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8장 15-35절 | 하나님 없는 자가 받는 저주의 핵심과 저주의 기능

2024. 4. 14. 11:53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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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명기 28:15-35

    찬송가 274장 나 행한 것 죄뿐이니


    15-68절의 구조

    15절 이하에서는 언약 조항을 어겼을 때 어떤 저주를 받게 되는가에 대해서 나옵니다. 15-68절의 구조는 다음과 같습니다.

    a. 23-24절: 농사의 재앙
     b. 25-26절: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스라엘
      c. 27절: 치료할 수 없는 종기
       d. 28-29상: 정신병 / 시각장애 / 보이는 것
        e. 29 하: 착취 당함
         f. 30-33상:  열매를 누리지 못함
        e'. 33하: 착취 당함
       d'. 34절: 정신병 / 시각장애 / 보이는 것
      c'. 35절: 치료할 수 없는 종기
     b'. 36-37절: 혐오의 대상이 되는 이스라엘
    a'. 38-42절: 농사의 재앙

     

    저주의 핵심

    이 저주에서 핵심은 30-33절입니다. 이 구절에 나오는 저주는 열심히 일해서 거둔 성과를 누리지 못하는 저주입니다. 이 저주 안에 인생의 비참함이 담겨 있습니다. 아무리 성공한다해도 죽으면 다 허사인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 없는 인생의 비참함입니다. 이것이 바로 모든 저주의 핵심입니다. 

    인생의 끝

    모든 인생에는 끝이 있습니다. 끝이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재림하실 때 살아서 주님을 맞는 사람은 죽음을 면합니다. 하지만 이생은 그 때 끝납니다. 그렇기 때문에 죽든지 죽지 않든지 이생은 언젠가는 끝납니다. 그것을 개인적인 종말이라고 합니다. 모든 인생은 다 각각의 종말을 맞이하게 되어 있습니다. 종말을 맞이할 때 모든 인생은 자기가 애착을 가졌던 모든 것들을 두고 떠나야 합니다. 그것이 돈이든지 명예든지 권력이든지 가족이든지 그 어떤 것이든 가지고 갈 수 없습니다. 그 때까지 누렸던 모든 것들과 이별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

    하나님 없는 인생에게 그 이별은 굉장히 허무하게 다가옵니다. 왜냐하면 그가 추구했던 모든 것들이 하나님 없이 추구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위하여 애쓴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 없이 노력했던 모든 것은 다 날아갑니다. 반면 믿는 자가 하나님을 위하여 행한 것은 마지막에 빛을 발합니다. 왜냐하면 그것은 영원으로 이어지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 있는 인생은 무엇을 해도 복이요, 하나님 없는 인생은 무엇을 해도 저주입니다. 

    이스라엘과 교회

    이스라엘 백성들 중에서 남은 자들은 이 저주를 피했습니다. 하지만 끝까지 하나님께 반역한 자들은 이 저주를 그대로 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들은 점점 낮아지고 꼬리가 되었습니다(43-44절). 하지만 교회는 점점 높아져서 만물 위에 있게 되었습니다(28:12-13). 이것이 바로 반전입니다. 

    믿음과 순종

    15   네가 만일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아니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과 규례를 지켜 행하지 아니하면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를 것이니
    16   네가 성읍에서도 저주를 받으며 들에서도 저주를 받을 것이요
    17   또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저주를 받을 것이요
    18   네 몸의 소생과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소와 양의 새끼가 저주를 받을 것이며
    19   네가 들어와도 저주를 받고 나가도 저주를 받으리라

    여호와의 말씀을 순종하지 않는다는 것은 하나님을 믿지 않는다는 뜻입니다(15절). 순종은 믿음의 결과입니다. 믿어야 순종할 수 있습니다. 또한 순종은 사랑의 표현입니다. 그러므로 순종은 인격적인 관계에서 나오는 것입니다. 관계가 틀어지면 순종할 수 없게 됩니다. 그러므로 불순종은 하나님을 향한 배반의 결과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 되는 것입니다. 

    행함과 언약관계

    하나님 없는 인생은 무엇을 해도 저주를 받습니다(16-19절). 어디를 가나 저주를 받고 그의 집에 있는 그릇도 저주를 받고 그에게서 나오는 모든 열매도 저주를 받습니다. 들어가도 저주요 나가도 저주입니다. 중요한 것은 그가 무엇을 하느냐가 아닙니다. 그가 하나님과의 언약 관계 안에 있느냐 밖에 있느냐입니다. 

    언약관계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을까

    그러면 언약관계 안에 있었던 사람이 떨어져 나갈 수 있을까요? 넓게 보면 그럴 수 있지만 좁게 보면 그럴 수 없습니다. 넓게 본다는 것은 표면적으로 본다는 것입니다. 당시 이스라엘 백성들 안에 있으면서 언약식에 참여했던 모든 사람은 넓게 보면 모두 다 언약 관계 안에 들어온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좁게 보면 그들 중에는 택함을 받은 사람도 있고 아닌 사람도 있습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언약 관계 안으로 들어왔다는 것이 택함을 받았다는 뜻이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가는 것은 불가능합니다.

     

    하지만 그것이 외형적으로 이스라엘이나 교회에 소속되어 있다는 것이면 거기에서 떨어져 나갈 수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적그리스도를 가리켜서 "우리에게서 나갔으나 우리에게 속하지 아니하였나니"라고 말합니다(요일 2:19). 즉 그리스도를 대적하는 자들이 택함을 입은 자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전에는 우리와 함께 있었으나 나간 것을 보니 원래부터 우리에게 속한 사람들이 아니라는 뜻입니다. 반대도 성립합니다. 아직 언약 백성 안에 들어오지는 않았지만 하나님께서 택하신 자가 있을 수 있습니다. 복음 전도를 열심히 해야 하는 이유가 바로 이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전도의 미련한 것으로 그들을 구원하시기를 기뻐하셨습니다(고전 1:21).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거룩한 복음의 강설을 전하기 위해 힘써야 합니다. 

     

    하나님 없는 자가 받는 저주의 핵심과 저주의 기능

    저주의 기능

    혹자는 택자들이 떨어져 나가는 것이 불가능하다면 이런 저주 선포는 쓸데 없는 것이 아니냐라고 생각하기도 합니다. 그렇지 않습니다. 저주 선포는 매우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아직 하나님을 알지 못한 사람이나 또는 하나님을 떠난 사람이 이 말씀을 듣고 뉘우쳐 회개하고 하나님께로 돌아올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택함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택함을 받지 못한 사람들에게도 이 말씀은 중요합니다. 왜냐하면 그들은 이 말씀을 듣고도 지나쳐 버리기 때문입니다. 뉘우쳐 회개하지 않습니다. 그렇게 해서 자기들이 저주 받은 인생임을 스스로 드러냅니다. 그러므로 이 말씀을 더 뼈아프게 듣는 사람은 택함을 받은 주의 백성입니다. 이것 또한 역설입니다. 저주를 받을 사람이 아니라 저주를 피할 사람이 이 저주의 말씀에 더 절절하게 반응하기 때문입니다. 

    그를 잊으므로

    20   네가 악을 행하여 1)그를 잊으므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여호와께서 저주와 혼란과 책망을 내리사 망하며 속히 파멸하게 하실 것이며
    21   여호와께서 네 몸에 염병이 들게 하사 네가 들어가 차지할 땅에서 마침내 너를 멸하실 것이며
    22   여호와께서 폐병과 열병과 염증과 학질과 한재와 풍재와 썩는 재앙으로 너를 치시리니 이 재앙들이 너를 따라서 너를 진멸하게 할 것이라

     

    언약 백성이 하나님을 잊는 것이 가장 큰 악입니다(20절). 언약 백성은 모든 면에서 하나님을 생각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살아야 합니다. 언약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잊지 않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항상 기억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나의 인생의 목적이심을 알고 하나님을 추구하는 것입니다.

     

    율법을 지켜야 한다, 어떤 원리를 지켜야 한다, 그래야 인생이 평안하고 복을 받는다가 아닙니다. 율법을 지키려면 알아야 합니다. 그러면 왜 율법을 알아야 하느냐, 하나님을 알기 위해서 알아야 합니다. 왜 알아야 하느냐, 왜 지켜야 하느냐가 가장 중요합니다. 그 "왜"의 자리에 내가 있으면 안 됩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께서는 자기를 부인하라고 가르쳐주셨습니다. 예수님을 따라가려면 자기를 부인해야 합니다. "왜"의 자리에 내가 아니라 하나님께서 계셔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거기에 계셔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모든 길이 혼란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망하는 것입니다(20절 하). 

    생명이 위태해짐

    망하는 현상에서 가장 먼저 나타나는 것은 몸에 병이 들고 생명이 위태해지는 것입니다. 사람의 생명뿐만이 아닙니다. 한재와 풍재는 작물의 생명에 해를 끼칩니다(22절). 이렇게 되는 이유는 생명의 근원에서 떨어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생명의 근원이십니다. 22절에는 일곱 가지 질병이 나옵니다. 일곱은 완전을 상징하는 숫자입니다. 즉 질병이 차고 넘친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는 진멸입니다. 

    예수님의 고통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께서 받으신 저주가 바로 이런 저주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에게서 떨어져서 혼란과 파멸(20절)과 진멸(22절)로 들어가셨습니다.  그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는 고통입니다. 예수님께서 왜 이 고통을 받으셨을까요? 우리가 하나님께 반역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 반역하는 죄, 즉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죄를 우리는 항상 경계해야 합니다. 

    땅에 내리는 저주

    23   네 머리 위의 하늘은 놋이 되고 네 아래의 땅은 철이 될 것이며
    24   여호와께서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를 네 땅에 내리시리니 그것들이 하늘에서 네 위에 내려 마침내 너를 멸하리라

     

    이스라엘 땅은 하나님께서 비를 내려주셔야만 농사를 지을 수 있는 땅입니다(11:10-12). 그 땅에 비가 적절하게 온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돌보아 주신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그 땅에서 누리는 모든 것들은 직접적으로 하나님과 관련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어그러지면 당장 비가 오지 않습니다. 하늘이 놋문으로 닫힌 것처럼 된다고 합니다. 하늘은 비를 내리지 않고 땅은 굳어집니다. 얼마나 딱딱하게 굳어지냐면 철과 같이 된다고 합니다(23절). 비 대신에 티끌과 모래가 땅에 내립니다. 그런데 그것이 하늘로부터 내립니다(24절). 그렇게 살 수 없는 땅이 되어 버립니다. 땅에서 무슨 일이든지 할 수 있다는 것은 하늘에서 하나님께서 돌보아주신다는 뜻입니다. 하늘에서 돌봐주시지 않으시면 땅에서 그 어떤 일도 행할 수 없습니다. 

    땅을 빼앗김

    25   여호와께서 네 적군 앞에서 너를 패하게 하시리니 네가 그들을 치러 한 길로 나가서 그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할 것이며 네가 또 땅의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고
    26   네 시체가 공중의 모든 새와 땅의 짐승들의 밥이 될 것이나 그것들을 쫓아줄 자가 없을 것이며
    27   여호와께서 애굽의 종기와 치질과 괴혈병과 피부병으로 너를 치시리니 네가 치유 받지 못할 것이며
    28   여호와께서 또 너를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으로 치시리니
    29   맹인이 어두운 데에서 더듬는 것과 같이 네가 백주에도 더듬고 네 길이 형통하지 못하여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할 뿐이리니 너를 구원할 자가 없을 것이며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하고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하나님께서 주신 것도 빼앗깁니다. 그것이 25절에 나옵니다. 적군이 쳐들어오고 이스라엘은 모든 나라 중에 흩어지게 됩니다(25절).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나는 것입니다. 하나님 없이 하나님께서 주시는 좋은 것들을 누리려고 하는 모든 시도는 다 좌절됩니다. 

    비참한 죽음과 애굽의 질병

    26절은 그들에게 죽음이 엄습한다고 합니다. 얼마나 비참한 죽음인지 시체를 땅에 묻어 장사할 사람도 없게 되는 죽음입니다. 또한 애굽의 모든 질병이 이스라엘을 따라와서 친다고 합니다(27절). 이스라엘은 애굽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애굽에서 해방되었다는 것은 죄와 사망 세력에게서 해방되었다는 의미입니다. 질병은 죄와 사망세력에 속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애굽의 질병에서도 해방되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질병이 다시 임한다고 합니다. 신명기 7장에 보면 하나님의 법도를 지켜 행하면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인애를 베푸셔서 애굽의 모든 질병이 하나도 걸리지 않게 하시겠다고 합니다(7:12, 15). 그러나 하나님을 잊어버리면 그 반대가 됩니다. 

    정신병과 혼란

    미치는 것과 눈 머는 것과 정신병도 여호와를 떠난 사람의 증상입니다(28절). 또한 맹인이 되어서 갈 길을 몰라 방황하고 항상 압제와 노략을 당하는 것도 여호와를 떠난 사람이 받는 재앙입니다(29절). 이 말씀은 현대인에게 더 크게 다가오는 말씀입니다. 물질적으로는 풍요롭지만 어느 때보다 정신적인 질병이 많습니다. 어디로 가야할지 무엇을 해야할지 혼란스럽습니다. 이런 증상은 어느 시대에나 있었지만 현대에 더욱 두드러집니다. 믿는 자들과 교회는 이런 시대에 빛을 비추어야 합니다. 

    영혼의 고통

    30   네가 여자와 약혼하였으나 다른 사람이 그 여자와 같이 동침할 것이요 집을 건축하였으나 거기에 거주하지 못할 것이요 포도원을 심었으나 네가 그 열매를 따지 못할 것이며
    31   네 소를 네 목전에서 잡았으나 네가 먹지 못할 것이며 네 나귀를 네 목전에서 빼앗겨도 도로 찾지 못할 것이며 네 양을 원수에게 빼앗길 것이나 너를 2)도와 줄 자가 없을 것이며
    32   네 자녀를 다른 민족에게 빼앗기고 종일 생각하고 찾음으로 눈이 피곤하여지나 네 손에 힘이 없을 것이며
    33   네 토지 소산과 네 수고로 얻은 것을 네가 알지 못하는 민족이 먹겠고 너는 항상 압제와 학대를 받을 뿐이리니

     

    30-33절이 저주의 핵심입니다. 이 저주는 수고해서 얻은 것을 누리지 못하는 저주입니다. 그 어느 저주보다 허무하고 비참한 저주입니다. 이것은 하나님 없는 자가 받는 저주의 본질을 알려줍니다. 

     

    이 저주 목록을 읽으면 깊은 영혼의 고통이 느껴집니다. 얼마나 원통할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런 고통을 묘사하시면서 "슬피 울며 이를 갈리라(마 22:13; 24:51; 25:30; 눅 13: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옥은 이런 영혼의 고통을 당하는 곳입니다. 이 고통은 육체가 받는 고통보다 훨씬 클 것입니다. 육체의 고통도 이루 말할 수 없을 것입니다. 하지만 영혼의 고통은 훨씬 심할 것입니다. 

     

    하나님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끊임없이 회개해야 합니다. 사람의 죄성은 조금이라도 틈이 보이면 올라옵니다. 죽인 것 같은 그 자리에서 살아나서 공격합니다. 하나님을 향하게 하지 못하고 마음을 끌어내립니다. 자기 자신을 향하게 합니다. 이런 싸움은 죽을 때까지 계속되는 싸움입니다. 이 싸움에 이 말씀은 큰 힘이 됩니다. 우리로 하여금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의지하게 합니다. 자기를 부인하게 합니다. 

    기계적 적용은 하지 말아야 함

    34   이러므로 네 눈에 보이는 일로 말미암아 네가 미치리라
    35   여호와께서 네 무릎과 다리를 쳐서 고치지 못할 심한 종기를 생기게 하여 발바닥에서부터 정수리까지 이르게 하시리라

     

    34-35절은 28-29절에 상응합니다. 보이는 것이 하도 비참하여 미치게 된다고 합니다(34절). 종기가 발바닥에서 정수리까지 난다고 합니다(35절). 욥은 이런 고통을 당했습니다. 욥의 친구들은 그가 종기로 고통당하는 것을 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은 욥이 하나님께 벌을 받는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저주 목록 중 하나를 욥이 당했기 때문입니다. 이것을 볼 때 저주 목록에 해당하는 것이 인생 가운데 생긴 것으로 그가 하나님께 죄를 범했을 것이라고 섣불리 판단하면 안 됩니다. 당사자는 하나님 앞에서 본인을 돌아보고 하나님께 더 가까이 나아가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하지만 주변 사람이 섣불리 그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판단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깊기 때문입니다. 

    저주의 목적

    이 모든 저주의 조항들은 기계적으로 적용되지 않습니다. 저주를 받은 사람이라도 잘 살 수 있고 복 받은 사람이 잘못될 수 있습니다. 앞에서 설명했듯이 이 목록을 절실하게 받아들이는 사람들은 저주 받은 사람들이 아니고 복 받은 사람들입니다. 이 저주 목록은 정해진 운명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잊어버리는 것이 얼마나 위험한지를 알려주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저주의 목적은 이 저주를 피하게 하는 데에 있습니다. 

    저주를 피한 우리들

    믿는 우리는 모두 율법의 저주에서 해방되었습니다. 이 저주를 피했습니다. 저주를 피해서 예수 그리스도께 우리의 삶을 의탁했습니다. 예수님을 주로 영접하여 주님으로 모셨습니다. 그 과정에서 우리는 예수님께서 어떤 저주를 당하셨는지를 보았습니다. 우리를 대신하여 저주 당하신 은혜를 목격하고 경험했습니다. 그렇게 해서 우리는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에 감사와 찬양을 드리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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