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36장 1-19절 | 성경과 회개와 재앙

2024. 7. 22. 20:09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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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36:1-19절

    찬송가 201장 참 사람 되신 말씀


    34-35장의 문맥

    예레미야 34장에서는 시드기야 때에 하나님 앞에서 맺은 계약을 파기한 일이 나옵니다. 그 시대는 여호야김의 시대입니다. 35장에서는 하나님과의 약속을 파기한 이스라엘과 대조되는 사람들이 나옵니다. 그들은 레갑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들은 그들의 조상 요나답이 분부한 다섯 가지 명령을 250년이나 성실하게 지키고 있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에게 재앙을 선포하시고(35:17) 레갑 사람들에게는 복을 선언하셨습니다(35:18-19). 36장에서는 여호야김 제4년에 일어난 일이 나옵니다(1절). 그 일은 예레미야에게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기록해서 성전에서 읽은 일입니다(6절). 

    기록하라 

    1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 제사년에 여호와께로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이 임하니라 이르시되
    2   너는 두루마리 책을 가져다가 내가 네게 말하던 날 곧 요시야의 날부터 오늘까지 이스라엘과 유다와 모든 나라에 대하여 내가 네게 일러 준 모든 말을 거기에 기록하라

     

    그 때는 여호야김 왕 제4년입니다(1절). 그 때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주신 모든 말을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2절). 하나님께서는 요시야 왕의 시대부터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시기 시작하셨습니다. 그러니까 그 때까지 약 40년 간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 말씀을 기록하라고 하신 것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2쪽).

    이 점에 대하여 주목할 만한 것은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기록하도록 하신 사실이다.

    1) 이 내용으로 말하면, 요시야 때부터 여호야김 때까지(40년 동안) 예레미야가 유다 민족의 장래에 대하여 자세히 예언한 것이니 그 분량이 풍부하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그것을 기록에 옮긴다는 것은 그 예언이 어디까지나 성취된다는 것이 보장되기 때문이다. 미래의 일을 말해 놓고 그것을 기록하기까지 하는 것은 이런 보장이 없이는 생각할 수 없는 일이다. 예레미야 시대에 거짓 선지자들도 많았으나 그들의 예언은 기록에 남아 있지 않다. 그들이 기록에 남기지 않은 이유는 그 예언이 필경 거짓된 것으로 드러날 줄 알았기 때문이다.

    2) 하나님께서 그 예언을 기록하도록 하신 것은 그가 그 백성을 회개케 하시려는데 있어서 간절하신 것을 보여 준다. 그들이 귀로 듣고 회개하지 아니하니 기록으로 그의 말씀을 읽어서 회개하도록 하신 것이다.

    3) 그리고 우리는 이 점에 있어서, 하나님의 말씀은 기록된 형태로도 계속하여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사실을 생각하게 된다. 

    성경

    박윤선 목사님은 기록하라고 하신 명령의 중요한 점 세 가지를 제시합니다. 이 세 가지는 성경에 모두 적용됩니다. 성경의 기록이 남아 있는 것은 그 안에 담긴 모든 말씀이 다 성취되었기 때문입니다. 다만 한 가지 재림이 아직 남아 있습니다. 성경의 모든 일이 성취된 것으로 볼 때 재림도 반드시 성취될 일인 것을 알아야 합니다. 재림 이후에는 최후의 심판이 있습니다. 그러므로 믿는 자들은 모두 깨어 있어야 합니다. 

     

    두 번째로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성경을 주신 것은 우리로 하여금 회개하도록 하시기 위함입니다. 성도는 처음에 예수님을 믿을 때 전적으로 회심합니다. 죄와 죄악된 길을 버리고 그 방향을 온전히 돌려 하나님께로 향하는 것입니다. 그 후에는 회개가 계속됩니다. 성도는 날마다 하나님께로 향하는 사람입니다. 즉 날마다 회개하는 사람입니다. 우리 안에 남아 있는 죄성을 날마다 말씀을 발견하여 하나님 앞에서 회개하고 하나님을 더욱 의지하는 사람입니다. 

     

    세 번째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입니다. 성경이 하나님의 말씀이라는 것을 성도는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그러므로 성경을 읽을 때에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는 것처럼 읽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지금 나에게 말씀하신다는 마음으로 읽어야 하는 것입니다. 그럴 때 성도는 일상 생활에서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경험하게 됩니다. 

    용서하리라

    3   유다 가문이 내가 그들에게 내리려 한 모든 재난을 듣고 각기 악한 길에서 돌이키리니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 하시니라

     

    하나님께서는 회개를 기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에게 말씀하신 재난을 듣는다면 유다 가문이 회개할 것이라고 생각하신 것입니다. 그런데 아직 회개하기 전입니다. 그런데도 하나님께서는 "그리하면 내가 그 악과 죄를 용서하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하나님께서는 용서를 마음에 두시고 회개를 명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회개할 때 용서의 확신을 가져야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2쪽).

    신자들이 회개만 하면 하나님께서는 그 내리시려던 재앙도 멈추신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얼마나 인간의 죄악을 용서하시기 기뻐하시는지 알 수 있다. 죄인이 죄를 일흔 번씩 일곱 번이라도 용서하라고 권면하신 그리스도의 심정이 바로 하나님의 심정이다(마 18:22). 그는 용서하시기를 기뻐하시는 하나님이시다(참조. 미 7:18-20)

     

    아버지는 언제나 용서할 준비가 되어 있습니다. 자식들이 돌아와 바른 길로 가기만을 간절히 바라기 때문입니다. 그 자식을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그 자식이 어려움을 당하는 것을 기뻐하는 아버지는 없습니다. 육신의 아버지도 이러하건만 우리 하늘 아버지는 얼마나 더 우리가 바른 길로 향하기를 원하실까요? 하나님은 우리를 무한히 사랑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께 돌아오기를 주저하지 말아야 합니다. 깨닫는 즉시 하나님께 돌아와야 합니다. 

     

    용서하리라.

    책에 기록하니라

    4   이에 예레미야가 네리야의 아들 바룩을 부르매 바룩이 예레미야가 불러 주는 대로 여호와께서 그에게 이르신 모든 말씀을 두루마리 책에 기록하니라

     

    예레미야는 하나님의 명령에 순종합니다. 그런데 그는 갇혀있었습니다. 갇혀있었지만 그는 자기에게 자유를 달라고 하지 않았습니다. 그냥 있는 그 자리에서 바로 실행했습니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 그는 바룩을 불렀습니다. 예레미야는 자기 안위보다 하나님의 명령 수행하는 것을 우선하는 사람이었습니다. 이것이 하나님의 사람이 가지는 태도입니다. 신약 시대 사도들도 마찬가지였습니다. 교역자라면 이러한 예레미야의 태도를 깊이 생각하고 하나님께 즉시 순종해야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세 가지로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2-483쪽). 

    1) 하나님께서 그의 이적(異蹟)에 의하여 예레미야를 석방시킬 수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가 그리 하시지 않고, 그를 대리(代理)하여 바룩으로 하여금 그의 예언을 전하도록 하셨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그의 진실하고 충성된 종이라고 하여, 그의 신변에 관하여는 언제나 이적적으로 관계하시는 것은 아니다. 고난은 하나님께서 성도의 구원 완성과 또는 그의 말씀 사역의 완성을 위하여 필요한 것으로 마련되어 있다.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실 일이 아직 많음에도 불구하고 그를 감금(監禁)된 채로 두시는 것은, 그(하나님)에게 초자연적 권능이 부족한 까닭이겠는가? 물론 그런 것은 아니다. 

    2) 하나님께서는 바룩으로 하여금 예레미야의 예언을 구전적(口傳的)으로 유대인들에게 전하도록 하시지 않고, 그것을 기록하여 낭독하도록 하셨다. 이것은 예언자를 통한 하나님 말씀의 권위를 그대로 내세우려는 데 있다. 곧, 바룩의 전하는 바가 바룩 자신의 권위에 의존하지 않고 선지자 예레미야의 권위에 의존하도록 한 것이다. 기록의 목적이 여기에 있다. 오늘날도 성경의 권위는 그것을 낭독하는 일반인에게 있는 것이 아니라 그것을 기록한 선지자들과 사도들에게 있는 것이다. 성경은 그들의 권위에 의존된 전도(傳道)문서이다. 다시 말하면 그것은 바로 하나님의 말씀 그대로를 전하는 권위에 의존한 것이다. 

    3) 하나님께서 바룩을 시켜서 이와 같이 기록하도록 하신 또 한 가지 목적은 정확하게 그의 말씀을 보관시켜 전하려는 데도 있다. 

     

    교역자들은 설교할 때 그 권위를 하나님의 말씀에 둡니다. 하나님 말씀으로 설교합니다. 자기 말을 하는 것이 아닙니다. 이것을 항상 유념해야 합니다. 

    금식일에

    5   예레미야가 바룩에게 명령하여 이르되 나는 붙잡혔으므로 여호와의 집에 들어갈 수 없으니
    6   너는 들어가서 내가 말한 대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금식일에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하고 유다 모든 성읍에서 온 자들의 귀에도 낭독하라

     

    예레미야는 바룩에게 명령합니다. 자기는 붙잡혀 있서서 성전에 들어갈 수 없으니 네가 들어가서 두루마리에 기록한 여호와의 말씀을 전하라는 명령입니다. 그런데 그 시점이 "금식일"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 절기에서 1년에 단 한 번 금식을 명하셨습니다. 그 날은 바로 대속죄일입니다. 대속죄일은 하나님께서 일년에 한 번 이스라엘 온 회중의 죄를 사하시는 날입니다(레 16:30). 그 때 백성들은 스스로를 괴롭게 해야 했습니다(레 16:29). 즉 금식을 해야 했던 것입니다. 스스로를 괴롭게 하는 것은 백성들이 자기 죄에 대해서 심히 슬퍼한다는 표시입니다. 그런데 이 날은 대속죄일은 아니었습니다. 9절에 보면 9월이라고 나옵니다. 대속죄일은 히브리 달력으로 7월입니다. 그러므로 이 날은 어떤 재앙으로 인해서 금식이 선포된 날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재앙은 죄와 연결되므로 이 날도 회개하는 날로 정해진 날인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날은 바룩이 두루마리에 기록된 재앙의 말씀을 백성에게 낭독하기에 절호의 기회였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씀하십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4쪽).

    하나님께서는 그의 말씀을 전파하심에 있어서, 가장 많은 사람을 상대하시기 위한 장소와 시기를 선정하신다. 그 이유는 하나님의 말씀은 누구든지 다 들어야 되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말씀은 말 아래 둘 것이 아니며, 어떤 모퉁이에 제한시켜 둘 것도 아니고, 온 천하에 공포(公布)해야 할 세계적 또는 우주적 대 진리인 것이다. 

     

    그러므로 신약에서는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너는 말씀을 전파하라 때를 얻든지 못 얻든지 항상 힘쓰라(딤후 4:2 상)" 가장 좋은 기회를 하나님께 구하면서도 동시에 우리는 언제든지 전할 마음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각기 악한 길을 떠나리라

    7   그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며 각기 악한 길을 떠나리라 여호와께서 이 백성에 대하여 선포하신 노여움과 분이 크니라

     

    하나님께서 기대하시는 것이 7절에 나옵니다. 하나님께서는 말씀을 들은 모든 백성들이 여호와 앞에 기도를 드리는 것입니다. 그렇게 하고 악한 길에서 떠나는 것입니다. 이 두 가지는 같이 갑니다. 그 전에도 그들은 하나님께 기도를 드렸습니다. 그러나 그들의 기도는 형식에 그쳤습니다. 그들은 마음으로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통회하지도 않았습니다. 시간을 맞춰 엎드려 기도하기는 했지만 그뿐이었습니다. 그들의 삶이 그것을 말해줍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돌이키지 않고 악을 계속 행했습니다. 우상숭배를 계속한 것입니다. 그 결과 하나님의 진노가 선포되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4-485쪽). 

    바룩의 예레미야 예언 낭독으로 인하여 유대인들이 혹시 회개해야 될 이유는 그 예언으로 하나님의 노와 분(재앙)을 선포하기 때문이다. 하나님께서 강퍅한 죄인들을 회개시키기 위해서는 재앙을 방편(方便)으로 사용하신다. 굳은 옹이는 날선 도끼로야 쪼갤 수 있는 것같이, 외식하는 자들은 심한 재앙으로야 굴복시킬 수 있다. 시 18:26 하반절에 말하기를, "사악한 자에게는 주의 거스르심을 보이시리니"라고 하였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재앙을 사용하시는 것을 원치 않으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말씀을 전하시되 부지런히 전하시는 것입니다. 말씀을 듣고 돌아오면 받아주시려고 하시는 것입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는 외식(外飾)하는 자들도 회개하기를 원하십니다. 외식하는 자들은 자기들이 잘못인 줄 모르는 사람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들에게 재앙을 내리시는 것입니다. 내가 죄인인 줄 모른다면 혹시 내가 외식에 깊이 빠져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아야 합니다. 그렇게 하고 하나님께 즉시 돌이켜야 합니다. 

    모든 말씀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8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선지자 예레미야가 자기에게 명령한 대로 하여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하니라
    9   유다의 요시야 왕의 아들 여호야김의 제오년 구월에 예루살렘 모든 백성과 유다 성읍들에서 예루살렘에 이른 모든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지라
    10   바룩이 여호와의 성전 위뜰 곧 여호와의 성전에 있는 새 문 어귀 곁에 있는 사반의 아들 서기관 그마랴의 방에서 그 책에 기록된 예레미야의 말을 모든 백성에게 낭독하니라

    바룩은 여호와의 성전에서 책에 있는 여호와의 모든 말씀을 낭독했습니다. 예레미야가 명령한 대로 한 것입니다(8절). 여기서 낭독하다는 말이 8절에도 나오고 10절에도 나옵니다. 이 "낭독하다"는 말은 큰 소리로 읽었다는 뜻입니다. 모든 백성이 듣도록 큰 소리로 읽은 것입니다. 그 때는 여호야김 제오년 구월로 "백성이" 여호와 앞에서 금식을 선포한 날입니다. 바룩은 당시 왕의 서기관인 그마랴의 사무실을 강단과 같이 사용했습니다(10절). 이 일에 바룩도 적극적이었던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5쪽). 

    금식을 선포한 주체가 백성이고 임금이 아니다. 이만한 종교적 행사에 있어서도 임금(여호야김)은 솔선적인 행동을 취하지 않으리만큼 강퍅하였다. 그러니만큼, 그는 예레미야의 예언을 낭독하는 사건과 관련하여 회개하는 태도를 가지기는커녕, 도리어 그 예언 문서를 칼로 베며 불에 사르는 무서운 범죄를 한 것이다. 그러므로 그 좋은 기회에 회개 운동은 성취되지 못하고 말았다. 언제나 회개 운동에 있어서 위에서 아래로 포지는 것(自上達下)은 순조로우나, 아래서부터 위로 거슬러 가기(自下達上)는 어려운 것이다. 니느웨 성이 선지자 요나로 말미암아 멸망의 손포를 받았을 때에 니느웨 왕이 솔선(率先)하여 회개함으로 전국 백성이 회개(悔改) 운동의 열매를 거두게 되었다(욘 3:4-10).

    회개하지 않는 고관들

    11   사반의 손자요 그마랴의 아들인 미가야가 그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다 듣고
    12   왕궁에 내려가서 서기관의 방에 들어가니 모든 고관 곧 서기관 엘리사마와 스마야의 아들 들라야와 악볼의 아들 엘라단과 사반의 아들 그마랴와 하나냐의 아들 시드기야와 모든 고관이 거기에 앉아 있는지라
    13   미가야가 바룩이 백성의 귀에 책을 낭독할 때에 들은 모든 말을 그들에게 전하매
    14   이에 모든 고관이 구시의 증손 셀레먀의 손자 느다냐의 아들 여후디를 바룩에게 보내 이르되 너는 백성의 귀에 낭독한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오라 네리야의 아들 바룩이 두루마리를 손에 가지고 그들에게로 오니
    15   그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앉아서 이를 우리 귀에 낭독하라 바룩이 그들의 귀에 낭독하매
    16   그들이 그 모든 말씀을 듣고 놀라 서로 보며 바룩에게 이르되 우리가 이 모든 말을 왕에게 아뢰리라
    17   그들이 또 바룩에게 물어 이르되 너는 그가 불러 주는 이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하였느냐 청하노니 우리에게 알리라
    18   바룩이 대답하되 그가 그의 입으로 이 모든 말을 내게 불러 주기로 내가 먹으로 책에 기록하였노라
    19   이에 고관들이 바룩에게 이르되 너는 가서 예레미야와 함께 숨고 너희가 있는 곳을 사람에게 알리지 말라 하니라

     

    말씀을 들은 백성들 중에 당시 왕의 서기관이었던 그마랴의 아들 미가야가 있었습니다(11절). 미가야는 그 들은 말씀을 왕궁으로 가서 서기관의 방에 있는 모든 고관들에게 알렸습니다(12절). "왕궁에 내려가서"라고 하는데 예루살렘 성전은 왕궁보다 위에 있었고 왕궁은 그 성전을 보좌하는 듯이 옆에 붙어 있으면서 그 아래 있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께서 그 나라의 실질적인 왕이심을 상징하는 것이었습니다. 미가야는 자기 아버지 그마랴를 포함한 모든 고관들에게 자기가 들은 모든 말을 전했습니다(13절). 그러자 고관들은 그 두루마리를 가지고 오라고 합니다(14절). 그리고 바룩에게 그것을 낭독하라고 합니다(15절). 낭독한 그 말씀을 들은 고관들은 자기들이 왕에게 아뢰겠다고 하고(16절) 바룩에게 그 모든 말을 어떻게 기록했는지 물었습니다. 그러자 바룩은 예레미야가 주는 말을 기록했다고 답했습니다(18절). 고관들은 바룩에게 예레미야와 함께 가서 숨으라고 했습니다. 혹시 모를 위험에 대비하기 위해서 그렇게 한 것입니다. 그럴 정도로 당시 여호야김 왕은 악했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부분을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6-487쪽). 

    바룩이 낭독한 예언을 들은 그 때의 지도자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대한 선명한 태도를 취하지 않다가 필경은 불회개로 이어진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1) 그들은 그 예언의 재앙 선포가 민족의 회개를 위한 사랑의 경고인 줄 모르고, 국가에 반역하는 위험한 선전처럼 오해하였다.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위험시하고 서로 찾아다니며 그 말을 고하기도 하고(13, 16, 20절), 또한 그 예언을 낭독한 바룩을 불러 심문하기도 하였다(14-18절). 그만큼 그 시대는 영적으로 어두워져 있었다. 백성의 지도자들은 마땅히 민족의 회개를 위하여 장차 올 재앙을 경고하는 선지자의 예언을 즉시 환영하여야 될 터인데, 그들은 저렇게 예언을 위험시하였다. 

    2) 그들이 바룩과 예레미야에게 함께 숨으라고 하였으니, 그것은 하나님의 예언자를 어느 정도 준종하며 아끼는 마음을 가지고 있었다는 사실을 보여준다(19절, 참조 25절). 그러나 그들이 선명한 태도로 하나님의 예언을 받지 않았으며 따라서 회개하지도 않았다(24절). 주님을 다르는 자로서 언제나 선명치 못한 태도를 취한다면 참되이 따르지도 못할 뿐 아니라 필경은 주님의 원수에게로 기울어지고 만다. 엘리야는 하나님 앞에서 선명한 태도를 가지지 못하는 자들을 꾸짖어 말하기를 "너희가 어느 때까지 둘 사이에서 머뭇머뭇 하려느냐 여호와가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르고 바알이 만일 하나님이면 그를 따를지니라"라고 하였다(왕상 18:21)

     

    박윤선 목사님은 당시 고관들의 태도가 선명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들이 만약 회개하였으면 회개 운동이 성공했을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고관들은 선명하지 못한 태도로 일관하고 결국 회개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이 그렇게 한 이유는 여호야김 왕이 회개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그들은 하나님보다 눈에 보이는 왕을 더 두려워했습니다. 그렇게 되어 이 회개 운동은 실패로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은혜를 거스르는 악한 행동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서 부지런히 이르고 계시는데 그것을 계속 무시하고 있었습니다. 그렇게 심판을 자초한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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