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10. 26. 16:02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애가
목차
예레미야애가 4:11-22
찬송가 503장 세상 모두 사랑 없어
기근으로 임한 하나님의 진노
예레미야애가 4장 앞부분에서는 하나님의 진노가 기근으로 임했던 것을 묘사했습니다. 기근이 임한 이유는 택함을 입은 백성들이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고 하나님께서 명하신 모든 율법의 말씀을 지키지 않았기 때문입니다(신 28:58). 우리 믿는 자들이 식사 기도를 하는 것은 우리가 먹을 수 있다는 것이 하나님의 은혜 덕분임을 알고 감사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은혜가 없으면 우리는 삶을 영위할 수 없는 것입니다.
불로 임한 하나님의 진노
11 여호와께서 그의 분을 내시며 그의 맹렬한 진노를 쏟으심이여 시온에 불을 지르사 그 터를 사르셨도다
11절의 히브리어 알파켓 시작 글자는 카프입니다. 11절은 킬라(כִּלָּ֤ה)로 시작합니다. 그 뜻은 "그가 성취하셨다"입니다. 선지자는 여호와께서 당신님의 분노를 이루셨다고 합니다. 11절에는 동사가 네 개 나옵니다. 맨 처음 나오는 동사는 이루다, 완성하다입니다. 그 다음 동사는 "쏟아붓다"입니다. 그 다음 동사는 "(불을) 붙이다"입니다. 그 다음 동사는 "먹다, 삼키다"입니다. 여호와께서는 분을 이루셔서 진노를 쏟으시고 시온에 불을 지르셔서 그 터를 다 삼키게 하셨습니다. 시온이 불에 탄 것도 하나님께서 말씀하신 대로 된 것입니다.
예루살렘 함락
12 대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으로 들어갈 줄은 세상의 모든 왕들과 천하 모든 백성이 믿지 못하였었도다
12절의 시작 글자는 라메드입니다. 12절은 로(לֹ֤א)로 시작합니다. 로는 아니다(not)라는 뜻입니다. 땅의 모든 왕들과 세계의 모든 거주민들이 믿지 못했다(לֹ֤א)라고 합니다. 적과 원수가 예루살렘 성문 안으로 들어올 수 있을 줄은 믿지 못한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애가 주석, 693쪽).
이방 민족들이 전연 몰랐다고 하니, 그것은 유다의 재앙이 그처럼 뜻밖의 일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것은 자연지세(自然之勢)가 아니고, 여호와 하나님이 간섭하신 결과라는 것이다. 예상 밖에 임하는 재앙은 주로 하나님의 징벌인 것이다.
예루살렘은 하나님의 도성입니다. 그러므로 그 성이 함락된다는 것은 있을 수 없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저 강력한 앗수르의 침략으로부터 이 성을 지키셨습니다. 게다가 그 성은 자연 요새로 함락시키기 굉장히 어려운 성입니다. 그러므로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것은 사람의 힘으로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징벌하셔서 이루어진 일입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의 죄
13 그의 선지자들의 죄들과 제사장들의 죄악들 때문이니 그들이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도다
13절의 시작 글자는 멤입니다. 13절은 메하토트(מֵֽחַטֹּ֣את)로 시작합니다. 그 뜻은 "죄들 때문에"입니다. 예루살렘 성이 함락된 것은 외적의 힘이 강해서가 아니고 선지자와 제사장의 죄들 때문이었습니다. 선지자는 하나님의 말씀을 백성에게 전하는 사람입니다. 그런데 당시에는 수많은 거짓 선지자들이 있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에게 항복하지 말라고 예언했습니다. 그들의 예언을 따라 시드기야를 위시한 지도자들은 끝까지 항전했고 온 성에 엄청난 기근이 임하게 했습니다.
그리고 당시 제사장들은 사악한 짓을 행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성전에 우상이나 우상의 제단을 놓는 일을 했습니다. 백성들에게 하나님의 말씀을 부지런히 가르쳐야 했지만 그 의무를 감당하지 않았습니다. 그저 정치 권력의 눈치를 보면서 율법과는 반대로 행하여 하나님의 진노를 촉발시켰습니다.
특별히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예루살렘 성읍 안에서 의인들의 피를 많이 흘렸습니다. 하나님의 말씀대로 순종하려는 사람들을 많이 잡아 죽였습니다. 그 결과 그 땅은 하나님 보시기에 가증해졌습니다. 하나님께서 진노를 내리실 수밖에 없는 상태가 된 것입니다.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14 그들이 거리 거리에서 맹인 같이 방황함이여 그들의 옷들이 피에 더러워졌으므로 아무도 만질 수 없도다
14절의 시작 글자는 눈입니다. 14절은 나후(נָע֤וּ)입니다. 그 뜻은 "그들이 요동쳤다(떨었다)"입니다. 14절은 맹인들이 길거리에서 이리저리 다니는 모양을 묘사합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맹인들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법을 알려고 하지 않고 거역했기 때문에 그들의 눈은 가려졌습니다. 그들은 어둠에 갇혔습니다. 그들은 어둠 가운데에서 의인들의 피를 흘렸습니다.
그들의 옷은 피에 더려워져서 가증하게 되었습니다. 아무도 만질 수 없을 정도로 가증했습니다. 여기서 옷은 그들의 행실을 상징합니다. 그들의 행실이 죄로 크게 더려워졌습니다. 그래서 아무도 그들과 함께 하려고 하지 않았습니다. 꺼리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마치 부정한 자처럼, 나병환자처럼 된 것입니다.
지도자들의 행실이 죄로 물들면 그들의 지도를 받는 사람들, 일반 사람들은 그 사람을 꺼리게 됩니다. 그와 함께 있고 싶어하지 않게 됩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당시 사람들에게 그렇게 꺼려지는 존재가 되었습니다. 그들은 아무도 만질 수 없을 정도로 부정해졌습니다. 지도자들의 타락으로 예루살렘 성에는 심판이 임했습니다.
저리 가라
15 사람들이 그들에게 외쳐 이르기를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만지지 말라 하였음이여 그들이 도망하여 방황할 때에 이방인들이 말하기를 그들이 다시는 여기서 살지 못하리라 하였도다
15절의 시작 글자는 싸멕입니다. 15절은 수루(ס֣וּרוּ)로 시작합니다. 그 뜻은 "저리 가라"입니다. 사람들은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에게 "저리 가라, 부정하다, 저리 가라, 저리 가라, 우리를 만지지 마라"라고 했습니다. 당시 지도자들이 그렇게 부정한 자 취급을 당했습니다. "저리 가라"가 세 번 연거푸 등장합니다. 그 정도로 백성들은 그들을 부정하고 가증하게 여겼습니다.
지도자는 큰 책임을 가진 사람들입니다. 특별히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야 하는 지도자는 그 책임이 더 큽니다. 제대로 가르치고 하나님의 말씀을 잘 깨닫고 말씀 그대로 행해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하나님 나라의 의를 이루어야 합니다. 그러나 당시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오히려 악을 이루었습니다. 말씀이 금하는 일을 행했습니다. 의인의 피를 흘린 것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모든 사람에게 부정한 사람이 되었습니다.
특히 그들은 이방인들에게도 부정한 사람 취급을 받았습니다. 자기들이 부정하다고 여겼던 이방인들에게 부정한 사람 취급을 당하고 "그들이 다시는 여기 살지 못하리라"라는 말을 들었습니다. 예루살렘과 가나안 땅은 하나님께서 임재하시는 땅입니다. 거기에는 부정한 사람은 살 수 없습니다. 거룩한 땅이었기 때문입니다. 이 말을 이방인들이 했다는 것이 의미심장합니다.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이방인들에게도 가장 부정한 사람으로 여겨졌습니다.
그들을 흩으시고
16 여호와께서 노하여 그들을 흩으시고 다시는 돌보지 아니하시리니 그들이 제사장들을 높이지 아니하였으며 장로들을 대접하지 아니하였음이로다
16절의 시작 글자는 페입니다. 16절은 프네(פְּנֵ֤י)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얼굴"이라는 뜻입니다. 16절에는 "얼굴"이 두 번 나옵니다. 두 번의 얼굴은 여호와의 얼굴과 제사장의 얼굴입니다. 여호와의 얼굴은 은총을 베푸시는 통로입니다. 여호와께서는 그들을 당신님의 얼굴 앞에서 흩으셨습니다. 그들에게 더 이상 은총을 내리지 않으시기로 정하셨습니다. 그들을 흩으시고 그들을 보시려고(לְהַבִּיטָ֑ם) 더하시지(יוֹסִ֖יף) 않으실 것입니다. 제사장들은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났습니다.
하나님의 면전에서 쫓겨나서 흩어진 제사장들은 사람들의 높임을 받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사람들이 제사장을 높이는 것은 그들이 하나님과 긴밀하게 교제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을 알고 하나님의 뜻을 가르쳐서 백성들이 하나님께 올바른 길로 나아가도록 도와주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에게서 쫓겨난 제사장은 더이상 백성들의 존경을 받을 수 없습니다. 존경을 받을 수도 없고 대접을 받을 수도 없습니다.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17 우리가 헛되이 도움을 바라므로 우리의 눈이 상함이여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
17절의 시작 글자는 아인입니다. 원래대로라면 아인이 페보다 먼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는 순서가 바뀌었습니다. 17절은 우데나(עודינה)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여전히"입니다. 우리의 눈이 우리를 도와주는 것을 간절히 바라지만 "여전히" 실패한다고 합니다. 그것은 헛된 일입니다. 선지자는 "우리를 구원하지 못할 나라를 바라보고 바라보았도다"라고 합니다. 바라본다는 말이 두 번 연거푸 나옵니다. 그만큼 간절하게 도움을 바란 것입니다. 이 나라는 애굽입니다. 그런데 애굽은 그들을 도울 수 없습니다. 애굽은 도움을 바라는 자들을 상하게 합니다. 하나님 말고는 그 누구도 하나님 백성을 도울 수 없습니다.
사냥을 당함
18 그들이 우리의 걸음을 엿보니 우리가 거리마다 다 다닐 수 없음이여 우리의 끝이 가깝고 우리의 날들이 다하였으며 우리의 종말이 이르렀도다
18절의 시작 글자는 짜데입니다. 18절은 차두(צָד֣וּ)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그들이 사냥하였다"라는 뜻입니다. 사냥꾼이 사냥감의 발자국을 뒤쫓는 것처럼 그들이 우리의 발자국을 추적하여 뒤따라왔다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길로 다닐 수 없고 숨어 다닐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숨어다녔지만 막다른 길에 도달했습니다. 곧 잡혀서 죽게 된 것입니다. 길이 끝났고 우리의 날들도 끝났습니다. 끝이 왔기 때문입니다. 18절에는 끝이라는 말이 두 번 등장합니다. 한 번은 길의 끝을 묘사하면서 다른 한 번은 끝이 왔다는 것으로 나오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이렇게 피할 수 없습니다. 도망할 수 없는 것입니다. 그러니 죄를 버리고 하나님께로 향하여 나아가야 합니다. 마음을 찢고 회개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이것만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는 살 길이 없습니다. 다 막다른 길입니다. 그러다가 종말이 갑자기 임합니다. 믿는 우리는 이런 것에 주의하는 사람들입니다.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19 우리를 뒤쫓는 자들이 하늘의 독수리들보다 빠름이여 산 꼭대기까지도 뒤쫓으며 광야에서도 우리를 잡으려고 매복하였도다
19절의 시작 글자는 코프입니다. 19절은 칼림(קַלִּ֤ים)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빠른, 신속한"이란 뜻입니다. 우리를 추격하는 자들이 독수리보다 빠르다고 합니다. 산 꼭대기로 도망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광야로 도망쳐도 소용이 없습니다. 하나님의 심판을 피할 수 있는 인생은 아무도 없습니다.
기름 부으신 자가
20 우리의 콧김 곧 여호와께서 기름 부으신 자가 그들의 함정에 빠졌음이여 우리가 그를 가리키며 전에 이르기를 우리가 그의 그늘 아래에서 이방인들 중에 살겠다 하던 자로다
20절의 시작 글자는 레쉬입니다. 20절은 루아흐(ר֤וּחַ)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숨결, 바람"이라는 뜻입니다. 선지자는 여호와의 기름 부음 받은 자를 우리가 코로 쉬는 숨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과 제사장과 선지자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호흡과도 같이 중요한 사람들입니다. 그런데 그 중 선지자들과 제사장들은 부정하여 더러워졌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왕이 추격하는 자가 파 놓은 함정에 빠졌습니다. 함정에 빠진 사람은 시드기야입니다.
왕은 하나님의 보호를 백성들에게 베푸는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다스림으로 백성들을 다스려서 나라가 잘 돌아가게 하는 사람입니다. 백성들을 잘 재판해서 나라에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인애가 이루어지게 하는 사람입니다. 왕이 나라를 잘 다르시면 백성들은 그의 그늘 아라에서 평안히 살게 됩니다. 그런데 왕은 하나님의 통치로 나라를 다스리지 않았습니다. 그 결과 나라는 망하고 백성들은 흩어졌습니다.
우리는 지금 예수 그리스도께서 다스리는 나라에 소속되어 있습니다. 예수님께서는 하나님의 공의와 정의와 인애로 지금도 하나님 나라를 다스리고 계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아무도 잃거나 빼앗기지 않으십니다. 우리는 완전하게 안전합니다.
에돔아
21 우스 땅에 사는 딸 에돔아 즐거워하며 기뻐하라 잔이 네게도 이를지니 네가 취하여 벌거벗으리라
21절의 시작 글자는 신입니다. 21절은 시시(שִׂ֤ישִׂי)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너는 기뻐하라"라는 뜻입니다. 선지자는 딸 애돔에게 기뻐하라고 합니다. 이것은 반어법입니다. 기뻐하라는 이유가 "잔이 네게도 이를" 것이기 때문입니다. 에돔도 심판을 당할 것이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가 에돔에게 기뻐하라고 한 것은 에돔이 예루살렘 성이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했기 때문입니다. 이웃이 망하는 것을 보고 기뻐하였으니 네가 망할 때에도 기뻐하라는 것입니다.
우리 믿는 사람들에게 불가능해 보이는 명령이 바로 "원수 사랑"입니다. 그런데 "원수 사랑"은 가능합니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힘입어서 가능한 것입니다. 원수를 사랑한다고 할 때에 내가 나의 자아와 나의 힘과 나의 성품으로 사랑하려고 하면 언제나 실패합니다. 그렇게 하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께서 악인과 선인에게 자비와 긍휼을 베풀어 주시듯이 그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가 아니면 용서 받지 못할 죄인으로 알고 그를 불쌍히 여기는 것이 원수 사랑입니다.
에돔은 유다를 원수로 알았습니다. 그래서 유다가 망할 때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러나 에돔은 사랑까지는 아니어도 기뻐하지는 말아야 했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심판은 정확하게 내려지기 때문입니다. 유다가 죄인인 만큼 에돔도 죄인입니다. 누구든지 죄로 인해서 심판을 당할 때에는 자기도 죄인일 줄 알고 겸손해야 합니다. 슬퍼하고 위로해 주어야 합니다. 그러나 에돔은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에돔의 그러한 행동을 그대로 갚아주셨습니다.
딸 시온아 딸 에돔아
22 딸 시온아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 딸 에돔아 주께서 네 죄악을 벌하시며 네 허물을 드러내시리로다
22절의 시작 글자는 타우입니다. 22절은 탐(תַּם)으로 시작합니다. 이 말은 "그것이 성취되었다(마쳤다)"라는 뜻입니다. 선지자는 딸 시온을 위로합니다. "네 죄악의 형벌이 다하였으니 주께서 다시는 너로 사로잡혀 가지 아니하게 하시리로다"라고 합니다. 하나님께 징계를 받을 때 누가 그것을 보고 비웃고 조롱할 수 있습니다. 그럴 때 신자는 너무 억울해 하지 말고 하나님의 징계가 이제 곧 끝나겠구나 라고 생각해야 합니다. 시온이 망하는 것을 보고 에돔이 기뻐하고 즐거워했습니다. 그것으로 볼 때 시온에 대한 형벌은 이제 마쳤구나 이렇게 알아차려야 합니다. 이제 에돔에 형벌이 가해지겠구나 깨달아야 합니다. 압살롬이 반역을 일으켰을 때 피난 가는 다윗을 보면서 사울의 친족이었던 시므이가 저주를 퍼부었습니다. 그 때 다윗은 " 혹시 여호와께서 나의 원통함을 감찰하시리니 오늘 그 저주 때문에 여호와께서 선으로 내게 갚아 주시리라(삼하 16:12)"라고 믿음으로 고백했습니다. 이 고백대로 여호와께서는 다윗에게 선으로 갚아주셔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원수에게 원통한 마음을 품지 않아도 됩니다. 그저 그를 불쌍히 여기고 그를 위해서 기도하면 됩니다. 하나님께서 선으로 나에게 갚으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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