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48장 36-47절 | 피할 수 없는 하나님의 심판과 복음

2024. 8. 10. 11:29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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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48:36-47

    찬송가 484장 내 맘의 주여 소망되소서


    모압의 교만

    모압에 대한 심판 예언이 계속됩니다. 모압이 심판을 당한 이유는 교만이었습니다. 특별히 모압은 "여호와에 대하여" 교만했습니다(48:26). 하나님의 백성을 조롱하는 것이 여호와에 대한 교만의 증거였습니다(48:27).  그런 그들은 하나님께서는 끊어버리겠다고 하셨습니다(48:35). 

    재물이 없어졌음이라

    36   그러므로 나의 마음이 모압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며 나의 마음이 길헤레스 사람들을 위하여 피리 같이 소리 내나니 이는 그가 모은 재물이 없어졌음이라

     

    여기서 길헤레스는 48:31에도 나온 지명입니다. 여기는 현대의 케레크(Kerek)라는 곳으로 모압의 주요한 요새였습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9쪽). 박윤선 목사님은 이 구절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01쪽).

    예레미야는 모압 민족의 비애(悲哀)를 여기서 대신 표현시킨다. 그의 "마음이 ... 피리 같이 소리 내나니"라는 것은 슬피 부르짖는다는 뜻이다. ... 모압 민족의 비애는 전쟁 때문에 그 재물이 없어진 까닭이었다. 이 세상에 속한 자들은 이렇게 재산의 손실로 인해서는 울지만, 죄를 통회하는 눈물은 알지도 못한다. 

     

    예레미야가 모압의 비애를 대신 전하는 것이라고 할 때, 모압의 비애는 재물이 없어졌기 때문입니다. 재물이 없어지는 것은 눈에 보이는 손해입니다. 그러나 죄로 인한 손실은 눈에 잘 띄지 않습니다. 하지만 신자는 재물의 손실보다 죄로 인한 손실에 더욱 민감해야 합니다. 재물을 잃는 것은 많은 것을 잃는 것이지만 영혼을 잃는 것은 전부를 잃는 것입니다.  

    모압은 산산조각날 것임

    37   모든 사람이 대머리가 되었고 모든 사람이 수염을 밀었으며 손에 칼자국이 있고 허리에 굵은 베가 둘렸고
    38   모압의 모든 지붕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가 들리니 내가 모압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음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사람들은 슬플 때 머리카락과 수염을 밀었습니다. 손을 칼로 베어 칼자국을 내고 굵은 베를 둘렀습니다(37절). 예레미야는 앞으로 임할 재앙으로 그들이 그렇게 할 것을 미리 내다봅니다. 모압의 모든 지방과 거리 각처에서 슬피 우는 소리를 미리 듣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 같이 깨뜨렸기 때문입니다. 이것은 예언이지만 하나님께서 그 뜻을 확정하셨기 때문에 과거 시제로 쓰였습니다. 토기장이가 마음에 들지 않는 그릇을 깨뜨리고 다른 그릇을 만들 듯이 하나님께서 모압을 깨뜨리신다고 하십니다. 모압은 그렇게 산산조각날 것입니다.  산산조각난다는 것은 모압 사람들이 흩어져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는 이미지입니다(42절). 

    회개할 기회를 잡아야 함

    39   어찌하여 모압이 파괴되었으며 어찌하여 그들이 애곡하는가 모압이 부끄러워서 등을 돌렸도다 그런즉 모압이 그 사방 모든 사람의 조롱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리로다

     

    예레미야는 "어찌하여"라는 말로 모압의 멸망이 놀라운 것임을 나타냅니다. 모압에게는 기회가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나라인 남 유다가 파괴되고 그 나라 사람들이 포로로 잡혀가는 것을 보았을 때(주전 586년)가 바로 그들의 기회였습니다. 그들은 그 때 회개할 수 있었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여전히 교만했고 예루살렘이 함락된 지 4년 만에 그들도 멸망했습니다(주전 582년). 그들은 유가다 파괴될 때 조롱했습니다. 그런데 그 일을 그들도 똑같이 당했습니다. 그들도 바벨론이 침략했을 때 등을 돌려 도망했고 모든 사람의 조롱 거리와 공포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회개할 기회가 있었지만 그 기회를 잡지 못했습니다. 믿는 사람은 언제든지 회개할 기회를 잡고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02쪽). 

    모압이 오랫동안 침략을 받은 일도 없고(48:11) 외국의 멸시를 당한 일이 없었으나, 그렇게 잘 지내는 동안 겸손하지 않고 교만하였으니, 반드시 징벌을 받아 멸시를 받을 날이 한 번 오고야 만다. 그렇게 되는 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이다. "공포의 대상이 되리로다"함은 모압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는 사실을 명백히 보는 이웃 나라들이 두려워하리라는 뜻이다. 하나님의 심판은 실상 사람들이 알아볼 정도로 현저한 심판 성격을 나타내는 법이다.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40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보라 그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의 날개를 펴리라
    41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되는 날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

     

    하나님께서는 바벨론이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모압 위에 그의 날개를 펼 것이라고 말씀하십니다. 성읍들이 점령을 당하며 요새가 함락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 때에 모압 용사의 마음이 산고를 당하는 여인 같을 것이라고 하십니다. 용사는 싸움에 능한 용감한 사람입니다. 그런데 그런 용사도 그 마음이 심히 약해져서 산고를 당하는 여인과 같이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용기와 담력은 언제나 하나님의 선물이니, 하나님께 버림을 당한 모압 청년들은 겁약하여질 것밖에 없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02쪽).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라

    42   모압이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하였으므로 멸망하고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리로다

     

    42절에 거듭 모압의 죄를 지적합니다. 모압의 죄는 "여호와를 거슬러 자만"한 것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백성을 대적한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랬기 때문에 그들은 "다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됩니다. 이 말씀은 문자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모압이라는 국가가 아예 없어졌습니다. 모압 민족은 역사 가운데 간간이 등장하지만 그들은 나라를 이루지 못했습니다. 

    피할 수 없는 재앙

    4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 주민아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닥치나니
    44   두려움에서 도망하는 자는 함정에 떨어지겠고 함정에서 나오는 자는 올무에 걸리리니 이는 내가 모압이 벌 받을 해가 임하게 할 것임이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이 당하는 환난은 피할 수 없는 환난입니다. "두려움과 함정과 올무가 네게 닥치나니"가 바로 그런 뜻입니다(43절). 두려움에서 도망해도 함정에 떨어지고 함정에서 나와도 올무에 걸리게 됩니다(44절). 환난을 피할 수 없는 이유는 그것을 임하게 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아모스 5장 19절은 그것을 다음과 같이 표현합니다. "마치 사람이 사자를 피하다가 곰을 만나거나 혹은 집에 들어가서 손을 벽에 대었다가 뱀에게 물림 같도다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재앙을 피하는 방법이 하나 있습니다. 오직 하나 뿐입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품으로 더 들어가는 것입니다. 그런데 그 어떤 사람도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갈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모두가 다 죄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하나님의 품으로 들어갈 길을 열어 주셨습니다. 그 길은 바로 주 예수 그리스도를 통과하는 길입니다.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음으로 하나님 아버지께로 나아가는 것만이 유일한 살 길입니다.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45   도망하는 자들이 기진하여 헤스본 그늘 아래에 서니 이는 불이 헤스본에서 나며 불길이 시혼 가운데 나서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들의 정수리를 사름이로다
    46   모압이여 네게 화가 있도다 그모스의 백성이 망하였도다 네 아들들은 사로잡혀 갔고 네 딸들은 포로가 되었도다

     

    모압 사람들은 어떻게 해서든지 도망하려고 할 것입니다. 그들은 헤스본이 요새인 것을 생각하고 거기로 피할 것입니다. 그러나 헤스본은 이미 점령된 곳이었습니다(48:2). 시혼은 헤스본을 도성으로 삼았던 아모리 족속의 왕을 지칭합니다(민 21:26). 예전에 시혼이 모압 왕을 치고 그 모든 땅을 빼앗은 일이 있습니다. 그 때 시인이 다음과 같은 시를 을펐습니다. "그러므로 시인이 읊어 이르되 너희는 헤스본으로 올지어다 시혼의 성을 세워 견고히 할지어다 헤스본에서 불이 나오며 시혼의 성에서 화염이 나와서 모압의 아르를 삼키며 아르논 높은 곳의 주인을 멸하였도다(민 21:27-28)" 이 역사가 바벨론의 침략으로 반복됩니다. 헤스본을 의지했지만 그 의지하는 것에서 불이 나와서 그들을 살라 버리게 됩니다. "모압의 살쩍과 떠드는 자의 정수리"는 모압의 모든 지방을 가리킵니다. 믿는 우리는 반드시 기억해야 합니다. 하나님 아닌 다른 것을 의지한다면 그것이 나를 불사르는 심판 도구가 된다는 것입니다. 이것은 재앙의 말씀에 항상 반복되어 나오는 내용입니다. 모압은 "그모스의 백성"이라고 불립니다. 그들이 하나님께 벌을 받는 이유는 그모스라는 우상을 숭배했기 때문입니다. 

     

    마지막 날에

    마지막 날에

    47   그러나 내가 마지막 날에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모압의 심판이 여기까지니라

     

    하나님의 심판 메시지는 절망으로 끝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심판을 선고하시는 이유는 회개하고 돌아오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그러므로 누가 나에게 심판을 말한다면 그것은 나를 살리려고 그렇게 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사람이 심판 선고를 들으면 마음이 부드러워져서 회개하고 돌아올 가능성이 생기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심판 선고 끝에 복음을 말씀해 주십니다. 복음은 복된 소식입니다. 그 복된 소식은 "마지막 날에" 이루어집니다. 마지막 날에 하나님께서는 "모압의 포로를 돌려보내리라"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씀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여기서 말일은 신약시대를 의미하고 돌아오게 한다 함은 그리스도의 복음으로 회개 시킬 것을 가리킨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03쪽). 맞는 말씀입니다. 

     

    사람이 하나님께 돌아오는 순서가 이와 같습니다. 먼저 하나님께서 사람을 외통수로 몰아가십니다. 피할 수 없는 심판으로 몰아가시는 것입니다. 그러면 사람은 마음이 부드러워집니다. 마음이 부드러워지면서 자기 자신을 돌아보게 되고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얼마나 큰 죄인지를 깨닫습니다. 그렇게 해서 구원자를 찾습니다. 그 때 예수 그리스도를 발견합니다.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를 의지합니다. 우리는 첫 번째 회심 때 이런 일을 겪었습니다. 그런데 이 일은 매일 일어나야 하는 일입니다. 그러므로 성경에 재앙의 말씀이 그렇게 많이 기록된 것입니다. 그 말씀을 읽거나 들어서 항상 회개하고 주 예수 그리스도께로 돌아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께서 재앙의 말씀을 주심은 우리를 사랑하셔서 구원하시려고 주신다는 것을 항상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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