음을 가져야 합니다. 이 믿음을 갖고 하나님께 나아가 아뢰기를 쉬지 말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기도에 신실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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