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3장 1-12절 | 승리를 확신하고 일으킨 전쟁이지만

2024. 9. 5. 11:13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3:1-12

    찬송가 379장 내 갈 길 멀고 밤은 깊은데


    하나님을 향한 반역과 국력의 쇠퇴

    하나님의 역사는 엘리야에게서 엘리사에게로 이어졌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지만 이스라엘은 하나님께 계속 반역함으로 국력이 쇠퇴했습니다. 국력의 쇠퇴로 이스라엘을 섬기던 모압이 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 열왕기하 3장은 모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 사건을 다룹니다. 

    여호람의 행적

    1   유다의 여호사밧 왕 열여덟째 해에 아합의 아들 여호람이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리니라
    2   그가 여호와 보시기에 악을 행하였으나 그의 부모와 같이 하지는 아니하였으니 이는 그가 그의 아버지가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하였음이라
    3   그러나 그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이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하고 떠나지 아니하였더라

     

    여호람은 사마리아에서 이스라엘을 열두 해 동안 다스렸습니다(1절). 그는 그의 아버지 아합이 만든 바알의 주상을 없이했습니다(2절). 어느 정도 종교 개혁을 단행한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여전히 여호와 보시이게 악을 행했습니다. 그 악은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이 아스라엘에게 범하게 한 그 죄를 따라 행한 것입니다(3절). 이스라엘 왕은 다 여로보암의 길을 따라갔습니다. 그 결과 이스라엘은 왕조가 계속 바뀌었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받은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48쪽).

    여호람은 그 부모의 우상주의를 어느 정도 내버렸다. 그것은 죄악을 제거하는 운동이었으니 소망 있는 일이다. 그런데 그가 이 개혁 운동을 끝까지 관철하지 못하였으니만큼 그 일에 열매를 거두지는 못하였다. 곧, 그 자신도 아합 왕가(王家)가 받을 화(禍)에서 이탈되지 못한 것이다(참조 9:24). 그는 죤 번연(John Bunyan)의 글에 표현된 "두 길을 걷는 자"(Mr. facing-bothways)와 같아서 죄와 타협한 자였다. 

     

    북이스라엘이 여로보암의 길을 버리는 것은 자기를 부인하는 것과 같습니다. 벧엘의 우상숭배를 없애야 하는데 그렇게 하는 것은 종교적 정통성이 예루살렘에 있다는 것을 인정하는 것입니다. 그것은 나라의 존재 기반 자체가 흔들리는 것입니다. 그러나 만일 이스라엘 왕이 하나님을 가장 높이는 사람이었다면 그런 일을 행했을 것입니다. 예수님을 따르는 사람은 이렇게 자기를 부인하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최고의 자리에 모시고 자기는 하나님의 명령을 받기 위해 그 발 앞에 엎드리는 사람입니다. 

    모압의 배반

    4   모압  메사는 양을 치는 자라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치더니
    5   아합이 죽은 후에 모압 왕이 이스라엘 왕을 배반한지라

     

    모압 왕 메사는 모압의 비문에도 나와 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48쪽). 

    "모압 왕 메사"의 이름은 모압의 비문(Moabite Stone)에도 나와 있으니, 이 부분 기사가 역사적 사실인 것이 이것으로도 증명된다. 모압 비문은 1868년 8월 19일에 클라인 목사(Rev. F. Klein)가 모압의 디본(Divon)이란 옛 도시의 폐허에서 발견한 것이다. 메사 왕은 그모스의 아들로서 30년 동안 모압을 다스렸다. 

    "양을 치는 자"란 말은 양을 '소유한 자'라는 뜻도 가진다. 모압 땅에는 목장이 많았으니 그 왕이 많은 양들을 소유했을 것이다. 모압이 이스라엘에게 복수하기는 다윗 시대부터 된 일인데(삼하 8:2), 죄악이 가득찬 아합 왕과 아하시야의 시대에 그들이 이스라엘을 배반하기 시작하였다(참조. 왕하 1:1). 하나님께서 그의 백성을 벌하실 때에 그 이웃의 적대 행위를 방편으로 사용하시기도 한다(참조. 잠 16:7). 

     

    모압 왕 메사가 이스라엘을 배반한 것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징계하시기 위한 방편입니다. 모압은 새끼 양 십만 마리의 털과 숫양 십만 마리의 털을 이스라엘 왕에게 바쳤습니다. 이스라엘은 자기들이 수고하지 않은 양털을 조공으로 받았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이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배반하자 하나님께서 주시는 복도 하나씩 없어지기 시작했습니다. 모압의 배반은 그런 의미입니다. 

    전쟁을 준비하는 여호람

    6   그 때에 여호람 왕이 사마리아에서 나가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고
    7   또 가서 유다의 왕 여호사밧에게 사신을 보내 이르되 모압 왕이 나를 배반하였으니 당신은 나와 함께 가서 모압을 치시겠느냐 하니 그가 이르되 내가 올라가리이다 나는 당신과 같고 내 백성은 당신의 백성과 같고 내 말들도 당신의 말들과 같으니이다 하는지라

     

    여호람 왕은 이 일이 하나님에게서 온 것임을 깨달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렇게 생각하지 못했습니다. 그는 온 이스라엘을 둘러보았습니다. 이 말은 이스라엘 군대를 동원했다는 뜻입니다(6절). 그렇게 하고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군사 원조까지 얻어냈습니다(7절). 그는 자기 힘으로 잃은 것을 되찾고자 했습니다. 여호사밧이 여호람과 동조한 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48쪽). 

    이때에 유다 왕 여호사밧이 이스라엘과 합작함을 하나님께서 기뻐하시지 않았다(대하 19:2). 그러나 자비로우신 하나님께서는 이 전쟁에 있어서도 여호사밧을 도와주셨다(참조. 14절 하반). 이 일에도 하나님의 오래 참으시는 덕이 계시되었다. 

     

    믿는 우리는 악인의 계획에 동조하면 안 됩니다. 여호사밧은 여호람이 하나님을 어떻게 대적하고 있는지를 보아야 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평화주의라는 인도적 가치를 하나님의 뜻보다 앞세웠습니다. 우리는 모든 면에서 하나님의 뜻을 앞세워야 합니다. 의로운 것과 선한 것이 헷갈릴 수 있습니다. 우리는 언제나 하나님의 뜻에 맞는 것, 즉 의로운 것을 따라야 합니다.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위기에 빠진 세 왕들

    8   여호람이 이르되 우리가 어느 길로 올라가리이까 하니 그가 대답하되 에돔 광야 길로니이다 하니라
    9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이 가더니 길을 둘러 간 지 칠 일에 군사와 따라가는 가축을 먹일 물이 없는지라
    10   이스라엘 왕이 이르되 슬프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는도다 하니
    11   여호사밧이 이르되 우리가 여호와께 물을 만한 여호와의 선지자가 여기 없느냐 하는지라 이스라엘 왕의 신하들 중의 한 사람이 대답하여 이르되 전에 엘리야의 손에 물을 붓던 사밧의 아들 엘리사가 여기 있나이다 하니
    12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 하는지라 이에 이스라엘 왕과 여호사밧과 에돔 왕이 그에게로 내려가니라

     

    8절의 에돔 광야 길은 사해 남쪽으로 돌아 에돔의 북쪽 산을 통과해서 모압 땅의 남쪽으로 들어가는 길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에 의하면 이 길에는 골짜기를 따라서 시냇물이 흘러서 그들이 생각하기에 행군하기 좋다고 여겼을 것이라고 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49쪽). 

    그런데 이스라엘 군대가 그 길을 택하여 진행하던 중 칠 일 만에 물이 없어 곤란을 당하게 되었다. 이렇게 사람의 계획대로 일이 되지 않을 대에 여호람은 실망하였으나(10절), 경건한 여호사밧은 전과 같이(왕상 22:5)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아보기 원하였다(11절). 

     

    여호사밧은 엘리사가 있다는 소식을 듣고 그에게 직접 찾아갑니다(11-12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그들이 엘리사를 부르지 않고 친히 찾아감은 이때에 그들이 당했던 곤란 때문에 겸손해진 증표이다. 그때에 에돔 왕은 유다에 예속되어 있었으니만큼(삼하 8:13-14) 유다 왕 여호사밧과 동행하였다. 

     

    이스라엘 왕과 유다 왕과 에돔 왕, 이렇게 세 왕이 모압을 치려고 군대를 일으켰습니다. 인간적으로 보기에 승리는 정해진 것 같습니다. 그러나 전쟁은 사람의 게획대로 되는 것이 아닙니다. 세 왕이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를 찾아가는 것은 바로 그것을 우리에게 알려줍니다. "여호사밧이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그에게 있도다(12절 상)" 하나님의 나라는 하나님의 뜻대로 다스려져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열왕기는 선지서 안에 들어있습니다. 

     

    이 전쟁은 여호람의 입장에서 보면 만반의 준비를 다 해서 벌이는 전쟁입니다. 패할 가능성을 조금도 남겨두지 않은 전쟁인 것입니다. 그러나 여호람은 전쟁을 하기도 전에 죽을 위기에 들어갔습니다(10절). 전쟁은 하나님께 속한 것입니다. 여호람은 그것을 등한시했습니다. 전쟁만이 아닙니다. 하나님 나라는 하나님께 속했습니다. 즉 우리는 모두 하나님께 속해 있음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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