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49장 7-22절 | 교만에 속은 에돔에 대한 심판

2024. 8. 12. 15:1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예레미야 49:7-22

찬송가 312장 너 하나님께 이끌리어


이방나라들에 대한 예언

예레미야는 46장부터 이방나라들에 대하여 예언했습니다(46:1). 첫 번째는 애굽에 대한 예언입니다(46:1-26). 그 다음은 블레셋에 대한 예언입니다(47:1-7). 이어지는 예언은 모압에 대한 예언입니다(48:1-47). 그 다음이 암몬에 대한 예언입니다(49:1-6). 7절 이하에는 에돔에 대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지리적으로 보자면 예언은 애굽에서 동북쪽으로 와서 블레셋을 향합니다. 블레셋은 유다의 서쪽에 있습니다. 이제 예언은 유다의 동쪽으로 와서 모압을 향합니다. 모압에서 북쪽으로 암몬을 향하는데 암몬은 북이스라엘의 동쪽에 있습니다. 그 다음으로 예언은 모압의 남쪽에 있는 에돔으로 향합니다. 에돔을 향해 선포된 예언은 북쪽에 있는 다메섹으로 향합니다(49:23-27).

이방 나라들에 관한 예언. 블레셋, 모압, 암몬, 에돔, 다메섹.

에돔에 대한 말씀이라

7   에돔에 대한 말씀이라 만군의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데만에 다시는 지혜가 없게 되었느냐 명철한 자에게 책략이 끊어졌느냐 그들의 지혜가 없어졌느냐

 

에돔은 "붉은 색"이라는 뜻으로 에서의 별명입니다. 성경은 에서의 자손을 에돔이라고 부릅니다. 에서는 야곱이 영의 사람이었던 것과는 달리 육의 사람이었습니다. 에돔이라는 별명도 육적인 것을 뜻합니다. 육적인 배고픔을 위해 영적인 장자권을 붉은 팥죽에 팔아 넘겼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에돔에 관해서 읽을 때에는 사람의 육적인 측면에 대해서 생각하면서 읽을 수 있습니다. 

 

데만은 에서의 첫 손자 이름입니다(창 36:11, 15). "데만"도 에돔 족속에 대한 별칭입니다. 데만(תֵּימָן)은 오른 손(יָמִין)과 관련된 말입니다. 그 뜻을 유추하자면 "오른 손에 있는 것"이라는 뜻입니다. 데만은 자고로 지혜로 유명했습니다(욥 4:1; 옵 1:8).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0쪽). 

인간의 지혜가 일시 세상일을 하는데 유력하나, 하나님의 지혜 앞에서는 아무 것도 아니다. 인간이 자기 지혜를 믿어 하나님을 무시하다가는 역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그것이 무력하게 된다. 태양이 올라올 때 등불이 무슨 소용이 있으랴. 

 

참 맞는 말씀입니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육적인 지혜의 특징입니다. 육적인 지혜, 다른 말로 하면 인간의 지혜는 하나님을 무시합니다. 이것이 문제입니다. 사람이 지혜롭게 일을 처리하는 것은 좋은 일입니다. 무슨 일을 하든지 전후좌우 상황을 살피고 그것을 잘 아는 사람의 지혜를 구하고 잘 연구해서 해야 합니다. 지혜를 동원해야 무슨 일이든 이룰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과정에서 하나님을 무시하면 안 됩니다. 지혜를 사용하면서 동시에 하나님의 지혜를 구해야 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신자는 항상 기도합니다. 그러나 불신자는 기도하지 않습니다. 이것이 영적인 지혜와 육적인 지혜의 가장 큰 차이입니다. 

 

유의할 것은 하나님께서 육적인 지혜를 모두 폐하신다는 것입니다. 당연합니다. 하나님을 무시하는 지혜는 진정한 지혜가 아닙니다. 가장 어리석은 것입니다. 데만에서 지혜가 없어진다는 말이 그런 뜻입니다. 진정한 지혜는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에서 출발합니다(시 111:10; 잠 9:10).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함

8   드단 주민아 돌이켜 도망할지어다 깊은 곳에 숨을지어다 내가 에서의 재난을 그에게 닥치게 하여 그를 벌할 때가 이르게 하리로다

 

박윤선 목사님에 의하면 여기서 드단은 아브라함과 그두라의 손자입니다(창 25:1-3). 이들은 에돔 남쪽에 살았다가 나중에 에돔에 의해 점령을 당해서 합병되었습니다. 그러므로 드단도 에돔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창세기 10장 7절에 보면 드단이 함의 자손으로 나옵니다. 사는 지역을 생각할 때 여기 나오는 드단은 아브라함과 그두라 사이에서 태어난 드단의 자손이라고 보는 것이 맞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드단 주민에게 도망하라고 하고 깊은 곳에 숨으라고 하십니다. 왜냐하면 에서의 재난이 그에게 닥치게 하실 것이기 때문입니다. 이 예언은 바벨론의 침략으로 성취되었습니다. 우리가 생각할 것은 하나님께서 나라를 벌하실 때에 거기에 사는 주민도 같이 재앙을 당한다는 사실입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물질주의에 눈이 가려지면 안 됩니다. 하나님께서 무슨 일을 행하시는가를 잘 보아야 합니다. 영적인 눈을 가져야 하는 것입니다. 영적인 시각을 가지고 해야 할 일이 있습니다. 그것은 나라의 안정을 위해서 기도하는 것입니다. 특별히 나라의 도덕적인 기틀이 무너지지 않기를 구하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타락은 심판을 불러오기 때문입니다. 그리스도인들은 이것에 주의해야 합니다. 

남기지 아니하겠고

9   포도를 거두는 자들이 네게 이르면 약간의 열매도 남기지 아니하겠고 밤에 도둑이 오면 그 욕심이 차기까지 멸하느니라
10   그러나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그가 그 몸을 숨길 수 없을 것이라 그 자손과 형제와 이웃이 멸망하였은즉 그가 없어졌느니라

 

포도를 추수할 때 열매를 남기지 않는 것처럼, 밤에 도둑이 들면 모든 귀중품을 다 가져가는 것처럼 에돔은 완전히 멸망할 것입니다. "내가 에서의 옷을 벗겨 그 숨은 곳이 드러나게 하였나니" 이 말씀은 에돔의 지형과 관련된 말씀입니다. 에돔은 그 지형상 깊이 숨겨져 있었습니다. 마치 옷을 입은 것처럼 가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그 숨긴 곳이 다 드러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러면서 그 주민들이 멸망하고 에돔 나라가 아예 없어질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예언은 온전히 성취되었습니다. 

고아와 과부

11   네 고아들을 버려도 내가 그들을 살리리라 네 과부들은 나를 의지할 것이니라

 

하나님께서는 약한 자들을 친히 보호하십니다. 고아의 아버지이시며 과부의 재판장이십니다(시 68:5). 에돔 족속 중에서 고아와 과부를 하나님께서 살리시고 보호하신다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1쪽). 

... 에돔은 국가로서 아주 없어질 것이지만, 그 나라의 고아들과 과부들은 하나님께서 보호하시겠다고 약속하신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진노 가운데서도 긍휼을 기억하신다(합 3:2 하반). 그러므로 별세하는 자들은 이 약속에 의하여 세상에 남겨 놓은 외로운 자녀들을 하나님께 맡길 수 있다. 

 

에돔에게 심판이 임하는 상황은 사람이 급박해서 그 고아와 과부까지 돌볼 수 없는 상황입니다. 그래서 그들을 버리는 상황입니다. 그러나 사람이 죽을 때에는 자녀를 버리기 싫어도 버리게 됩니다. 신자는 그럴 때 하나님을 의지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책임져 주실 것이라 믿고 맡길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신자는 항상 죽음에도 소망이 있습니다.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1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보라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도 반드시 마시겠거든 네가 형벌을 온전히 면하겠느냐 면하지 못하리니 너는 반드시 마시리라

 

하나님께서 진노의 잔을 내리시면 평소 술을 들지 않는 사람이라도 마실 수밖에 없습니다.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는 지혜로운 사람을 가리킵니다. 지혜로운 사람은 일을 지혜롭게 처리함으로 여러 가지 나쁜 결과를 미리 방지합니다. 재앙도 미리 방비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재앙을 자주 당하지 않습니다. 사람의 지혜로 이것이 가능합니다. 그러나 사람의 지혜가 죄의 문제를 해결할 수는 없습니다. 죄의 값은 사망입니다. 아무리 지혜로운 사람이라도 반드시 죽습니다. 그러므로 사람의 지혜로는 하나님의 진노의 잔을 피할 수 없습니다. 아무리 에돔에게 데만의 지혜가 있다고 할지라도 그들은 하나님께서 내리시는 형벌을 면하지 못합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술잔을 마시는 습관이 없는 자"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을 가리킨다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1쪽). 이 말씀도 일리가 있습니다. 

유다 민족은 하나님의 특별한 은총을 입은 자이므로, 하나님께서 그들에게는 패망의 잔을 주시지 않을 듯하다. 그러나 그들도 죄를 회개치 않음으로 바벨론 군대의 침략을 받아 패망을 당하게 되었다. 이것이 하나님의 공의(公義)에 속하는 일이다. 하나님은 이렇게도 공의로우신데, 죄악이 관영한 에돔이 어찌 망하지 않을까 함이 본절의 논조(論調)이다. 이런 논조는 벧전 4:17-18의 말씀과 같다. "하나님의 집에서 심판을 시작할 때가 되었나니 만일 우리에게 먼저 하면 하나님의 복음을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의 그 마지막은 어떠하며 또 의인이 겨우 구원을 받으면 경건하지 아니한 자와 죄인은 어디에 서리요"라고 한다. 

 

우리 믿는 사람도 죽습니다. 그 죽음에서 건짐을 받는 것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이루어지는 일입니다. 하나님께서 주권적으로 나를 건지셔야만 내가 건짐을 받을 수 있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 믿는 사람들도 하나님 앞에서 항상 겸손해야 합니다. 

놀램과 치욕거리와 황폐함과 저줏거리가 될 것이요

13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나를 두고 맹세하노니 보스라가 놀램과 치욕거리와 황폐함과 저줏거리가 될 것이요 그 모든 성읍이 영원히 황폐하리라 하시니라

 

여기 "보스라"는 사해 남동쪽으로 약 32km 떨어진 도시입니다. 에돔의 남쪽 관문인 페트라에서는 북쪽으로 56km 지점에 있습니다. 이 도시는 난공불락의 성이었습니다(창 36:33; 사 34:6; 63:1; 암 1:12).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에 의하면 암석들로 이루어진 언덕 위에 있는 도시입니다. 이렇게 견고한 성이 함락이 될 것이라고 합니다. "보스라가 놀램과 치욕거리와 황폐함과 저줏거리가 될 것이요" 놀램은 견고한 성이 함락되었다는 놀라움과 완전히 망했다는 놀라움입니다. 치욕거리는 보스라의 견고함을 의지한 것이 얼마나 어리석은 것이었는지가 드러나는 치욕입니다. 황폐함은 보스라가 심판을 받아 멸망당해서 이루어질 일을 뜻합니다. 저줏거리는 "보스라처럼 되어라" 이렇게 사람들이 보스라를 가지고 저주를 한다는 뜻입니다. 네가 지금 견고하여 무너지지 않을 것처럼 생각하지만 보스라를 보아라, 너는 보스라처럼 될 것이다, 이런 식으로 저주한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에돔의 모든 성읍이 영원히 황폐하게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 예언도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너희는 모여와서 그를 치며

14   내가 여호와에게서부터 오는 소식을 들었노라 사절을 여러 나라 가운데 보내어 이르시되 너희는 모여와서 그를 치며 일어나서 싸우라
15   보라 내가 너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작아지게 하였고 사람들 가운데에서 멸시를 받게 하였느니라

 

이 구절은 오바댜 1장 1-2절과 비슷합니다. 오바댜와 예레미야가 하나님으로부터 동일한 소식을 들었을 것입니다. 그 소식은 여호와께서 사절을 여러 나라에 보내서 에돔을 치라고 했다는 소식입니다(14절). 그렇게 해서 하나님께서 에돔을 여러 나라 가운데서 작아지게 하시고 사람들 가운데 멸시를 받게 하실 것입니다(15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2쪽). 

바벨론이 일어나 에돔을 치게 될 것은 우연한 일이 아니다. 하나님께서 여러 나라(바벨론과 그 속방들)를 동원하신 결과다. 하나님께서 불의한 나라를 징계하실 때에 다른 나라들을 시켜서 그렇게 하게 하신다. 징계라는 것은 하늘에서 직접 불이 내려오는 것 같은 이적으로만 되는 것이 아니다. 징계는 흔히 보통 섭리의 방법에 의하여 임한다. 어떤 나라가 다른 나라를 치는 것 같은 것은 그런 종류에 속한다. 그러나 그것도 하나님의 장중에서 되는 일이다.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16   바위 틈에 살며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여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김과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 네가 독수리 같이 보금자리를 높은 데에 지었을지라도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 이는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에돔이 수도였다고 전해지는 페트라는 바위 틈에 있습니다. 바위 사이에 난 길로 상당 시간을 걸어가면 틈 사이로 도시가 펼쳐지는데 장관입니다. 에돔은 그렇게 바위 틈에 살았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적이 에돔으로 쉽게 쳐들어오지 못했습니다. 에돔이 위에서 공격하면 영락없이 당할 수밖에 없기 때문입니다. "산꼭대기를 점령한 자"라고 하는 것은 그런 뜻입니다. 그래서 적들은 에돔을 치기 두려워했습니다. 그 결과 에돔은 "스스로 두려운 자인 줄로" 여겼습니다. 그렇게 에돔은 교만했습니다. 아무도 자기를 쳐서 점령할 수 없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네 마음의 교만이 너를 속였도다"라고 말씀하십니다. 아무리 높은 곳에 보금자리를 마련했어도 하나님의 손이 미치지 못할 곳은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내가 그리로부터 너를 끌어내리리라"라고 말씀하시고 그대로 행하셨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2쪽). 

에돔은 그 지리적 안전을 자랑하며 위엄 있는 나라로 자처하면서 교만하였다. 그러나 그 교만은 스스로 속는 우매(愚昧)이다. 교만한 자는 그 교만에 의하여 자기 앞길을 형통케 할 듯이 덤빈다. 그러나 교만은 패망의 선봉이니(잠 16:18), 그는 스스로 속았다. 

 

교만은 속입니다. 믿는 우리는 이것을 항상 주의해야 합니다. 사람이 그냥 교만하지 않습니다. 교만할 근거가 항상 있습니다. 그 근거에 의해서 교만이 오는데 문제는 교만 때문에 패망이 온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교만이 올 때 믿는 사람은 교만이 대는 근거를 의지하기보다 먼저 내가 패망의 길로 가고 있구나를 생각해야 합니다. 모든 것은 올라갈 때 조심해야 합니다. 떨어지는 것은 항상 급작스럽기 때문입니다.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17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되리니 그리로 지나는 자마다 놀라며 그 모든 재앙으로 말미암아 탄식하리로다

18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소돔과 고모라와 그 이웃 성읍들이 멸망한 것 같이 거기에 사는 사람이 없으며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살 사람이 아무도 없으리라

 

에돔이 공포의 대상이 된다고 합니다. 이 공포는 하나님의 심판이 얼마나 철저한가에 대한 공포입니다. 에돔을 지나가는 자마다 놀란다고 합니다(17절). 실제로 오날늘 페트라에 방문하는 사람들은 모두 놀랍니다. 그 안에 아무 것도 남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심지어 그 안에 사는 사람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예언은 이렇게 정확하게 성취되었습니다. 

 

에돔이 멸망한 것은 소돔과 고모라가 멸망한 것과 같습니다. 거기에 사람이 없다고 합니다. 실제로 거기에는 사람이 없습니다.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에 의하면 페트라라는 곳은 멸망당한 후에 19세기에 이르러서야 발견되었다고 합니다. 아라비아 사람들이나 십자군들도 거기에 도시가 있다는 것을 몰랐다고 합니다. 18절의 "그 이웃 성읍들"은 소돔과 고모라의 이웃 성읍들인 아드마와 스보임을 의미합니다(창 10:19 참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19   보라 사자가 요단 강의 깊은 숲에서 나타나듯이 그가 와서 견고한 처소를 칠 것이라 내가 즉시 그들을 거기에서 쫓아내고 택한 자를 내가 그 위에 세우리니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에돔이 당할 멸망을 사자가 갑자기 나타나서 치는 것에 비유합니다. 하나님께서는 택한 자인 바벨론은 에돔 위에 세우시겠다고 하십니다. 바벨론을 택한 자라고 하는 것은 에돔을 멸망시키기 위해서 세운 자라는 뜻입니다. "나와 같은 자 누구며 나와 더불어 다툴 자 누구며 내 앞에 설 목자가 누구냐" 이 말씀은 아무리 에돔이 지형의 이점이 있더라도 하나님을 거스를 수 없다는 뜻입니다. 즉 바벨론 군대를 막을 수 없다는 것입니다. 

여호와의 의도와 결심과 계획

20   그런즉 에돔에 대한 여호와의 의도와 데만 주민에 대하여 결심하신 여호와의 계획을 들으라 양 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괴롭히고 그 처소로 황폐하게 하지 않으랴
21   그들이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그가 부르짖는 소리는 홍해에 들리리라
22   보라 원수가 독수리 같이 날아와서 그의 날개를 보스라 위에 펴는 그 날에 에돔 용사의 마음이 진통하는 여인 같이 되리라 하시니라

 

20절에 보면 하나님께서는 에돔과 데만 주민에 대해서 뜻이 있으십니다. 계획하시고 이루십니다. 이 구절들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3쪽). 

양떼의 어린 것들을 그들이 반드시 끌고 다니며. 이 문구의 히브리어는 "양떼의 어린 것들이 그들을 반드시 끌어가고"라고 번역된다. 곧, 양떼의 어린 것들과 같은 약한 세력도 에돔 민족을 사로잡아 갈 수 있다는 뜻이다. 그것이 그렇게 되는 이유는, 그러므로 언제든지 문제는 하나님으로부터 해결된다. 하나님은 약한 것을 가지시고도 강한 것을 부끄럽게 하실 수 있다. 

그 넘어지는 소리에 땅이 진동하며. "에돔"은 작은 나라이지만 그 지리가 험준하기 때문에 외국의 세력이 그때까지 침략하기 어려웠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이때 불원한 장래에 바벨론의 침략군 앞에 넘어지게 되면, 원근 각국이 놀라게 된다. 그 민족이 망하면서 슬피 부르짖는 소리는 그 나라에서 상당한 거리에 있는 홍해(紅海)에까지 들릴 것이라고 한다(21절). 

원수가 독수리같이 날아와서. 곧 바벨론 군대가 에돔을 침략하기는 너무도 의외의 일이요, 또 급작스러운 일이라는 의미이다. 그 이유는, 에돔은 본래 바벨론으로 더불어 우호 관계를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에돔이 이와 같은 의외의 침략을 당하는 것은 하나님이 내리시는 벌이다. 하나님이 그 나라를 버리셨으므로 그 나라의 용사들은 자기들도 모르게 겁약해져서, 해산할 때 "진통하는 여인"같이 될 것이라고 한다. 

 

서두에 에돔은 육적인 사람의 특징을 지닌다고 했습니다. 사람은 자기 지혜로 안전한 곳에 처소를 마련합니다. 안전 보장을 위해서 재물을 쌓아둡니다. 그렇게 하고 교만에 들어갑니다. 그런데 교만이 자기를 속이고 있다는 것을 깨닫지 못합니다. 교만의 근거인 안전한 보금자리와 많은 재물이 자기를 영원히 보호해주지 못함을 알지 못하다가 갑자기 죽음을 맞이하는 것입니다. 이것만큼 애석한 일은 없습니다. 

 

반면 영적인 사람은 스스로를 구원하려고 하지 않습니다. 구원이 오직 주 예수 그리스도께 있음을 알고 지혜를 동원하되 하나님을 무시하지 않습니다. 매사에 하나님을 경외합니다. 안전한 처소나 재물에 자기의 안전을 의뢰하지 않습니다. 그러므로 교만에 속지 않습니다. 깨어 있으면서 주님 오실 날을 기다립니다. 만약 영적인 사람이 교만에 빠지게 되면 하나님께서는 그를 경책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믿는 사람은 안 믿는 사람보다 자주 경책을 받습니다. 삶이 좀 더 고달프게 보이지만 결국 그 길이 살 길입니다.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시는 것입니다. 믿는 우리는 이것을 알고 모든 것에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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