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열왕기하 9장 14-26절 |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를 심판하시는 하나님

2024. 9. 19. 22:1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열왕기하

목차


    열왕기하 9:14-26

    찬송가 254장 내 주의 보혈은


    예후와 하사엘

    열왕기상 19장의 예언이 성취됩니다. 바알 숭배자들에게 하사엘의 칼이 임하고 연달아서 예후의 칼이 임한 것입니다(왕상 19:17). 이 예언은 이스라엘 왕 요람과 유다 왕 아하시야에게 성취되었습니다. 그들이 칼에 죽은 이유는 바알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왕상 19:18). 

     

    14   이에 님시의 손자 여호사밧의 아들 예후가 요람을 배반하였으니 곧 요람이 온 이스라엘과 더불어 아람의 왕 하사엘과 맞서서 길르앗 라못을 지키다가
    15   아람의 왕 하사엘과 더불어 싸울 때에 아람 사람에게 부상한 것을 치료하려 하여 이스르엘로 돌아왔던 때라 예후가 이르되 너희 뜻에 합당하거든 한 사람이라도 이 성에서 도망하여 이스르엘에 알리러 가지 못하게 하라 하니라

     

    요람은 먼저 하사엘과 싸웠습니다(14절). 하사엘과 싸우다가 부상을 입었습니다(15절). 일단 하사엘의 칼은 피한 것입니다. 열왕기상 19장 17절에서 하나님께서는 "하사엘의 칼을 피하는 자를 예후가 죽일 것이요 예후의 칼을 피하는 자를 엘리사가 죽이리라"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말씀대로 하사엘의 칼을 피한 요람은 예후에게 죽게 됩니다. 이 예후를 세운 사람이 엘리사입니다. 그러므로 요람은 결국 엘리사에게 죽임을 당하게 되는 것입니다. 

     

    예후는 자기가 반역한 것이 새어나가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 한 사람도 그 성에서 나가서 이스르엘로 가지 못하게 했습니다. 그래서 예후는 요람에게 갑작스럽게 요람에게 닥치게 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우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84쪽). 

    14-15절은 예후의 혁명시기가 적당한 때였음을 알려준다. 그 때는 이스라엘 왕이 부상하여 후방에 들어와 치료를 받던 중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들로 하여금 필요한 일을 하게 하실 때에는 적당한 기회를 주시는 경우가 많다. 

    요람과 아하시야

    16   예후가 병거를 타고 이스르엘로 가니 요람 왕이 거기에 누워 있었음이라 유다의 왕 아하시야는 요람을 보러 내려왔더라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대로 예후는 한 번에 두 명의 바알 숭배자를 처단할 기회를 잡습니다. 이스르엘에는 요람 왕이 누워 있었는데 마침 유다의 왕 아하시야가 요람을 보러 내려왔던 참이었습니다. 일반 백성보다 왕들의 우상숭배는 나라를 훨씬 크게 어지럽힙니다. 하나님께서는 이들을 그냥 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리고 미리 엘리야에게 말씀하신 대로 하사엘을 세우시고 예후를 세우셨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심판의 손 아래 있었습니다. 

     

    왕의 권력이 아무리 크고 높다고 할지라도 하나님보다 높지 못합니다. 모든 권력자들은 자기들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이들에게 심판이 미리 정해진 것처럼 우리를 향한 심판도 이미 정해져 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날마다 예수 그리스도를 더욱 힘있게 의지해야 합니다. 심판이 정해진 것을 아는 사람은 예수 그리스도만을 의지합니다. 그 어떤 권력도 돈도 명예도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져낼 수 없기 때문입니다. 오직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만이 우리를 하나님의 심판에서 건져내십니다. 

    예후의 성격까지 사용하시는 하나님

    17   이스르엘 망대에 파수꾼 하나가 서 있더니 예후의 무리가 오는 것을 보고 이르되 내가 한 무리를 보나이다 하니 요람이 이르되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어 맞이하여 평안하냐 묻게 하라 하는지라
    18   한 사람이 말을 타고 가서 만나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로 물러나라 하니라 파수꾼이 전하여 이르되 사자가 그들에게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나이다 하는지라
    19   다시 한 사람을 말에 태워 보내었더니 그들에게 가서 이르되 왕의 말씀이 평안하냐 하시더이다 하매 예후가 이르되 평안이 네게 상관이 있느냐 내 뒤를 따르라 하더라
    20   파수꾼이 또 전하여 이르되 그도 그들에게까지 갔으나 돌아오지 아니하고 그 병거 모는 것이 님시의 손자 예후가 모는 것 같이 미치게 모나이다 하니

     

    이스르엘 망대에서 지키던 사람은 예후의 무리가 마치 적을 치려고 오는 것처럼 달려 오는 것을 보았습니다(17절). 요람은 사람을 보내서 "평안하냐"라고 묻게 했습니다(17절). 그런데 물으러 간 사람이 돌아오지 않았습니다(18절). 두 사람이 갔으나 모두 돌아오지 않았습니다. 파수꾼은 병거를 모는 것이 예후가 모는 것같다고 전했습니다(20절). 여기에 예후의 성격이 들어나는데 예후는 병거를 미치게 몰았습니다(20절 하).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사무엘서 열왕기 역대기 주석, 584쪽). 

    예후의 성격은 열광적(熱狂的)이었으니만큼 이때의 그 군사행동도 그러하였다. 이것은 그의 혁명 운동이 그렇게 광적(狂的)으로 잔인한 것이었음을 암시해준다. 하나님은 그의 예언(7-10절)과 같이 아합 왕실(王室)을 심판하심에 있어서 이런 인물을 그 주동자로 세우신 것이다. 여기 하나님의 주권적(主權的)인 역사가 있으나 그 역사가 인간의 자유(예후의 자유)와 그의 책임을 제외시키는 것은 아니다. 예후의 혁명에 개재되어 있는 죄악은 예후 자신이 책임져야 할 것이었다. 

     

    하나님께서 사람을 사용하실 때에는 그 사람의 모든 기질도 함께 사용하십니다. 그것을 알고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겸손은 낮지 않은 사람이 겸양을 떨며 스스로를 낮추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을 주관하시는 크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어떤 처지인지를 제대로 자각하는 것이 겸손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나보다 나를 더 잘 아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21   요람이 이르되 메우라 하매 그의 병거를 메운지라 이스라엘  요람과 유다  아하시야가 각각 그의 병거를 타고 가서 예후를 맞을새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에서 만나매

     

    요람은 예후를 맞아서 그에게 전황을 들으려고 했습니다. 거기에 아하시야가 동행했습니다. 그런데 거기에서 그들은 죽임을 당합니다. 그 장소는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토지였습니다. 나봇은 아합에게 포도원을 빼앗기면서 억울하게 죽임을 당한 사람입니다. 나봇이 죽임을 당한 것 때문에 하나님께서는 엘리야에게 다음과 같은 말을 전하라고 하셨습니다. "너는 그에게 말하여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네가 죽이고 또 빼앗았느냐고 하셨다 하고 또 그에게 이르기를 여호와의 말씀이 개들이 나봇의 피를 핥은 곳에서 개들이 네 피 곧 네 몸의 피도 핥으리라 하였다 하라(왕상 21:19)" 엘리야가 전한 이 말 그대로 아합의 집은 여기에서 멸망을 당하게 됩니다.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

    22   요람이 예후를 보고 이르되 예후야 평안하냐 하니 대답하되 네 어머니 이세벨의 음행과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 하더라

     

    요람은 예후에게 "예후야 평안하냐"라고 물었습니다. 이것은 전쟁 상황을 물은 것입니다. 그런데 예후는 "네 어머니 이세벨의 술수가 이렇게 많으니 어찌 평안이 있으랴"라고 대답했습니다. 이세벨의 음행은 우상 숭배를 가리킵니다. 우상 숭배와 이세벨의 술수 때문에 수많은 사람들이 억울함을 당했습니다. 그 중에는 죽임을 당한 사람도 많았습니다. 나봇이 그랬고 여호와의 선지자들도 많이 죽었습니다. 사실 그 때까지도 이세벨은 살아 있었습니다. 그리고 그의 우상 숭배로 나라는 어지러질 대로 어지러져 있었습니다. 예후는 이것을 지적하면서 "어찌 평안이 있으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나라의 평안은 모든 것이 하나님의 뜻대로, 하나님께서 정하신 대로 잘 돌아가는 것입니다. 우상 숭배는 이 모든 것을 어그러뜨립니다. 역행시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상 숭배자는 자기도 평안하지 않을 뿐만 아니라 하나님 나라의 평안을 망칩니다. 하나님 나라를 어지럽히는 것입니다. 

    요람의 죽음

    23   요람이 곧 손을 돌이켜 도망하며 아하시야에게 이르되 아하시야여 반역이로다 하니
    24   예후가 힘을 다하여 활을 당겨 요람의 두 팔 사이를 쏘니 화살이 그의 염통을 꿰뚫고 나오매 그가 병거 가운데에 엎드러진지라

     

    요람은 도망가면서 아하시야에게 반역이라고 외쳤습니다. 그러나 도망칠 수 없었습니다. 예후가 쏜 활에 맞아 엎드러진 것입니다. 그는 엘리야의 예언대로 나봇의 포도원 자리에서 죽었습니다(왕상 21:19). 

    갚으시는 하나님

    25   예후가 그의 장관 빗갈에게 이르되 그 시체를 가져다가 이스르엘 사람 나봇의 밭에 던지라 네가 기억하려니와 이전에 너와 내가 함께 타고 그의 아버지 아합을 좇았을 때에 여호와께서 이같이 그의 일을 예언하셨느니라
    26   여호와께서 말씀하시기를 내가 어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분명히 보았노라 여호와께서 또 말씀하시기를 이 토지에서 네게 갚으리라 하셨으니 그런즉 여호와의 말씀대로 그의 시체를 가져다가 이 밭에 던질지니라 하는지라

     

    예후는 그의 장관 빗갈에게 요람의 시체를 나봇의 밭에 던지라고 했습니다. 그들은 아합 왕 때 여호와의 예언을 들은 사람들이었습니다(25절). 예후는 여호와의 말씀을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하신 대로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를 그 토지에서 정확하게 갚으셨습니다. 나봇의 죽음은 그 한 사람만의 죽음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죽음은 그 아들들의 억울한 죽음으로 이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나봇의 피와 그의 아들들의 피"에 대해서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정확하게 갚아주십니다. 

     

    우상 숭배는 억울한 사람을 양산합니다. 우상 숭배는 힘을 숭상하는 것입니다. 힘으로 빼앗고 죽입니다. 이것이 우상을 숭배하는 사람들이 하는 행동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억울한 사람의 억울함을 풀어주십니다. 하나님 나라는 억울함이 풀리는 나라입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것으로 억울함을 당한다면 하나님께서 다 보시거 풀어주실 것을 기대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정확하게 풀어주실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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