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3장 13-27절 | 모압을 치지만 승리를 거두지는 못함

2024. 9. 6. 12:48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3:13-27

    찬송가 425장 주님의 뜻을 이루소서


    죽음의 위기에서

    모압이 북이스라엘을 배반했습니다. 북이스라엘의 왕 여호람은 모압을 칠 준비를 하고 유다 왕 여호사밧에게 모압을 같이 치자고 제안했습니다. 그 제안에 따라서 당시 남 유다의 속국이었던 에돔의 왕까지 해서 세 왕이 모압을 치러갔습니다. 그런데 가는 길에 칠 일 만에 물이 떨어졌습니다. 세 왕이 죽을 위기 가운데 들어간 것입니다. 그 때 여호사밧은 여호와의 선지자를 찾았고 엘리사가 있다는 것을 안 그들은 엘리사에게 찾아갔습니다(12절). 13절부터는 엘리사를 만나는 장면이 나옵니다. 

    여호람을 꾸짖는 엘리사

    13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에게 이르되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 하니 이스라엘 왕이 그에게 이르되 그렇지 아니하니이다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 하니라

     

    엘리사는 여호람을 꾸짖습니다. 먼저 그는 "내가 당신과 무슨 상관이 있나이까"라고 합니다. 아합의 집이 하나님을 배반한 것에 대한 꾸짖음입니다. 하나님을 배반해 놓고 이제 와서 왜 하나님께 도움을 요청하러 왔느냐고 꾸짖는 것입니다. 그래서 엘리사는 "당신의 부친의 선지자들과 당신의 모친의 선지자들에게로 가소서"라고 합니다. 아합과 이세벨의 선자들에게로 가라는 말은 곧 바알과 아세라 신에게 가라는 뜻입니다.

     

    이에 대해서 여호람은 겸손하게 "여호와께서 이 세 왕을 불러 모아 모압의 손에 넘기려 하시나이다"라고 도움을 청합니다. 그는 자기뿐만 아니라 유다 왕과 에돔 왕까지 함께 죽을 위기에 들어갔다고 합니다. 자기만이 아니고 다른 왕들을 돌보아주셔야 되지 않겠습니까, 이런 말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메튜 헨리를 인용해서 "어떤 때는 악인도 살기 위하여 의인에게 애걸하는 태도를 취한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49쪽)"라고 주석합니다.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14   엘리사가 이르되 내가 섬기는 만군의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만일 유다의 왕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아니하였으리이다

     

    여호람이 유다 왕을 언급한 것이 통했습니다. 엘리사는 여호사밧의 얼굴을 봄이 아니면 그 앞에서 당신을 향하지도 아니하고 보지도 않았을 것이라고 여호람을 책망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0쪽). 

    이 말도 매우 날카로운 책망이다. 이런 책망이 아니고는 타협주의자요 권세 있고 교만한 여호람의 마음을 찌를 방법이 없었다. 선지자는 상대방이 듣든지 말든지 그에게 자극성 있는 말을 한 것이다(참조. 잠 25:11-12, 27:5). 이것이 파수꾼의 책임이다(겔 2:7). 

     

    엘리사가 이렇게 여호람을 심하게 책망하는 이유는 그가 악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또 다른 이유가 있습니다. 그것은 박윤선 목사님이 잘 주석하듯이 "그의 마음을 찌르기" 위해서입니다. 여호람의 마음을 찔러 그로 하여금 하나님 앞에 겸손히 회개하게 하기 위해서 이렇게 책망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은 이런 책망을 달게 듣습니다. 책망을 좋아하는 사람은 없습니다. 만약 누가 책망을 달게 듣는다면 그런 사람은 하나님께 은혜를 받은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자들은 책망을 들을 때 교만한 마음으로 듣지 말고 오히려 자기 자신을 잘 돌아보는 계기로 삼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징계를 달게 받는 것도 은혜입니다. 

    여호사밧의 낯을 보아주시는 은혜

    엘리사가 여호사밧의 낯을 보아준다는 것도 은혜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0쪽). 

    여기 이른바 "유다 왕 여호사밧의 낯을 봄"이라 함은 그의 선한 일을 알아준다는 뜻이다. 여호사밧에게 잘못도 있었지만 그가 산당 외에 다른 우상들을 철폐한 선한 일을 행하기도 하였다(왕상 22:43). 하나님께서는 신자의 현재 과오 때문에 과거에 그가 잘한 일까지 무시하시지 않으신다. 실상 이 때에 여호사밧이 악한 왕 여호람을 돕는 것도 하나님 앞에서는 합당치 않았다. 그러나 하나님은 아직도 그가 행한 선을 보아주시며 그를 아껴 주신다(참조. 대하 19:1-3).

     

    사실 여호사밧이 엘리사 앞에 있는 이유는 그가 하나님의 뜻을 거역하고 악한 자와 교제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나라와 군대를 하나님을 대적하는 여호람의 말대로 움직였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참으로 큰 잘못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여호사밧을 만나주셨습니다. 만일 순간순간 잘못한 것으로 하나님을 만날 수 없다면 우리는 영영 하나님을 만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만나지 못하면 계속 잘못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잘못할 때에도 우리를 만나주십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크신 은혜입니다. 여호사밧은 그런 은헤를 입고 있습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므로 때를 따라 돕는 은혜를 얻기 위해서 우리는 언제나 담대하게 하나님의 은혜의 보좌 앞에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가 잘못한 것을 너무 크게 여겨 하나님 앞에 나아가지 않는 죄를 거기에 더하면 안 됩니다. 잘못한 것을 알면 아는 대로 모르면 모르는 대로 자꾸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15   이제 내게로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소서 하니라 거문고 타는 자가 거문고를 탈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더니

     

    엘리야는 자기에게 거문고 탈 자를 불러오라고 합니다. 여기서 거문고 탈 자(נָגַן)는 사무엘상 16장 16절, 23절에 보면 수금을 잘 타는 사람을 뜻하는 말입니다. 거문고와 수금은 현(絃, strings)을 튀겨 소리를 내는 현악기()입니다. 현악기를 연주하는 것은 마음을 안정시키는 것과 연관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0-551쪽).

    카펜터(Carpenter)는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때에 엘리사가 이스라엘 왕 여호람을 책망하느라고 매우 흥분되었으니만큼 이제 그의 마음을 가라앉아 안정되어야 하나님의 고요한 감동을 받을 수 있다. 그러므로 그때에 그에게는 거룩한 음악의 도움이 필요하였다고 한다. 

    성령의 은혜를 받으려는 자는 그 마음이 하나님께 향하도록 준비되어야 한다. 엘리사가 하나님의 말씀을 받기 위하여 먼저 거문고 소리를 듣기 원한 것처럼, 신약시대 기독 신자들이 모여서 예배하기 전에 하나님을 찬송하며 심령의 자세를 준비하는 것은 성경적이다. 그러나 이렇게 준비하는 행위도 그리스도 안에서 믿음으로 해야 된다. 믿음으로 하지 않는 것은 좋은 일도 죄됨을 면치 못한다(롬 14:23). 

    예배를 드릴 때

    적절한 말씀입니다. 우리가 예배를 드리며 하나님의 말씀을 듣기 전에 찬양으로 우리 마음을 준비시키는 것은 성경적인 것입니다. 그러나 이것은 정말 믿음으로 해야 합니다. 우리 하나님을 향하는 마음, 사랑하는 마음, 하나님을 높이는 마음의 준비를 하는데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그렇게 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 때에 여호와의 손이 엘리사 위에 있었습니다(15절 하). 여호와의 손은 여호와 하나님의 권능을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엘리야가 하는 말은 여호와 하나님께서 권능으로 일하실 것에 대한 예언이라는 뜻입니다.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16   그가 이르되 여호와의 말씀이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 하셨나이다
    17   여호와께서 이르시기를 너희가 바람도 보지 못하고 비도 보지 못하되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하여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시리라 하셨나이다

     

    엘리사는 이 골짜기에 개천을 많이 파라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합니다. 바람도 비도 없을 것이지만 이 골짜기에 물이 가득해서 너희와 너희 가축과 짐승이 마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것은 사람으로서는 가늠하기 어려운 일입니다. 그런데 이 예언은 성취되었습니다(20절).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8   이것은 여호와께서 보시기에 작은 일이라 여호와께서 모압 사람도 당신의 손에 넘기시리니
    19   당신들이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리이다 하더니

     

    여호람을 비롯한 세 왕은 목숨이 위태로워서 엘리사에게 찾아갔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뜻밖에도 승리의 소식을 듣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모압 사람을 그들의 손에 넘기실 것이라고 하십니다(18절 하). 그 결과 모든 견고한 성읍과 모든 아름다운 성읍을 치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모든 샘을 메우고 돌로 모든 좋은 밭을 헐 것이라고 하십니다(19절). 이 말씀은 모압에게 군사적으로 철저하게 보복하게 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예언이 성취됨

    20   아침이 되어 소제 드릴 때에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 그 땅에 가득하였더라
    21   모압의 모든 사람은 왕들이 올라와서 자기를 치려 한다 함을 듣고 갑옷 입을 만한 자로부터 그 이상이 다 모여 그 경계에 서 있더라
    22   아침에 모압 사람이 일찍이 일어나서 해가 물에 비치므로 맞은편 물이 붉어 피와 같음을 보고
    23   이르되 이는 피라 틀림없이 저 왕들이 싸워 서로 죽인 것이로다 모압 사람들아 이제 노략하러 가자 하고
    24   이스라엘 진에 이르니 이스라엘 사람이 일어나 모압 사람을 쳐서 그들 앞에서 도망하게 하고 그 지경에 들어가며 모압 사람을 치고
    25   그 성읍들을 쳐서 헐고 각기 돌을 던져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하고 모든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베고 길하레셋의 돌들은 남기고 물매꾼이 두루 다니며 치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물이 에돔 쪽에서부터 흘러와서 그 땅에 가득하게 된 것입니다(20절). 박윤선 목사님은 멀리 에돔 동쪽 산악 지대에 폭우(暴雨)가 많이 내려 그 물이 이 골짜기로 흘러왔다고 주석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의 백성을 위해서 지역적으로 먼 곳의 기상을 주장하신 것이라고 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1쪽). 

     

    골짜기에 흘러온 물은 모압 사람들을 착각하게 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에 만반의 준비를 다 하고 있었습니다(21절). 만약 가만히 있었더라면 방어를 할 수도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경솔하게 판단했습니다. 골짜기에 가득한 물을 아침 햇빛 때문에 피로 착각한 것입니다(22절). 그래서 그들은 노략하려는 마음으로 앞다투어 이스라엘 진영으로 달려갔습니다(23절). 먼저 도착해서 줍는 사람이 임자였기 때문에 진열을 갖추거나 무장을 제대로 하지 않았을 것입니다. 마구 달려갔을 것입니다. 그런 오합지졸은 진영을 갖추고 있는 군대에게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24절).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52쪽). 

    이 때에 모압의 패전 원인은 그들의 착각 때문이었다. 누구든지 하나님께서 실패케 하시는 때에는 그들의 판단력도 어두워지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그 백성을 구원하시는 방법은 다양하다. 그러므로 성도들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다. 

     

    박윤선 목사님의 말씀대로 성도들은 어떤 처지에서든지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세 왕은 죽음을 생각했던 처지에서 모압에게 승리를 거두는 승리자의 위치로 단숨에 올라갔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구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처지를 단숨에 역전시키십니다. 성도들은 그 어떤 처지에 있든지 이러한 하나님의 구원을 바라볼 수 있습니다. 

     

    25절은 19절의 예언이 성취되었음을 기록합니다. 그들은 돌을 모든 좋은 밭에 가득하게 했습니다. 밭을 못 쓰게 했습니다. 샘을 메우고 모든 좋은 나무를 벴습니다. 예언대로 그대로 행했습니다. 이것은 언약을 배반한 모압이 당한 보복이었습니다. 이스라엘이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했을 때 이스라엘 땅도 이렇게 황폐하게 됩니다.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모압 왕의 만행과 이스라엘의 퇴각

    26   모압 왕이 전세가 극렬하여 당하기 어려움을 보고 칼찬 군사 칠백 명을 거느리고 돌파하여 지나서 에돔 왕에게로 가고자 하되 가지 못하고
    27   이에 자기 왕위를 이어 왕이 될 맏아들을 데려와 성 위에서 번제를 드린지라 이스라엘에게 크게 격노함이 임하매 그들이 떠나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더라

     

    모압은 왕은 전세가 극렬해서 당하기 어려운 것을 보았습니다. 그래서 칼찬 군사 칠백 명과 함께 에돔 왕 쪽으로 돌격했지만 성공하지 못했습니다(26절). 그래서 그는 자기의 신 그모스에게 자기의 맏아들을 데려와서 성 위에서 번제를 드렸습니다(27절). 이것을 본 이스라엘에 크게 격노함이 임했습니다. 그들은 전쟁을 그만두고 각기 고국으로 돌아갔습니다. 

     

    모압 왕이 저렇게 가증한 죄를 지은 것과 이스라엘 군대에게 격노함이 임해서 돌아간 것에 대해서는 여러 가지 해석이 있습니다. 먼저 그게 격노함은 "큰 진노"라고 번역되어야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서 역대기 주석, 553쪽). 

    그렇다면 가능한 일을 행하여 범죄한 자는 모압 왕인데 어찌하여 이스라엘에 하나님의 진노가 임했을까? 여기에 난제가 있다. 그러나 이 난제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로 해석된다. 

    1) 고등 비평가 스네이드(N. H. Snaith)는, 여기 "크게 통분함"(큰 진노)이란 말이 모압 신(神) 그모스의 진노를 가리킨다고 하며, 모압 지방에서는 모압 신이 그 땅을 지켜주는 효과를 나타냈다고 한다. 그러나 이런 해석은 미신(迷信)을 진리와 동일시하는 억설이다. 

    2) 또 다른 학설에 의하면, 모압 왕이 자기의 맏아들을 그의 신(神)께 번제로 드린 사건 후에 이스라엘이 어떤 과오를 범한 일이 있어서 그 때문에 하나님의 진노가 이스라엘에게 임하였닥 한다. 그리하여 결국 엘리사의 예언대로 이스라엘에게 유리하였던 전세가 불리하게 되었다는 것이다. 이 학설은, 저자가 이스라엘의 실수에 대하여는 침묵하였다고 한다. 이때에 이스라엘이 패전한 기록은 고고학자들이 발굴한 모압 비문(Moabite Stone)에도 나타나 있다(The Westminster Dictionary of the Bible, 1944, pp. 403-404). 

    3) 다른 설에 의하면, 이스라엘 사람들의 생각에, 자기들이 모압 수도(首都)를 포위하였으므로 모압 왕이 저렇게 악독한 죄를 범하였으니만큼 이스라엘에 당장 여호와의 진노가 내려 무서운 재앙 당할 것 같이 느껴졌다는 것이다. 

     

    이 구절은 해석하기 어려운 구절입니다. 그래서 이렇게 여러 가지 해석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것입니다. 다른 해석은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왕 여호람이 온전한 승리를 하지 못하도록 하셨다는 것입니다. 엘리사가 예언한 것은 유다 왕 여호사밧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세 왕이 목숨을 건지고 승리를 코앞에 두었던 것은 하나님께서 여호사밧을 긍휼히 여기셨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정작 이 전쟁은 여호람이 일으킨 전쟁입니다. 그러므로 이 전쟁에서 온전히 승리한다면 그것은 여호람에게 영광이 돌아가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막으셨습니다. 

     

    모압 왕은 자기들의 신에게 인신제사를 드리는 아주 가증스러운 짓을 했습니다. 그들은 그것으로 자기들이 승리했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그것 때문에 모압이 승리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이스라엘 백성, 특별히 여호람에게 진노하셨기 때문에 그들이 목숨을 부지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 

     

    하지만 여기서 중요한 것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하신 말씀은 다 성취되었다는 것입니다. 모압은 언약을 배반한 대가를 철저하게 받았습니다. 그리고 이스라엘에도 진노가 임해서 그들은 승리를 목전에 두고 퇴각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정확하게 일하십니다. 

     

    우리의 승리는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습니다. 만약 우리가 어떤 일에 승리한다면 그 승리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덕분에 거둔 승리입니다. 믿음으로 거둔 승리인 것입니다. 그런데 우상을 숭배하면서 동시에 믿음의 승리를 얻을 수는 없습니다. 우상숭배에서 돌이키든지 아니면 승리를 빼앗기든지 둘 중 하나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순간 우상 숭배로 향하는 우리의 본성을 죽이고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의지하여 나의 죄성을 죽이고 믿음으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이것이 우리가 승리하는 유일한 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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