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7장 1-26절 | 율법을 돌에 새기고 저주 목록을 선포함

2024. 4. 12. 16:2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신명기 27:1-26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11장과 연결되는 27장

27장은 11장과 연결됩니다. 26장 16절은 12장 1절과 수미쌍관을 이루었습니다. 이 구조는 12장부터 26장이 언약조항을 말씀하는 한 단락이라는 뜻입니다. 이처럼 11장과 27장은 에발산 의식을 언급한다는 점에서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11장에서 모세는 "내가 오늘 복과 저주를 너희 앞에 두나니 너희가 만일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하는 너희의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들으면 복이 될 것이요 ... 듣지 아니하고 ... 다른 신들을 따르면 저주를 받으리라(11:26-27)"라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그리심 산에서는 축복을 선포하고 에발 산에서는 저주를 선포하라고 했습니다(11:28). 그렇게 하고 12장에서 26장까지 세세한 언약 조항을 말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언약 조항을 지키는 것은 저주를 피하고 복을 선택하는 것이었습니다. 모세는 언약 조항을 다 말한 다음에 다시 에발 산에서 저주하는 의식을 하라고 합니다. 이 의식은 백성들의 마음에 하나님의 말씀을 새겨 넣기 위한 것입니다. 

영원한 말씀

1   모세와 이스라엘 장로들이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명령을 너희는 다 지킬지니라
2   너희가 요단을 건너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 들어가는 날에 큰 돌들을 세우고 석회를 바르라
3   요단을 건넌 후에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위에 기록하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 곧 젖과 꿀이 흐르는 땅에 네가 들어가기를 네 조상들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말씀하신 대로 하리라
4   너희가 요단을 건너거든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이 돌들을 에발 산에 세우고 그 위에 석회를 바를 것이며
5   또 거기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제단 곧 돌단을 쌓되 그것에 쇠 연장을 대지 말지니라
6   너는 다듬지 않은 돌로 네 하나님 여호와의 제단을 쌓고 그 위에 네 하나님 여호와께 번제를 드릴 것이며
7   또 화목제를 드리고 거기에서 먹으며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즐거워하라
8   너는 이 율법의 모든 말씀을 그 돌들 위에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할지니라

 

하나님의 율법은 영원합니다. 언약이 대대로 지속되듯이 언약 조항은 영원히 보존되어야 합니다. 율법이 보존되어야 그것을 보고 자기의 의무를 상기시킬 수 있습니다. 모세는 이스라엘 장로들(1절)과 레위 제사장들(9절)과 함께 백성들에게 명령합니다. 모세는 곧 퇴장할 것입니다. 하지만 율법, 즉 언약 조항들은 보존되고 시행될 것입니다. 이것을 시행하는 사람들은 대를 이어 이스라엘을 다스릴 장로들과 제사장들입니다. 

명료한 말씀

하나님의 율법은 명료합니다. 모든 율법을 분명하고 정확하게 기록해야 합니다(8절). 여기에 구분하다라는 뜻의 동사 바에르(בָּאַר)가 사용됩니다. 이 말은 이미 1장 5절에서 모세가 온 율법을 어떻게 "설명하고", "분명히 했는지" 묘사할 때 사용되었습니다. 율법은 잘 구분되어 분명하게 설명되어야 합니다. 뭉뚱그리거나 분명하지 않게 만들면 안 됩니다. 언약 법전은 누구나 접근할 수 있으야 합니다. 동시에 모두가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래야 법을 잘 구분해서 지킬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현대에 법이 소수의 특권처럼 되어버린 것과 대조됩니다. 하나님의 법은 모든 사람들이 접근할 수 있어야 하고 구분하고 이해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일을 하라고 세운 사람들이 바로 제사장들입니다. 

때와 장소

이스라엘 백성들은 율법을 새기는 의식을 요단을 건너는 때에 약속의 땅에서(2절) 수행해야 합니다. 요단을 건너는 때는 하나님께서 이스라엘과 맺으신 언약이 성취되는 때입니다. 약속의 성취를 경험한 때인 것입니다. 그 때에 언약 조항에 대해서 헌신하는 것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좀더 깊이 생각하는 기회가 될 것입니다. 이 의식을 수행하는 장소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입니다(2절). 젖과 꿀이 흐르는 땅입니다(3절). 이 땅에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들어갔습니다(3절 하). 약속하신 땅을 드디어 밟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어떨까요? 그들은 몸소 언약에 신실하신 하나님을 경험하면서 그 땅에 서 있습니다. 아마도 거기에 서 있다는 것 자체가 그들에게 큰 의미로 다가올 것입니다. 언약 조항을 새기는 의식은 이러한 은혜의 때에 은혜의 장소에서 수행되는 의식입니다. 언제나 은혜가 먼저입니다. 순종은 그 다음입니다. 

예배의 맥락에서

이 의식은 예배의 맥락에서 거행됩니다(5-7절). 제단을 쌓고 예배를 드려야 합니다. 그런데 제단에 쇠 연장을 대면 안 됩니다. 출애굽기 20장 24-25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토단을 쌓거나 다듬지 않은 돌로 제단을 쌓으라고 명령하십니다. 토단을 쌓으라는 것은 인간이 티끌임을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다듬지 않은 돌로 쌓으라는 것은 인간의 공교한 재주나 가공 솜씨로 자기가 티끌인 것을 넘어설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기서도 마찬가지입니다. 그 땅에 있는 돌의 모양 그대로 잘 맞추어서 제단을 쌓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만드신 그대로의 돌을 사용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뭔가를 드릴 때에는 하나님께 받은 그대로 드려야 합니다. 

번제와 화목제,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

6절에는 번제를 말씀합니다. 번제는 온전히 하나님께 바친다는 의미입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는 제사입니다. 7절에는 화목제를 말씀합니다. 화목제는 하나님께 제사를 드리면서 이웃과 함께 즐거워하는 제사입니다. 번제가 수직적인 제사라면 화목제는 수평적인 제사입니다. 이 제사들은 언약의 의미가 하나님 사랑과 이웃 사랑에 있음을 알려줍니다. 언약 조항의 핵심이 바로 하나님 사랑, 이웃 사랑입니다. 

돌에 율법을 새긴 것의 의미

이 모든 언약 조항은 큰 돌에 새겨서 사람들이 볼 수 있도록 세워 놓았습니다. 사람들이 다 보도록 세워 놓은 것입니다. 눈에 잘 띄도록 회를 칠하고 거기에다가 새겨 놓았습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이 언약 조항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이 율법의 말씀이 사람 바깥에 있었기 때문입니다. 언약 조항을 지키지 못한 결과 이들은 다 저주를 받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갔습니다. 그 때 하나님께서는 이들에게 새 언약을 주셨습니다. 돌에 새겨졌던 언약 조항은 이제 마음에 새겨집니다(6:6). 돌 같은 마음에서 살 같은 마음이 되고 영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게 됩니다(겔 36:25-27). 성령께서 오셔서 말씀을 깨닫게 하시고 예수님을 믿게 하심으로 새 언약은 성취되었습니다. 우리가 바로 그런 사람들입니다. 

신분에 행동양식이 따라옴

9   모세와 레위 제사장들이 온 이스라엘에게 말하여 이르되 이스라엘아 잠잠하여 들으라 오늘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이 되었으니
10   그런즉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여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 명령과 규례를 행할지니라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백성입니다(9절 하). 이것이 그들의 정체성입니다. 그들이 "여호와의 백성"이기 때문에 그들은 그들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해야 합니다(10절). 율법 준수보다 정체성이 먼저입니다. 신분이 먼저이고 순종이 나중인 것입니다. 그들이 하나님의 친 백성이기 때문에 하나님을 예배합니다(5-7절). 하나님의 명령을 잘 압니다(8절). 그 명령을 그대로 지켜 행합니다. 이 모든 것은 그들이 하나님의 백성이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뒤따라 오는 것입니다. 

 

우리가 누구인지가 먼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친백성입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과 우리는 특수관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알고 모든 일을 하나님의 뜻대로 행해야 합니다. 사람의 신분이 행동양식을 결정하듯이 하나님의 백성이라는 우리 신분이 우리의 행동양식을 결정합니다. 

그리심 산과 에발 산

11   모세가 그 날 백성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12   너희가 요단을 건넌 후에 시므온과 레위와 유다와 잇사갈과 요셉과 베냐민은 백성을 축복하기 위하여 그리심 산에 서고
13   르우벤과 갓과 아셀과 스불론과 단과 납달리는 저주하기 위하여 에발 산에 서고

 

에발 산과 그리심 산은 세겜과 가깝습니다. 에발 산은 북쪽에 있고 그리심 산은 남쪽에 있습니다. 세겜은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처음으로 가나안 땅을 주시겠다고 약속하신 장소(창 12:6-7)입니다. 나중에 여호수아 시대에는 언약을 맺은 장소입니다(수 24:25). 오늘 본문에 기록된 의식은 여호수아의 가나안 정복 전쟁 때 거행되었습니다(수 8:30-35). 

세겜

세겜은 교통의 요지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겜을 지나갈 때 북쪽으로는 에발 산, 남쪽으로는 그리심 산이 우뚝 서 있는 골짜기를 지나야 했습니다. 거기를 지날 때 그들은 축복과 저주를 생각했을 것입니다.

축복과 저주

축복하기 위해서 서는 지파와 저주하기 위해서 서는 지파는 각각 여섯 지파씩입니다. 그렇게 해서 열두 지파가 축복 편과 저주 편에 서서 축복과 저주를 선포했습니다. 축복이냐 저주냐를 결정하는 것은 하나님과의 언약을 잘 지키느냐 아니냐입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잘 지키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사람입니다. 이 사람은 하나님과 믿음의 관계가 잘 맺어진 사람입니다. 

열두 지파와 하나님 백성

여기 나오느 열두 지파는 레위가 포함된 열두 지파입니다. 요셉을 두 지파로 나누지 않은 지파입니다. 축복 편에 선 지파는 레아의 아들들 중에서 장자 르우벤과 막내 스블론을 뺀 중간 네 아들들입니다. 그리고 라헬의 아들들인 요셉과 베냐민입니다. 저주 편에 선 지파는 레아의 아들들 중에서는 르우벤과 스불론이고 실바의 아들들인 갓과 아셀, 빌하의 아들들인 단과 납달리입니다. 여기에 있는 열두 지파는 하나님의 백성 전체를 상징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열두 제자들에게 "세상이 새롭게 되어 인자가 자기 영광의 보좌에 앉을 때에 나를 따르는 너희도 열두 보좌에 앉아 이스라엘 열두 지파를 심판하리라(마 19: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사도 바울은 성도가 세상을 판단할 것이라고 합니다(고전 6:2). 이와 같이 하나님의 백성들은 복과 저주를 선포하고 심판하고 증언하는 사람들입니다. 

저주 목록

14   레위 사람은 큰 소리로 이스라엘 모든 사람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15   장색의 손으로 조각하였거나 부어 만든 우상은 여호와께 가증하니 그것을 만들어 은밀히 세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응답하여 말하되 아멘 할지니라
16   그의 부모를 경홀히 여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7   그의 이웃의 경계표를 옮기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8   맹인에게 길을 잃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9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0   그의 아버지의 아내와 동침하는 자는 그의 아버지의 하체를 드러냈으니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1   짐승과 교합하는 모든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2   그의 자매 곧 그의 아버지의 딸이나 어머니의 딸과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3   장모와 동침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4   그의 이웃을 암살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5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26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라 할 것이요 모든 백성은 아멘 할지니라

 

14절에서 26절까지는 저주 목록이 나옵니다. 이 저주목록은 공통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여기 나오는 모든 죄가 은밀하게 행하는 죄라는 것입니다. 여기 나오는 죄들은 다른 사람들 모르게 지을 수 있는 것들입니다. 이런 죄들을 나열하면서 저주를 선포합니다. 은밀한 죄를 드러내 놓고 말하면서 거기에 저주를 선포하는 것입니다. 왜 이렇게 할까요? 그 이유는 아무리 은밀하게 죄를 지어도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다 아신다는 것을 모든 백성에게 상기키시기 위해서입니다. 은밀한 죄는 잘 들키지 않습니다. 들키지 않으면 처벌을 받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 친히 내리시는 저주를 피할 수는 없습니다. 

아멘할지니라

열두 가지 죄를 나열하면서 맨 마지막에 "모든 백성은 아멘할지니라"로 끝납니다(15-26절). 이 말씀에 따라서 "아멘"할 때 이 목록에 있는 악을 행한 사람은 자기 스스로 자기에게 저주를 선언한 것이 됩니다. 저주의 선포와 아멘이 이스라엘 공예배의 한 순서를 이루었다면 이 순서는 예배 드리는 사람들에게 찔림과 도전을 주었을 것입니다. 오늘날 교회는 이와 비슷하게 십계명으로 교독을 하기도 합니다. 효과는 비슷했을 것입니다. 

율법과 그리스도

신명기 21장 23절과 갈라디아서 3장 13절은 나무에 달린 자마다 저주 아래 있는 자라고 말씀합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를 우리 주님께서 대신 받으셨섭니다. 여기에 나오는 저주 목록은 우리의 은밀한 죄를 드러냅니다. 죄의 결과 우리가 저주를 받을 수밖에 없음을 시인하게 합니다. 저주를 시인한 사람은 구원의 길을 찾습니다. 구원의 길을 찾아 예수 그리스도께로 오게 됩니다. 예수님을 영접하고 의지하게 됩니다. 율법의 저주는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께로 향하게 합니다(갈 3:24). 

저주목록 순서

이 저주목록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가치를 두는 것을 순서대로 나열합니다. 가장 크게 가치를 두어야 할 언약의 의무는 오직 여호와 하나님께만 충성하는 것입니다(15절). 이 저주 목록은 첫째 계명과 둘째 계명을 포함합니다. 이어서 가치를 두어야 할 언약 의무는 부모 공경입니다(16절). 부모는 문자 그대로 부모를 뜻하면서 동시에 공동체 전체를 의미합니다. 공동체를 소중히 여겨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는 복과 저주를 공동체 전체에 내리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으로 가치를 두어야 할 언약 의무는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잘 지키는 것입니다(17절).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은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터전입니다.

 

그 다음 언약 의무는 사회적 약자에 대한 의무입니다(18-19절). 여기서는 맹인이 등장합니다. 맹인은 눈이 보이지 않는 사람입니다. 내가 보인다고 보이지 않는 사람을 이용한다거나 길을 잃게 하는 것에 대해서 저주로 경고합니다. 맹인은 보지 못하는 모든 사람을 포함합니다. 영적으로 눈이 어두운 사람이나 믿음이 연약한 작은 자들을 다 포함합니다. 그 다음으로는 객이나 고아나 과부의 송사를 말씀합니다. 맹인은 보지 못하는 사람이고 객이나 고아나 과부는 땅이 없거나 보호자가 없는 사람들입니다. 마땅히 있어야 할 것들이 없기 때문에 이들은 억울함을 당하기 쉬운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이들을 억울하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이들의 기업이시고 보호자이시기 때문입니다.

 

그 다음 언약 의무는 성적인 정결함에 관한 것입니다(20-23절). 성적인 정결함은 가족 공동체를 지키기 위한 것입니다. 생명활동을 지키기 위한 것이기도 합니다.

 

그 다음 언약 의무는 사람의 생명에 관한 의무입니다(24-25절). 아무도 모르게 이웃을 죽이거나(24절) 무죄한 자를 죽이려고 뇌물을 받는 것(25절)은 잘 드러나지 않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보시고 그런 자에게 저주를 내리십니다. 아합과 이세벨이 그런 죄를 범했고 저주를 받았습니다. 

 

저주 목록을 선포함

 

이 모든 저주 목록은 여호와 하나님께 충성할 것인가 아니면 거역하여 우상을 따를 것인가라는 근본 질문과 연관됩니다. 자기의 하나님 여호와께 충성하는 사람은 우상을 가증히 여길 것입니다(15절). 그런 사람은 그 모든 율법의 말씀을 실행할 것입니다(26절). 그러므로 저주 목록의 처음과 마지막이 하나로 통일됩니다.

저주에서 축복으로

하나님을 믿고 의지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사랑하여 모든 율법의 말씀을 달게 여기면서 지켜 행할 것입니다. 그런데 누가 그렇게 다 지킬 수 있을까요? 누가 하나님을 그렇게 사랑할 수 있을까요? 26절의 말씀은 우리를 좌절하게 합니다. 이 율법의 말씀을 실행하지 아니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니라라고 한다면 그 누구도 저주를 피할 수 없습니다. 모든 사람들은 율법의 저주 아래 있습니다. 이 저주를 피할 길은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길밖에는 없습니다. 예수님께서 모든 율법의 말씀을 다 지켜 실행하셨습니다. 게다가 내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셨습니다. 우리는 그 안에서 복을 누립니다. 우리가 받을 저주를 대신 받으신 예수님께서는 우리에게 한없는 복을 내려 주십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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