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7. 23. 20:47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36:20-32
찬송가 529장 온유한 주님의 음성
여호야김에게 당도하는 하나님 말씀
여호야김 제4년에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하나님께서 그에게 하신 말씀을 책에 기록하라고 하시고 여호와의 성전에서 읽으라고 하셨습니다(36:2, 6). 예레미야는 갇혀 있었기 때문에 바룩이 그 말씀을 기록해서 성전에서 읽었습니다(36:8-10). 그 때는 여호야김 제5년 9월이었습니다. 바룩이 여호와의 말씀 읽는 것을 들은 미가야는 그것을 유다의 고관들에게 알렸습니다(36:11). 고관들은 바룩을 불러왔고 바룩은 그들 앞에서 책에 기록된 여호와의 말씀을 읽었습니다(36:15). 그 말씀을 들은 고관들은 자기들이 그것을 왕에게 전하겠다고 하면서(36:16)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숨어있으라고 했습니다(36:19). 20절 이하에는 그 다음 내용이 이어집니다. 여호야김은 여호와의 말씀을 듣고도 회개하지 않습니다.
어리석은 리더
20 그들이 두루마리를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 두고 뜰에 들어가 왕께 나아가서 이 모든 말을 왕의 귀에 아뢰니
21 왕이 여후디를 보내어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하매 여후디가 서기관 엘리사마의 방에서 가져다가 왕과 왕의 곁에 선 모든 고관의 귀에 낭독하니
22 그 때는 아홉째 달이라 왕이 겨울 궁전에 앉았고 그 앞에는 불 피운 화로가 있더라
23 여후디가 서너 쪽을 낭독하면 왕이 칼로 그것을 연하여 베어 화로 불에 던져서 두루마리를 모두 태웠더라
24 왕과 그의 신하들이 이 모든 말을 듣고도 두려워하거나 자기들의 옷을 찢지 아니하였고
25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께 두루마리를 불사르지 말도록 아뢰어도 왕이 듣지 아니하였으며
고관들은 두루마리를 두고 먼저 왕에게 자기들이 들은 말을 전했습니다(20절). 그들이 곧바로 두루마리를 가져가지 않은 이유는 아마도 왕이 그 두루마리를 어떻게 할 수도 있겠다 싶었던 것 같습니다. 그런데 그들이 우려했던 일이 일어납니다. 왕은 두루마리를 가져오게 해서 낭독하게 합니다(21절). 그렇게 하고는 불 피운 화로에 두루마리를 태웠습니다(22-23절).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가 왕을 말렸지만 소용이 없었습니다(25절). 왕과 함께 있던 신하들은 아무도 그 말에 반응하지 않았습니다. 두려워하거나 자기 옷을 찢는 사람은 한 사람도 없었습니다(24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7쪽).
그 왕(여호야김)은 아첨하는 말이나 좋아하고, 장차 올 재앙에 대하여 직언하면서 회개하기를 독촉하는 충성된 말을 배척한 자이다. 그는 그렇게 교만하여, 1) 자기 피를 책망하는 경고 앞에 굴복하지 아니하며, 2) 자기와 자기 나라도 멸망할 수 있다는 진리 앞에 순종하기를 원치 않았다. 언제나 국가를 망치는 임금은 아부하는 자들을 좋아하고 직언하는 충성된 자들을 배척한다. 그는 그렇게 어리석다. 사실상 직언하는 자가 그를 사랑하는 자인 줄 모른다. 누가 집을 화산(火山)아래 세우는 경우에 어떤 친구가 충고하기를, "당신의 집 있는 데로 용암(熔岩)이 흘러 내려 올 것이오"라고 하면, 그것이 친절한 말이 아니겠는가? 또 혹은 한 여행자가 눈 위에서 잠이 들었는데, 어떤 사람이 그가 얼어 죽기 전에 그를 흔들어 깨운다면, 그것이 얼마나 고마운 일이겠는가? 이와 같은 사랑을 배척한 자는 화(禍)를 면치 못한다.
본문을 잘 보면 "왕과 그의 신하들"이 똑같습니다(24절). 즉 왕이 그에게 아부하는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있었던 것입니다. 엘라단과 들라야와 그마랴는 직언하는 사람이었지만 왕은 그들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런 왕을 어리석다고 합니다. 맞습니다. 그런 리더는 어리석습니다. 그 어리석은 자는 자기를 가장 지혜롭게 여깁니다. 그렇기 때문에 직언을 듣지 않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런 리더는 어리석으면서 동시에 미련하고 교만합니다.
잠언 말씀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에 대해서 계속 경고합니다.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지 말지어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은 여호와를 경외하지 않는 것입니다. 악에 빠져 있는 것입니다. "미련한 자에게는 그의 어리석음을 따라 대답하라 두렵건대 그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길까 하노라(잠 26:5)"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것은 누구보다 자기가 미련하다는 것을 드러내는 것입니다. "네가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자를 보느냐 그보다 미련한 자에게 오히려 희망이 있느니라(잠 26:12)" 스스로 지혜롭게 여기는 사람에게는 전혀 희망이 없습니다. 왜냐하면 절대 변하지 않을 것이기 때문입니다.
그런 자의 가장 큰 특징은 자기를 망하게 하는 자가 누구고 자기를 살리는 자가 누군지 모른다는 것입니다. 즉 그런 자는 적과 아군을 구분하지 못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런 사람의 곁에는 아부꾼들만 가득하게 됩니다. 그 결과는 재앙입니다. 혹시 스스로를 지혜롭게 여기고 있다면 지금 당장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여호와를 경외하며 악을 떠날지어다(잠 3:7 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26 왕이 왕의 아들 여라므엘과 아스리엘의 아들 스라야와 압디엘의 아들 셀레먀에게 명령하여 서기관 바룩과 선지자 예레미야를 잡으라 하였으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숨기셨더라
여호야김 왕은 바룩과 예레미야를 잡으라고 명령합니다(26절 상). 이 행동은 하나님을 멸시하는 행동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7쪽).
여호야김 왕은 하나님의 말씀 기록을 파괴시켰을 뿐 아니라, 이제 와서는 바룩과 예레미야를 해하기 위하여 잡으려고 한다. 하나님의 말씀을 파괴하는 자는 하나님을 멸시하는 가장 큰 죄를 범하는 자이다. 그러므로 그에게 있어서 사람들을 해하는 것쯤은 큰 문제가 아니었을 것이다. 그러나 악도(惡徒)가 극도로 발악하여 무법하게 나올 때에는 하나님께서 역사(役事)하시는 법이다. 그러므로 시 119:126에 말하기를 "그들이 주의 법을 폐하였사오니 지금은 여호와께서 일하실 때니이다"라고 하였다.
여호야김 왕은 바룩과 예레미야를 잡으려고 했지만 잡을 수가 없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숨기셨기 때문입니다(26절 하).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8쪽).
그때에 하나님께서는 바룩과 예레미야를 숨기셨다. 그들이 숨은 일에 대하여 우리가 생각할 것은, 1) 그들에게 숨으라고 부탁한 자들이 방백들이라는 것(19절). 하나님께서 어떤 때에는 일반인들을 통하여 성도들을 보호하시기도 한다. 이것은 하나님의 섭리적 역사이다. 2) 하나님이 숨기신 자들을 사람들이 찾아내지 못한다는 것. 그러므로 시 27:5에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환난 날에 나를 그의 초막 속에 비밀히 지키시고 그의 장막 은밀한 곳에 나를 숨기시며 높은 바위 위에 두시리로다"라고 하였다(참조. 사 26:20). 3) 핍박받는 성도에게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은 여러 모양이라는 것. 그가 어떤 이들은 순교함이 되도록 내어 주시는 반면에 (26:20-23) 어떤 이들은 이렇게 숨기신다. 하나님이 이루시는 모든 선한 일들을 인간의 좁은 견해로써 한 모양으로 규정시키는 것은 큰 잘못이다. 하나님께서 하시는 일들은 한 모양으로만 제한되어 있지 않다.
박윤선 목사님께서 잘 말씀해 주신대로 예레미야와 바룩에게 숨으라고 한 사람들은 유다의 고관들이었습니다. 그들은 이렇게 될 것을 어느 정도 예상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스스로를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생각하면서 자기는 하나님의 말씀만 듣는다고 하는 사람은 참으로 미련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의 섭리를 모르는 사람입니다.
또한 신자는 하나님께서 보호하시면 사람이 나를 어쩔 수 없다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완벽한 보호 가운데 사는 사람입니다. 그러므로 죽음도 우리를 어쩌지 못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육체적으로 평안하고 안정적인 삶으로 보호하시기도 하시지만 어떨 때는 고난과 순교로 이끄시기도 하십니다. 그러나 고난과 순교를 당한다 하더라도 신자는 영원히 안전합니다. 완벽하나 보호 가운데 있는 것입니다. 사람은 몸을 죽일 수는 있어도 영혼은 어찌할 수 없습니다. "몸은 죽여도 영혼은 능히 죽이지 못하는 자들을 두려워하지 말고 오직 몸과 영혼을 능히 지옥에 멸하실 수 있는 이를 두려워하라(마 10:28)"
하나님의 말씀을 거스를 수 없음
27 왕이 두루마리와 바룩이 예레미야의 입을 통해 기록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하니라 이르시되
28 너는 다시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고
29 또 유다의 여호야김 왕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하기를 여호와의 말씀에 네가 이 두루마리를 불사르며 말하기를 네가 어찌하여 바벨론의 왕이 반드시 와서 이 땅을 멸하고 사람과 짐승을 이 땅에서 없어지게 하리라 하는 말을 이 두루마리에 기록하였느냐 하도다
30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유다의 왕 여호야김에 대하여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31 또 내가 그와 그의 자손과 신하들을 그들의 죄악으로 말미암아 벌할 것이라 내가 일찍이 그들과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에게 그 모든 재난을 내리리라 선포하였으나 그들이 듣지 아니하였느니라
32 이에 예레미야가 다른 두루마리를 가져다가 네리야의 아들 서기관 바룩에게 주매 그가 유다의 여호야김 왕이 불사른 책의 모든 말을 예레미야가 전하는 대로 기록하고 그 외에도 그 같은 말을 많이 더 하였더라
여호야김 왕은 두루마리를 불살랐습니다. 그것은 곧 여호와의 말씀을 불사른 것입니다. 그런데 그것은 해결책이 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을 막을 자는 이 세상에 그 누구도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불살랐다고 하나님의 권능이 약해지는 것이 아닙니다. 여호야김 왕은 그렇게 어리석었습니다. 역시 "말씀을 불사른 후에 여호와의 말씀이 예레미야에게 임"했습니다(27절).
하나님께서는 다른 두루마리를 가지고 첫 두루마리의 모든 말을 기록하라고 하셨습니다(28절). 그리고 거기에 여호야김에 대한 말도 기록하라고 하십니다(29-31절). 여호야김이 비참하게 죽을 것이고 그의 대가 끊어질 것이며 그의 시체가 묘실에 장사되지 못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예루살렘 주민과 유다 사람에게 두루마리에 있는 그 모든 재난을 내리시겠다고 하십니다.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여호야김에 대한 재앙의 말씀까지 더해서 기록되었습니다. 여호야김은 자기에게 임할 재앙이 기록되게 했습니다. 더욱 확실해지게 한 것입니다.
여기서 "그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여 낮에는 더위, 밤에는 추위를 당하리라" 이 말씀을 주목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여호야김이 자기를 위해서 겨울 궁전에서 두루마리를 불태웠기 때문입니다(36:22). 겨울 궁전은 따뜻하게 지내기 위해서 세운 것입니다. 그런데 그의 시체는 추위를 당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아무리 지위가 높아도 스스로의 안전을 영원히 보장할 수 없습니다. 일시적으로는 추의를 피해서 따뜻하게 살 수 있으나 영원히 추위를 피할 수는 없는 것입니다. 안전은 오직 하나님께만 있습니다. 이 예언과 성취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88-489쪽).
예언과 성취
하나님의 말씀을 무거운 짐으로 여겨 배척하는 자에게는 더 무서운 말씀이 임하는 법이다. 하나님의 말씀을 배척할 때마다 죄가 많아지는 동시에 벌도 많아진다. 1) 하나님께서 여호와김에게 지적하신 죄는 바벨론 왕으로 말미암아 유다 나라가 파멸되리라는 예언을 그가 멸시하였다는 것이다(29절). 누구든지 자기가 받을 천벌 때문에 회개하기는커녕 오히려 그것을 멸시하면 그것을 기어이 받고야 만다. 그 이유는 그는 교만한 자이기 때문이다(참조. 잠 10:5). 천벌이 올 것을 믿지 않는다고 하여 그것이 변동되는 법은 없다. 2) 여호야김 왕의 계승자가 없고 그 자신은 천하게 죽임이 되리라고 하신다(30절). 그의 계승자가 없게 되리라는 말씀은 얼핏 보면 후에 성취되지 않은 것 같다. 그 이유는 그의 아들 여호야긴이 그의 사후(死後)에 왕위에 올랐기 때문이다. 그러나 여호야긴은 즉위한 지 얼마 안 되어 느부갓네살로 말미암아 바벨론으로 사로잡혀 감이 되었으니(왕하 24:10-13), 이것이 이 부분의 예언 성취이다.
그리고 여호야김 자신의 시체는 버림을 입을 것이라고 하였는데, 이 예언이 성취되었는가? 대하 36:6에 말하기를,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올라와서 그를 치고 그를 쇠사슬로 결박하여 바벨론으로 잡아 가고"라고 하였는데, 여기 "바벨론으로 잡아 가고"라는 말의 히브리 원어는 잡아 갔다는 의미가 아니고, "바벨론으로 잡아 가려고"라는 뜻이다. 이 문구를 보아서는 그가 바벨론으로 잡혀 가던 도중에 죽었으므로 그 시체는 내버림이 되었을 가능성이 얼마든지 있다(C. W. E. Naegelsbach).
박윤선 목사님의 해석에 덧붙이자면 먼저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자가 없게 될 것이요" 이 말씀은 여호야긴이 왕이 되는 일이 없다는 뜻이라기 보다는 여호야김의 죄 때문에 다윗 왕위가 끊어지는 벌이 임했다는 뜻입니다. 즉 여호야긴이 얼마 안 지나서 바벨론 왕에게 잡혀간 것의 직접적인 원인이 여호야김의 죄라는 것입니다. 그 다음으로 그의 시체가 더위와 추위를 당할 것이라는 예언도 그가 열조의 묘실에 들지 못한다는 뜻입니다. 이것은 그가 열조에게로 돌아가지 못한다는 뜻으로 그의 영혼이 버림을 당한다는 의미가 그 안에 담겨있을 수 있습니다.
32절에 보면 두 번째 두루마리에는 첫 번째 두루마리에 없던 내용이 첨가되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하나님의 말씀은 핍박을 받을수록 더욱 힘있게 전파되는 법이다"라고 주석합니다. 맞습니다. 그 어떤 것도 하나님의 말씀을 막을 수 없습니다. 막으려고 하면 할수록 하나님 말씀은 더욱 강해져서 울립니다. 그 누구도 그 말씀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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