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4장 1-17절 | 두 여인의 필요를 채우시는 하나님

2024. 9. 7. 21:4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4:1-17

    찬송가 370장 주 안에 있는 나에게


    하나님 중심의 역사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나라입니다. 열왕기는 왕들의 행적을 중요하게 다룹니다. 하지만 왕들의 행적에서 중요한 것은 "여호와 보시기에 선했는가 악했는가"입니다. 즉, 하나님 중심의 역사 기술인 것입니다. 열왕기가 하나님 중심의 역사 기술인 것은 열왕기의 중심에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적이 비중 있게 등장하기 때문입니다. 4장에서 엘리사의 기적이 나오는 이유가 바로 그것입니다. 

    위기에 처한 가정 

    1   선지자의 제자들의 아내 중의 한 여인이 엘리사에게 부르짖어 이르되 당신의 종 나의 남편이 이미 죽었는데 당신의 종이 여호와를 경외한 줄은 당신이 아시는 바니이다 이제 빚 준 사람이 와서 나의 두 아이를 데려가 그의 종을 삼고자 하나이다 하니

     

    1절에는 한 과부가 등장합니다. 이 과부는 선지자의 제자의 아내였습니다. 선지자의 제자였으니 지금으로 하면 신학생 정도라고 생각하면 됩니다. 한 사람이 신학을 공부하다가 죽었습니다. 그 사람은 여호와를 경외한 사람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사람이 죽고 그 사람의 두 아이가 빚 때문에 노예로 팔려갈 위기에 처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 영광이 되지 않는 일입니다. 또한 이 일은 하나님께서 해결해 주셔야만 하는 일입니다. 

    기름 한 그릇 외에는 

    2   엘리사가 그에게 이르되 내가 너를 위하여 어떻게 하랴 네 집에 무엇이 있는지 내게 말하라 그가 이르되 계집종의 집에 기름 한 그릇 외에는 아무것도 없나이다 하니
    3   이르되 너는 밖에 나가서 모든 이웃에게 그릇을 빌리라 빈 그릇을 빌리되 조금 빌리지 말고

     

    엘리사는 그 여자에게 너의 집에 무엇이 있냐고 물었습니다. 빚 때문에 두 아들이 팔려갈 위기에 처해 있었지만 그 집에도 기름 한 그릇은 있었습니다. 여기 기름 한 그릇은 한 병의 기름이라는 뜻입니다.

     

    엘리야는 과부에게 모든 이웃들에게 그릇을 빌리라고 합니다. "조금 빌리지 말고" 많이 빌리라고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것은 그 과부로 하여금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큰 믿음을 가지도록 촉구하는 귀한 말씀이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34쪽). 

    나에게 무엇이 있는지

    사람이 위기를 만나면 보통 자기에게는 이 위기를 극복할 수 있는 것이 아무 것도 없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렇게 보시지 않으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에게 아무 것도 없이 살라고 하시는 분이 아닙니다. 살 수 있도록 주신 것이 있습니다. 위기를 만날 때에는 바로 나에게 무엇이 있는가를 생각해야 합니다. 아무 것도 없는 사람은 없습니다.

     

    기름 한 그릇은 정말 모든 것을 빼앗긴 다음에 남아 있는 것이었습니다. 여기에서 반등이 시작됩니다. 우리 믿는 사람은 더 내려갈 수 없을 정도로 낮아지는 때에 반등이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반등은 하나님께서 남겨주신 것으로부터 시작됩니다. 아무 것도 없는 것처럼 보이는 순간에도 잘 보면 하나님께서 나에게 남겨주신 것이 있습니다. 우리의 시선을 있는 것으로 향해야 합니다.

    절대 빼앗기지 않는 것

    우리에게 있는 것 중에서 절대 빼앗기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은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향한 믿음입니다. 누가 우리 재산을 빼앗는 일이 있을 수 있습니다. 심지어 누가 우리 목숨을 빼앗는 일이 있을 수도 있습니다. 하지만 우리 믿음을 빼앗을 수 있는 사람은 없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우리를 꼭 붙드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이 있는 사람은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부활이라는 놀라운 반등이 죽음에서부터 시작되기 때문입니다. 우리가 가져야 하는 믿음은 바로 이런 믿음입니다. 하나님의 능력 앞에서 우리가 가져야 하는 큰 믿음은 하나님께서 나를 다시 실리신다는 믿음인 것입니다. 

     

    그릇에 다 찬지라

    그릇에 다 찬지라

    4   너는 네 두 아들과 함께 들어가서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 하니라
    5   여인이 물러가서 그의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은 후에 그들은 그릇을 그에게로 가져오고 그는 부었더니
    6   그릇에 다 찬지라 여인이 아들에게 이르되 또 그릇을 내게로 가져오라 하니 아들이 이르되 다른 그릇이 없나이다 하니 기름이 곧 그쳤더라
    7   그 여인이 하나님의 사람에게 나아가서 말하니 그가 이르되 너는 가서 기름을 팔아 빚을 갚고 남은 것으로 너와 네 두 아들이 생활하라 하였더라

    엘리야는 두 아들과 함께 문을 닫고 그 모든 그릇에 기름을 부어서 차는 대로 옮겨 놓으라고 합니다(4절). 여인은 그대로 행합니다. 그랬더니 놀라운 기적이 일어납니다. 기름 병에서 기름을 붓는 대로 기름이 계속 나오는 것입니다(5-6절 상). 그런데 그릇이 떨어지자 기름이 그쳤습니다(6절 하). 그렇게 해서 그 집에는 빌려온 그릇의 용량 만큼 기름이 채워졌습니다. 엘리사는 그 기름을 팔아서 빚을 갚고 생활비로 쓰라고 합니다(7절). 그렇게 해서 과부는 빚도 갚고 아들들이 장성하기까지 생활비도 해결되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것은 영적으로 신자가 은혜 받을 준비를 잘할수록 거기에 비례하여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의 분량도 결정된다는 진리를 보여준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4쪽). 

     

    우리는 믿음으로 사는 사람입니다. 즉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삽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할 때 우리는 실생활에서 빚을 지지 않고 살 수 있습니다. 심지어 생활비까지 다 해결받고 살 수 있습니다. 믿음은 이렇게 실제적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믿음은 이렇게 놀라운 것입니다. 믿음은 모든 빈 그릇 모두를 다 채울 수 있습니다. 나에게 부족한 것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채우시리라 믿는 그 믿음을 그 부족한 부분에 채워 넣을 수 있습니다. 그렇게 하면 하나님께서 그 부족한 부분을 채우셔서 역사하십니다. 그 누구도 뭔가 부족해서 하나님의 일을 못한 경우는 없습니다. 뭔가 없었다면 그것은 믿음이 없었던 것입니다. 또는 믿음을 채워넣을 빈 그릇이 없었던 것입니다.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

    신약에서 교회를 다음과 같이 정의합니다. "교회는 그의 몸이니 만물 안에서 만물을 충만하게 하시는 이의 충만함이니라(엡 1:23)" 교회는 예수님의 몸입니다. 예수님의 몸으로서 교회는 무엇을 하냐면 모든 부족한 부분을 채워서 충만하게 합니다. 예수님 앞에는 부족한 것이 있을 수 없습니다. 오직 충만한 것만 있습니다. 그러므로 교회는 그 어떤 빈 그릇이든 채울 수 있습니다. 바로 예수 그리스도로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이것이 교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가 믿음으로 빈 그릇을 채운다고 할 때 그것은 곧 예수 그리스도로 그것을 채운다는 뜻입니다. 사랑이 없는 곳에 사랑을, 정의가 없는 곳에 정의를, 긍휼이 없는 곳에 긍휼을, 먹을 것이 없는 곳에 식량을, 생수가 없는 곳에 생수를, 교회는 이 모든 것을 채울 수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로 채울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수넴 여인

    8   하루는 엘리사가 수넴에 이르렀더니 거기에 한 귀한 여인이 그를 간권하여 음식을 먹게 하였으므로 엘리사가 그 곳을 지날 때마다 음식을 먹으러 그리로 들어갔더라
    9   여인이 그의 남편에게 이르되 항상 우리를 지나가는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10   청하건대 우리가 그를 위하여 작은 방을 담 위에 만들고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사이다 그가 우리에게 이르면 거기에 머물리이다 하였더라

     

    엘리사의 또 다른 행적이 나옵니다. 수넴 여인이 엘리사를 위해서 방 하나를 만들어서 그를 잘 섬겼습니다(10절). 그 여인이 엘리사에게 이렇게 한 것은 "이 사람은 하나님의 거룩한 사람인 줄을 내가 아노니" 즉 엘리사가 하나님의 사람인 줄 알았기 때문입니다(9절). 여인은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으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이 여인은 엘리사를 위해서 방을 만들 때 바람과 비를 잘 막을 수 있는 좋은 방을 만들었습니다. 방 안에는 고요하게 하나님께 기도할 수 있도록 침상과 책상과 의자와 촛대를 두었습니다(10절). 그렇게 해서 언제든지 거기에서 편하게 지낼 수 있도록 했습니다. 엘리사에게 참으로 정성을 다 했습니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11   하루는 엘리사가 거기에 이르러 그 방에 들어가 누웠더니
    12   자기 사환 게하시에게 이르되 이 수넴 여인을 불러오라 하니 곧 여인을 부르매 여인이 그 앞에 선지라
    13   엘리사가 자기 사환에게 이르되 너는 그에게 이르라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 하니 여인이 이르되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사환 게하시를 그 여인에게 보냈습니다. 보내서 "네가 이같이 우리를 위하여 세심한 배려를 하는도다"라고 칭찬했습니다. 엘리사는 마음에 감동이 되어 그 여인에게 무엇이든지 구하라고 합니다.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라고 물어봅니다. 이 말은 혹시 권력의 도움이 필요하면 말하라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6쪽). 

    그 여인의 남편이 부자였으니만큼 그 재산을 보호함에 있어서 권력의 도움이 필요할 것으로 엘리사는 이때부터 미리 내다본 것이다(참조. 왕하 8:16). 사람은 자기의 앞날을 알지 못하나 엘리사와 함께하신 하나님은 다 아셨다. 

     

    탁월한 주석입니다. 엘리사가 예견한 대로 나중에 게하시가 왕에게 엘리사의 행적을 전할 때 마침 이 여인이 들어오고 그 결과 여인은 자기의 땅을 다 되찾게 됩니다(왕하 8:1-6). 

     

    엘리야의 말에 여인은 "나는 내 백성 중에 거주하나이다"라고 대답합니다. 이 말은 자기는 자기 백성 중에 평안히 거하기 때문에 권력의 도움을 특별히 받을 일이 없다는 뜻입니다. 이 여인은 장래에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했습니다. 사람은 자기에게 무슨 일이 있을지 알지 못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6쪽).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14   엘리사가 이르되 그러면 그를 위하여 무엇을 하여야 할까 하니 게하시가 대답하되 참으로 이 여인은 아들이 없고 그 남편은 늙었나이다 하니
    15   이르되 다시 부르라 하여 부르매 여인이 문에 서니라
    16   엘리사가 이르되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 하니 여인이 이르되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 하니라
    17   여인이 과연 잉태하여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았더라

     

    엘리사는 여인에게 무엇이라도 해주고 싶었습니다. 그 여인에게는 아들이 없었습니다. 즉 부족한 것이 있었던 것입니다. 아무리 재산이 많아도 아들이 없다는 것은 상속자가 없다는 것이고 재산도 다 소용이 없게 된다는 뜻입니다. 이 부족함은 결정적인 부족함이었습니다. 

     

    엘리사는 이 여인의 부족함을 채워주는 말씀을 선포합니다. "한 해가 지나 이 때쯤에 네가 아들을 안으리라(16절)" 이에 대해서 여인은 "아니로소이다 내 주 하나님의 사람이여 당신의 계집종을 속이지 마옵소서"라고 대답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6쪽). 

    이 문구의 히브리 원문은, "당신의 계집종에게 속이는 소망을 격동시키지 마십시오"라고 개역되어야 한다. 그 여인의 이와 같은 말은 기쁜 풍자적(諷刺的) 표현인 듯하다. 그가 엘리사를 매우 존중한 만큼(8-10절), 그 중심에는 그의 예언을 믿었을 것이다. 아브라함과 사라도 이와 유사한 태도를 표시하였다(창 17:17, 18:12). 

     

    어쩌면 여인은 너무 기쁘고 놀라운 말씀에 소망으로 격동되는 마음을 누그러뜨리기 위해서 그렇게 말했는지도 모릅니다. 그 말대로 되기를 간절히 소망하면서도 설마 되겠느냐라고 반어적으로 표현하는 것입니다. 

     

    그런데 정말 여인에게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엘리사가 여인에게 말한 대로 아들을 낳은 것입니다(17절). 그런데 이 일은 13절과 연관되는 일입니다. 아들이 태어났다가 죽습니다. 죽었다가 엘리사가 다시 살립니다. 이 일 덕분에 이 여인은 가뭄도 피하고 모든 소유도 그대로 받게 됩니다. 이런 놀라운 일이 연속으로 이 여인에게 일어났습니다. 이 여인이 하나님을 존중하고 사랑한 대로 엘리사에게 행한 것이 이렇게 놀라운 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일에 따르는 보상

    우리가 하나님께 행하는 일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우리에게 있는 것으로 하나님을 존중히 여깁니다. 그런데 그것이 우리가 생각하지 못하는 놀라운 보상으로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구약 성경에서는 그것이 이 땅에서 주어지는 것으로 많이 나옵니다. 물론 이 땅에서 그렇게 받아 누리는 사람도 많습니다. 그런데 만약 이 땅에서 받아누리지 못한다해도 괜찮습니다. 왜냐하면 우리가 소망하는 내세, 예수 그리스도의 나라, 천국의 극치가 이르면 우리가 상상하지 못한 보상이 우리에게 주어질 것이기 때문입니다. 하늘 상급이 우리에게 주어집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은 매순간 하나님을 존중히 여기는 마음으로 다른 사람을 섬기는 일을 부지런히 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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