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8장 36-57절 | 점점 더 심화되는 고통과 반전의 하나님

2024. 4. 15. 19:0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28:36-57

    찬송가 276장 아버지여 이 죄인을


    문맥

    23절부터 42절까지는 교차대구구조입니다. 교차대구구조의 중심은 수고한 것을 누리지 못하는 비참함(30-33절)입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을 떠난 자의 비참함입니다. 36절과 37절은 25절, 26절과 상응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이 적군 앞에서 패하고 도망하고 모든 나라로 흩어지게 하실 것입니다(25절). 그 결과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서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입니다(37절).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36   여호와께서 너와 네가 세울 네 임금을 너와 네 조상들이 알지 못하던 나라로 끌어 가시리니 네가 거기서 목석으로 만든 다른 신들을 섬길 것이며
    37   여호와께서 너를 끌어 가시는 모든 민족 중에서 네가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될 것이라

     

    이스라엘이 언약을 배반했다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 말고 다른 신을 섬겼다는 뜻입니다. 즉 하나님께서 금하신 우상숭배의 죄를 저질렀다는 것입니다. 언약을 배반하고 우상을 숭배한 결과 이스라엘은 자유를 빼앗기고 억지로 우상을 섬기게 됩니다. 우상을 섬기기 원했으니 우상의 땅으로 잡혀가서 우상 숭배를 강제 당하는 처지로 전락하는 것입니다. 

    참 자유

    하나님을 섬겨야 자유가 보장됩니다. 하나님을 떠나면 자유를 상실합니다. 진짜 자유는 하나님 안에만 있습니다. 이스라엘은 자유를 상실한 후에야 자기들이 얼마나 좋은 것을 누렸는지를 깨닫게 될 것입니다. 이스라엘 자손이 당한 비참한 처지는 시편 137편에 잘 나옵니다. 거기에 보면 하나님의 땅에서 마음 껏 여호와의 노래를 불렀던 때가 얼마나 좋았는지를 추억하며 한탄합니다.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와서 원수가 자기들의 즐거움을 위해서 노래를 청하는데 얼마나 싫으면 내 혀가 입천장에 붙을지로다라고 합니다. 자유롭게 하나님을 섬겼을 때가 얼마나 좋았었는지를 그 자유를 빼앗기고 나서 깨닫게 되는 것입니다. 

    왕의 책임

    36절에서는 특별히 왕이 등장합니다. 왕은 하나님을 대리해서 하나님의 백성을 다스리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지혜와 힘을 받아서 이스라엘 백성을 보호해야 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 왕이 함께 포로로 끌려가게 됩니다. 그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통치를 제대로 이루지 못했기 때문입니다.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되어 일어나는 반전

    이스라엘은 모든 민족 중에서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된다고 합니다(37절). 그런데 역설이 일어납니다. 유대인들이 회당에서 모여서 하나님을 부르며 예배함으로 많은 이방인들이 여호와 신앙으로 돌아오게 되는 것입니다. 하지 말라고 할 때는 그렇게 우상을 숭배하더니 억지로 우상을 숭배하게 되니까 우상을 멀리하고 회당에 모여서 여호와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만 바라봅니다. 그랬더니 이방인들이 여호와 신앙이 얼마나 우월한 것인지를 알아봅니다. 신명기 4장 7-8절이 가장 약할 때, 포로 처지일 때 이루어 지는 것입니다. 4장 7-8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7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서 우리가 그에게 기도할 때마다 우리에게 가까이 하심과 같이 그 신이 가까이 함을 얻은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8   오늘 내가 너희에게 선포하는 이 율법과 같이 그 규례와 법도가 공의로운 큰 나라가 어디 있느냐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들과 가까이 하심을 이방인들이 자기들이 사는 곳에서 즉 가까이에서 보고 경험합니다. 하나님의 율법이 얼마나 공의로운가를 이방인들이 듣고 감탄하게 됩니다. 여호와가 참 하나님임을 느끼게 됩니다. 이스라엘이 큰 나라라는 것이 가장 약한 때에 이방인들에게 알려지는 것입니다.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되었던 그들이 이방인을 하나님께로 돌아오게 하는 선교의 도구가 됩니다. 참 놀라운 역설입니다. 

    하나님의 지혜, 십자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의 놀람과 속담과 비방거리가 되는 일이었습니다. 그러나 그 일이 모든 민족을 구원하는 일이 되었습니다. 할렐루야!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지혜입니다(고전 1:23-24). 

    농사의 재앙

    38   네가 많은 종자를 들에 뿌릴지라도 메뚜기가 먹으므로 거둘 것이 적을 것이며
    39   네가 포도원을 심고 가꿀지라도 벌레가 먹으므로 포도를 따지 못하고 포도주를 마시지 못할 것이며
    40   네 모든 경내에 감람나무가 있을지라도 그 열매가 떨어지므로 그 기름을 네 몸에 바르지 못할 것이며
    41   네가 자녀를 낳을지라도 그들이 포로가 되므로 너와 함께 있지 못할 것이며
    42   네 모든 나무와 토지 소산은 메뚜기가 먹을 것이며

     

    38-42절은 농사의 재앙이 내릴 것을 말씀합니다. 이 재앙은 23-24절과 상응합니다. 또한 30-33절과도 연관됩니다. 농사를 지어도 소출을 얻지 못하는 재앙이라는 측면에서 23-24절과 상응하는 것이고 수고한 것을 누리지 못한다는 측면에서 30-33절과 연관되는 것입니다. 

    수고한 대로 거두는 은혜

    누가 노력한 대로 거두었다고 할 때 그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노력했다고 그에 상응하는 결과를 다 얻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노력해도 결과를 얻지 못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노력해서 결과를 얻었다면 그것은 하나님께서 그에게 은혜를 베푸셨기 때문입니다. 노력해서 결과를 얻었다고 내가 잘했다고 생각하면 안 됩니다. 이런 측면에서 믿는 사람들은 겸손합니다. 어떤 결과를 얻었을 때 자긍하지 않습니다. 자아가 강해지지 않습니다. 오히려 더 낮아지고 겸손해지면서 더 크게 감사합니다. 왜냐하면 내가 노력해서 얻은 것이 나로 인한 것이 아님을 알기 때문입니다. 

    높아지고 낮아짐

    43   너의 중에 우거하는 이방인은 점점 높아져서 네 위에 뛰어나고 너는 점점 낮아질 것이며
    44   그는 네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그에게 꾸어주지 못하리니 그는 머리가 되고 너는 꼬리가 될 것이라

     

    이 구절은 정확하게 12-13절의 복과 반대됩니다. 12-13절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복을 주셔서 이스라엘은 채권자가 될 것이라는 내용을 담고 있습니다. 머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그러나 여기서는 반대입니다. 이스라엘이 채무자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점점 낮아져서 꼬리가 될 것이라고 합니다. 

    반전의 하나님

    사람을 높이고 낮추시는 것은 하나님께 달린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높이고자 하시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복을 받아 높아집니다. 반면 하나님께서 낮추시고자 하는 사람은 하는 일마다 안 되어 낮아집니다. 그렇게 꼬리가 됩니다. 하나님께서는 반전의 하나님이십니다. 낮은 자를 높이시고 높은 자를 낮추시는 분이십니다. 한나와 마리아가 그런 하나님을 노래했습니다. 이 노래는 장차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일어날 반전을 예견합니다. 누구든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는 사람은 정죄 받지 않고 영화롭게 됩니다. 만물 위에 있는 교회로 높임을 받습니다. 하늘로부터 내려오는 거룩한 성 새 예루살렘이 됩니다. 그리스도의 신부로 새단장을 하게 됩니다. 이 일은 모두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예수님 앞에 있는 가난한 자, 애통하는 자, 온유한 자, 의에 주리고 목마른 자가 복이 있습니다(마 5:3-12).

    저주가 추격함

    45   네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을 청종하지 아니하고 네게 명령하신 그의 명령과 규례를 지키지 아니하므로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
    46   이 모든 저주가 너와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되리라

     

    45절은 저주를 시작하는 절인 15절과 수미쌍관을 이룹니다. 15절부터 시작한 저주는 45절에서 일단락됩니다. 일단락되면서 더 심화된 저주가 나오는 단락으로 이어집니다. 45절에서는 "이 모든 저주가 네게 와서 너를 따르고 네게 이르러 마침내 너를 멸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따른다는 말은 추격한다(רָדַף)는 뜻입니다. 똑같은 단어가 정반대의 상황으로 시편 23편 6절에 나옵니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 45절에서는 저주가 추격하지만 시편 23편에서는 하나님의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나를 추격합니다. 45절에서는 결국 멸망하지만 시편 23편에서는 결국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삽니다. 저주가 추격하는 인생이 있고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추격하는 인생이 있습니다. 

    표징과 훈계

    46절에서는 이 모든 저주가 너의 네 자손에게 영원히 있어서 표징과 훈계가 된다고 합니다. 출애굽기 4장 8절에서 표징은 구원과 연관됩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에게 그들이 보고 믿게 하시는 초자연적 현상을 가리켜서 표징이라고 한 것입니다(출 4:8; 7:3; 8:23). 다른 곳에서는 할례(창 17:11)나 안식일을 표징(출 31:13)이라고 합니다. 구원과 연관되어 사용되었던 표징이라는 단어가 여기서는 저주와 연관되어 사용됩니다. 게다가 표징이 되는 것은 "저주가 영원히"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서 영원히 저주를 받는다는 것은 곧 영원한 지옥 고통 가운데 있다는 뜻입니다. 그것이 바로 멸망입니다(45절, "멸하리니"). 하나님과 함께 거하는 것이 천국이고 하나님으로부터 쫓겨나서 그 어떤 보호도 받지 못하는 것, 그 어떤 선한 것도 누릴 수 없는 것이 바로 지옥입니다. 지옥은 모든 사람들에게 표징과 훈계가 됩니다. 하나님을 떠난 사람의 결국이 어떠한지를 보게 하여 저주를 피하게 하는 것입니다. 십자가도 마찬가지입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이 모든 저주를 받으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이십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는 나무에 달리셔서 모든 저주를 다 받으셨습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단절된 고통, 그 어떤 선한 것도 누릴 수 없는 극도의 고통, 무한한 지옥의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모든 사람이 영원히 받아도 다 받지 못할 고통을 받으셨습니다. 그 고통은 우리의 죄에 대한 형벌로 받으신 고통입니다. 그러므로 이 십자가는 우리에게 표징과 훈계가 됩니다. 하나님께서 얼마나 죄를 미워하시는지, 죄에 대한 형벌이 얼마나 큰지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또한 하나님께서 우리를 얼마나 사랑하시는지도 알려줍니다. 그 사랑으로 피하라고 촉구합니다. 이것이 바로 영원한 저주가 표징과 훈계가 된다는 말씀의 뜻입니다. 

    풍족함과 부족함

    47   네가 모든 것이 풍족하여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네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아니함으로 말미암아
    48   네가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한 중에서 여호와께서 보내사 너를 치게 하실 적군을 섬기게 될 것이니 그가 철 멍에를 네 목에 메워 마침내 너를 멸할 것이라

     

    하나님께서 다스리시면 풍족하게 됩니다(47절).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했다는 것은 하나님의 다스림에서 벗어나고자 했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다스리셔서 풍족한데도 기쁨과 즐거운 마음으로 자기들의 하나님 여호와를 섬기지 않는다고 합니다. 하나님의 통치에 불만족하고 거기에서 벗어나고자 한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의 언약을 배반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결과를 맛보게 하십니다. 그 결과는 하나님을 섬기는 데에서 벗어나서 적군을 섬기게 되는 것입니다(48절). 

    적군의 손에 넘어감

    적군을 섬기게 되면 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모든 것이 부족하게 됩니다(48절 상). 하나님께서 다스리실 때에는 "모든 것"이 풍족했지만(47절 상) 적군을 섬기게 되면 "모든 것"이 부족하게 되는 것입니다. 게다가 적군을 섬기게 되면 목에 철멍에를 지게 됩니다. 마침내 멸망하게 됩니다. 적군은 언약 백성을 착취합니다. 착취하고 또 착취해서 결국 멸망시키려고 합니다. 하나님의 보호를 벗어나고자 하는 사람은 결국 적군의 손에 넘어가게 됩니다. 

    독수리 같은 민족이

    49   곧 여호와께서 멀리 땅 끝에서 한 민족을 독수리가 날아오는 것 같이 너를 치러 오게 하시리니 이는 네가 그 언어를 알지 못하는 민족이요
    50   그 용모가 흉악한 민족이라 노인을 보살피지 아니하며 유아를 불쌍히 여기지 아니하며
    51   네 가축의 새끼와 네 토지의 소산을 먹어 마침내 너를 멸망시키며 또 곡식이나 포도주나 기름이나 소의 새끼나 양의 새끼를 너를 위하여 남기지 아니하고 마침내 너를 멸절시키리라

     

    적군은 멀리 땅 끝에서 독수리 같이 날아서 옵니다. 신속하게 덮쳐오는 것입니다. 예레미야서에서는 같은 단어를 사용해서 바벨론이 그렇게 쳐들어 올 것이라고 예언합니다(렘 5:15-17). 이 민족은 이스라엘을 유아부터 노인까지 아무리 약자라도 남기지 않고 멸망시킬 것입니다(50절). 거기에 모든 땅의 소산물들을 다 삼켜버릴 것입니다(51절). 그렇게 해서 마침내 이스라엘을 땅에서 멸절시켜 버릴 것입니다. 하나님의 땅을 더이상 누리지 못하게 할 것입니다. 

     

    51절에 나오는 것들은 28장 4-11절에 나오는 것들입니다. 4-11절에서는 그것들이 다 복을 받는다고 합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이 모든 것들이 다 멸망된다고 합니다. 저주는 복으로 받았던 모든 것을 다 삼켜 버립니다. 

    공성전의 상황

    52   그들이 전국에서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네가 의뢰하는 높고 견고한 성벽을 다 헐며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의 모든 성읍에서 너를 에워싸리니
    53   네가 적군에게 에워싸이고 맹렬한 공격을 받아 곤란을 당하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신 자녀 곧 네 몸의 소생의 살을 먹을 것이라
    54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남자까지도 그의 형제와 그의 품의 아내와 그의 남은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5   자기가 먹는 그 자녀의 살을 그 중 누구에게든지 주지 아니하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모든 성읍을 에워싸고 맹렬히 너를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그에게 남음이 없는 까닭일 것이며
    56   또 너희 중에 온유하고 연약한 부녀 곧 온유하고 연약하여 자기 발바닥으로 땅을 밟아 보지도 아니하던 자라도 자기 품의 남편과 자기 자녀를 미운 눈으로 바라보며
    57   자기 다리 사이에서 나온 태와 자기가 낳은 어린 자식을 남몰래 먹으리니 이는 네 적군이 네 생명을 에워싸고 맹렬히 쳐서 곤란하게 하므로 아무것도 얻지 못함이리라

     

    52-57절은 굉장히 비참한 상황을 묘사합니다. 이 상황은 공성전이 벌어지는 상황입니다. 이스라엘은 높고 견고한 성벽을 의뢰할 것입니다(52절). 하지만 그들을 치는 적군은 그 성벽을 다 헐 것입니다. 다 헐고 이스라엘 백성들을 포위할 것입니다(52절). 포위 당했기 때문에 성중에는 먹을 것이 없어집니다. 그렇게 되면 부모가 자식을 잡아먹는 인간 이하의 일이 자행될 것이라고 합니다(53-57절). 이 일은 이스라엘 역사에서 실제로 일어났습니다(왕하 6:28). 

    고대 근동 조약

    52-57절에 나오는 내용은 고대 근동의 조약 안에서 흔히 볼 수 있는 내용입니다(VTE 47, 69-72, 75; ANET, 538-540). 이 내용을 넣음으로 주인은 종이 언약을 배반하지 않도록 위협했습니다. 그런데 본문 52-57절에 나오는 내용은 행위자가 다릅니다. 고대 근동의 조약에서는 주인이 속국을 쳐서 그렇게 비참하게 하겠다는 내용이지만 여기서는 하나님께서 그들을 적국의 손에 붙이시겠다는 내용입니다. 그러므로 여기 나오는 내용은 하나님께서 그 보호의 손길을 거두시겠다는 것과 같은 것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하면 하나님으로부터 받았던 선한 것을 빼앗기게 됩니다. 그동안 하나님께서 보호해 주셨기 때문에 모든 것에 풍족했고 평안했는데 그 모든 것을 빼앗기는 것입니다. 그 결과는 먹을 것이 극도로 부족해지는 것입니다. 먹을 것만 부족해지는 것이 아니라 인간성도 상실되는 것입니다. 아비규환(阿鼻叫喚)이 되는 것입니다. 

     

    점점 더 심화되는 고통과 반전의 하나님

    평안함에 감사해야 함

    이 말씀을 읽어볼 때 평안하고 자유롭게 살 수 있다는 것 자체가 얼마나 큰 은혜인지 모릅니다. 역사상 52-57절과 같은 일들은 수도 없이 반복되었습니다. 인간성이 상실되어 사람이 사람에게 가장 큰 위협이 되는 일이 계속 반복된 것입니다. 인권이 보장되지 않고 있는 수많은 나라에서 이 시대에도 일어나는 일입니다. 이런 시대에 우리는 안전한 체제 가운데 살고 있습니다. 이것은 당연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 참 감사해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불만족하기보다 감사할 것이 너무 많습니다. 

    지옥과 고통의 심화

    갈수록 저주 목록이 구체화되고 심화됩니다. 이것은 지옥 고통을 생각나게 합니다. 지옥 고통은 적응되지 않는 고통입니다. 고통에 적응이 된다면 느끼는 고통의 크기는 감소합니다. 고통이 경감되는 것입니다. 고통이 경감되는 것은 좋은 것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을 떠나서는 그 어떤 좋은 것도 누릴 수 없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을 떠난 상태에서는 고통이 절대 경감되지 않습니다. 그저 고통이 더 심화될 뿐입니다. 저주가 심화된다는 것은 이렇게 지옥 고통과 연관됩니다.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간다는 것은 이렇게 심각한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된 우리들

    우리는 주 예수 그리스도께 붙어 있는 사람들입니다. 그리스도와 연합되어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떨어져 나갈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것을 가지고 자긍하면 안 됩니다. 예정에 대한 말씀은 자긍하라고 주신 것이 아닙니다. 오히려 그 반대입니다. 더 자기를 부인하고 자기 십자가를 지고 에수님을 따르라고 주신 것입니다. 그렇게 열심히 예수님을 따르는 것이 하나님께서 은혜를 주신 결과임을 알라고 주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하신 은혜에 감격하며 감사하라고 주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지옥을 피하고 하나님께 붙어 있습니다. 이 얼마나 감사한 일인지요.

     

    저는 대한예수교장로회(합신) 소속 목사입니다.

    현재 자비량으로 군선교를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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