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37장 1-10절 | 불순종하는 사람의 기도 요청과 하나님의 대답

2024. 7. 24. 09:36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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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37:1-10

    찬송가 366장 어두운 내 눈 밝히사


    기회가 있었지만

    유다와 예루살렘 거민들, 즉 하나님의 백성들에게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예레미야 36장에 그것이 나옵니다. 그들은 여호야김 제8년과 제9년에 회개하고 돌아올 기회가 있었습니다. 바룩이 예레미야에게 임한 하나님의 말을 기록해서 성전에서 낭독했을 때 그들은 하나님께 회개하고 돌아올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하지 않았습니다.  

    34장부터 문맥 

    37장은 다시 시드기야 왕 때로 돌아옵니다. 35장과 36장에서 여호야김 왕 때를 보여준 후에 다시 돌아온 것입니다. 34장에서 시드기야 왕 때에 하나님과의 언약을 배반한 사건이 나옵니다. 35장에서는 조상의 명령을 250년간 어기지 않고 지키는 레갑 사람들이 나옵니다. 34장과 대조되는 모습을 제시하여 읽는 사람으로 하여금 깨닫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36장에서는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불로 태우는 여호야김 왕이 나옵니다. 구전된 조상의 말을 끝까지 지키는 사람들도 있는데 여호야김은 기록된 하나님의 말씀을 불살라 버리고 지키지 않았습니다. 이제 장면은 다시 시드기야 때로 돌아옵니다. 

    예언의 성취를 보았지만

    1   요시야의 아들 시드기야가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의 뒤를 이어 왕이 되었으니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그를 유다 땅의 왕으로 삼음이었더라

    2   그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이 여호와께서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아니하니라

     

    여호야김 때와 마찬가지로 시드기야와 그의 신하와 그의 땅 백성, 즉 하나님의 백성들은 여호와의 말씀, 곧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하신 말씀을 듣지 않았습니다(2절). 이것은 매우 심각한 것입니다. 왜냐하면 36장에 나온 예레미야의 예언대로 성취된 것을 보고도(1절) 듣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예레미야는 36장 30절에서 여호야김의 시체는 버림을 당하고 그에게 다윗의 왕위에 앉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고 예언했습니다. 그 예언대로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이 와서 여호야김의 아들 고니야(여호야긴, 왕하 24:6)를 사로잡아가고 시드기야를 왕으로 세웠습니다(1절). 그런데도 그들은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그만큼 그들의 마음은 완악했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93쪽).

    예레미야의 말씀을 순종치 않는 그들의 생각에는, 저희가 하나님을 순종치 않는 것이 아니라 인간인 예레미야를 순종치 않는 것뿐이라고 하였을 것이다(Calvin). 그러나 하나님께서 예레미야를 세워서 자기 말씀을 전하시는 증표는 얼마든지 있었다. 특별히 예레미야는 유다 나라가 바벨론의 침략을 받을 것이라고 예언한 것이 그 많은 예언들 중에 제목이 되어 있었던 것인데, 이제 그것이 그들의 목전에서 이루어진 것이 사실이다. 참된 선지자와 거짓 선지자의 구분은 그 예언이 성취되느냐의 여부에 달린 것이다. 신 18:22에 말하기를 "만일 선지자가 있어 여호와의 이름으로 말한 일에 증험도 없고 성취함도 없으면 이는 여호와께서 말씀하신 것이 아니요 그 선지자가 제 마음대로 한 말이니 너는 그를 두려워하지 말지니라"라고 하였다.

     

    박윤선 목사님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예언의 성취를 목전에 보고도 그들은 예레미야의 입에서 나오는 하나님의 말씀을 무시했습니다. 그들이 예레미야의 말을 단지 사람의 말로 치부한 것은 그들의 마음이 완악했기 때문입니다. 또한 그들이 보아보 보지 못하고 들어도 깨닫지 못하는 상태가 되었기 때문입니다(사 6:9). 

     

    시드기야의 불신앙과 기도 요청

    너는 우리를 위하여 기도하라

    3   시드기야 왕이 셀레먀의 아들 여후갈과 마아세야의 아들 제사장 스바냐를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보내 청하되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 하였으니
    4   그 때에 예레미야가 갇히지 아니하였으므로 백성 가운데 출입하는 중이었더라

     

    이 때 시드기야 왕은 사람을 예레미야에게 보내서 "너는 우리를 위하여 우리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라"라고 하였습니다(3절). 그 때에는 예레미야가 아직 갇히지 않은 때였습니다(4절). 시드기야는 말씀은 듣지 않으면서 기도는 해 달라고 합니다. 이것이 완악한 사람의 특징입니다. 순종하기는 싫지만 재앙은 면했으면 하는 것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들은 누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을 좋아합니다. 하나님 앞에 돌아오지는 않은 채로 말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93쪽).

    시드기야 왕이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으면서도 예레미야에게 자기를 위하여 기도해 주기를 청한다. 이 청원에서 그의 두 가지 허물된 점이 나타난다.

    1) 자기 자신은 기도하지 못함. 하나님의 말씀을 순종치 않을 뿐 아니라 그 불순종에 대하여 회개치 않는 자로서는 하나님 앞에 나아갈 마음조차 일어나지 아니하며 기도도 되지 않는다.

    2)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치는 앟으면서 곤란한 때를 당하여 그의 도우심만 받고자 하는 것은 실상 하나님을 오해한 것이다. 하나님은 사람에게 이용될 어떤 도구가 아니다. 윤리 도덕 문제와 성결 문제는 도외시(度外視)하고 인간 자신의 의욕 성취를 위하여 신을 찾는 것은 이교도들의 행위이다. 벨드캄프(Veldkamp)는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하여 달라고 한 것을 가리켜 말하기를, "그것은 신앙이 아니며 순존히 이교적이다"라고 하였다. 하나님께서는 이런 요구에는 응하지 말라고 벌써 여러 차례 말씀하셨다(7:16; 11:14; 14:11; 15:1).

     

    하나님께서는 예레미야에게 이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지도 말고 복을 구하지도 말라고 하셨습니다. 왜냐하면 그들이 하나님께로 돌이키지 않기 때문입니다. 교역자는 이 말씀을 유념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돌이켜야 하는 문제를 지적하기는 어렵고 복을 구하는 기도는 쉽기 때문입니다. 사람들은 죄를 지적하는 것을 싫어합니다. 하지만 누가 자기를 위해서 기도해 주는 것은 좋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교역자는 자주 유혹에 들기 쉽습니다. 그러나 그것은 그 영혼을 진정 사랑하는 것이 아닙니다. 혹시 하나님께서 지적하시기를 원한다는 감동이 든다면 그를 위해 복을 빌기 전에 먼저 그에게 하나님께 진정으로 돌아오도록 권면해야 합니다. 이것이 사랑입니다. 

    참된 기도와 이교도의 기도

    5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매 예루살렘을 에워쌌던 갈대아인이 그 소문을 듣고 예루살렘에서 떠났더라

     

    그 때 바로의 군대가 애굽에서 나오면서 바벨론의 군대는 잠시 물러갔습니다(5절). 이것을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95쪽).

    이때에 애굽 왕(바로) 호브라(Hopra, 주전 588-569)가 바벨론 군대(갈대아 군대)를 대항하기 위하여 애굽에서 나왔다. 이렇게 된 것은 유다가 청병(請兵)한 까닭이었겠다. 이때에 바벨론 군대는 애굽 군대와 싸우기 위해 예루살렘에서 떠났던 것이다. 

     

    이 사건으로 시드기야와 유다 주민들은 한 숨 돌렸을 것입니다. 자기들의 뜻이 이루어지는구나 생각했을 것입니다. 이제 바벨론의 손에서 벗어났다고 생각했습니다(9절). 시드기야가 예레미야에게 기도를 청한 것은 어쩌면 희망이 보였기 때문인지도 모릅니다. 이제 기도만 하면 되겠다라고 생각한 것입니다. 내가 이렇게 상황을 잘 바꾸어 놓았으니 하나님께서 이것을 도와주시면 되겠다, 또는 재가해 주시면 되겠다 이렇게 생각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것은 기도가 아닙니다. 기도는 내가 할 수 없는 것을 하나님께서 해 주시도록 아뢰는 것입니다. 내가 할 수 없는 것은 하나님께 돌이키는 것과 하나님을 항상 사랑하여 모든 일을 믿음으로 행하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기도는 나의 영적 무능을 아뢰는 것입니다. 내가 뭔가를 해 놓고 하나님 도와주세요, 이렇게 하는 것은 참된 기도가 아닙니다. 이런 기도는 이교도의 기도입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6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7   이스라엘의 하나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를 보내어 내게 구하게 한 유다의 왕에게 아뢰라 너희를 도우려고 나왔던 바로의 군대는 자기 땅 애굽으로 돌아가겠고
    8   갈대아인이 다시 와서 이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르리라
    9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너희는 스스로 속여 말하기를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 하지 말라 그들이 떠나지 아니하리라
    10   가령 너희가 너희를 치는 갈대아인의 온 군대를 쳐서 그 중에 부상자만 남긴다 할지라도 그들이 각기 장막에서 일어나 이 성을 불사르리라

    하나님께서는 애굽 군대는 돌아가고(7절) 바벨론 군대가 다시 와서 예루살렘 성을 쳐서 빼앗아 불사를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8절). 그러면서 너희는 스스로를 속이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즉 "갈대아인이 반드시 우리를 떠나리라"라고 생각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그들이 떠나지 않을 것이기 때문에 그것은 스스로를 속이는 것입니다. 혹시 유다의 군대가 갈대아인을 전투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전쟁에서는 반드시 패할 것이라고 하셨습니다(10절).

     

    하나님께서는 시드기야와 그 땅에 있는 모든 사람들의 생각을 다 아셨습니다. 그들은 회개하지 않고 재앙을 면해보려고 하지만 그런 길은 없습니다. 오직 하나님께 돌아가는 길 밖에는 없는 것입니다. 신자는 매일 하나님께 돌이켜야 합니다. 그것이 살 길 인 줄 알아야 합니다. 사람이 다른 살 길을 구하는 것을 하나님께서는 다 아십니다. 그런데 하나님께 돌아가는 것 밖에는 그 어떤 살 길도 없습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을 말씀하시는 것은 그것을 빨리 깨닫고 돌아오게 하시려는 것입니다. 재앙이 목적이 아니고 살리는 것이 목적이신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495쪽).

    시드기야 시대에도 유다 민족은 선지자 예레미야의 말을 듣지 않고 하나님보다 애굽 군대를 의지하였다. 바벨론 군대가 예루살렘을 에워쌌을 때에도 애굽에 대한 그들의 신뢰심은 변치 않았다. 때마침 애굽 왕 바로의 군대가 유다 나라를 위기에서 건지기 위하여 출동함에 따라, 바벨론 군대(갈대아 군대)는 예루살렘에서 떠났다. 그때에 애굽을 의지하던 유대인들은 본래 하나님을 믿지 않던 차에, 더욱 의기양양하게 애굽을 의지하는 마음을 강화하였을 것이다. 이런 때에도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아니하시고 그들의 마음을 돌이키시려고 예레미야를 통하여 하시는 말씀이 1) 바로의 군대는 후퇴하여 애굽으로 다시 돌아간다는 것(7절). 2) 바벨론 군대(갈대아 군대)는 다시 예루살렘에 와서 그 성을 불사를 터이니 그 군대가 유대인들을 떠나리라고 생각지 말라는 것(8-9절). 3) 설혹 유대인들이 바벨론 군대를 쳐서 부상자만 남도록 한다 할지라도, 그 부상자들이 예루살렘 성을 불사르리라고 함(10절). 다시 말하면 하나님께서 친히 유다 나라를 벌하시는 것인만큼, 예루살렘 성은 망하게 될 것이 확실하다는 것이다. 누가 하나님을 이길 수 있으랴.

    위의 세 가지 말씀은 하나님께서 끝까지 유다 민족을 사랑하여 주신 말씀이다. 하나님께서는 애굽을 믿지 않고 하나님을 믿도록 하기 위하여 이러헥 간곡한 말씀을 그들에게 주셨다. 그는 죄인을 벌하시기 좋아 하시는 신(神)이 아니시고, 최후까지 죄인들을 권면하여 회개시키기를 힘쓰신다. 바벨론 군대가 애굽 군으로 더불어 싸우기 위하여 예루살렘을 떠난 때의 유대인들의 심리야말로 하나님 보시기에 얼마나 괴악했으랴. 본래 하나님을 떠났던 마음이 더 멀리 떠났을 것은 사실이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그들을 당장 벌하지 않으시고 오래 참으시며 그들의 마음이 바로 돌아오기를 권면하셨다. 

     

    박윤선 목사님도 똑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들의 마음을 다 아셨지만 재차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십니다. 그들을 사랑하시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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