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5장 1-19절 | 돈이 생명보다 앞설 수 없음, 탐심과 우상숭배, 약자 보호

2024. 4. 10. 15:11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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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신명기 25:1-19

    찬송가 595장 나 맡은 본분은


    문맥

    신명기 22장에서 26장은 언약 조항의 마지막 단원입니다. 25장 1-3절은 제 9계명에 속합니다. 이어지는 25장 5-16절은 제 10계명과 연관됩니다.

    재판할 때

    1   사람들 사이에 시비가 생겨 재판을 청하면 재판장은 그들을 재판하여 의인은 의롭다 하고 악인은 정죄할 것이며
    2   악인에게 태형이 합당하면 재판장은 그를 엎드리게 하고 그 앞에서 그의 죄에 따라 수를 맞추어 때리게 하라
    3   사십까지는 때리려니와 그것을 넘기지는 못할지니 만일 그것을 넘겨 매를 지나치게 때리면 네가 네 형제를 경히 여기는 것이 될까 하노라

     

    제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연관해서 재판 상황이 1-3절에 나옵니다. 양쪽이 다투는 재판에서 재판장은 의인은 의롭다고 하고 악인은 악하다고 하여 정죄해야 합니다(1절). 공정한 재판을 해야 하는 것입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의 의를 언약 백성들 안에 이루어야 합니다. 

    태형을 가할 때

    공정한 재판에서 악인에게는 태형이 가해질 수 있었습니다(2절). 신명기에서는 징역형이 나오지 않습니다. 태형이 가해질 때에는 여러 가지 제한이 있었습니다. 태형은 반드시 재판장 앞에서 집행되어야 했습니다. 군중이 마구잡이식으로 때리는 것은 금지되었습니다. 다음으로 태형은 죄에 따라서 몇 대를 맞을지가 정해졌습니다(2절 하). 죄에 맞게 때려야지 너무 과도하게 때리거나 너무 적게 때리지 않도록 했습니다. 마지막으로 태형은 40대를 넘을 수 없었습니다(3절). 40대를 넘는 매는 형제를 업신여기는 것으로 간주되었습니다. 범한 죄에 대해서 태형으로 다스릴 때에도 언약 백성으로서 그를 존중하도록 한 것입니다. 

    사도 바울이 당한 태형

    사도 바울은 예수님을 전한다는 이유로 유대인들에게 사십에 하나를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다고 합니다. 신명기의 율법대로 사도 바울에게 태형을 가한 것입니다. 하지만 그들의 재판은 의롭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의 진리를 전하는 자를 쳤기 때문입니다. 아무리 율법을 지킨다고 하더라도 그 적용이 잘못되었기 때문에 율법을 범한 것이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바울은 그리스도로 인해서 당하는 이런 고난을 영광스럽게 여겼습니다. 치는 사람이 아니라 맞는 사람이 의롭다고 여김을 받게 된 것입니다. 이것이 그대로 교회에 적용됩니다. 세상은 교회에게 틀렸다고 합니다. 정죄합니다. 그러나 정죄하는 쪽이 아니라 정죄 받는 쪽이 의롭다함을 받을 것입니다. 

    재판은 진리로 집행되어야 함

    제 9계명은 네 이웃에 대하여 거짓 증거하지 말라입니다. 이웃에게 거짓 증거하여 이웃이 태형을 당하면 안 됩니다. 유대인들이 사도 바울에게 태형을 가한 것은 그를 향하여 거짓 증거한 것과 같습니다. 재판은 진리로 집행되어야 합니다. 

    곡식 떠는 소에게

    4   곡식 떠는 소에게 망을 씌우지 말지니라

    여기서부터는 제 10계명인 탐하지 말라와 연관됩니다. 탐하지 말라는 말씀은 하나님처럼 관대하라는 뜻입니다. 이 말씀은 가축도 관대하게 배려하라고 합니다. 사람이 곡식을 거둘 때 함께 일한 소가 마음대로 낟알을 먹게 하라는 것입니다. 소가 노동력을 보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피조물에게 관대하십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본받아야 합니다. 언약 백성은 하나님을 닮은 사람들입니다. 

    탐심과 인색함과 사역자 대우

    사도 바울은 이 율법을 사람에게 적용합니다. 사역자들이 적절한 생활비를 받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고린도전서 9장 9절에는 "어찌 소들을 위하여 염려하심이냐"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의 뜻은 하나님께서 소가 먹는 것도 관대하게 허용하시는데 하물며 하나님을 섬기는 사람들에게 인색하게 해서야 되겠느냐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사역자들의 필요를 풍성하게 채우시기 원하십니다. 전임으로 사역하는 사람에게 생활에 필요한 모든 것을 제공하는 것은 하나님의 관대하심을 이루는 일입니다. 

    형사취수혼

    5   형제들이 함께 사는데 그 중 하나가 죽고 아들이 없거든 그 죽은 자의 아내는 나가서 타인에게 시집 가지 말 것이요 그의 남편의 형제가 그에게로 들어가서 그를 맞이하여 아내로 삼아 그의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그에게 다 행할 것이요
    6   그 여인이 낳은 첫 아들이 그 죽은 형제의 이름을 잇게 하여 그 이름이 이스라엘 중에서 끊어지지 않게 할 것이니라
    7   그러나 그 사람이 만일 그 형제의 아내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면 그 형제의 아내는 그 성문으로 장로들에게로 나아가서 말하기를 내 남편의 형제가 그의 형제의 이름을 이스라엘 중에 잇기를 싫어하여 남편의 형제 된 의무를 내게 행하지 아니하나이다 할 것이요
    8   그 성읍 장로들은 그를 불러다가 말할 것이며 그가 이미 정한 뜻대로 말하기를 내가 그 여자를 맞이하기를 즐겨하지 아니하노라 하면
    9   그의 형제의 아내가 장로들 앞에서 그에게 나아가서 그의 발에서 신을 벗기고 그의 얼굴에 침을 뱉으며 이르기를 그의 형제의 집을 세우기를 즐겨 아니하는 자에게는 이같이 할 것이라 하고
    10   이스라엘 중에서 그의 이름을 신 벗김 받은 자의 집이라 부를 것이니라

    5-10절은 취수혼에 관해서 말씀합니다. 취수혼은 영어로 levirate marrige라고 합니다. 이 말은 시형제를 뜻하는 라틴어 levir에서 나왔습니다. 이런 관습은 이스라엘을 포함하여 고대 근동에 널리 퍼져 있었습니다. 동양 몇몇 나라에는 아직도 관습으로 남아있습니다. 

    취수혼의 좋은 효과들

    이 제도는 동생이 죽은 형의 대를 잇는 것에 목적이 있습니다. 죽은 형의 대를 이어서 낳은 아들이 그 형의 이름과 재산을 물려 받게 합니다. 이 법으로 남편과 사별한 과부는 안전하게 보호 받습니다. 또한 아들을 낳지 못한 수치도 제거해줍니다. 게다가 가문의 재산이나 땅이 다른 사람에게 넘어가지 않게 합니다. 이스라엘 각 가정은 자기 몫의 땅을 분배받았습니다. 이 땅은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땅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빼앗기면 안 됩니다. 이런 의미에서 이 법은 하나님의 기업을 지키는 법입니다. 이 법은 죽은 남자의 이름이 후대로 이어지게 하는 효과 외에도 이런 좋은 효과들이 있는 법입니다. 

    시동생이 싫어할 경우

    그런데 이 법은 죽은 남자의 동생인 시동생이 싫어할 경우 시행되지 않았습니다. 이 법은 선한 목적을 이루기 때문에 시동생의 거부는 사회적으로 질타를 받았습니다. 신을 벗기는 행위와 얼굴에 침을 뱉는 행위(9절)는 그 거부가 지탄 받는 것이라는 것을 나타냅니다. 룻기를 보면 신을 벗는 행위는 재산권을 포기한다는 뜻이기도 합니다(룻 4:7 이하). 이런 과정을 거침으로 과부는 비난 받지 않고 타인과 재혼할 수 있었습니다. 

    죽음에 처해질 수도 있는 

    형사취수제도, 즉 형이 죽었을 때 동생이 취수혼을 하는 제도는 형제의 집을 세우는 제도입니다(9절). 창세기에서 유다의 둘째 아들 오난은 형인 엘이 죽자 형수에게 들어가서 의무를 다해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형에게 씨를 주지 않으려고 했습니다(창 38:8-9). 하나님께서는 이 일을 악하게 보시고 오난을 죽이셨습니다(창 38:10). 형제의 집을 세우지 않으려는 이런 마음은 죽음에 처해질 수도 있는 악한 마음인 것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함

    하나님께서는 경건한 자손을 얻기를 원하십니다. 경건한 자손은 경건한 부모들의 생명활동에 의해서 태어납니다. 그런데 유다의 집의 경우에는 경건한 자손 이상으로 씨를 잇는 일이 중요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보내신 메시께서 그 후손으로 오셨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오난의 악함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악함이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오실 길을 방해하는 악함이었던 것입니다. 오난이 알고 그렇게 했든 모르고 그렇게 했든 그런 악함은 큰 형벌을 자취합니다. 

    생명보다 재물을 앞세우면 안 됨

    형제의 집을 세우는 일에 기쁨으로 참여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자기도 모르게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는 결과를 초래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곧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 마음에 탐심이 있으면 그것을 하기 싫어합니다. 자기 유산에 손해가 날까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탐심이 생명활동에 앞서는 것입니다. 이것은 굉장히 가증한 생각입니다. 항상 생명이 우선입니다. 재물은 그 다음입니다. 이 순서를 바꾸는 것은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입니다.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

    11   두 사람이 서로 싸울 때에 한 사람의 아내가 그 치는 자의 손에서 그의 남편을 구하려 하여 가까이 가서 손을 벌려 그 사람의 음낭을 잡거든
    12   너는 그 여인의 손을 찍어버릴 것이고 네 눈이 그를 불쌍히 여기지 말지니라

     

    11-12절의 조항은 앞에 나온 형사취수혼과 연관됩니다. 12절의 처벌은 죄에 비해서 가혹해 보입니다. 그러나 그 죄는 결코 가볍지 않습니다. 남자의 생식기는 온전하게 보호되어야 하기 때문입니다. 이것으로 형제의 집을 세울 수 있습니다(9절). 하나님의 명령인 생육하고 번성하라는 명령도 이것으로 수행할 수 있습니다(창 1:28). 또한 생식기가 온전해야 여호와의 총회에 들어갈 수 있습니다(23:1). 그러므로 남자의 생식기를 해하는 것은 그를 여호와의 총회에 못 들어가게 하는 것이고 그가 하나님의 명령을 수행하지 못하도록 하는 것입니다.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

    13   너는 네 주머니에 두 종류의 저울추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넣지 말 것이며
    14   네 집에 두 종류의 되 곧 큰 것과 작은 것을 두지 말 것이요
    15   오직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를 두며 온전하고 공정한 되를 둘 것이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주시는 땅에서 네 날이 길리라
    16   이런 일들을 행하는 모든 자, 악을 행하는 모든 자는 네 하나님 여호와께 가증하니라

    13-16절은 의를 말씀합니다. 15절의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는 무게를 다 채우고 정확하게 맞는 저울추를 뜻합니다. 여기에 의롭다(צֶדֶק)는 말이 들어갑니다. 여기서 의롭다는 것은 정해진 무게에 딱 맞는다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의롭다는 것은 하나님께서 정하신 것에 딱 맞는다는 뜻입니다. 저울추와 되가 의롭다는 말씀에서 예수님을 생각해 볼 수 있습니다. 자세한 내용은 아래 링크를 참고하세요. 

    https://blog.naver.com/joshua_c1v8/223411411687

     

    성경에서 말하는 의로움은 무엇인가, 의로운 저울추와 되 | 매일성경 | 신명기 25장 1-19절

    의란 무엇인가 성경에서 자주 등장하는 의는 무엇일까요? 앞의 글에 이어서 생각해 봅시다. 오늘 본문에는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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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상거래와 장수의 복

    살 때에는 더 무거운 저울추를 사용하고 팔 때에는 더 가벼운 저울추를 사용하면 안 됩니다(13절). 되도 마찬가지입니다(14절). 살 때든지 팔 때든지 무게와 부피는 딱 맞아야 하고 동일해야 합니다. 그렇게 하면 장수의 복을 받습니다(15절). 장수의 복이 상거래와 연관됩니다. 

    온전하고 공정한 저울추

     

    이 조항은 제 8계명, 도둑질하지 말라는 말씀을 구체적으로 적용한 조항입니다. 상대방의 것에 의롭지 못하면 내 재산뿐만 아니라 내 생명에도 지장이 있습니다. 이것을 잘 알아야 합니다. 이웃을 속여 그 재물을 도둑질하는 것은 곧 나의 생명을 단축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에게 주신 땅에서 생명을 누립니다. 그런데 딱 맞는 공정한 저울추를 사용하지 않으면 하나님께서 주시는 것을 누릴 수 없습니다.

    돈을 사랑하면

    디모데전서 6장 10절에서는 돈을 사랑함이 일만 악의 뿌리라고 하면서 이것을 탐내는 자들은 미혹을 받아 믿음에서 떠나 많은 근심으로써 자기를 찔렀다고 합니다. 믿음에서 떠나는 것은 곧 하나님께서 주신 기업에서 떠나는 것과 같습니다.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는 것은 생명을 누리지 못하는 상태입니다. 이것에 대해서 반대되는 마음은 자족하는 마음입니다(딤전 6:6). 자족하는 마음은 먹을 것과 입을 것이 있다는 것에 감사하면서 그것이면 충분하다고 생각하는 것입니다(딤전 6:8). 그러므로 이 마음은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는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 주신 것을 누리면서 살 때 우리는 풍성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게 됩니다. 돈은 그것에 봉사하는 것입니다. 돈이 생명의 목적이 아닙니다. 

    탐심과 우상숭배

    저울추나 되를 속이는 사람은 여호와께 가증하게 됩니다(16절). 가증하다는 말은 우상숭배의 맥락에서 자주 사용됩니다. 우상숭배와 연관되는 성도착에도 사용됩니다. 그러므로 이것은 우상숭배와 같은 범죄입니다. 여기에서 제 10계명과 연결됩니다. 제 10계명은 탐하지 말라입니다. 그런데 탐심은 우상숭배입니다(골 3:5). 탐심이 우상숭배라는 것은 하나님께서 그것을 가증하다고 하시는 것에서도 드러납니다. 하나님께서 가증하게 여기시면 하나님께서 주신 땅에서 살 수 없습니다. 이스라엘은 우상숭배 때문에 그 땅에서 쫓겨났습니다. 바벨론으로 잡혀갔습니다. 그런데 탐심도 똑같습니다. 탐하는 사람은 하나님의 은혜를 누리면서 살 수 없습니다. 많은 근심으로 자기를 찌르기 때문입니다. 그런 마음은 믿음있는 마음이 아닙니다.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17   너희는 애굽에서 나오는 길에 아말렉이 네게 행한 일을 기억하라
    18   곧 그들이 너를 길에서 만나 네가 피곤할 때에 네 뒤에 떨어진 약한 자들을 쳤고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아니하였느니라
    19   그러므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게 기업으로 주어 차지하게 하시는 땅에서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사방에 있는 모든 적군으로부터 네게 안식을 주실 때에 너는 천하에서 아말렉에 대한 기억을 지워버리라 너는 잊지 말지니라

     

    17-19절은 아말렉을 저주합니다. 여기서 아말렉을 저주하는 이유는 아말렉이 약자들에게 무자비한 자들이기 때문입니다(18절). 앞에서 공정하지 못한 저울추를 금지하는 것도 약자들을 그런 식으로 탈취하지 말라는 뜻입니다(암 8:4-10 참조). 이런 의미로 문맥이 이어집니다.

     

    아말렉은 이스라엘이 출애굽한 후 약해진 틈을 타서 후미의 약자들을 노려서 공격했습니다. 뒤에 떨어진 자들은 노인, 어린아이, 병자, 임산부 등이었을 것입니다. 이런 약자들을 무자비하게 공격하는 것은 하나님께서 보시기에 굉장히 악한 것입니다.

    이스라엘이 그런 죄를 범함

    아모스 1-2장은 아무리 이방인들이라도 사람으로서 지켜야할 도덕 규범이 있다고 말씀합니다. 그것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 판단 받아야 한다고 합니다. 아말렉은 그런 도덕 규범을 지키지 않았습니다. 반인륜적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아말렉처럼 약자들을 압제했을 때 선지자들은 그들에게 가혹한 심판이 있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미 2:1-2, 8 이하). 

    원수 사랑

    사람은 사람으로 존중받아야 합니다. 아무리 약한 사람이라도 존중받아야 합니다. 또한 아무리 원수라도 사람으로 대접해야 합니다. 원수가 딱한 상황에 처하면 그를 도와주어야 합니다. 예수님께서는 사마리아인의 비유로 그것이 바로 이웃 사랑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눅 10:29-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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