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8장 1-15절 | 하나님의 구원 역사

2024. 9. 16. 22:47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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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왕기하 8:1-15

    찬송가 340장 어지러운 세상 중에


    역사의 중심이신 예수 그리스도

    엘리사가 베푼 기적에 대한 말씀이 계속 이어집니다. 열왕기서를 보면 그 중심에 엘리야와 엘리사가 등장합니다. 이 선지자 두 명의 사적이 열왕기 중심에 자리하고 있습니다. 많은 구약학자들은 엘리야를 세례 요한, 엘리사를 예수님의 모형으로 봅니다.  이것은 인류 역사를 생각하게 합니다. 인류 역사의 중심에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가 계시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는 역사의 중심에 계시고 역사를 포괄하십니다. 마지막 날에 역사를 종결 지으러 다시 오십니다. 엘리야와 엘리사의 행적은 예수 그리스도를 생각나게 하는 행적입니다. 

    믿음과 순종

    1   엘리사가 이전에 아들을 다시 살려 준 여인에게 이르되 너는 일어나서 네 가족과 함께 거주할 만한 곳으로 가서 거주하라 여호와께서 기근을 부르셨으니 그대로 이 땅에 칠 년 동안 임하리라 하니
    2   여인이 일어나서 하나님의 사람의 말대로 행하여 그의 가족과 함께 가서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 칠 년을 우거하다가

     

    엘리사는 수넴 여인에게 기근이 임할 것을 알려주고 피하라고 합니다(1절). 여인은 엘리사의 말에 순종하여 블레셋 땅에서 칠 년 동안 살았습니다. 거주지를 옮기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수넴 여인은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얼른 "일어나서" 기근을 피했습니다. 그 여인 덕분에 온 가족이 기근이 피할 수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이렇게 특별한 은혜로 인도하시는 사람이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인도하실 때에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하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는 것입니다. 그래야지 순종할 수 있습니다. 여인은 그 아들이 다시 살아난 기적을 경험한 만큼(1절, 4:17, 32-37) 하나님의 말씀에 속히 순종할 수 있었습니다. 

     

    순종은 억지로 하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경험한 만큼 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친밀한 교제를 나눈 만큼 순종할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을 아는 만큼 순종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순종 이전에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이 선행됩니다. 하나님을 아는 것과 믿는 것은 평소에 하나님과 얼마나 깊이 대화하고 교제하는가로 결정됩니다. 말씀을 읽고 하나님께 기도하면서 하나님과 교제함으로 하나님을 사랑하는 것이 순종으로 이어지는 것입니다. 

    왕에게 나아갔더라 

    3   칠 년이 다하매 여인이 블레셋 사람들의 땅에서 돌아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 하여 왕에게 나아갔더라

     

    칠 년이 지났습니다. 여인은 기근이 지나갔다고 믿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그대로 믿은 것입니다. 그래서 주저하지 않고 돌아왔습니다. 돌아와서 보니 자기 집과 전토의 소유권이 불분명해져 있었습니다. 다른 사람이 자기 것인양 사용하고 있었을 것입니다. 그래서 여인은 주저하지 않고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고 왕에게 나아갔습니다. 

    수넴 여인과 부활

    4   그 때에 왕이 하나님의 사람의 사환 게하시와 서로 말하며 이르되 너는 엘리사가 행한 모든 큰 일을 내게 설명하라 하니

     

    마침 그 때에 왕이 게하시와 서로 말하고 있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게하시가 이때는 아직 문둥병에 걸리기(왕하 5:27) 전이라고 주석합니다. 열왕기의 저자는 엘리사의 행적을 순서대로 기록하지 않은 것입니다. 시간 순으로 기록하지 않은 것은 엘리사의 행적이 신학적인 의미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그 의미가 잘 드러나도록 순서를 정해서 기록한 것입니다. 

     

    여기서 수넴 여인에 대한 기사가 중요한 역할을 합니다. 수넴 여인은 아이를 갖지 못하다가 하나님의 사람 덕분에 아이를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 아이가 죽었습니다. 그 죽은 아이를 하나님의 사람이 다시 살렸습니다. 그리고 이 사건 덕분에 자기의 모든 소유를 되찾았습니다. 이것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믿는 우리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 하나님으로부터 받은 모든 소유를 회복할 것을 바라보게 하는 사건입니다. 이 부활 사건이 엘리사의 사적을 앞 뒤로 감싸고 있습니다. 그러므로 엘리사의 모든 기적은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을 바라보게 하는 기적입니다.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나님의 구원 역사

    5   게하시가 곧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왕에게 이야기할 때에 그 다시 살린 아이의 어머니가 자기 집과 전토를 위하여 왕에게 호소하는지라 게하시가 이르되 내 주 왕이여 이는 그 여인이요 저는 그의 아들이니 곧 엘리사가 다시 살린 자니이다 하니라
    6   왕이 그 여인에게 물으매 여인이 설명한지라 왕이 그를 위하여 한 관리를 임명하여 이르되 이 여인에게 속한 모든 것과 이 땅에서 떠날 때부터 이제까지 그의 밭의 소출을 다 돌려 주라 하였더라

    여인이 왕에게 자기의 집과 전토를 위하여 호소하려고 할 때, 마침 그 때 게하시가 왕에게 엘리사가 죽은 자를 다시 살린 일을 이야기하고 있었습니다. 이것 또한 기적입니다. 어떻게 딱 그 타이밍에 여인이 왕에게 들어올 수 있었을까요? 이것은 하나님께서 특별한 섭리로 역사하셔서 이렇게 된 것입니다. 앞에서 엘리사는 여인에게 "내가 너를 위하여 무엇을 하랴 왕에게나 사령관에게 무슨 구할 것이 있느냐"라고 물었습니다(왕하 4:13). 이때에 엘리사가 말한 것이 지금 이루어진 것입니다. 엘리사로 인해서 여인은 자기의 신원을 보증받았습니다. 그 결과 그는 모든 소유물과 자기가 떠나 있을 때에 난 모든 소출까지 다 돌려 받았습니다(6절). 하나님의 사람을 알아본 사람에게 베푸시는 하나님의 은혜가 이러합니다. 하물며 예수님을 알아보고 예수님을 믿고 신뢰하는 우리에게 베푸시는 어찌 이보다 못할 수 있을까요? 우리가 받고 누리고 있는 은혜는 이처럼 큰 은혜입니다.

     

    여인은 왜 자기가 구하지도 않은 아들을 받았는지 몰랐습니다. 그리고 그 아들이 왜 죽었는지 몰랐습니다. 또한 엘리사가 그 아들을 왜 살렸는지도 몰랐습니다. 아무 것도 몰랐습니다. 하지만 나중에 보니 그 모든 사건들은 이 때에 왕을 만나는 것을 준비하는 사건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이렇습니다. 우리는 당장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이 어떤 의미인지 모릅니다. 좋은 일의 의미도 모르고 나빠 보이는 일의 의미도 모릅니다. 그러나 그 모든 것은 합력해서 선을 이룹니다(롬 8:28).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어주신 우리 하나님 아버지께서 우리에게 모든 좋은 것을 주십니다(롬 8:32). 우리는 우리에게 다가오는 모든 일의 의미를 모르지만 하나님께서 그것을 선하게 사용하셔서 모든 영광을 받으실 줄을 압니다. 하나님께서 영광을 받으시고 우리를 영화롭게 하실 것을 알고 믿습니다.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로 우리에게 참으로 놀랍고도 아름다운 기업을 분정하셨음을 믿습니다(시 16:6).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7   엘리사가 다메섹에 갔을 때에 아람  벤하닷이 병들었더니 왕에게 들리기를 이르되 하나님의 사람이 여기 이르렀나이다 하니
    8   왕이 하사엘에게 이르되 너는 손에 예물을 가지고 가서 하나님의 사람을 맞이하고 내가 이 병에서 살아나겠는지 그를 통하여 여호와께 물으라
    9   하사엘이 그를 맞이하러 갈새 다메섹의 모든 좋은 물품으로 예물을 삼아 가지고 낙타 사십 마리에 싣고 나아가서 그의 앞에 서서 이르되 당신의 아들 아람  벤하닷이 나를 당신에게 보내 이르되 나의 이 병이 낫겠나이까 하더이다 하니

     

    엘리사는 하나님의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의 지역 신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사람을 주관하시는 신이십니다. 7절 이하의 내용이 그것을 말씀합니다. 7절에 나온 벤하닷은 엘리사를 잡기 위해서 군대까지 동원했던 왕입니다(왕하 6:13-15). 그런 왕이 엘리사에게 도움을 요청합니다(7-8절). 그는 한 나라의 왕이었지만 질병으로 환난을 당하자 그 마음이 겸손해졌습니다. 벤하닷의 이러한 겸손은 바알세붑에게 자기 병이 낫겠는지 물어보려고 한 아하시야와 대조됩니다(1:2). 이스라엘 사람은 하나님을 업신여겼지만 이방인은 하나님을 존중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의 넘어짐을 이방인을 향한 구원계획의 일부로 사용하셨습니다(롬 11:11-12, 25). 

     

    하사엘은 벤하닷의 명을 받아 엘리사에게 "당신의 아들 아람 왕 벤하닷"이라고 합니다. 이는 실로 겸손한 표현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이것을 보면 영력(靈力)은 권력보다 무한히 강하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맞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영력은 온 우주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 속한 능력이기 때문입니다. 사람의 권력을 하나님의 권력에 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이러한 영력은 보이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이러한 보이지 않는 능력을 믿고 두려워하고 하나님을 사랑합니다. 보이지 않지만 실재하기 때문입니다. 

    나으리라 ... 죽으리라

    10   엘리사가 이르되 너는 가서 그에게 말하기를 왕이 반드시 나으리라 하라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가 반드시 죽으리라고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고

     

    10절에 나온 엘리사의 대답은 모순된 것처럼 보입니다. 병에서는 낫겠지만 반드시 죽는다고 하니 모순입니다. 하지만 이것은 모순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사엘이 반역해서 벤하닷을 죽일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심

    11   하나님의 사람이 그가 부끄러워하기까지 그의 얼굴을 쏘아보다가 우니
    12   하사엘이 이르되 내 주여 어찌하여 우시나이까 하는지라 대답하되 네가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모든 악을 내가 앎이라 네가 그들의 성에 불을 지르며 장정을 칼로 죽이며 어린 아이를 메치며 아이 밴 부녀를 가르리라 하니

     

    엘리사는 하사엘을 쏘아보다가 웁니다(11절). 하사엘이 이스라엘에게 무슨 악을 행할지를 미리 내다보았기 때문입니다(12절). 하사엘은 성에 불을 지르고 장정을 칼로 죽이고 어린 아이를 매치고 아이 밴 부녀를 가를 것입니다(12절 하). 엘리사가 내다 본 것은 참으로 참혹했습니다. 하사엘이 이런 참상을 저지를 것이었습니다. 이 예언은 열왕기하 10장 32-33절과 13장 3절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엘리사와 마찬가지로 예수님께서도 예루살렘이 당할 참상을 미리 보시고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 말고 너희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눅 23: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엘리사와 예수님은 공히 하나님의 백성을 불쌍히 여겼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마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불쌍히 여기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나아갈 때에 담대하게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라는 마음으로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해서 항상 나아가야 합니다.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13   하사엘이 이르되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 하더라 엘리사가 대답하되 여호와께서 네가 아람 왕이 될 것을 내게 알게 하셨느니라 하더라
    14   그가 엘리사를 떠나가서 그의 주인에게 나아가니 왕이 그에게 묻되 엘리사가 네게 무슨 말을 하더냐 하니 대답하되 그가 내게 이르기를 왕이 반드시 살아나시리이다 하더이다 하더라
    15   그 이튿날에 하사엘이 이불을 물에 적시어 왕의 얼굴에 덮으매 왕이 죽은지라 그가 대신하여 왕이 되니라

     

    엘리사의 말에 하사엘은 "당신의 개 같은 종이 무엇이기에 이런 큰일을 행하오리이까"라고 합니다(13절). 이스라엘 자손에게 행할 악한 일을 가리켜서 큰일이라고 한 것입니다. 국경을 접한 나라는 서로 사이가 좋지 않습니다. 그래서 각자 이웃 나라를 크게 괴롭히는 일을 가리켜서 큰일이라고 합니다. 이것이 사람의 완악함입니다. 

     

    여기에 하사엘의 완악함은 더 큽니다. 왜냐하면 그가 괴롭힐 나라가 여호와 하나님의 나라이기 때문입니다. 그리고 지금 그에게 그 일을 말하고 있는 사람은 그 나라의 선지자입니다. 그 나라 백성을 불쌍히 여겨서 울고 있는 사람입니다. 그 사람 앞에서 그 나라에 행할 악을 가리켜서 "큰일"이라고 하는 것은 참 무자비한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79쪽). 

    하사엘의 강퍅한 심령은 깊은 통찰력이 없으며 따라서 깊은 데 있는 실재(實在)의 진상을 느끼지 못했다. 그는 하나님을 모르는 어두운 자이다. 부드러운 심령은 깊이 하나님을 알지만, 강퍅한 심령은 실재의 표면도 오해한다. 

     

    13-15절에 보면 하나님께서 말씀하셔서 하사엘을 격동한 것처럼 보입니다. 하사엘이 더 대담해져서 벤하닷을 죽이도록 하나님께서 그를 격동한 것처럼 보이는 것입니다. 그러나 14-15절을 잘 보면 하사엘이 벤하닷을 죽이고 왕이 되는 일은 이미 계획이 되어 있는 것처럼 보입니다. 왜냐하면 왕을 죽인다고 그 죽인 사람이 이어서 왕이 되지는 않기 때문입니다. 하사엘은 이미 반역의 계획을 따 짜놓고 있었던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그것을 아시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의 악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만약 하사엘이 마음이 부드러운 사람이었다면 그는 엘리사의 말에 마음을 찢고 회개했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박윤선 목사님께서 잘 지적하신 대로 강퍅하고 무자비한 사람이었습니다. 우는 선지자 앞에서 "큰일"이라는 말을 한 것에 그의 성품이 드러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말씀이 그를 격동한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말씀이 그의 악함을 드러낸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사람의 심령 속에 무엇이 들어있는지 드러냅니다(히 4: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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