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1장 1-12절 | 하나님을 대항하여 전쟁을 벌이는 아하시야

2024. 9. 1. 11:5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1:1-12

    찬송가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역사와 하나님 말씀

    열왕기상과 하는 원래 한 권의 책이었습니다. 유대교 전통에 의하면 이 책은 예레미야가 기록한 것이라고 합니다. 예레미야는 선지자입니다. 그러므로 이 책들은 유대교 성경에서 전선지서에 들어갑니다. 전선지서에는 여호수아, 사사기, 사무엘서가 들어갑니다. 열왕기서는 전선지서 중에 마지막 책입니다. 역사를 기록한 책이 선지서 안에 들어가는 것은 의미가 있습니다. 선지서 안에는 하나님의 예언이 담겨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예언의 말씀은 실행을 포함합니다. 그 실행은 역사서 안에 담겨 있습니다. 특별히 하나님께서 신명기에서 하신 말씀이 이스라엘 역사 가운데에서 어떻게 실현되었는지를 볼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우리에게 역사는 하나님의 말씀이 실행되는 역사입니다. 즉 하나님의 역사인 것입니다. 우리의 하루가 하나님의 역사입니다. 

    저주의 방향으로

    1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하였더라
    2   아하시야가 사마리아에 있는 그의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 병들매 사자를 보내며 그들에게 이르되 가서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이 병이 낫겠나 물어 보라 하니라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은 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1절). 북이스라엘의 정치적인 힘이 약화된 것입니다. 이것도 하나님의 징계입니다. 나라가 쪼글어들고 있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언약의 복과 반대 방향, 즉 저주의 방향으로 향하고 있다는 신호입니다.

    하나님은 없다는 듯이

    2절에 나오는 아하시야는 아합과 이세벨 사이에서 태어난 아들입니다. 그 이름의 뜻은 여호와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호와의 소유답게 행동하지 않았습니다. 그가 다락 난간에서 떨어져서 병들었을 때 그는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었습니다(2절). 바울세붑은 "파리의 주"라는 뜻입니다. 어떤 학자는 '바알은 왕이다'라는 뜻의 바알세불을 바알세붑이라고 바꾸어서 기록했을 것이라고 보기도 합니다. 파리의 주, 즉 하찮은 것을 섬긴다는 뜻으로 풍자한 것입니다. 아하시야의 이런 행동은 하나님은 없다는 듯한 행동입니다. 그는 무신론자처럼 행동했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하나님의 소유'라는 이름을 가진 자가 '무신론자'처럼 행동하는 것은 이 시대에도 많이 일어나는 일입니다. 우리 중 그 누구도 하나님의 소유가 아닌 사람이 없습니다. 모든 인류는 다 하나님의 소유입니다. 그러나 그들 중 대다수가 하나님이 안 계신 것처럼 행동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이런 시대에 하나님께 선택 받아 하나님을 섬기는 우리는 놀라운 은혜를 받은 사람들입니다. 

    엘리야

    3   여호와의 사자가 디셉 사람 엘리야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 올라가서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 그에게 이르기를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
    4   그러므로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엘리야가 이에 가니라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가 어떻게 행동하는지를 다 보시고 계셨습니다. 아하시야는 정말 하나님의 소유였습니다. 하나님의 소유가 하나님을 무시하고 반역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지켜보고 계셨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지켜보시고 계셨다는 것이 3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여호와의 사자를 엘리야에게 보내셨습니다. 엘리야에게 사마리아 왕의 사자를 만나라고 하셨습니다. 만나서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너희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러 가느냐"라고 물으라고 하셨습니다. 

    하나님께만 기도하는 우리들

    "하나님이 없어서"라고 하신 것은 아하시야가 정말 하나님께서 없다는 듯이 행동했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것처럼 행동하는 것은 하나님께 물어야 할 것을 이방 신에게 묻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묻는 사람들입니다. 하나님께 우리 사정을 아뢰고 우리의 마음을 아뢰는 사람들입니다. 즉,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하는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기도합니다. 기도를 할 때 중요한 것은 내가 "누구에게" 기도를 하느냐 하는 것을 확실히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 모든 사정을 아십니다. 그러므로 기도를 할 때에는 모든 것을 아시는 하나님께 마음을 토하여 기도해야 합니다. 

    재앙의 말씀을 주시는 것은 회개할 기회를 주시는 것임

    하나님께서는 아하시야에게 재앙의 말씀을 전하라고 하십니다. 그 말씀은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라는 말씀입니다(4절). 이 말씀은 그대로 성취됩니다(1:17). 그런데 아하시야가 이 말씀을 들을 때에 그에게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이 말씀을 듣고 회개하여 살 기회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그 기회를 붙잡지 못합니다.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5   사자들이 왕에게 돌아오니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너희는 어찌하여 돌아왔느냐 하니
    6   그들이 말하되 한 사람이 올라와서 우리를 만나 이르되 너희는 너희를 보낸 왕에게로 돌아가서 그에게 고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이스라엘에 하나님이 없어서 네가 에그론의 신 바알세붑에게 물으려고 보내느냐 그러므로 네가 올라간 침상에서 내려오지 못할지라 네가 반드시 죽으리라 하셨다 하라 하더이다
    7   왕이 그들에게 이르되 올라와서 너희를 만나 이 말을 너희에게 한 그 사람은 어떤 사람이더냐

     

    사자들은 바알세붑에게 가지 못합니다. 그들은 왕에게로 돌아옵니다(5절). 이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보내셔서 그들을 막으신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행하신 일입니다. 당신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백성의 왕이 이방신에게 물으러 가는 것은 하나님의 이름에 먹칠을 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당신님의 이름을 위하여 일하십니다. 우리를 구원하시는 것도 당신님의 이름을 위하시는 일입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아 하나님의 이름을 찬양합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위하는 사람이 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이런 일에 민감해야 합니다. 

     

    사자들은 왕에게 그들이 엘리야를 만난 것과 엘리야가 자기들에게 한 말을 왕에게 전합니다(6절). 이 말을 전해들은 왕은 그들에게 말을 전한 사람이 어떻게 생겼는지 자세하게 물어봅니다. 아하시야는 회개하려고 하지 않고 엘리야를 죽이려고 하고 있습니다. 

    엘리야를 알고도

    8   그들이 그에게 대답하되 그는 털이 많은 사람인데 허리에 가죽 띠를 띠었더이다 하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사자들은 본 대로 왕에게 전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열왕기하 주석, 531쪽). 

    구약시대의 선지자들은 털옷을 입고 가죽 띠를 띠었다(참조. 마 3:4). ... 이런 복장은 검소한 것을 의미할 뿐이고 금욕주의(禁慾主義) 생활을 가리킴이 아니다. 엘리야는 하나님의 말씀 사역에 총집중하였던 까닭에 자기 생활의 편리를 도모할 겨를이 없었다(참조. 9절). 

    "왕이 이르되 그는 디셉 사람 엘리야로다" 이것을 보면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잘 알고 이었다. 그가 엘리야를 알았으니만큼 엘리야가 전하는 여호와의 말씀에 대해서도 늘 듣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도 그가 여호와를 멸시하였고(2-3절) 또 여호와의 종 엘리야를 미워하여 죽이고자 한 것이다. 이렇게 죄악으로 강퍅해진 자에게 대하여 하나님은 벌을 내리신다(참조. 10-12, 17). 

     

    아하시야가 엘리야를 모르고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낸 것이 아닙니다. 그는 엘리야를 알고 있었습니다. 그가 하나님의 사람인 것을 알고 있었고 그가 행한 일도 알고 있었습니다. 그런데도 그것을 다 무시하고 바알세붑에게 사자를 보낸 것입니다. 그는 이처럼 강퍅했습니다. 급기야 그는 엘리야를 죽이려고 했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하나님을 대항한 군사작전

    9   이에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매 그가 엘리야에게로 올라가 본즉 산 꼭대기에 앉아 있는지라 그가 엘리야에게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10   엘리야가 오십부장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이 구절은 잘 해석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무죄한 군사 오십 명을 죽이시는 장면으로 오해되기도 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그런 오해는 잘못입니다. 아하시야는 지금 하나님의 사람 엘리야를 대하여, 더 나아가서는 하나님에 대하여 전쟁을 벌이고 있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에 대한 근거는 여러 가지가 있습니다. 첫째, 아하시야는 엘리야를 데리고 오기 위해서 "군사 오십 명"을 보냈습니다. 2절에 보면 바엘세붑에게는 "사자"를 보냈습니다. 즉 왕의 말을 대신 전할 사람을 보낸 것입니다. 그런데 이번에는 "군사"를 보냈습니다. 그것도 오십 명이나 보냈습니다. 한 사람을 잡기 위해서 일개 소대의 군대를 보낸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이 때에 아하시야가 한 사람 엘리야를 체포하기 위하여 군대를 동원한 것은 엘리야와 함께하신 하나님의 권능을 대항하여 싸우기 위한 것이었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열왕기하 주석, 532쪽). 

     

    둘째, 오십부장의 말이 아하시야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오십부장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부릅니다(9절). 그런데 이것은 진실된 말이 아니었습니다. 만약 그가 엘리야를 진정 "하나님의 사람"으로 알았다면 그는 "왕의 말씀이 내려오라 하셨나이다"라고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왕보다 높으시기 때문입니다. 그는 왕을 받드는 사람이었고 하나님은 안중에도 없는 사람이었습니다. 그가 엘리야에게 "하나님의 사람이여"라고 한 것은 하나님을 높이는 말이 아니고 오히려 하나님을 무시하는 말이었습니다. 

     

    셋째, 오십부장과 그가 이끄는 군대에게 불이 내려온 것이 아하시야의 의도를 드러냅니다. 엘리야는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라고 말했습니다(10절). 이 말 안에는 오십부장이 하나님을 무시했다는 것과 또한 엘리야를 무시했다는 것이 드러납니다. 자기와 자기가 이끄는 정예병이 능히 엘리야를 잡아갈 수 있을 것이라고 생각했다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엘리야는 "하나님의 사람"이 어떤 칭호인지를 보여줍니다. 하나님의 사람은 전능하신 하나님의 이름으로 일컫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사람이 대적할 수 없는 사람입니다. 아무리 수많은 군대가 와도 그를 어쩔 수 없습니다. 아무리 각종 무기로 무장을 했어도 그 한 사람을 어떻게 할 수 없는 것입니다. 엘리야의 말대로 오십부장과 오십 명의 군사들은 하늘에서 불이 내려와서 다 죽고 맙니다. 불 심판으로 죽은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진노가 그들에게 내렸다는 뜻입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면 이렇게 됩니다. 

    강퍅한 왕과 백성들 

    11   왕이 다시 다른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엘리야에게로 보내니 그가 엘리야에게 말하여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여 왕의 말씀이 속히 내려오라 하셨나이다 하니
    12   엘리야가 그들에게 대답하여 이르되 내가 만일 하나님의 사람이면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 너와 너의 오십 명을 사를지로다 하매 하나님의 불이 곧 하늘에서 내려와 그와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랐더라

     

    처음 보낸 오십 명의 군사와 오십부장이 하늘에서 내려오는 불로 죽었다는 것을 아하시야는 들었을 것입니다. 그것을 진지하게 받아들였다면 아하시야는 재 위에 앉아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아하시야는 이러한 기적을 보고도 마음이 부드러워지지 않았습니다. 그는 굉장히 강퍅했습니다. 그는 어찌나 강퍅했던지 또 오십 명의 군사와 또 다른 오십 부장을 보냈습니다(11절). 또 다른 오십 부장은 이전 오십부장과 같았습니다. 그도 엘리야에게 똑같은 태도로 말했습니다(11절 하). 그러자 같은 일이 일어났습니다. 불이 하늘에서 내려와서 오십부장과 그의 군사 오십 명을 살라버린 것입니다(12절). 

    교회의 영적 무감각

    이것은 당시 사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둔감한 사회였는지를 보여줍니다. 하늘에서 불이 내려오는 기적과 하나님의 무서운 심판의 소식을 듣고도 왕을 비롯해서 아무도 하나님을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이것이 참 무서운 것입니다. 당시 북이스라엘은 지금으로 하자면 교회와도 같습니다. 이 사건들은 교회가 얼마나 영적으로 무감각해질 수 있는지를 보여주는 사건입니다.

     

    교회는 영적으로 민감해야 합니다. 교회는 하나님께 묻고 아뢰야 합니다. 자기들이 하나님의 소유임을 항상 자각해야 합니다. 책망의 말씀을 들었을 때 바로 회개함으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책망의 말씀을 들었다고 하나님을 대항해서 군사를 일으키는 어리석은 일을 범하지 말아야 합니다. 이것이 오늘 말씀으로 우리가 받을 교훈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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