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신명기 24장 10-22절 | 제 8계명과 참된 경건, 복 받는 비결

2024. 4. 9. 16:5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신명기

목차


    신명기 24:10-22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제 8계명

    신명기 12장에서 26장까지는 세세한 언약 조항을 다룹니다. 이 언약조항들은 두서 없이 다루어지는 것처럼 보입니다. 하지만 그렇지 않습니다. 언약조항은 십계명의 순서를 따릅니다. 언약조항을 잘 보면 십계명 안에 담긴 하나님의 뜻을 알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은 제 8계명 도둑질하지 말지니라와 연관됩니다. 

    사생활 보호

    10   네 이웃에게 무엇을 꾸어줄 때에 너는 그의 집에 들어가서 전당물을 취하지 말고
    11   너는 밖에 서 있고 네게 꾸는 자가 전당물을 밖으로 가지고 나와서 네게 줄 것이며
    12   그가 가난한 자이면 너는 그의 전당물을 가지고 자지 말고
    13   해 질 때에 그 전당물을 반드시 그에게 돌려줄 것이라 그리하면 그가 그 옷을 입고 자며 너를 위하여 축복하리니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

     

    하나님께서는 사람의 사생활이 보호되기를 원하십니다. 10-13절에 그것이 나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그 사생활은 잘 보호되어야 합니다. 빚을 진 사람일지라도 자기가 소중히 여기는 것, 어쩌면 값진 것이 집 안에 있을 수 있습니다. 비록 빚을 졌지만 자기가 소중하게 생각하는 것은 지켜져야 합니다. 이것은 사람의 존엄성과 연관됩니다. 꼭 지켜야 하는 중요한 원칙입니다. 이것은 빈부귀천에 상관없습니다. 아무리 가난한 사람이라도 아무리 천대 받는 사람이라도 자기 자신과 자기의 가정에 대해서는 존중받아야 합니다. 

    채무자의 사생활 

    현재는 채무자는 자기 경제 상황을 채권자에게 투명하게 공개하도록 되어 있습니다. 그렇게 되면 채무자는 빚을 갚기가 훨씬 힘들어집니다. 왜냐하면 뭐라도 있어야 그것으로 돈을 벌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것이 원천적으로 차단되어 있는 것입니다. 채무자의 재정 상황이 투명하게 공개되는 것은 하나님의 뜻이 아닙니다. 

    겉옷을 담보로 취했을 경우

    12-13절에는 겉옷을 담보물로 취했을 경우를 말씀합니다. 앞에서는 맺돌을 전당 잡지 못하게 했습니다(24:6). 일용할 양식을 준비하는데 맺돌이 반드시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겉옷도 마찬가지입니다. 겉옷은 밤에 잠을 자는데 꼭 필요한 것입니다. 중동지방은 일교차가 굉장히 큽니다. 거기에서 겉옷은 이불의 역할도 했습니다. 

     

    겉옷을 담보물로 줄 수밖에 없었다는 것은 그가 굉장히 가난하다는 뜻입니다. 가난하기 때문에 그가 가지고 있는 것이 겉옷 밖에 없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겉옷은 밤에 잠을 잘 때 반드시 있어야만 하는 것입니다. 겉옷이 없으면 밤에 추위에 떠느라 잠을 잘 수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가난한 사람의 잘 권리를 보장해 주라고 하십니다(13절). 그렇게 하면 그 가난한 사람이 따뜻하게 자면서 채권자를 축복할 것이라고 합니다. 

    채권자는 채무자를 어떻게 보아야 하는가

    채권자가 채무자를 존중히 대해야 하는 이유는 채무자가 하나님께 뭔가를 말할 수 있는 사람이기 때문입니다. 즉 채권자와의 관계에서는 채무자이지만 하나님과의 관계에서는 채무자도 하나님께서 사랑하시는 언약백성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채무자를 함부로 다루면 안 됩니다. 채무자도 마찬가지입니다. 하나님께서 재판하시는 줄 알고 하나님 앞에서 정직해야 합니다. 빚을 일부러 갚지 않으려고 해서는 안 되는 것입니다. 

    겉옷을 전당 잡는 경우

     

     

    13절에는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라고 말씀합니다. 채무자가 밤에 따뜻하게 잘 수 있도록 돌보아 주는 것을 하나님께서 의롭게 여기신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렇게 하는 채권자를 의롭게 여기시는 이유는 채권자가 하나님을 생각해서 그렇게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의 관계가 바르게 잘 정립되어 있는 것입니다. 

    빚을 탕감해 주신 하나님

    채권자와 채무자의 관계와 같은 것이 바로 하나님과 죄인의 관계입니다. 죄는 빚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빚을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탕감해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의로우신 분이십니다. 채권자가 채무자에게 그렇게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을 닮았기 때문에 그렇게 행동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의입니다. 이 의를 성취하신 분이 바로 예수님이십니다. 예수님께서는 모든 빚을 다 감당하셨습니다. 그 빚의 대가를 몸소 다 치르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예수님을 의롭다고 하시고 예수님만 의롭다고 하실 뿐 아니라 예수님 믿는 자도 의롭다고 하셨습니다.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14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은 너희 형제든지 네 땅 성문 안에 우거하는 객이든지 그를 학대하지 말며
    15   그 품삯을 당일에 주고 해 진 후까지 미루지 말라 이는 그가 가난하므로 그 품삯을 간절히 바람이라 그가 너를 여호와께 호소하지 않게 하라 그렇지 않으면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

     

    13절에서는 "그 일이 네 하나님 여호와 앞에서 네 공의로움이 되리라"라고 합니다. 그런데 15절에서는 "그것이 네게 죄가 될 것임이라"라고 말씀합니다. 13절에서 의롭다고 여겨지는 이유는 하나님처럼 행하기 때문입니다. 15절은 그 반대입니다 여기서 죄가 되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과 반대로 행동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을 학대하거나 그들이 받을 품삯을 늦게 주는 것은 하나님과 반대로 행동하는 것입니다. 

    곤궁하고 빈한한 품꾼

    하나님께서는 노동자들에게 적절하게 대우하기를 원하십니다. 가난한 노동자라고 강탈하거나 억압하면 안 됩니다. 또한 그들이 일한 대가로 받는 품삯, 즉 임금을 꼭 정한 시기에 맞게 주어야 합니다. 여기에 나오는 노동자들은 하루하루 임금을 받는 단기 노동자들입니다. 이들은 대부분 힘든 육체 노동을 했을 것입니다. 당시에 이들은 좋은 주인을 모시고 있는 노예들보다 더 취약했습니다. 착취당하기 쉬웠습니다. 이들에게는 보호자가 없었기 때문입니다. 

    포도원 주인

    이들이 받는 하루치 급여는 이들의 가족들에게 먹는 것과 바로 연결됩니다. 급여를 못 받으면 바로 굶게 되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0장 1-15절에 나오는 포도원 주인은 이런 상황을 알기 때문에 오후 5시에도 나가서 놀고 있는 품꾼을 고용했던 것입니다. 이 포도원 주인은 하나님 아버지를 가리킵니다.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를 그렇게 불쌍하게 보십니다. 우리가 굶는 것을 원하지 않으시는 것입니다.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함

    가난하고 약한 사람들을 대할 때에는 항상 자비로우신 하나님을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사람은 의롭다고 여겨질 것이고 하나님과 반대로 행동하는 사람은 죄인으로 여겨질 것입니다. 사회에서는 힘 있는 사람이 마음대로 하는 경우가 많습니다. 하청기업은 대기업의 눈치를 보게 해서는 안 됩니다. 일한 대가를 정당하게 요구할 수 있어야 합니다. 좋은 사회는 이런 규칙이 잘 지켜지는 사회입니다. 돈이 많다고 힘이 있다고 한없이 편하게 살 수 있는 사회는 좋은 사회가 아닙니다. 이것은 일반적이 이야기입니다. 언약 백성에게 적용하자면 언약 백성은 자기가 가진 힘으로 사는 사람이 아니고 하나님을 닮아서 하나님처럼 행동하는 사람입니다. 

    자기의 죄로 말미암아

    16   아버지는 그 자식들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요 자식들은 그 아버지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하지 않을 것이니 각 사람은 자기 죄로 말미암아 죽임을 당할 것이니라

     

    함무라비 법전은 건축업자가 짓던 집이 무너져서 집주인의 아들이 깔려 죽은 경우 건축업자의 아들을 죽이라고 합니다. 아버지의 잘못으로 아들이 죽게 되는 것입니다. 16절은 그런 종류의 처벌을 금지합니다. 또한 집단 처벌도 금지합니다. 오직 죄를 범한 사람만 처벌되어야 합니다. 열왕기하 14장 5절에서는 누군가 왕을 죽인 경우에도 그 자식들은 처벌 받지 않았다고 나옵니다. 16절대로 실천한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무죄한 사람이 가족의 죄로 인해서 고통당하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이런 의미에서 연대 보증제도가 폐지된 것은 참 잘 된 일입니다. 

    우리의 죄를 대신 지신 예수님

    예수님께서는 이 원칙을 뛰어 넘으셔서 모든 사람의 죄를 대신 지셨습니다. 예수님께서는 십자가에서 당신님의 죄가 아니라 택하신 백성들의 모든 죄 때문에 하나님의 무한한 진노를 당하셨습니다. 각자 자기의 죄로 죽어야 하는데 예수님께서 대신 죽임을 당하신 것입니다. 이렇게 본다면 각자가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자기의 죄를 대신 져주신 예수님을 자기가 믿어야 하는 것입니다. 가족 중에 누가 교회 다닌다고 해서 구원을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자기의 죄를 예수님께서 지시고 십자가에서 죽임 당하시고 부활하셨다는 것을 자기가 믿어야 합니다. 

    객과 고아와 과부

    17   너는 객이나 고아의 송사를 억울하게 하지 말며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
    18   너는 애굽에서 종 되었던 일과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너를 거기서 속량하신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19   네가 밭에서 곡식을 벨 때에 그 한 뭇을 밭에 잊어버렸거든 다시 가서 가져오지 말고 나그네와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
    20   네가 네 감람나무를 떤 후에 그 가지를 다시 살피지 말고 그 남은 것은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며
    21   네가 네 포도원의 포도를 딴 후에 그 남은 것을 다시 따지 말고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하여 남겨두라
    22   너는 애굽 땅에서 종 되었던 것을 기억하라 이러므로 내가 네게 이 일을 행하라 명령하노라

     

    17-22절에서는 객과 고아와 과부를 위한 언약조항이 나옵니다. 제 8계명에 담긴 하나님의 뜻은 너와 이웃의 소유를 풍부하게 하라는 것입니다. 이 구절들에 그러한 하나님의 뜻이 담겨 있습니다. 19절에 보면 "그리하면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내리시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러므로 이 구절에 나온 대로 행하면 복을 받아서 소유가 풍부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소유가 풍부해지기 위해서는 객과 고아와 과부의 필요를 채워야 합니다. 즉 이웃을 잘 살도록 해야 하는 것입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들

    객은 땅이 없는 사람들을 뜻합니다. 고아와 과부는 보호자가 없는 사람입니다. 이들은 모두 힘이 없는 사람들입니다. 힘이 없기 때문에 이들의 법적 권리는 쉽게 무시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의 권리가 무시되는 것을 금하십니다.

    언약 백성의 의무

    하나님께서는 법 앞에서 이들이 평등하게 대우 받기를 원하십니다. 송사가 이들에게 억울하게 이루어지지 않도록 하라고 하십니다. 과부의 옷을 전당 잡지 말라고 하십니다(17절). 또한 하나님께서는 밭이나 과수원에서 추수되지 않은 부분을 이들에게 주십니다(19, 20, 21절). 언약 백성에게는 이들을 돌볼 의무가 있습니다. 왜냐하면 그들 모두 하나님으로부터 돌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힘 없는 이스라엘을 애굽에서 속량하시고 건져내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당시에 땅도 없고 보호자도 없는 처지였습니다. 아무 힘도 없는 노예였습니다(18, 22절). 하나님께서는 그런 그들을 불쌍히 여기셔서 애굽에서 건져주셨습니다. 언약 백성은 이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특별히 보호자가 없거나 땅이 없는 사람들, 약한 사람들을 볼 때 자기가 어떤 구원을 받았는지를 기억해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이 경건입니다. 

    참된 경건

    신약 성경은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것이 참된 경건이라고 말씀합니다(약 1:27). 이것은 신명기를 근거로 한 말씀입니다. 믿는 사람이 고아와 과부를 돌보는 이유는 자기가 하나님으로부터 그렇게 돌봄을 받았기 때문입니다. 자기 의를 위해서 구제를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을 향한 감사의 마음 때문에 구제하는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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