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9장 1-13절 | 바알 숭배자들을 심판하기 위해 세워지는 예후

2024. 9. 18. 20:19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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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왕기하 9:1-13

    찬송가 322장 세상의 헛된 신을 버리고


    언약 배반과 심판

    이스라엘은 언약을 배반했습니다. 하지만 하나님께서는 다윗에게 주신 언약을 생각하셨습니다. 다윗에게 주신 언약 덕분에 유다는 바알을 숭배함에도 불구하고 멸망 당하지 않을 수 있었습니다(8:19). 하지만 하나님의 심판은 말씀대로 작동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사엘이 등장하더니(왕상 19:17; 왕하 8:29) 이제는 예후가 등장합니다(1절, 왕상 19:16-17). 하사엘과 예후와 엘리사는 바알 숭배자들을 심판할 사람들입니다. 

    항상 일하시는 하나님

    온 세상이 불의로 타락한 것처럼 보이고 하나님께서는 잠자코 바라만 보시고 계시는 것 같을 때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런 순간에도 하나님께서는 신실하게 일하시고 계십니다. 하사엘이 세워지더니 이제 예후가 세워집니다. 이들은 북이스라엘과 남유다에서 바알 숭배자들을에게 칼로 심판을 수행할 사람들입니다. 

    사명자의 자세

    1   선지자 엘리사가 선지자의 제자 중 하나를 불러 이르되 너는 허리를 동이고 이 기름병을 손에 가지고 길르앗 라못으로 가라
    2   거기에 이르거든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를 찾아 들어가서 그의 형제 중에서 일어나게 하고 그를 데리고 골방으로 들어가
    3   기름병을 가지고 그의 머리에 부으며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노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되 지체하지 말지니라 하니

     

    예후에게 기름을 붓는 일은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일입니다(왕상 19:16). 그 일을 엘리사가 완수합니다. 그런데 엘리사가 직접하지 않고 제자 중에서 민첩한 청년 한 명을 보내서 기름 붓는 일을 위임합니다. 여기서 이 청년의 권위는 엘리사의 권위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엘리사는 이 청년에게 골방으로 들어가서 예후만을 상대해서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라고 했습니다(2-3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80쪽).

     "골방(2절)"이란 말은 방 안의 방이라는 뜻인데 가장 깊은 방을 가리킨다. 이렇게 밀실(密室)에서 기름을 부으라고 한 이유는 그 기름을 붓는 "소년 선지자"의 권위 문제가 그곳에 있는 사람들의 의혹거리가 될 우려가 있었기 때문이다. 사실상 예후에게 기름 부을 사명을 받은 그 "소년 선지자"는 엘리사의 하라는 대로 수종드는 것뿐이었다. 그러니만큼 그는 예후 이외의 다른 사람들과는 접촉을 피하고 예후에게 할 일만 하고 급히 퇴장하였다(10절 끝). 주님의 종들은 이렇게 처신해야 될 것이다. 그들은 자기의 사명만 다할 뿐이고 자율적(自律的)으로 모든 문제되는 일들을 맡아 감당할 듯이 자신을 가지면 안 된다. 그 이유는 권위(權威)는 주님께만 있고 자기들 자신에게는 전혀 없기 때문이다. 그들도 주님만 알아주시는 은밀한 가운데서 맡은 사명을 실행한 것으로 끝내고 자신에게 대하여 그 이상 아무런 능력의 여유를 느끼지 않아야 된다. 

     

    이 소년 선지자는 문을 열과 도망하고 지체하지 말아야 했습니다(3절). 사람들이 자기에게 주목하도록 하지 말아야 했습니다. 사역자는 항상 이와 같은 태도를 가져야 합니다. 사역자가 스스로를 중요한 사람이라고 여기면 안 됩니다. 그것은 망하는 길입니다. 주님께서는 이에 대해서 "이와 같이 너희도 명령 받은 것을 다 행한 후에 이르기를 우리는 무익한 종이라 우리가 하여야 할 일을 한 것뿐이라 할지니라(눅 17: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무엇보다 하나님께서 하시고자 하시는 일이 중요합니다. 그 일은 예후에게 기름을 부어 바알 숭배자들을 심판하는 일입니다(6-9절). 소년 선지자는 그 일에 철저히 무명으로 봉사했습니다. 

    직임과 사명

    4   그 청년 곧 그 선지자의 청년이 길르앗 라못으로 가니라
    5   그가 이르러 보니 군대 장관들이 앉아 있는지라 소년이 이르되 장관이여 내가 당신에게 할 말이 있나이다 예후가 이르되 우리 모든 사람 중에 누구에게 하려느냐 하니 이르되 장관이여 당신에게니이다 하는지라
    6   예후가 일어나 집으로 들어가니 청년이 그의 머리에 기름을 부으며 그에게 이르되 이스라엘 하나님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여호와의 백성 곧 이스라엘의 왕으로 삼노니
    7   너는 네 주 아합의 집을 치라 내가 나의 종 곧 선지자들의 피와 여호와의 종들의 피를 이세벨에게 갚아 주리라
    8   아합의 온 집이 멸망하리니 이스라엘 중에 매인자나 놓인 자나 아합에게 속한 모든 남자는 내가 다 멸절하되
    9   아합의 집을 느밧의 아들 여로보암의 집과 같게 하며 또 아히야의 아들 바아사의 집과 같게 할지라
    10   이스르엘 지방에서 개들이 이세벨을 먹으리니 그를 장사할 사람이 없으리라 하셨느니라 하고 곧 문을 열고 도망하니라

     

    엘리사가 보낸 청년은 그가 명령한 대로 실행했습니다. 그는 예후에게 기름을 부으면서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6-10절). 여기서 7-10절의 말씀은 하나님께서 엘리야에게 주신 말씀입니다(왕상 21:21-23). 하나님의 말씀은 땅에 떨어지지 않습니다. 더딘 것 같아도 반드시 성취됩니다. 예후는 왕의 직임을 받으면서 하나님으로부터 아합의 온 집을 처단하라는 사명을 받았습니다. 

     

    사람이 어떤 직임을 받을 때 그 직임 자체에 집중하는 경향이 있습니다. 예후가 왕으로 세움을 받았는데 "왕"이라는 것과 그 권력에 집중하는 것입니다. 교회 안에서의 직분도 마찬가지입니다. 그러나 직임을 받아서 집중해야 할 것은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 것입니다. 직임에 따라 수행해야 하는 하나님의 뜻이 있습니다. 그 뜻이 바로 우리의 사명입니다. 우리가 받은 직임은 그 사명을 이루라고 주신 것입니다. 

    아합 집이 당하는 심판

    아합 집이 멸망 당하는 이유는 우상 숭배 때문입니다(왕상 21:26). 아합이 우상을 숭배한 이유는 그의 아내 이세벨에게 충동을 받았기 때문입니다(왕상 21:25). 이세벨은 이 악에 더해서 선지자들과 여호와의 종들을 많이 죽였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 피를 이세벨에게 갚으신다고 하십니다. 피라고 해서 꼭 순교만 갚으시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는 모든 억울한 일을 갚아 주십니다. 요한계시록에 보면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이는 보좌 가운데에 계신 어린 양이 그들의 목자가 되사 생명수 샘으로 인도하시고 하나님께서 그들의 눈에서 모든 눈물을 씻어 주실 것임이라(계 7:17)" 모든 눈물을 씻어주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종들을 의도적으로 억울하게 하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보시고 계십니다. 더딘 것 같아도 반드시 신원해 주십니다. 억울한 일을 당한 사람에게는 위로하시고 억울하게 한 사람에게는 보응하십니다.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왕이 된 예후

    11   예후가 나와서 그의 주인의 신복들에게 이르니 한 사람이 그에게 묻되 평안하냐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 대답하되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 하더라
    12   무리가 이르되 당치 아니한 말이라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 하니 대답하되 그가 이리 이리 내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내가 네게 기름을 부어 이스라엘 왕으로 삼는다 하셨다 하더라 하는지라
    13   무리가 각각 자기의 옷을 급히 가져다가 섬돌 위 곧 예후의 밑에 깔고 나팔을 불며 이르되 예후는 왕이라 하니라

     

    예후가 기름 부음을 받고 나오자 그의 신복들이 "평안하냐"고 물었습니다. 그 소년 선지자의 행색이 미친 사람 같았기 때문입니다(11절). 그들은 선지자의 예언 성취를 알아보지 못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83쪽). 

    언제나 불신앙의 무리는 거룩한 일을 올바로 취급할 지식이 없기 때문에 망령된 말("그 미친 자가")도 거침없이 한다(참조. 렘 29:26). 예수님도 불신앙에 속한 자들에게 미쳤다는 말을 들으셨고(요 10:20), 사도 바울도 그런 말을 들었다(행 26:24). 

     

    예후는 "그 미친 자가 무슨 까닭으로 그대에게 왔더냐"라고 묻는 사람들에게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라고 대답합니다(11절). 이에 대해서 무리는 "당치 아니한 말이라"라고 대답합니다(12절). 이 말(שֶׁקֶר)은 원어로 거짓말이라는 뜻입니다. 즉, 자기들을 속이지 말고 바르게 말하라는 뜻입니다. 예후는 자기와 함께 한 사람들이 하나님의 예언 성취를 알아보기를 원했지만 그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다만 물어볼 따름이었습니다.

    갑자기 믿음이 생김

    "청하건대 그대는 우리에게 이르라"라는 그들의 추궁에 예후는 자기에게 기름을 부어 왕으로 삼는다는 여호와의 말씀을 전했습니다(12절). 그렇가 대답하자 놀라운 일이 일어납니다. 무리가 그 말을 갑자기 믿는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84쪽). 

    예후의 동료들은 그 소년 선지자를 "미친 자"라고 조롱하던 처지였다(11절). 그런데 예후에게 믿음을 주신 하나님의 역사로 말미암아 그들도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예후를 "왕"으로 추대한 것이다. 그들이 저희 옷을 "예후의 밑에 깐" 것은 그를 왕으로 높이는 행위이다(참조. 마 21:8). 이것을 보면 선지자를 미쳤다고 하던 자들도 하나님의 감화만 받으면 즉시 변화하여 새 사람으로 출발할 수 있다. 

    즉시 변화되어

    맞는 말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께서 믿음을 주셔서 예수님을 왕으로 모신 사람들입니다. 누구든지 믿음이 없으면 예수님을 왕으로 모시는 것을 이해하지 못합니다. 사리에 맞지 않는다면서 배척합니다. 미친 사람으로 취급하기도 합니다. 그러던 사람이 갑자기 변해서 예수님을 뫙으로 모시는 경우가 종종 있습니다. 그 이유는 하나님께서 그 사람에게 "믿음"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말씀대로 누구든지, 심지어 예수님을 배척하고 믿는 자들을 미친 사람 취급하던 사람이라도 하나님의 감화만 받으면 즉시 변화되어 새 사람, 믿음의 사람이 됩니다. 이런 일은 역사 가운데 수도 없이 많이 일어난 일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복음을 전하는데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무리의 이런 갑작스런 변화를 예후는 예상하지 못했습니다. 그래서 처음에는 "그대들이 그 사람과 그가 말한 것을 알리라(11절)"라고 아리송하게 대답한 것입니다. 자기가 자기 입으로 왕이라고 선포하기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알아봐주기를 바랐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자기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했고 그 말씀을 들은 사람들은 그것을 갑자기 받아들이고 믿었습니다. 이것이 우리가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말씀을 선포해야 하는 이유입니다. 언제 갑자기 믿음을 주실지 우리는 알 수 없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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