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9장 27-37절 | 아합 집에 내려지는 심판과 이세벨의 죽음

2024. 9. 20. 17:5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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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열왕기하 9:27-37

    찬송가 523장 어둔 죄악 길에서

     


    하나님의 심판

    열왕기하 9장에는 열왕기상 19장 17절의 예언이 성취되는 장면이 나옵니다.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 하사엘과 예후를 세운 사람은 엘리사입니다. 즉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이 심판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바알을 숭배한 악한 왕들을 향한 하나님의 심판인 것입니다. 

    정원의 정자 길

    27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이를 보고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하니 예후가 그 뒤를 쫓아가며 이르되 그도 병거 가운데서 죽이라 하매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치니 그가 므깃도까지 도망하여 거기서 죽은지라
    28   그의 신복들이 그를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서 그들의 조상들과 함께 그의 묘실에 장사하니라
    29   아합의 아들 요람의 제십일년에 아하시야가 유다 왕이 되었었더라

    유다 왕 아하시야는 이스라엘 왕 요람이 죽는 것을 보았습니다. 또한 요람이 반역이라고 소리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는 "정원의 정자 길"로 도망갔습니다(27절 상). 여기서 말하는 정원은 열왕기상 21장 2절에 나오는 정원입니다. 열왕기상 21장 2절에는 다음과 같이 나옵니다. "아합이 나봇에게 말하여 이르되 네 포도원이 내 왕궁 곁에 가까이 있으니 내게 주어 채소 밭을 삼게 하라 내가 그 대신에 그보다 더 아름다운 포도원을 네게 줄 것이요 만일 네가 좋게 여기면 그 값을 돈으로 네게 주리라" 여기서 "채소 밭"이 원어로 "채소 정원(גַּן)"입니다. 아합이 나봇의 포도원을 채소 정원으로 만들었는데 아합이 도망 간 길이 바로 그 정원 안에 있는 어떤 집(בֵּ֣ית)으로 향하는 길, 또는 그 집에서 나가는 길인 것입니다. 

     

    정원의 정자 길

     

    원어를 보면 "정원의 정자 길"에서 "정원" 앞에 정관사가 붙어 있습니다. 즉, "그 정원(הַגָּ֑ן)"이라는 뜻입니다. 이 정원은 바로 아합이 나봇에게 빼앗은 땅에 만든 정원인 것입니다. 열왕기 저자가 아하시야가 도망간 길을 자세하기 기록하면서 "그 정원의 정자 길"이라고 쓴 것은 아하시야가 당하는 일이 아합과 관련되어 있다는 것을 넌지시 알려주기 위한 것입니다. 

    아합 집에 대한 심판

    아하시야는 유다 왕입니다. 얼핏 보면 아합의 집과 관련이 없는 것 같습니다. 하지만 그는 아달랴의 아들(왕하 8:24)입니다. 아달랴는 아합의 딸입니다. 그러므로 아하시야는 아합의 외손자인 것입니다. 그의 외할머니가 이세벨입니다. 그도 아합의 집 안에 들어갑니다. 그러므로 나봇과 나봇의 아들들이 흘린 피에 대한 심판 안에 그도 포함되는 것입니다. 

     

    아하시야는 이블르암 가까운 구르 비탈에서 공격을 받았습니다(27절 하). 거기에서 치명상을 입었을 것입니다. 이블르암은 북 이스라엘의 수도 사마리아에서 북쪽으로 약 16km나 떨어져 있습니다. 이스르엘보다는 남쪽입니다. 이하시야가 얼마나 자유롭게 북이스라엘과 왕래했는지 이렇게 깊숙한 곳까지 아무 제약없이 들어갈 수 있었습니다. 

    므깃도에까지 도망해서

    이블르암에서 일격은 당한 아하시야는 므깃도까지 도망갔습니다. 므깃도는 이블르암에서 북서쪽으로 약 17km 정도 떨어져 있습니다. 왜 북서쪽으로 도망을 갔는지는 모릅니다. 어쩌면 거기에 자기의 군대가 있었을 수도 있습니다(28절). 므깃도까지 도망간 아하시야는 거기에서 죽었습니다(27절 하). 죽은 그를 그의 신복들이 병거에 싣고 예루살렘에 이르러 다윗 성에 장사했습니다. 

     

    아합의 아들 요람 제11년에 아하시야가 유다의 왕이었는데(29절) 요람은 아하시야의 외삼촌이었습니다. 외삼촌과 조카가 한 날에 죽임을 당했습니다. 그들이 죽은 것은 아합의 집이라서 죽은 것입니다. 아합에게 내려지는 심판을 받아서 죽은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7절의 예언이 이렇게 성취되었습니다. 

    삼사 대까지

    하나님께서 십계명을 주실 때, 즉 언약을 맺으실 때 하신 말씀이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출애굽기 20장 4-6절과 신명기 5장 7-10절에 보면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에게 임하는 심판을 말씀하면서 "나 네 하나님 여호와는 질투하는 하나님인즉 나를 미워하는 자의 죄를 갚되 아버지로부터 아들에게로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거니와(신 5:9)"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 바로 앞에 우상을 만들지 말고 절하지 말고 섬기지 말라는 말씀이 나옵니다(신 5:8-9). 그러므로 죄를 갚으실 때 삼사 대까지 이르게 하신다는 말씀은 우상을 숭배하는 자들에게 하신 말씀인 것입니다.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멸망을 받을 위기 때 계속 등장합니다(출 34:7; 민 14:18). 그러므로 삼사 대까지 죄를 갚으신다는 말씀은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를 드러내는 말씀입니다. 왜냐하면 아버지로부터 그 아들에게로 죄가 계속 내려가는 것이 일반 원칙이나 그 죄가 삼사 대에서 그친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하나님의 말씀을 지키고 우상을 가증히 여기며 하나님만 섬기는 사람에게는 은혜가 천대까지 이릅니다(출 20:6; 신 5:10; 신 7:9; 출 34:7). 

     

    이 말씀은 정확하게 성취됩니다. 아합의 아들과 손자, 그리고 유다 왕 아하시야의 아들들에게까지 심판이 임하고 그칩니다. 그리고 요아스 때 이 심판이 그치게 됩니다(왕하 11:20-21). 그리고 하나님의 언약이 유다에 계속 이어집니다.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그러면 요람이나 아하시야는 아무 죄가 없는데 아합과 이세벨 때문에 칼에 죽임을 당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그들도 자기의 죄 때문에 죽은 것입니다. 예레미야 31장 30절에 보면 "누구나 자기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죽으리라"라고 분명하게 말씀합니다. 그들이 아합과 이세벨의 죄의 영향력 아래에 있었던 것은 맞습니다. 하지만 그들도 자기가 좋아서 우상을 숭배한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기의 죄로 죽임을 당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공의가 정확하게 이루어지는 것입니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죄의 영향력 아래 있으면 그것이 계속 되어야 할 것인데 삼사 대가 지나면 그것이 끊어집니다. 이것이 놀라운 것입니다. 이것이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사람이 자기의 죄악을 깨닫고 돌이켜서 하나님을 섬기는 것은 하나님께서 은혜를 베푸시지 않으시면 안 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누구든지 하나님을 잘 섬기고 있다면 그것은 그가 원래는 멸망 받아 마땅할 사람이었는데 그를 불쌍히 여기셔서 건지셨기 때문입니다. 그 누구도 하나님 앞에서 자랑할 수 없고 자긍할 수 없습니다(엡 2:9).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30   예후가 이스르엘에 오니 이세벨이 듣고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다가

    30-37절은 이세벨이 죽임 당하는 내용입니다. 이세벨은 이스라엘을 심각하게 타락시킨 장본인입니다. 그런데 그는 자기 아들과 손자가 예후에게 죽임 당했다는 것을 "듣고"도 머리를 꾸미고 창에서 바라보고 있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부드러워지지 않고 여전히 강퍅했습니다. 죽음 앞에서도 마음이 강퍅하다는 것 자체가 하나님으로부터 심판을 받은 증거입니다. 사람이 살면서 몇 번이나 장례식에 참석할까요? 요절한 사람을 제외하면 적어도 열 번 이상, 수십 번 이상은 주변에서 사람이 먼저 떠나는 것을 봅니다. 그러면서도 마음이 부드러워지지 않고 여전히 강퍅해서 하나님을 찾지 않는 수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이세벨처럼 극단적이지는 않더라고 대부분의 사람들이 영원에 대한 아무런 대안이 없이 살아가면서 "눈을 그리고 머리를 꾸미는" 일에 집중하고 사는 것입니다. 이것은 사람 안에 있는 아주 큰 폐단입니다. 

    너 시므리여

    31   예후가 문에 들어오매 이르되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 하니

    예후가 문에 들어올 때 이세벨은 "주인을 죽인 너 시므리여 평안하냐"라고 말합니다(31절). 여기서 시므리는 바아사에게 반역을 범한 사람입니다. 그는 겨우 7일 동안 왕 노릇을 하고 비참하게 죽었습니다(왕상 16:8-15). 그러므로 이세벨이 예후에게 시므리라고 한 것은 너도 시므리처럼 비참하게 죽을 것이라는 저주를 퍼부은 것입니다. 루터는 이 부분을 "그의 주인을 죽인 시므리가 평안할까?"라고 번역했습니다. 

    그를 내던지라

    32   예후가 얼굴을 들어 창을 향하고 이르되 내 편이 될 자가 누구냐 누구냐 하니 두어 내시가 예후를 내다보는지라
    33   이르되 그를 내려던지라 하니 내려던지매 그의 피가 담과 말에게 튀더라 예후가 그의 시체를 밟으니라

    이세벨에게 저주의 말을 들은 예후는 성질대로 행동했습니다. 바로 소리쳐서 이세벨을 창밖으로 던져서 죽게 한 것입니다. 그 일에 두어 내시가 예후의 편에 섰습니다. 그들은 이세벨을 내려 던졌고 예후는 그의 성질대로 이세벨의 시체를 밟았습니다(33절). 이세벨의 저주에 분노로 갚은 것입니다. 

    이 저주 받은 여자를

    34   예후가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이르되 가서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 그는 왕의 딸이니라 하매
    35   가서 장사하려 한즉 그 두골과 발과 그의 손 외에는 찾지 못한지라
    36   돌아와서 전하니 예후가 이르되 이는 여호와께서 그 종 디셉 사람 엘리야를 통하여 말씀하신 바라 이르시기를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지라
    37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 하셨느니라 하였더라

     

    예후는 들어가서 먹고 마시고 정신을 차렸습니다. 그는 갑자기 끓어오르는 분노로 이세벨을 한순간에 처단했습니다. 그랬지만 정신을 차리고 보니 이세벨을 저렇게 두면 안 된다는 것을 깨달았습니다. 왜냐하면 이세벨은 왕의 딸, 즉 시돈 왕 엣바알의 딸이었기 때문입니다(왕상 16:31). 자칫하다가는 큰 전쟁이 일어날 수도 있는 상황이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이 저주 받은 여자를 찾아 장사하라"라고 명령했습니다(34절). 

     

    사람들이 예후의 명령대로 이세벨을 찾아서 장사하려고 했는데 그 두골과 발과 손 외에는 찾지 못했습니다(35절). 이세벨은 그 시체를 수습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하게 죽었습니다. 그것을 예후에게 전하자 예후는 하나님께서 엘리야를 통해서 말씀하신 것이 성취된 것이라고 합니다. 그 말씀은 "이스르엘 토지에서 개들이 이세벨의 살을 먹을 지라 그 시체가 이스르엘 토지에서 거름같이 밭에 있으리니 이것이 이세벨이라고 가리켜 말하지 못하게 되리라"라는 말씀이었습니다. 실로 끔찍한 저주의 말씀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이세벨은 저주 받은 여인이 맞았습니다. 그가 저주를 받은 것은 그가 우상 숭배로 숱한 악을 저질러서 하나님 나라를 어지럽혔기 때문입니다. 그렇게 하고서도 끝까지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위에 나오는 엘리야의 예언은 열왕기성 21장 23절에 나옵니다. 

    예후에 대한 평가

    박윤선 목사님은 예후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평가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86쪽). 

    하나님은 악인도 특별한 일에 사용하신다. 예후는 악한 사람이었지만 하나님은 아합의 가문을 심판하시는 일(왕하 10:30-31)에 그를 사용하셨다. 잠 16:4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온갖 것을 그 쓰임에 적당하게 지으셨나니 악인도 악한 날에 적당하게 하셨느니라"라고 하였다. 

    겸손하게 구해야 함

    우리는 모두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이것을 깨달아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적당하게 쓰십니다. 항상 겸손하게 하나님께 구하고 하나님께서 사용하실 때 하나님께 영광 돌리며 충성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다만 선한 일에 사용하시기를 간구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겸손하게 간구하는 우리의 기도를 들으시고 선하게 응답하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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