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5장 15-27절 | 나아만에게 임한 구원과 게하시에게 임한 저주

2024. 9. 11. 07:3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5:15-27

    찬송가 311장 내 너를 위하여


    엘리사에게 돌아온 나아만

    나아만은 엘리사가 전한 하나님의 말씀대로 요단 강에서 일곱 번 씻고 나병이 다 나았습니다(5:14). 나아만은 이스라엘에 하나님께서 계시다는 것을 경험하고 알았습니다(5:8). 놀라운 경험을 한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돌아왔습니다. 

     

    15   나아만이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 하니

     

    나아만은 모든 군대와 함께 하나님의 사람에게로 도로 왔습니다. 그는 가는 곳마다 위엄 있게 군대를 대동하고 다녔습니다. 이것이 이스라엘에게는 큰 위협이 되었을 것입니다. 하지만 그는 이스라엘을 칠 수 없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내가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이 고백처럼 그는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만이 참 하나님이심을 깨달아 알았습니다. 

     

    이제 이스라엘 외에는 온 천하에 신이 없는 줄을 아나이다

    당신의 종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청하건대 당신의 종에게서 예물을 받으소서"라고 했습니다. 그는 스스로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종으로 자처했습니다. 그는 자기 나라에서 왕 다음으로 높은 권력자였습니다. 그런 권력자가 스스로를 종이라고 했습니다. 이것은 그가 진실로 하나님을 존중하는 마음이 되었다는 것을 보여줍니다. 

     

    지위의 고하를 막론하고 우리 믿는 사람 모두는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종입니다. 우리는 예수님 덕분에 구원을 얻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만드심으로 우리의 주인이시며 우리를 구원하심으로 또한 우리의 주인이십니다. 

    구원은 값을 매길 수 없음 

    16   이르되 내가 섬기는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 앞에서 받지 아니하리라 하였더라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하되 그가 거절하니라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크게 사례하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엘리사는 받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구원은 돈으로 살 수 있는 것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구원은 돈으로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입니다. 나아만이 받으라고 강권했지만 엘리사는 끝까지 거절했습니다. 

    나아만의 요청

    17   나아만이 이르되 그러면 청하건대 노새 두 마리에 실을 흙을 당신의 종에게 주소서 이제부터는 종이 번제물과 다른 희생제사를 여호와 외 다른 신에게는 드리지 아니하고 다만 여호와께 드리겠나이다

    18   오직 한 가지 일이 있사오니 여호와께서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곧 내 주인께서 림몬의 신당에 들어가 거기서 경배하며 그가 내 손을 의지하시매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히오니 내가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에 여호와께서 이 일에 대하여 당신의 종을 용서하시기를 원하나이다 하니
    19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평안히 가라 하니라 그가 엘리사를 떠나 조금 가니라

     

    나아만은 엘리야에게 오직 여호와께만 제사를 드리겠다고 다짐합니다(17절). 그런 의미로 그는 엘리사에게 이스라엘의 흙을 구합니다. 그는 마음대로 이스라엘 땅에서 흙을 가져갈 수 있었습니다. 그러나 그것을 마음대로 하지 않고 엘리사에게 허락을 구합니다. 그는 정말 엘리사를 향해서 종의 마음으로 낮아졌습니다. 

     

    나아만은 엘리사에게 마음에 걸리는 한 가지에 대해서 미리 용서를 구합니다. 그것은 그가 섬기는 주인, 즉 아람의 왕이 림몬의 신당에서 경배할 때 자기 손을 의지하는데 그 때 림몬의 신당에서 몸을 굽힐 때 여호와께서 자기를 용서해 주시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그의 마음은 오직 하나님만 경배하기를 다짐했으나 그가 처해 있는 환경이 그것을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게다가 그가 이스라엘 사람이 될 수도 없는 노릇이었습니다. 여기서 림몬은 석류를 의미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65쪽).

    석류는 씨가 많은 열매이므로 그때 이방인들이 그것으로써 곡식을 풍작케 하는 신을 대표하게 하였는데 그것이 태양신이라고 한다(Delitzch). 그레이(John Gray)는 여기 "림몬"이란 말은 앗수르 말 라마누(Ramanu, 우뢰질하는 자)를 히브리어 식으로 만든 낱말이라고 한다. 앗수르의 미신에서 라마누는 역시 일종의 바알 신인데 곡식을 풍작케 하는 농신(農神)으로 알려져 있었다.

    교회의 시대에는

    이에 대해서 엘리사는 "너는 평안히 가라"라고 합니다(19절). 이것은 어떻게 해석할 수 있을까요? 만약 나아만의 요청이 우리가 사는 시대에 일어난 일이었다면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허락하지 않으셨을 것입니다. 지금은 교회의 시대이기 때문입니다. 실제로 초대교회 때부터 수많은 사람들이 로마가 강요하는 황제 숭배나 우상 숭배를 거부하다가 순교했습니다. 하지만 나아만의 시대는 구약 시대입니다. 그 때에는 아직 주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계시가 임하기 전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께서는 나아만의 믿음도 믿음으로 인정해 주신 것입니다. 

    게하시의 탐심

    20   하나님의 사람 엘리사의 사환 게하시가 스스로 이르되 내 주인이 이 아람 사람 나아만에게 면하여 주고 그가 가지고 온 것을 그의 손에서 받지 아니하였도다 여호와께서 살아 계심을 두고 맹세하노니 내가 그를 쫓아가서 무엇이든지 그에게서 받으리라 하고
    21   나아만의 뒤를 쫓아가니 나아만이 자기 뒤에 달려옴을 보고 수레에서 내려 맞이하여 이르되 평안이냐 하니
    22   그가 이르되 평안하나이다 우리 주인께서 나를 보내시며 말씀하시기를 지금 선지자의 제자 중에 두 청년이 에브라임 산지에서부터 내게로 왔으니 청하건대 당신은 그들에게 은 한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주라 하시더이다
    23   나아만이 이르되 바라건대 두 달란트를 받으라 하고 그를 강권하여 은 두 달란트를 두 전대에 넣어 매고 옷 두 벌을 아울러 두 사환에게 지우매 그들이 게하시 앞에서 지고 가니라
    24   언덕에 이르러서는 게하시가 그 물건을 두 사환의 손에서 받아 집에 감추고 그들을 보내 가게 한 후
    25   들어가 그의 주인 앞에 서니 엘리사가 이르되 게하시야 네가 어디서 오느냐 하니 대답하되 당신의 종이 아무데도 가지 아니하였나이다 하니라
    26   엘리사가 이르되 한 사람이 수레에서 내려 너를 맞이할 때에 내 마음이 함께 가지 아니하였느냐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
    27   그러므로 나아만의 나병이 네게 들어 네 자손에게 미쳐 영원토록 이르리라 하니 게하시가 그 앞에서 물러나오매 나병이 발하여 눈같이 되었더라

     

    20-27절에는 게하시의 잘못과 그로 인해서 나아만의 나병이 게하시에게 임한 사건이 나옵니다. 엘리사는 게하시에게 "지금이 어찌 은을 받으며 옷을 받으며 감람원이나 포도원이나 양이나 소나 남종이나 여종을 받을 때이냐"라고 말하며 그를 꾸짖었습니다(26절). 이 말은 지금은 그것을 받을 때가 아니라는 말입니다. 왜냐하면 그 때는 나아만이 "하나님의 은혜로 구원을 얻은 때"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그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이 값진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베푸신 구원도 마찬가지입니다. 그것은 돈으로는 절대 살 수 없는 놀라운 것입니다.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하나님께서 베푸시는 구원을 돈으로 본 사람이 신약 시대에도 있었습니다. 그는 마술사 시몬입니다. 베드로는 그에게 "네가 하나님의 선물을 돈 주고 살 줄로 생각하였으니 네 은과 네가 함께 망할지어다(행 8:20)"라고 선언했습니다. 이것이 대원칙입니다. 값을 매길 수 없는 것에 값을 매기려고 하는 것은 하나님을 사람 수준으로 낮추어 보는 것입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영원히 망한 게하시

    게하시는 영원히 망했습니다(27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67쪽). 

    엘리사의 이 저주는 잔인한 것일까? 그렇지 않다. 그 이유는, 게하시는 엘리사와 누구보다 가까이 동거하면서 그의 기적을 많이 보고도 짐짓 큰 죄를 범하였기 때문이다(참조. 눅 12:47). 게하시는 아간, 가룟 유다, 아나니아와 같은 부류에 속할 자이다. 또한 엘리사의 이 저주는 하나님의 영광을 떨어뜨린 죄가 얼마나 무서운 사실인가를 드러낸다. 하나님의 종을 무색하게 만드는 것은 그가 섬기는 하나님의 이름을 낮추는 죄가 된다. 

     

    사도 바울은 이러한 원칙에 따라서 사역에 있어서 공궤를 받을 권리를 쓰지 않았습니다. 바울이 그렇게 한 이유는 그리스도의 복음에 아무 장애가 없도록 하기 위함이었습니다(고전 9:12). 복음 전도를 받는 사람들이나 교회가 복음과 돈을 함께 생각하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영원한 것과 영원하지 않은 것

    게하시는 은 두 달란트와 옷 두 벌을 얻고 하나님의 놀라운 구원과 은혜를 저버렸습니다. 이것은 큰 손해입니다. 남미 에콰도르에서 선교 사역을 하다가 순교한 짐 엘리엇은 "영원한 것을 얻기 위해 영원하지 않은 것을 버리는 것은 결코 어리석은 선택이 아니다"라고 말했습니다. 게하시는 그 반대로 행했습니다. 

    탐심과 십자가

    우리는 이 일에 교훈을 얻어 하나님께 긍휼을 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탐심에서 건져주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탐심은 곧 우상숭배입니다. 하나님을 저버리는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죄의 근원입니다. 그리고 사람은 스스로 죄를 이길 수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만이 우리를 죄에서 건질 수 있습니다. 우리는 그리스도와 함게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 2:20). 우리는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습니다(갈 5:24). 세상이 나를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히고 나 또한 세상을 대하여 십자가에 못 박혔습니다(갈 6:14). 우리가 탐심을 이길 수 있는 것은 그리스도의 십자가에 못 박히는 길 뿐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그렇게 인도하시기를 기도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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