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시편 119편 33-48절 | 복음의 말씀을 사랑하고 증언함

2025. 6. 22. 10:02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시편

목차


    시편 119:33-48

    찬송가 134장 나 어느 날 꿈속을 헤매며


    율법과 사랑

    시편 119편은 토라 시편입니다. 토라 시편은 메시아 시편과 짝을 이룹니다. 메시아는 토라를 완전하게 성취하시고 모든 의를 이루셨습니다. 우리는 그 의를 전가 받았습니다. 그 결과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모든 율법을 완전하게 지킨 것으로 간주하십니다. 우리는 이미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율법이 성취되었다는 것을 복음으로 들었습니다. 우리는 그 복음을 듣고 율법을 삶에 적용함으로 그 삶이 어떤 것인지를 직접 맛보면서 삽니다. 의를 위해서가 아니라 율법 안에 담긴 하나님의 사랑을 맛보기 위해서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사랑하고 항상 읊조리고 그것을 마음에 두는 것은 곧 하나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그 사랑이 삶에서 어떻게 이루어지는지는 말씀을 따라가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3   여호와여 주의 율례들의 도를 내게 가르치소서 내가 끝까지 지키리이다
    34   나로 하여금 깨닫게 하여 주소서 내가 주의 법을 준행하며 전심으로 지키리이다
    35   나로 하여금 주의 계명들의 길로 행하게 하소서 내가 이를 즐거워함이니이다
    36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게 향하게 하시고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
    37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 주의 길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8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을 주의 종에게 세우소서
    39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 주의 규례들은 선하심이니이다
    40   내가 주의 법도들을 사모하였사오니 주의 의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

     

    33절에서 40절까지는 히브리어 알파벳 헤로 시작합니다. 이 여덟 절의 주제는 주의 말씀만이 참된 생명을 준다는 것입니다. 시인은 37절과 40절에서 "나를 살아나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살아나게 해달라는 것은 두 가지 의미입니다. 하나는 계속 살게 해달라는 의미이고 다른 하나는 다시 살아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첫째 의미로 볼 때 37절은 "주의 길에서", 40절은 "주의 의로" 계속 살아가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둘째 의미로 볼 때에는 부활하게 해달라는 것입니다. 37절은 "주의 길" 안에서, 40절은 "주의 의" 안에서 부활하게 해달라는 것으로 주의 길은 주님께서 뜻하신 대로, 주의 의는 주께서 마땅하다고 정하신 대로 부활하게 해달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는 성육신하시어 주의 길과 주의 의 안에서 계속 사셨습니다. 다른 어느 것으로부터도 좋은 것을 바라거나 원하시지 않으셨습니다. 오직 우리 하나님의 안에서 좋은 것을 구하시고 누리시면서 사셨습니다. 그 안에서만 생명을 누리셨고 참 생명, 풍성한 생명을 누리셨습니다. 그 생명을 누리시다가 십자가에 달려 죽으셨는데 죽음이 그 생명을 빼앗을 수 없었습니다. 죽음은 죄로 인해서만 권세를 누릴 수 있는데 우리 주님께는 죄가 없으시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님께서 부활하시는 것은 주의 길 안에 있는 것이고 또한 주의 의 안에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과 하나님의 의로 우리 주님께서는 부활하셨습니다. 부활하시는 것이 마땅했습니다. 이렇게 말씀 안에 생명이 있습니다. 

     

    이 말씀은 어떤 길을 가리켜 보이는데 시인은 그 길을 가르쳗달라고 합니다. 가르침을 받고 그 뜻을 알아야 지켜 행할 수 있습니다(33절). 깨달아야 그 법을 준행할 수 있습니다(34절). 깨달은 마음이 중요한 이유는 깨달아야만 말씀을 지킬 때 "전심으로"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34절 하).

     

    주의 계명들이 어떤 길을 보여주는데 그 길로 가는 것은 즐거운 일입니다(35절). 그런데 죄는 우리 안에서 준동하여 탐욕을 일으킵니다. 주의 길을 즐거워하는 마음을 약하게 하고 그 마음을 탐욕으로 향하게 합니다. 이렇게 탐욕으로 향하는 마음을 제어하는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되지 않고 성령님의 은혜로만 됩니다. 시인은 "내 마음을 ... 탐욕으로 향하지 말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 이렇게 간구할 때 마음이 향해야 하는 올바른 방향은 주의 증거들이라고 합니다. "내 마음을 주의 증거들에 향하게 하시고"라고 하는 것도 아주 중요한 기도입니다(36절). 마음이 주의 증거들로 향하느냐 탐욕으로 향하느냐, 우리는 이 싸움을 계속 해나갑니다. 이 싸움에서 우리는 결코 혼자가 아닙니다. 우리 안에는 성령님께서 계십니다. 우리는 언제든지 36절처럼 기도할 수 있습니다. 

     

    마음이 탐욕으로 향할 때 아주 중요한 작용을 하는 지체가 눈입니다. 눈은 보아도 족함이 없습니다. 자꾸 보고 싶어합니다. 마음이 탐욕으로 향하지 않으려면 눈을 먼저 돌이켜야 합니다. 사람이 탐욕을 부리는 대상은 참된 것이 아닙니다. 허탄한 것입니다. 없어질 것들입니다. 시인은 "내 눈을 돌이켜 허탄한 것을 보지 말게 하시고"라고 간구합니다(37절). 눈을 제어하는 것은 주의 길에서 살아가는 삶에서 가장 먼저 주의해야 할 것입니다(욥 31:1 참조). 

     

    눈을 돌이킨 다음에 마음에 새겨야 하는 말씀은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입니다(38절). 우리가 말씀을 지키는 것 같지만 거꾸로입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킵니다. 말씀이 우리를 지킬 때 우리는 우리 하나님을 경외하게 됩니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14장 2항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 믿음에 의하여 그리스도인은 성경에서 말씀하시는 하나님 그분의 권위 때문에 성경 말씀에 계시된 것은 무엇이든지 다 참되다고 믿는다. 그리고 말씀의 각 구절이 담고 있는 바에 따라 달리 반응하는데, 곧 명령에는 순종하고, 경고에는 두려워 떨며, 금생과 내생에 대한 하나님의 약속을 가슴에 품는다. 그러나 구원하는 믿음의 주요 활동은 은혜언약에 힘입어 의롭다 하심, 거룩하게 하심 그리고 영원한 생명을 위하여 그리스도만을 인정하며 의지하는 것이다. 

     

    이처럼 주를 경외하게 하는 주의 말씀에 신자는 주를 경외함으로 반응합니다. 또한 죄에 대한 비방에 반응하여 "내가 두려워하는 비방을 내게서 떠나게 하소서"라고 간구합니다(39절).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규례들이 선함을 인정합니다. 율법은 선하나 그것을 지키지 못하는 내가 악함을 깨닫고 예수 그리스도를 다시 힘있게 의지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주의 법도들을 사모합니다(40절). 여기서 법도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것, 지명하신 것이라는 의미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께서 부과하신 직임을 충실하게 수행하셨습니다. 그리고 그 의 안에서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우리는 이 법도를 사모합니다. 우리 성삼위 하나님께서 행하셔서 우리에게 주신 놀라운 구원을 사모합니다. 그 믿음으로 우리는 부활을 간구합니다.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복음을 읊조리고 증언함

    41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내게 임하게 하소서
    42   그리하시면 내가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 내가 주의 말씀을 의지함이니이다
    43   진리의 말씀이 내 입에서 조금도 떠나지 말게 하소서 내가 주의 규례를 바랐음이니이다
    44   내가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리이다 영원히 지키리이다
    45   내가 주의 법도들을 구하였사오니 자유롭게 걸어갈 것이오며
    46   또 왕들 앞에서 주의 교훈들을 말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겠사오며
    47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스스로 즐거워하며
    48   또 내가 사랑하는 주의 계명들을 향하여 내 손을 들고 주의 율례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41-48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바브로 시작합니다. 이 구절들의 주제는 주의 말씀이 우리에게 증거가 되고 우리는 그 말씀을 증언하는 사람들이라는 것입니다. 42절에 보면 "나를 비방하는 자들에게 대답할 말이 있사오리니"라고 합니다. 우리가 우리 대적에게 대답할 수 있는 것은 우리 하나님께서 주의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과 주의 구원을 우리에게 임하게 하셨기 때문입니다(41절). 우리 예수님께서 우리의 의가 되셨는데 그것이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거룩한 복음의 말씀에 담겨 있습니다. 이것으로 우리는 우리를 비방하는 우리 대적에게 대답할 말이 있게 됩니다. 우리는 이 복음의 말씀을 의지해서 살아갑니다(42절 하). 

     

    이 진리의 말씀을 우리는 입으로 말합니다. 이 말씀을 말할 때 우리는 그 안에 담긴 하나님의 규례를 소망합니다. 한 편으로는 그것이 이루어졌음을 믿지만 다른 한 편으로는 그것을 강하게 소망하는 것입니다(43절). 우리는 믿으면서 소망하는 사람들입니다. 이 소망이 우리로 하여금 주의 율법을 항상 지키려는 마음을 불일듯이 일으킵니다(44절). 우리는 주의 율법을 다 지키려고 합니다. 비록 이 땅에서는 죄 때문에 자꾸 넘어지고 반역을 범하기도 하지만 우리 마음은 율법을 다 지키려고 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끝내 우리는 그 율법을 다 지키게 됩니다. 완전 성화를 이루고 영화를 이루어 영원히 지키게 됩니다. 

     

    주의 법도는 우리에게 참 자유를 줍니다(45절). 주의 성령이 계신 곳에는 참 자유가 있습니다(고후 3:17). 바울은 구약을 읽을 때에 그리스도 안에서 그것을 덮었던 수건이 벗어질 것이라고 합니다(고후 3:13). 그 결과는 자유입니다. 주의 법도는 우리를 옭아매는 것이 아니고 그리스도 안에서 우리에게 자유가 됩니다. 우리는 성령님으로 인해서 그 말씀으로 자유롭게 걸어갑니다. 또한 왕들 앞에서 그 복음을 전할 때에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46절). 

     

    시인은 주의 계명을 가리켜서 "내가 사랑하하는 주의 계명들"이라고 합니다(47-48절). 주의 계명들을 사랑한다는 것은 그것을 베푸신 주님을 사랑한다는 것입니다. 주님을 사랑하기 때문에 주님께서 주신 계명들을 사랑하고 또한 그것을 즐거워합니다(47절). 즐거워하여 그것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립니다(48절). 주의 복음의 말씀은 항상 듣고 또 들어도 놀라운 것입니다. 심히 사랑스러운 것입니다. 항상 마음에 품고 읊조릴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사랑하셔서 우리 죄를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다 사하시고 우리를 하나님께로 인도하셨습니다. 우리는 그 하나님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예배하고 하나님과 만나 교제합니다. 우리가 사랑하는 하나님을 예수님 안에서 언제나 만나 교제하고 우리의 마음을 하나님께 아뢸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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