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8장 1-14절 | 축복과 저주의 역설, 복음으로 나타나난 반전

2024. 4. 13. 08:1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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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명기 28:1-14

찬송가 242장 황무지가 장미꽃같이


축복과 저주

28장에는 축복과 저주가 나옵니다. 이 축복과 저주는 언약 조항에 엄숙함과 구속력을 부여합니다. 언약을 어길 때 얼마나 혹독한 저주가 임할 것인지를 인지하게 합니다. 신명기 28장에 기록된 저주는 많은 부분 고대 근동 계약에 등장하는 저주와 일치합니다. 

순종과 복

대부분의 사람들은 2-14절의 물질적 번영에 대한 약속을 읽으면서 우리가 하나님의 언약 조항을 잘 지켜 행하면 이 일이 나에게 이루어질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신명기는 물질적인 성공이 공로와 상관없다고 말씀합니다(8:17; 9:4-6 참조). 하나님의 백성들은 이미 복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아브라함에게 하신 약속과 언약 관계가 이미 그들에게 복입니다. 복은 이미 주어졌습니다. 언약 백성은 그것을 누리기만 하면 됩니다. 언약 조항을 지켜야지 복을 받는 것이 아닙니다. 복을 받았는데 그 복을 어떻게 누리느냐 언약 조항을 지킴으로 누린다 이것이 맞습니다. 복 받을 자격을 갖추기 위해 순종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미 복을 받았기 때문에 그것을 누리기 위해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7-14절의 구조에도 잘 나타나 있습니다.

7-14절의 구조

A. 외교관계(7절)
   B. 국내 사안(8절)
      C. 언약 백성 이스라엘(9절)
      C'. 언약 백성 이스라엘(10절)
   B'. 국내 사안(11-12 상반절)
A'. 외교관계(12하-13절)

 

이런 구조를 교차대구구조라고 합니다. 카이즘이라고 하기도 합니다. 성경은 많은 구절에서 이런 구조를 사용합니다. 이 구조에서 핵심은 가운데 들어갑니다. 7-14절의 핵심은 이스라엘이 언약 백성이라는 것입니다. 그들이 언약 백성이기 때문에 대외적으로 대내적으로 높은 지위를 누리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뜻

1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삼가 듣고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그의 모든 명령을 지켜 행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실 것이라

 

1절은 26장 16-19절과 연결됩니다. 26장 19절에는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라는 말이 나옵니다. 또한 26장 16절에는 주님의 음성에 대해서 순종할 것을 말씀합니다. 또한 26장 16-19절에서 오늘, 또는 이 날이 세 번 나오는 것도 비슷합니다(28:1, 13, 14). 26장 16-19절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보배로운 백성이라고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보배로운 백성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기를 원하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뜻입니다.

27장과 예수 그리스도

그 중간 27장에 돌에 율법을 새기는 것과 저주를 선포하는 것이 나옵니다. 실제로 이스라엘은 율법을 지키지 못했습니다. 하나님과의 언약을 어겼습니다. 그래서 저주를 받았습니다.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하지만 이것은 하나님께서 뜻하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이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기를 원하십니다. 복을 누리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이 땅에 보내셨습니다. 하나님 백성인 우리가 영원한 복을 누리게 하기 위해서 27장에 나오는 모든 저주를 감당하게 하셨습니다.

낮아지셨다가 높아지신 예수 그리스도

예수님께서는 저주를 받으셔서 나무에 달리셨습니다(신 21:23; 갈 3:10; 약 2:10-11). 십자가에서 죄의 저주를 다 받으셔서 무한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죽음을 맞이하셨습니다. 그렇게 하시고 사흘만에 부활하시고 승천하사 하나님 우편에 앉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이름 위에 뛰어난 이름을 그 아들 예수님께 주셨습니다(엡 1:21; 빌 2:9). 높이셔서 하나님 보좌 우편에 앉아 온 우주를 다스리게 하셨습니다. 그렇게 해서 교회가 예수님의 몸으로서 모든 만물 위에 있게 하셨습니다(엡 1:22). 

교회의 지위와 율법의 제 3용도

택하신 백성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하시겠다는 하나님의 뜻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졌습니다. 예수님을 믿는 사람들은 교회로서 만물 위에 있습니다. 교회 아래에 모든 통치와 권세와 능력과 주권이 있습니다(엡 1:21). 교회는 예수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이 모든 것을 누리고 있습니다. 교회가 이 모든 복을 누리는 방법은 예수님께 잘 붙어 있으면서 예수님을 잘 믿는 것입니다(2절). 예수님을 따르는 것입니다. 예수님을 어떻게 따르느냐가 바로 언약 조항 안에 잘 드러나 있습니다. 이것을 율법의 제 3용도라고 합니다.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여

2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면 이 모든 복이 네게 임하며 네게 이르리니
3   성읍에서도 복을 받고 들에서도 복을 받을 것이며
4   네 몸의 자녀와 네 토지의 소산과 네 짐승의 새끼와 소와 양의 새끼가 복을 받을 것이며
5   네 광주리와 떡 반죽 그릇이 복을 받을 것이며
6   네가 들어와도 복을 받고 나가도 복을 받을 것이니라

 

28장의 핵심은 2-6절에 나오는 축복입니다. 16-19절의 저주는 이 축복과 정반대됩니다. 3-6절에 나오는 축복은 이어지는 구절로 그 의미가 확대되고 구체화됩니다. 16-19절의 저주도 마찬가지입니다. 이 구절들을 보면 축복과 저주가 단순히 육체적이고 물질적인 개념이 아닌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사람은 보통 물질적인 풍요는 복이고 궁핍은 저주라고 생각합니다. 하지만 3-6절은 그런 뜻이 아닙니다. 이 구절은 무엇을 해도 복인 사람이 있고 무엇을 해도 저주인 사람이 있다는 뜻입니다. 쉽게 말하자면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궁핍해도 복이요 그리스도 밖에 있는 사람은 풍족해도 저주입니다. 

 

축복과 저주의 역설, 복음으로 나타나난 반전

복과 저주

하박국서에서 하박국은 저주로 보이는 현실에서 하나님을 즐거워합니다(합 3:17-18). 장차 바벨론이 이스라엘을 쳐서 다 빼앗길 것이지만 난 여호와로 즐거워한다고 고백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악인의 풍족은 저주입니다. 풍족하기 때문에 갑자기 망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저주입니다(시 73:17-20). 풍족하기 때문에 하나님께 나아가지 못하므로 이 땅에 쌓아놓는 재물은 저주입니다. 하나님께 부요하지 못하게 하는 저주인 것입니다(눅 12:13-21). 자기 대문 앞에 있는 나사로를 돌보지 않고 날마다 잔치하면서 호화롭게 산 것도 저주입니다(눅 16:19-31). 

누리는 복

7   여호와께서 너를 대적하기 위해 일어난 적군들을 네 앞에서 패하게 하시리라 그들이 한 길로 너를 치러 들어왔으나 네 앞에서 일곱 길로 도망하리라
8   여호와께서 명령하사 네 창고와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고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게 복을 주실 것이며
9   여호와께서 네게 맹세하신 대로 너를 세워 자기의 성민이 되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지켜 그 길로 행할 것임이니라
10   땅의 모든 백성이 여호와의 이름이 너를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고 너를 두려워하리라
11   여호와께서 네게 주리라고 네 조상들에게 맹세하신 땅에서 네게 복을 주사 네 몸의 소생과 가축의 새끼와 토지의 소산을 많게 하시며
12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
13   여호와께서 너를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게 하시며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게 하시리니 오직 너는 내가 오늘 네게 명령하는 네 하나님 여호와의 명령을 듣고 지켜 행하며
14   내가 오늘 너희에게 명령하는 그 말씀을 떠나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아니하고 다른 신을 따라 섬기지 아니하면 이와 같으리라

 

3-6절에 나오는 축복은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을 누리는 축복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땅을 누리는 것이 복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려면 적의 침입으로부터 보호 받아야 합니다(7절). 또한 땅이 소출을 많이 내고 자손과 가축이 많아져야 합니다(8, 11절). 땅에 적절하게 비가 내려야 합니다(12절). 이 모든 것은 하나님께서 행하시는 것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적군들을 패하게 하십니다(7절 상). 손으로 하는 일과 창고에 복을 내리십니다(8절). 자손과 가축이 많아지게 하시고(11절) 하늘에서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십니다(12절). 그러므로 우리가 누리는 모든 눈에 보이는 것들은 눈이 보이지 않으시는 하나님으로부터 비롯된 것입니다. 하나님은 말씀으로 우리에게 하나님의 뜻을 보이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우리를 사랑하시는지, 얼마나 우리에게 복을 주시기를 원하시는지 말씀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복을 추구하기 보다 가장 먼저 하나님을 추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과의 관계에 이상이 생기면 복을 누리지 못합니다. 재물이 많아도 누리지 못합니다. 이것이 바로 저주입니다(28:30-31). 복은 바로 하나님을 사랑하고 하나님과의 관계를 누리는 것입니다. 

아브라함 약속의 성취

하나님께서는 아브라함에게 언약을 주셨습니다. 아브라함의 후손에게 약속의 땅을 주시겠다고 하시고 복을 주시겠다고 하셨습니다(창 13:14-16; 22:17 등). 여기 나오는 복들은 그 약속의 성취입니다. 10절에서는 이스라엘 자손들이 받은 복이 모든 민족에게 전해집니다. 땅의 모든 백성이 이스라엘을 두려워할 것인데 왜냐하면 여호와의 이름이 이스라엘을 위하여 불리는 것을 보기 때문입니다.

역설과 반전

역설적으로 이 일은 저주의 한 가운데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열왕기서에 보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우상숭배로 저주를 받아 하나님의 땅에서 쫓겨나서 흩어졌습니다. 그들은 가는 곳마다 회당을 세웠습니다. 회당에서 모여 하나님의 말씀을 가르쳤습니다. 그 때 많은 이방인들이 회당에 참여하여 유대교로 많이 개종했습니다(에 8:17 참조). 회당은 나중에 선교의 중요한 발판이 되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가는 곳마다 회당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증언했습니다. 그 결과 많은 이방인들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게 되었습니다. 여기에서 반전이 일어납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언약 백성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뒤바뀌는 반전입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이방인이 아브라함 자손이 되는 반전입니다(갈 3:7). 

머리와 꼬리, 위와 아래

머리가 되고 꼬리가 되지 않고 위에만 있고 아래에 있지 않는다는 말씀(13절)도 마찬가지로 역설입니다. 교회는 가장 낮은 곳에 처함으로 머리가 됩니다. 예수님께서 먼저 그런 원리를 말씀하시고 몸소 보여주셨습니다(마 23:12; 눅 14:11). 예수님께서는 몸소 수건을 두르시고 제자들의 발을 씻어 주셨습니다. 그렇게 하심으로 높은 분으로서 낮은 곳에서 섬기는 모습을 보여주셨습니다. 또한 십자가를 지심으로 실제로 가장 낮은 곳으로 내려가셨습니다. 지옥의 저 맨 아래까지 내려가신 것입니다. 그렇게 내려가심으로 예수님은 가장 높아지셨습니다(빌 2:5-9). 사람들은 착각합니다. 하나님을 잘 섬겨서 높아져야겠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정반대입니다.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은 이웃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다른 사람보다 낮은 자리에서 다른 사람을 섬기는 것이 바로 하나님을 잘 섬기는 것입니다. 이렇게 이야기하면 그것이 바로 높아지는 비결이라고 또 생각합니다. 그런데 아닙니다. 우리는 이미 높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이미 하나님의 언약 백성입니다. 저 하늘 위에 앉은 사람들입니다(엡 2:6).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마땅히 예수님과 같은 태도를 취합니다. 이미 높은 사람으로서 낮은 곳으로 가서 섬기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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