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12장 1-19절 |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

2024. 1. 25. 13:27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12:1-19

    찬송가 347장 허락하신 새 땅에


    12장, 새로운 단락의 시작

    신명기는 12장에서 새로운 단락을 시작합니다. 신명기의 구조는 정교하게 짜여있습니다. 6장부터 11장까지도 마찬가지입니다. 6장에서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명령이 나오고 9장에서는 언약의 파기가 나옵니다. 10장에서는 언약의 회복이 나오고 11장에서는 6장과 7장을 반복합니다. 반복해서 하나님을 사랑하라고 명령합니다. 단순한 반복이 아니고 깊은 반복입니다. 언약을 파기한 이스라엘을 용서하신 하나님을 사랑하라는 뜻이 그 아래 깔려있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한 단락을 마무리하고 신명기는 12장으로 이어집니다. 

    신명기 법전

    신명기 12-26장은 신명기의 중심을 이루는 장들입니다. 이 장들에는 구체적 율법을 제시하고 그것을 가르치는 내용이 담겨 있습니다. 이 부분을 신명기의 법전이라고 부르기도 합니다. 

    이스라엘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가

    1-11장에서는 과거 이스라엘이 범했던 죄와 여러 사건들을 제시합니다. 그에 대해서 하나님께서 얼마나 크신 은혜로 그들을 용서하셨는지도 가르칩니다. 그렇게 해서 이스라엘 백성들로 하여금 스스로를 돌아보게 합니다. 마치 거울을 앞에 놓는 것과 같습니다. 반면 12-26장에서는 11장까지 내용으로 교훈을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어떻게 반응해야 하는지가 나옵니다. 크신 은혜로 용서 받은 그들이 앞으로 어떤 삶을 살아야 하는가를 제시하는 것입니다. 관계는 상호적입니다. 은혜를 받았으면 은혜 받은 자로서 그에 상응하는 반응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런 상호적인 관계를 보여주기 위해서 1-11장과 동일한 어휘가 12-26장에 자주 등장합니다. 

    십계명과의 연관성

    12장은 이스라엘이 여호와 하나님께만 충성해야 한다는 것을 역설합니다. 이것은 십계명 제 1계명과 제 2계명에서 명령한 것입니다. 또한 12장은 여호와께 적법하게 에배드리려면 어떻게 해야 하는지도 설명합니다. 이 부분은 출애굽기 20장 22-26절과 연결됩니다. 또한 12장은 이스라엘이 주변 민족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런 점에서 레위기 18장 3절과 상응합니다. 또한 12장은 이스라엘이 택함을 받은 거룩한 존재라는 것을 강조합니다. 그들의 구별됨을 강조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신명기 7장에서 나온 내용입니다.

    그처럼 행하지 말고 

    1   네 조상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셔서 차지하게 하신 땅에서 너희가 평생에 지켜 행할 규례와 법도는 이러하니라
    2   너희가 쫓아낼 민족들이 그들의 신들을 섬기는 곳은 높은 산이든지 작은 산이든지 푸른 나무 아래든지를 막론하고 그 모든 곳을 너희가 마땅히 파멸하며
    3   그 제단을 헐며 주상을 깨뜨리며 아세라 상을 불사르고 또 그 조각한 신상들을 찍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4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는 너희가 그처럼 행하지 말고

     

    12장의 핵심 주제는 가나안 민족과 같이 행하지 말라는 것입니다. 이스라엘은 그들과 달라야 한다는 것입니다(4절). 하나님께서 가장 먼저 명령하는 것은 우상을 멸하라는 것입니다(2-3절). 그것이 그들이 평생 동안에 마음에 간직해서 행함으로 이어져야 하는 규례와 법도 중 첫 번째입니다.

    하나님을 향하여 살 때 가장 먼저 행하는 것

    우리 마음에 하나님을 향한 믿음이 생기면 우리 삶의 방향이 나를 위하는 쪽에서 하나님을 위하는 쪽으로 바뀝니다. 내가 바라보는 방향이 수정되는 것입니다. 내가 하나님을 향하여 있게 됩니다. 그렇게 되면서 첫 번째 일어나는 일은 우상을 멸하는 일입니다. 내 안에서 하나님의 자리를 차지했던 것들이 하나하나 파괴되어 갑니다. 하나님 외에 그 어떤 것에도 영광을 돌리지 않습니다. 그것을 싫어하게 됩니다. 

     

    매일성경 | 신명기 12장 1-19절 | 약속의 땅에서 하나님께 나아가는 방법

     

    교회도 마찬가지입니다. 교회가 하나님을 바르게 섬기게 되면 그 어떤 것도 하나님 대신 영광을 받도록 내버려두지 않습니다. 그것이 어디에 있든지 다 멸합니다(2절). 예전에 종교개혀자들은 그래서 예배당 안에 십자가도 두지 않았습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영광을 가릴 수도 있기 때문입니다. 그만큼 철저했습니다.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

    특별히 3절에 보면 "그 이름을 그 곳에서 멸하라"라고 명령하십니다. 왜냐하면 그곳은 장차 여호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불려질 곳이기 때문입니다. 그곳은 하나님 나라에 속한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계신 곳에는 다른 신이 없어야 합니다. 이러한 변화는 종교적 변화면서 동시에 사회, 경제, 정치적 변화입니다. 

    성 삼위 하나님께

    유일무이한 여호와의 이름에 돌려지는 영광이 이제는 예수 그리스도께 돌려집니다. 신명기의 이 말씀은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가지신 예수 그리스도께로 이어집니다(사 25:22-24; 빌 2:9-11; 엡 1:21). 우리는 구약의 유일하신 하나님께서 사실은 삼위일체 하나님이시라는 것을 압니다. 하나님을 더 깊이 아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든 영광을 성부, 성자, 성령, 성 삼위 하나님께 돌려드립니다. 

    택하신 곳

    5   오직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너희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인 그 계실 곳으로 찾아 나아가서
    6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제물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의 서원제와 낙헌 예물과 너희 소와 양의 처음 난 것들을 너희는 그리로 가져다가 드리고
    7   거기 곧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먹고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의 손으로 수고한 일에 복 주심으로 말미암아 너희와 너희의 가족이 즐거워할지니라
    8   우리가 오늘 여기에서는 각기 소견대로 하였거니와 너희가 거기에서는 그렇게 하지 말지니라
    9   너희가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주시는 안식과 기업에 아직은 이르지 못하였거니와
    10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너희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기업으로 주시는 땅에 거주하게 될 때 또는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너희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너희에게 안식을 주사 너희를 평안히 거주하게 하실 때에
    11   너희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 곳으로 내가 명령하는 것을 모두 가지고 갈지니 곧 너희의 번제와 너희의 희생과 너희의 십일조와 너희 손의 거제와 너희가 여호와께 서원하는 모든 아름다운 서원물을 가져가고
    12   너희와 너희의 자녀와 노비와 함께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할 것이요 네 성중에 있는 레위인과도 그리할지니 레위인은 너희 중에 분깃이나 기업이 없음이니라

     

    가나안 족속들은 자기 눈에 보기에 좋은 자리에다가 우상을 세웠습니다. 그렇게 하고 자기 마음대로(8절 참조) 자기 신들에게 나아갔습니다(2절). 그러나 이스라엘은 그렇게 하면 안 됩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께서 택하신 곳으로 찾아 나아가야 합니다(5절).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이름을 두시려고 모든 지파 중에서 택하신 곳이 있습니다. 장소를 사람이 택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것입니다. 

    구체적 장소를 명시하지 않으심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구체적인 장소를 명시하지는 않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앞에서 장소를 지명하신 적이 있으십니다. 11장에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하라고 하셨을 때 그리심산과 에발산을 지목하신 것입니다(11:29). 그러므로 여기서도 충분히 장소를 지목하실 수 있으셨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하지 않으셨습니다.

    때를 지목하심

    장소를 지목하지 않으신 하나님께서는 때를 지목하셨습니다. 그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이스라엘 주위의 모든 대적을 이기게 하시고 그들에게 안식을 주셔서 평안히 거주하게 하신 때입니다(10절). 이 때는 역사상 다윗에 의해서 성취되었습니다. 다윗이 주변을 다 평정하고 이스라엘 백성들이 평안히 거주하게 했을 때 그 아들 솔로몬에 의해서 성전이 건축된 것입니다. 

    예수님도 그렇게 하심

    이 맥락 그대로 예수님께서도 사라미아 여인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사마리아 여인이 장소의 문제를 예수님께 여쭈었을 때(요 4:20) 주님께서는 장소의 문제보다 때의 문제를 말씀하셨습니다. 그리심 산도 아니고 예루살렘도 아니라고 하시면서 너희가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요 4:21). 그러시면서 그 때가 곧 이 때라고 하셨습니다. 이 때는 언제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입니다. 아버지께 예배할 때가 이르렀는데 그 때는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라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오신 때

    이것을 신명기와 이스라엘 역사의 관점으로 보자면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신 때는 바로 모든 죄와 사망 세력을 이기시고 평정하시는 때입니다. 다윗이 주변 모든 나라를 평정하고 이스라엘을 평안하게 한 것처럼 예수님께서 죄와 사망세력을 이기시고 택하신 백성에게 참 평안을 주신 때인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그 때를 살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 영과 진리로 예배하는 때가 바로 이 때입니다. 다시 말해서 지금은 예수 그리스도로 예배하는 때입니다. 

    하나님께 나아오는 법을 하나님께서 정하심

    하나님께서 택하시는 장소를 말씀하면서 장소를 특정하지 않은 것은 이런 깊은 의미가 있습니다. 장소가 중요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간다는 것이 중요한 것입니다. 그리고 하나님께 예배하러 나아갈 때에 그 방법을 누가 정하느냐 하는 것이 중요합니다. 그것을 정하시는 분은 하나님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는 길

    하나님께서 정하신,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오는 방법은 오직 하나의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그것을 천명하셨습니다. 

     

    예수께서 이르시되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

     

    이렇게 말씀하신 것입니다. 아버지께 나아가는 길은 오직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는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예배 장소를 정하신 것은 이런 깊은 의미를 담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11절에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자기의 이름을 두시려고 택하실 그곳은 바로 성전이신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우리는 어디서나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름으로 하나님께 나아갑니다. 

    공동체로

    여기에 예배로 어떻게 나아가는지도 나와있습니다. 하나님께 예배로 나아갈 때에는 공동체적으로 나아갑니다(7, 11, 12절). 예배를 드리러 나아갈 때에는 빈손으로 나아가지 않습니다. 6절과 11절에 각종 제물의 항목들이 나열되어 있는데 그것이 가리키는 것은 바로 나와 나에게 속한 모든 것을 하나님께 드린다 하는 것입니다. 내가 있고 내가 속한 공동체가 있고 내가 수고해서 얻은 나의 소유가 있습니다. 제물을 가지고 예배로 나아간다는 것은 이 모든 것들을 다 하나님께 돌려드린다는 의미입니다. 

    즐거움

    예배 때 하나님께 예물을 드리면 즐거움이 임합니다. 앞에 신명기 8장에서는 백성이 배부르고 교만해지면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위험에 들어간다고 경고했습니다. 여기에 그 위험을 방지하는 방법이 나옵니다. 그것은 그들이 누리는 모든 풍성한 것의 근원에게 그것들을 돌려드리는 것입니다. 배부르게 먹고 즐거워할 때에 그것을 주신 하나님 앞에서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축제와도 같은 기쁨

    이 예배에는 축제와 기쁨이 강조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하신 자들이 물질적인 복을 누리면서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 즐거워하라는 것은 명령입니다(7, 12, 18절). 즐거워해도 된다가 아닙니다. 즐거워하라입니다. 이것은 강한 표현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것으로 말미암아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기를 원하십니다. 이런한 하나님의 마음은 예수님에게서도 나타납니다. 예수님께서는 먹고 즐거워하는 것에 대해서 놀랍도록 자유로우셨습니다. 예수님의 이러한 모습은 신명기 본문과 잘 조화됩니다. 예수님께서 자유롭게 누리신 즐거움은 나중에 교회 공동체로 계승됩니다(행 2:44-27). 그리고 이것은 성찬과도 연결이 됩니다. 성찬은 하나님께서 행하신 놀라운 구속을 기념하면서 천국 잔치를 즐기는 의미를 가집니다. 

    소외되는 사람 없이

    이 즐거움은 하나님 앞에서의 즐거움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께 속한 모든 자가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 남종과 여종도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12절). 레위인도 함께 즐거워해야 합니다(12, 19절). 예배는 이렇게 약하다고 없다고 무시되거나 소외되는 사람이 없이 함께 즐거워하는 자리입니다. 이러한 모습은 우상숭배와 대조되는 모습입니다. 

    피에 대하여

    13   너는 삼가서 네게 보이는 아무 곳에서나 번제를 드리지 말고
    14   오직 너희의 한 지파 중에 여호와께서 택하실 그 곳에서 번제를 드리고 또 내가 네게 명령하는 모든 것을 거기서 행할지니라
    15   그러나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복을 따라 각 성에서 네 마음에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 그 고기를 먹을 수 있나니 곧 정한 자나 부정한 자를 막론하고 노루나 사슴을 먹는 것 같이 먹으려니와
    16   오직 그 피는 먹지 말고 물 같이 땅에 쏟을 것이며
    17   너는 곡식과 포도주와 기름의 십일조와 네 소와 양의 처음 난 것과 네 서원을 갚는 예물과 네 낙헌 예물과 네 손의 거제물은 네 각 성에서 먹지 말고
    18   오직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택하실 곳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너는 네 자녀와 노비와 성중에 거주하는 레위인과 함께 그것을 먹고 또 네 손으로 수고한 모든 일로 말미암아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되
    19   너는 삼가 네 땅에 거주하는 동안에 레위인을 저버리지 말지니라

     

    13절 이하에는 앞에서 나온 내용이 나오면서 심화됩니다. 심화되는 내용은 피에 대한 내용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각 성에서 원하는 대로 가축을 잡아서 그 고기를 먹을 수 있었습니다(15절). 그러나 피를 먹으면 안 되었습니다(16절). 왜냐하면 피는 생명을 의미하기 때문입니다(12:23; 창 9:4-5; 레 17:11, 14). 

    생명과 먹는 것

    하나님은 모든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생명을 소중하게 다루라고 하십니다. 생명이 먹는 것에 쓰이는 것을 막으십니다. 생명은 생명으로만 속할 수 있다고 하심으로(창 9:5; 레 17:11) 먹는 것보다 생명가치가 훨씬 크다는 것을 알려주셨습니다. 좀 어려운 이야기입니다만 생명은 물질가치를 초월한 것에 속해 있습니다. 아담에게 선악을 알게 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고 하신 것도 같은 맥락입니다. 선악을 아는 일은 생명과 연결되는 일입니다. 이것은 먹는 것으로 해결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돌려야 할 것은 곧 공동체가 함께 누리는 것임

    하나님께서는 원하는 대로 고기를 먹을 수 있도록 하셨지만 마음대로 먹지 말아야 할 고기도 가르쳐주셨습니다(17절). 바로 처음 난 것과 서원을 갚는 예물과 낙헌 예물과 손의 거제물은 마음대로 먹으면 안 되었습니다. 이것들은 하나님께 돌려야 하는 것들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 돌리는 것은 내가 임의로 처분할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온 공동체가 함께 하나님 앞에서 즐거워하는데 쓰이는 것들입니다(18-19절). 여이웃 사랑과 하나님 사랑은 이렇게 만납니다. 하나님의 명령을 마음에 간직하고 깨달아 믿고 행하면 하나님을 사랑하게 되고 자연스럽게 이웃을 사랑하게 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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