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시편 119편 65-80절 | 하나님의 선하심과 고난, 하나님을 경외함

2025. 6. 24. 07:43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시편

목차


    시편 119:65-80

    찬송가 135장 어저께나 오늘이나


    말씀과 구원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씀으로 우리에게 소망을 가지게 하셨습니다(119:49).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말씀은 거룩한 복음의 말씀입니다. 성경 안에는 율법도 있고 역사도 있고 시도 있고 예언도 있습니다. 이 모든 말씀이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가리킵니다. 예수님께서 누구시고 무슨 일을 하셨는지 예수님으로 이루어질 나라는 어떤 나라인지를 말씀하는 것입니다. 이 말씀으로 우리는 구원의 소망을 갖습니다. 우리는 믿음으로 이미 구원을 얻었습니다. 우리가 믿게 된 것도 말씀이 우리에게 들려졌기 때문입니다. 이 모든 것이 말씀으로 이루어진 일입니다. 우리는 말씀을 묵상함으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합니다. 계명을 지킴으로 하나님을 사랑합니다(119:55-57). 

    하나님의 선하심과 고난

    65   여호와여 주의 말씀대로 주의 종을 선대하셨나이다
    66   내가 주의 계명들을 믿었사오니 좋은 명철과 지식을 내게 가르치소서
    67   고난 당하기 전에는 내가 그릇 행하였더니 이제는 주의 말씀을 지키나이다
    68   주는 선하사 선을 행하시오니 주의 율례들로 나를 가르치소서
    69   교만한 자들이 거짓을 지어 나를 치려 하였사오나 나는 전심으로 주의 법도들을 지키리이다
    70   그들의 마음은 살져서 기름덩이 같으나 나는 주의 법을 즐거워하나이다
    71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이로 말미암아 내가 주의 율례들을 배우게 되었나이다
    72   주의 입의 법이 내게는 천천 금은보다 좋으니이다

     

    65-72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테트로 시작합니다. 65절의 첫 단어는 토브입니다. 그 뜻은 선하다, 좋다입니다. 이 구절들은 고난과 하나님의 선하심을 말씀합니다. 고난을 당할 때 가장 먼저 의심이 드는 것이 하나님의 선하심입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면 나에게는 왜 이런 고난이 닥치는가 하는 것입니다. 그에 대한 답이 십자가입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십자가에서 찬란하게 드러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죽으셨습니다. 그렇게 하셔서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대한 당신님의 사랑을 확증하셨습니다(롬 5:8). 예수님께서 하나님의 무한 진노를 당하시고 무한 고통을 당하심으로 우리는 죄와 사망에서 건짐을 받았습니다. 그 어떤 고난도 십자가 안에서 설명이 되고 그 의미가 발견됩니다. 주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따릅니다. 고난을 당하면서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는 것입니다. 고난 당하기 전에는 그릇 행하다가 고난을 당한 후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67절). 고난을 통과하면서 하나님의 선하심과 그 사랑을 깊이 경험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신비이고 역설입니다. 신자는 고난을 유익이라고 말하는 사람들입니다(71절). 불신자들이 보기에는 미쳤다고 할 정도로 고난을 유익이라고 합니다. 고난이 유익이라는 말은 고난이 나에게 좋은 것이라는 뜻입니다. 많은 이들이 고난을 선한 것이라고 간증합니다. 고난과 하나님의 선하심은 반대가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선하시기 때문에 신자에게는 고난도 선으로 귀결되는 것입니다(롬 8:28).

     

    고난 당할 때 신자는 주의 말씀으로 힘을 얻습니다. 하나님께서 말씀대로 선을 행하실 줄을 믿기 때문입니다(65절). 65절 서두를 우리말 성경으로는 "선대하셨다"라고 번역했는데 문자적으로 번역하면 "당신께서 당신의 종과 함께 선을 행하셨나이다"입니다. 우리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선을 행하시는 분이십니다. 특별히 주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선을 행하셨습니다. 그 선은 실로 아름답고 무한한 선으로 영원한 고통 가운데 버림 받을 죄인을 불쌍히 여기셔서 구원하신 선입니다. 십자가라는 참혹한 사형틀로도 무한한 선을 이루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 하나님께서 선으로 바꾸시지 못할 선은 없습니다. 

     

    고난 당한 것이 내게 유익이라

     

     

    고난의 현장에서 우리가 믿을 것은 주의 말씀입니다. 주의 말씀을 믿을 때 우리는 선한 판단력과 지식을 깨닫게 됩니다(66절). 좋은 판단력과 지식은 고난을 선으로 깨닫는 지식입니다. 그래서 주의 말씀을 지키게 되는 지식입니다(67절). 또한 하나님께서 선하시다는 것을 경험하고 깨닫는 지식입니다(68절). 하나님은 선하십니다. 반면 교만한 자들은 거짓을 지어서 신자를 치려고 합니다. 그들이 그렇게 하는 것은 그들이 우리 주 예수님을 거짓으로 쳐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으시게 하였기 때문입니다. 예수님을 대적하는 자들이 신자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 때 우리가 피할 길은 주의 말씀입니다(69절).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들의 마음은 비대해져있습니다. 기름에 잠겨 있는 것입니다. 고난을 당하지 않는 자는 마음이 비대해질 수 밖에 없습니다. 이런 면에서도 고난은 신자에게 유익이 됩니다. 고난은 신자의 마음을 가볍게하고 부드럽게 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더욱 힘있게 의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게 합니다(70절). 신자는 고난으로 주의 말씀의 깊은 맛을 보고 그 말씀을 깨닫습니다(71절). 그 결과 신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그 어떤 재물보다 좋아합니다(72절). 하나님의 말씀은 이렇게 고난을 선(토브)와 연결시킵니다. 

    하나님을 경외함

    73   주의 손이 나를 만들고 세우셨사오니 내가 깨달아 주의 계명들을 배우게 하소서
    74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나를 보고 기뻐하는 것은 내가 주의 말씀을 바라는 까닭이니이다
    75   여호와여 내가 알거니와 주의 심판은 의로우시고 주께서 나를 괴롭게 하심은 성실하심 때문이니이다
    76   구하오니 주의 종에게 하신 말씀대로 주의 인자하심이 나의 위안이 되게 하시며
    77   주의 긍휼히 여기심이 내게 임하사 내가 살게 하소서 주의 법은 나의 즐거움이니이다
    78   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나를 엎드러뜨렸으니 그들이 수치를 당하게 하소서 나는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리이다
    79   주를 경외하는 자들이 내게 돌아오게 하소서 그리하시면 그들이 주의 증거들을 알리이다
    80   내 마음으로 주의 율례들에 완전하게 하사 내가 수치를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73절부터 80절은 히브리어 알파벳 요드로 시작합니다. 요드는 열 번째 알파벳입니다. 이 구절들은 하나님을 경외함을 주제로 합니다. 신자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들입니다. 경외한다는 것은 하나님을 두려워하고 사랑한다는 뜻입니다. 마치 아들이 아버지를 사랑하면서도 어려워하듯이 하나님을 사랑하면서도 두려워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는 사람은 하나님께서 모든 면에서 역사하신다는 것을 믿습니다. 하나님의 손길이 나를 만들고 세우신다는 것을 믿는 것입니다. 그것을 믿으면서 동시에 하나님께서 어떻게 일하시고 계시는지 계속 알기를 원합니다. 그래서 깨닫게 해 달라고 간구합니다(73절). 하나님을 경외하는 자들은 하나님께서 만드시고 세우신 사람을 보고 기뻐합니다. 특별히 주 예수 그리스도를 보고 기뻐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지도자들을 보고도 기뻐합니다. 그들의 특징은 하나님의 말씀을 소망하고 그대로 이룬다는 것입니다(74절). 그 일을 완전하게 이루신 분이 바로 우리 주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을 믿고 기뻐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심판이 의로우시다는 것을 알고 인정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항상 옳으시기에 하나님께서 나를 괴롭게 하시는 것은 하나님의 신실하심 때문이라는 것도 압니다(75절). 신자는 괴로운 상황에서도 하나님께 기도하는데 하나님의 헤세드가 자기를 안위로 이끄시기를 간구하는 것입니다(76절). 하나님께서 신자를 안위로 이끄시는 것은 하나님께서 긍휼에 풍성하시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하나님께 긍휼을 구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법이 신자에게는 즐거움이 되는데 그 법이 신자에게 정죄로 작동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오히려 하나님의 법은 신자를 살게 합니다(77절).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죄에 대한 모든 형벌이 치러졌기 때문입니다. 신자는 더이상 법으로 정죄받지 않고 법으로 구원을 얻습니다. 이미 의롭다함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종교개혁자 루터는 이신칭의를 깨닫기 전에는 하나님의 법이 즐거움이라는 시인의 고백을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믿음으로 의롭다함을 받은 신자만이 하나님의 법을 즐거워할 수 있습니다. 

     

    교만한 자들은 거짓으로 참된 자들을 엎드러뜨립니다. 특별히 예수님을 그렇게 해서 십자가에 못 박아 죽였습니다. 하지만 십자가는 하나님을 대적하는 사탄과 그 무리들의 무력함을 드러냈습니다. 그들에게 수치를 안겨주었습니다. 우리는 이것을 아는 사람으로서 교만한 자들이 거짓으로 우리를 치는 상황에서도 주의 법도들을 작은 소리로 읊조리면서 평안을 얻을 수 있습니다(79절).

     

    주를 경외하는 자들은 우리 예수님께 돌이켜서 주의 증거들을 깨닫게 됩니다(79절). 마음이 하나님의 말씀으로 가득한 사람은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80절). 죽음이 그를 쏘고 수치로 이끌려고 하지만 그 죽음에서 건짐을 받아 영원히 수치를 당하지 않습니다. 우리 예수님께서 죽음을 이기셨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당신님을 바라는 모든 자는 수치를 당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사 4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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