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2. 21. 20:20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여호수아
목차
여호수아 8:18-35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믿음과 교만
하나님께서는 아이 성을 점령할 방법을 알려주셨습니다. 그 방법은 복병을 두는 것이었습니다.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은 그 명령 그대로 전쟁에서 승리했습니다. 이 전쟁은 하나님의 전쟁입니다. 하나님의 전쟁은 하나님을 믿고 수행해야 합니다. 자기 힘으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처음에 자기 힘을 믿고 이삼천 명만 올라가서 아이를 쳤던 이스라엘은(7:3) 죄의 오염을 정화한 다음 온전히 하나님을 믿고 전력을 다했습니다. 믿음은 전력을 다하는 것으로 나타납니다. 교만은 믿음의 열매가 아닙니다.
아이 성의 승리
18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이르시되 네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아이를 가리키라 내가 이 성읍을 네 손에 넘겨 주리라 여호수아가 그의 손에 잡은 단창을 들어 그 성읍을 가리키니
19 그의 손을 드는 순간에 복병이 그들의 자리에서 급히 일어나 성읍으로 달려 들어가서 점령하고 곧 성읍에 불을 놓았더라
20 아이 사람이 뒤를 돌아본즉 그 성읍에 연기가 하늘에 닿은 것이 보이니 이 길로도 저 길로도 도망할 수 없이 되었고 광야로 도망하던 이스라엘 백성은 그 추격하던 자에게로 돌아섰더라
21 여호수아와 온 이스라엘이 그 복병이 성읍을 점령함과 성읍에 연기가 오름을 보고 다시 돌이켜 아이 사람들을 쳐죽이고
22 복병도 성읍에서 나와 그들을 치매 그들이 이스라엘 중간에 든지라 어떤 사람들은 이쪽에서 어떤 사람들은 저쪽에서 쳐죽여서 한 사람도 남거나 도망하지 못하게 하였고
23 아이 왕을 사로잡아 여호수아 앞으로 끌어 왔더라
24 이스라엘이 자기들을 광야로 추격하던 모든 아이 주민을 들에서 죽이되 그들을 다 칼날에 엎드러지게 하여 진멸하기를 마치고 온 이스라엘이 아이로 돌아와서 칼날로 죽이매
25 그 날에 엎드러진 아이 사람들은 남녀가 모두 만 이천 명이라
26 아이 주민들을 진멸하여 바치기까지 여호수아가 단창을 잡아 든 손을 거두지 아니하였고
27 오직 그 성읍의 가축과 노략한 것은 여호와께서 여호수아에게 명령하신 대로 이스라엘이 탈취하였더라
28 이에 여호수아가 아이를 불살라 그것으로 영원한 무더기를 만들었더니 오늘까지 황폐하였으며
29 그가 또 아이 왕을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 질 때에 명령하여 그의 시체를 나무에서 내려 그 성문 어귀에 던지고 그 위에 돌로 큰 무더기를 쌓았더니 그것이 오늘까지 있더라
아이 사람들은 교만했습니다. 그들은 성 문을 열어놓고 자기들보다 훨씬 크고 강한 이스라엘 군대를 추격해갔습니다. 그들은 남자와 여자를 합쳐서 겨우 만 이천 명밖에 안 되었습니다(25절). 반면 이스라엘 백성들은 장정만 육십만 명이었습니다. 복병만 해도 삼만 오천 명이었습니다. 만 이천 명으로 육십만 대군을 추격했는데 그것도 성문을 열어 놓고 추격했습니다. 이것은 처음 승리에 도취된 결과입니다.
우리 주님께서는 음부의 권세가 교회를 당하지 못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마 16:18). 음부의 권세라고 번역된 말에서 권세는 "문"입니다. 음부는 사망한 자들이 가는 곳입니다. 교회는 죄와 사망의 문을 부수고 들어가서 생명을 구원합니다. 이러한 전쟁을 수행할 때 교회는 전력을 다합니다. 전력을 다하면서도 자기 힘을 의지하지 않고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아이 성 사람들이 착각한 것처럼 우리는 착각하면 안 됩니다. 음부가 공격하는 것처럼 보여도 사실은 교회가 공격하는 것입니다.
나무에 달리는 저주
아이 왕은 저녁 때까지 나무에 달았다가 해 질 때에 그 시체를 나무에서 내렸습니다(29절). 그의 시체를 나무에 단 것은 그가 저주 받은 자라는 것을 보여주기 위함입니다. 그가 저주 받은 자인 까닭은 그가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그는 하나님의 백성을 죽이고 추격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였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자의 최후는 나무에 달리는 저주를 받는 것입니다. 이것이 바로 죄의 결말입니다. 하나님을 대적하는 것이 죄이고 그 끝은 저주를 받아 나무에 달리는 것입니다.
우리 예수님께서는 하나님과 사람을 지극히 사랑하셨습니다. 우리 예수님께는 죄가 전혀 없었습니다. 죄를 알지도 못하셨습니다. 그러셨지만 죄가 되셨습니다(고후 5:21). 죄가 되셔서 저주를 받으시고 나무에 달리셨습니다. 예수님께서 나무에 달리신 것은 우리가 하나님을 대적했기 때문입니다. 우리의 죄 때문입니다. 아이 왕이 당한 일을 우리가 당해야 마땅한데 우리 예수님께서 대신 당하셨습니다. 그로 인해서 우리는 생명을 얻었습니다.
에발 산과 그리심 산 사이에서
30 그 때에 여호수아가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를 위하여 에발 산에 한 제단을 쌓았으니
31 이는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명령한 것과 모세의 율법책에 기록된 대로 쇠 연장으로 다듬지 아니한 새 돌로 만든 제단이라 무리가 여호와께 번제물과 화목제물을 그 위에 드렸으며
32 여호수아가 거기서 모세가 기록한 율법을 이스라엘 자손의 목전에서 그 돌에 기록하매
33 온 이스라엘과 그 장로들과 관리들과 재판장들과 본토인뿐 아니라 이방인까지 여호와의 언약궤를 멘 레위 사람 제사장들 앞에서 궤의 좌우에 서되 절반은 그리심 산 앞에, 절반은 에발 산 앞에 섰으니 이는 전에 여호와의 종 모세가 이스라엘 백성에게 축복하라고 명령한 대로 함이라
34 그 후에 여호수아가 율법책에 기록된 모든 것 대로 축복과 저주하는 율법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였으니
35 모세가 명령한 것은 여호수아가 이스라엘 온 회중과 여자들과 아이와 그들 중에 동행하는 거류민들 앞에서 낭독하지 아니한 말이 하나도 없었더라
축복과 저주가 그리심 산과 에발 산 사이에서 선포되었습니다(34절). 언약 조항을 지키면 복이요 어기면 저주입니다. 그리심 산은 축복을 상징하고 에발 산은 저주를 상징합니다. 축복과 저주를 가르는 것이 언약 조항인 율법입니다(32-33절).
여호수아는 에발 산에 제단을 쌓고(30절) 거기에 율법을 기록하고(32절) 그 위에 번제와 화목제를 드렸습니다. 번제는 하나님께 모든 것을 다 드린다는 의미요 화목제는 하나님과 화목한다는 의미입니다. 모든 제사는 속죄의 의미를 가집니다. 저주의 산 에발 산에서는 번제와 화목제가 드려졌습니다. 그리고 저주가 선포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이 저주는 택하신 족속에게 내리지 않게 되었습니다. 번제와 화목제로 하나님께서 그들을 받으셨기 때문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영원한 속죄제사로 우리 하나님께서 우리와 화목하게 되셨기 때문입니다. 이 말은 언약 조항을 이제 어겨도 된다는 뜻이 아닙니다. 언약 조항이 구원의 근거가 되지 않는다는 뜻입니다. 언약 조항을 우리 하나님께서 친히 지키시고 우리로 하여금 지키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죄를 속하시고 우리를 받아주실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구원을 주도하실 것입니다. 이것이 복음입니다. 우리는 저주를 당하지 않습니다. 구원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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