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 8. 13. 15:07ㆍ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49:23-39
찬송가 507장 저 북방 얼음 산과
다메섹에 관한 말씀
이방 나라들에 관한 예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이방 나라들이 심판을 당하는 이유 중에서 주된 이유는 그들의 교만 때문이었습니다. 에돔에 관한 말씀 다음에 23절부터는 다메섹에 관한 말씀이 나옵니다.
23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를 당하리니 이는 흉한 소문을 듣고 낙담함이니라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평안이 없도다
"다메섹에 대한 말씀이라" 다메섹은 지금 시리아의 수도입니다. 지금은 "다마스커스"라고 부릅니다. 이 도시는 아람의 수도였습니다. 주전 732년에 앗수르에 의해서 멸망 당한 적이 있습니다. 그러다가 주전 64년부터는 로마제국의 지배를 받았습니다. 이 도시는 굉장히 오래된 도시입니다. 아브라함의 종 엘리에셀이 이 도시 출신입니다(창 15:2). 다윗 때 이 도시를 정복한 일이 있습니다(삼하 8:5-6). 그러다가 다윗이 죽은 뒤에 르손에 의해서 수리아의 수도가 됩니다(왕상 11:23-25). 신약 시대로 가면 사도 바울은 다메섹으로 가다가 회심합니다. 다메섹에는 아나니아라는 제자가 살고 있었습니다. 다메섹은 이렇게 창세기부터 사도행전까지 자주 등장하는 도시입니다. 여기 나오는 다메섹은 앗수르에 멸망당했다가 다시 일어난 다메섹에 대한 것입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4쪽).
이 예언의 성취는,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멸망시킨 지 제5년에 되었다고 한다(Josephus 10, 9, 7). "하맛"은 다메섹 북쪽에 있는데, 솔로몬 때에 이스라엘 나라의 영토였다(대하 8:4; 왕상 4:21-24; 삼하 8:9 이하). "아르밧"은 하맛 북쪽에 있었는데, 본래는 솔로몬 왕국의 일부분이었다(왕하 18:34; 19:13; 사 10:9; 36:19; 73:13). 다메섹이 멸망당할 때에 그 부근에 있는 "하맛"과 "아르밧이 수치(실망)를" 당하게 된다.
바닷가에서 비틀거리며. 이 말은, 바다 물결과 같이 인심(人心)이 요동하고 평안이 없을 것을 비유한다고 한다(Calvin).
갑작스러운 재앙 앞에서
24 다메섹이 피곤하여 몸을 돌이켜 달아나려 하니 떨림이 그를 움켜잡고 해산하는 여인 같이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았도다
다메섹은 도망가려고 합니다. 바벨론이 침략했기 때문입니다. 도망가는데 두려움이 엄습해서 덜덜 떨 것입니다. 해산하는 여인과 같은 고통과 슬픔이 그를 사로잡을 것입니다. 마음이 굉장히 약해진다는 뜻입니다. 살지 죽을지 알지 못하는 가운데 들어가고 마음이 약해지면서 죽음이 공포로 떨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이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4-615쪽).
이 말씀은, 그 민족이 당하는 전화(戰禍)가 너무도 돌연한 고통인 것을 보여준다(Calvin). 하나님을 믿지 않고 자기 힘만 믿어 안전할 줄로 생각하는 자에게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하는 한 날이 있나니, 그때엔 돌연하게 생각되는 법이다(살전 5:3).
평소에 안전하다고 생각하니까 갑작스러운 재앙에 더욱 당황하는 것입니다. 평소에 어떤 안전을 의뢰하고 살았는가가 중요합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깨어 있는 사람에게는 심판이 도적같이 임할 수 없습니다. 왜냐하면 그 안전을 오직 예수 그리스도에게만 두었기 때문입니다. 그 말은 곧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면서 살았다는 말입니다. 예수님께서 다시 오시는 날 믿는 우리는 기뻐하며 예수님을 맞이할 것입니다. 하지만 믿지 않는 사람들은 돌연한 재앙에 떨며 해산하는 여인 같은 고통과 슬픔을 경험할 것입니다. 예수님을 소망하면서 깨어 있어야 합니다.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25 어찌하여 찬송의 성읍, 나의 즐거운 성읍이 버린 것이 되었느냐
다메섹을 "찬송의 성읍"이라고 합니다. 그 도시가 너무 아름답기 때문입니다. "나의 즐거운 성읍"도 찬송의 성읍을 한 번 더 말하면서 그 의미를 좀 더 깊이 드러낸 것입니다. 다메섹이 너무 아름다웠기 때문에 사람들은 그 도시를 즐거워했습니다. 사람들이 아무리 좋아하고 아름다운 성읍이라도 죄악의 결과를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죄를 철저하게 물으십니다. 예루살렘도 철저하게 파괴된 만큼 다메섹도 마찬가지였습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5쪽).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
26 이는 만군의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그런즉 그 날에 그의 장정들은 그 거리에 엎드러지겠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이며
27 내가 다메섹의 성벽에 불을 지르리니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리라
27절의 "벤하닷"은 아람의 왕을 부르는 명칭입니다. 애굽의 왕을 "바로"라고 부르고 로마의 왕을 "시저"라고 부르는 것과 같습니다. 벤하닷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심하게 괴롭혔습니다(왕상 20장, 왕하 6:24 등). 벤하닷은 그 죄에 대한 대가를 받게 됩니다. 벤하닷의 궁전이 불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만군의 여호와로서 다메섹이 철저하게 패배하고 파괴하실 것입니다. 아무리 장정이라도 엎드러질 것이고 모든 군사는 멸절될 것입니다. 믿는 우리는 군대와 군사에게 우리의 안전을 맡길 수 없다는 것을 압니다. 그 모든 군대와 군사가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벌하기로 정하시면 그 어떤 강력한 무기나 군대나 용사도 막을 수 없습니다.
게달과 하솔
이제 28-33절은 게달과 하솔이 받을 심판에 대해서 나옵니다. 게달과 하솔은 사막 지방에 유목하면서 거주하는 족속들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5쪽).
하나님의 심판은, 때가 이르기만 하면 크고 이름 난 국가들에 대해서만 아니라, 별로 알려지지도 않은 사막 지방의 민족들에게도 임하도록 되어 있다. 하나님의 심판은 외모대로 되지 않고 공의롭게 되는 것인만큼, 사람들이 알지 못하는 감춰진 자들도 이것을 면치 못한다.
28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게 공격을 받은 게달과 하솔 나라들에 대한 말씀이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너희는 일어나 게달로 올라가서 동방 자손들을 황폐하게 하라
29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그들을 향하여 외치기를 두려움이 사방에 있다 할지니라
게달과 하솔도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에 의해서 공격을 받습니다. 이 구절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5쪽).
"게달"은 이스마엘 자손인데(창 25:13) 암몬의 동쪽에 있어서(사 42:11) 두로로 더불어 통상(通商)한 바 있었다(겔 27:21; 사 21:16-17; 60:7).
"너희는 그들의 장막과 양 떼를 빼앗으며 휘장과 모든 기구와 낙타를 빼앗아다가 소유로 삼고" 이것은 사막 민족의 재산에 대한 침략을 의미한다. 죄인들이 하나님의 벌을 받을 때에는 그들이 의뢰하던 것이 무엇이었든지, 천한 것이건 귀한 것이건 모두 빼앗김이 된다(사 3:1-3).
귀한 진리가 반복됩니다. 그 진리는 하나님의 벌을 받을 때에는 사람이 의뢰하던 모든 것이 빼앗긴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빼앗기지 않는 것이 있습니다. 절대 빼앗기지 않는 것은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입니다(눅 10:42). 또한 우리가 얻을 영생입니다. 또한 우리도 절대 빼앗기지 않습니다(요 10:28-29). 다른 모든 것은 빼앗깁니다. 무엇을 의지하시겠습니까?
하솔 주민아
30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하솔"은 가나안 땅의 지명이기도 하고(수 11:1; 삿 4:2 등) 포로에서 귀환한 베냐민 사람들이 거주한 곳이기도 하고(느 11:33) 아라비아 지역에 있는 어떤 땅을 가리키기도 합니다. 30절의 하솔은 아라비아 지역에 있는 땅을 가리킵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그 "하솔"이 도무리 알 수 없는 민족이라고 하면서 "하나님께서는 이렇게 숨기운 민족도 공의대로 심판하신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5-616쪽). 이 구절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
하솔 주민아 도망하라 멀리 가서 깊은 곳에 살라 이는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너를 칠 모략과 너를 칠 계책을 세웠음이라. 멀리 가서 깊은 데 거한다고 구원 받을 것은 아니지만, 그들이 당하는 전화(戰禍) 때문에 그렇게 피할 것을 여기서 말하는 것뿐이다. 도시를 중심하는 국가에서는 군사 시설을 가지고 방어하기 때문에 침략군이 쳐들어 오기 곤란하다. 그러나 사막 민족들은 사막이 광대한 지역인고로 적군에게 쉽사리 사로잡히지 않는다. 그러므로 하나님은 여기서 느부갓네살의 모략과 계책의 놀라운 사실에 대하여 말씀하신다. 느부갓네살의 아라비아 사막 민족 정복에 대하여는 자세히 알 수 없으나,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Josephus)가 베로서스(Berosus)의 기록에서 인용한 대로 다음과 같은 말을 썼다. 곧, "느부갓네살이 애굽과 수리아와 베니게와 아라비아를 정복하였다"라고 한다.
적막한 사막도 피난처가 될 수 없음
31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너는 일어나 고요하고도 평안히 사는 백성 곧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홀로 사는 국민을 치라
32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겠고 그들의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할 것이라 내가 그 살쩍을 깎는 자들을 사면에 흩고 그 재난을 여러 곳에서 오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1절에 보면 저 사막 민족은 성문이나 문빗장이 없이 사는 사람들입니다. 사막에 거주하기 때문에 그런 것들이 필요 없는 것입니다. 그들이 거주하는 곳이 사막이라는 것 자체가 그들이 침략을 받지 않을 이유입니다. 그러나 여호와께서 그들을 치라고 하신 이상 그들은 피할 수 없게 됩니다. 그들의 낙타들은 노략물이 되고 많은 가축은 탈취를 당하게 됩니다. 그들은 흩어지고 재난을 당하게 됩니다(32절). 32절에 나오는 "살쩍"은 관자놀이와 귀 사이에 난 머리카락을 의미합니다. 흔히 귀밑머리라고 부릅니다. 그 머리카락 아래로 귀밑에서 턱까지 나는 수염을 구렛나루라고 합니다. 그러므로 살쩍은 머리카락이고 구렛나루는 수염입니다. 당시 사막에 사는 하솔 사람들은 살쩍을 깎는 풍습이 있었습니다.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33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 거기 사는 사람이나 그 가운데에 머물러 사는 사람이 아무도 없게 되리라 하시니라
33절에서는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 영원히 황폐하리니"라고 말씀합니다. 여기서 큰 뱀은 바벨론의 느부갓네살을 뜻합니다. 예레미야 51장 34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바벨론의 느부갓네살 왕이 나를 먹으며 나를 멸하며 나를 빈 그릇이 되게 하며 큰 뱀 같이 나를 삼키며 나의 좋은 음식으로 그 배를 채우고 나를 쫓아내었으니
여기서 "나"는 여호와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과 당신님을 동일시 하셔서 부르신 호칭입니다. 이 말씀은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치고 멸한 것에 관한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하솔은 큰 뱀의 거처가 되어"라는 말씀은 느부갓네살이 거기에 쳐들어와서 그 땅이 영원히 황폐할 것이라는 뜻입니다. 하솔 민족이 역사 가운데 사라질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은 그대로 성취되었습니다.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
34 유다 왕 시드기야가 즉위한 지 오래지 아니하여서 엘람에 대한 여호와의 말씀이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하여 이르시되
35 만군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보라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
36 하늘의 사방에서부터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하여 그들을 사방으로 흩으리니 엘람에서 쫓겨난 자가 가지 않는 나라가 없으리라
37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내가 엘람으로 그의 원수의 앞, 그의 생명을 노리는 자의 앞에서 놀라게 할 것이며 내가 재앙 곧 나의 진노를 그들 위에 내릴 것이며 내가 또 그 뒤로 칼을 보내어 그들을 멸망시키리라
38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 왕과 고관들을 그 곳에서 멸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39 그러나 말일에 이르러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하나님의 말씀은 이제 엘람을 향합니다. 엘람이 어디이고 어떤 나라인지는 박윤선 목사님 주석에 자세하게 나와 있습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617쪽).
"엘람"은 셈 족속에 속하는데(창 10:22) 페르시아 만(灣)의 동쪽과 북쪽 땅을 점령하고 있었다. 아브라함 때에는 그달라오멜이 그 나라의 왕이었다(창 14:1-11). 여러 세기 동안 엘람이 바벨론이나 앗수르로 더불어 싸워 이겼다(주전 668-626). 그러나 사 22:6에 보면 엘람은 히스기야를 치는데 있어서 앗수르의 맹방(盟邦)이 되었고, 사 21:2-6을 보면 바벨론을 정복하는데 있어서 엘람은 메대와 합작하였다. 그 후에 고레스 왕 때에 엘람은 메대와 합방(合邦)하였다. 여기 예레미야의 예언은 고레스로 말미암아 엘람이 메데에게 복속하게 된 것을 가리킨 듯하다.
엘람은 지금의 이란 지역이라고 생각하시면 됩니다. 엘람의 문명은 고도로 발달했던 문명입니다. 그 문명이 페르시아 문명에 많은 영향을 미쳤습니다. 엘람 제국이 아케메네스 제국에 의해서 정복 당했을 때에 엘람어는 아케메네스 제국의 공용어가 될 정도였습니다. 이것은 마치 그리스 문화가 로마 제국의 문화가 된 것과 같습니다.
엘람은 활쏘기로 유명했습니다(35절). 그래서 그들은 그것을 의지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내가 엘람의 힘의 으뜸가는 활을 꺾을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하나님께서는 "사방 바람을 엘람에 오게" 한다고 하십니다. 사방 바람은 모든 곳에서 정신없이 불어오는 바람입니다. 흩어버리는 바람인 것입니다. 그 바람 때문에 엘람 사람들이 사방으로 흩어진다고 하십니다. 바람에 흩어지기 때문에 엘람 사람들은 온 나라에 흩어지게 됩니다(36절). 민족이 나라를 이루지 못하고 흩어지는 것은 하나님의 심판입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거기에서 그치지 않습니다. 흩으신 다음에는 그들이 적 앞에서 두려워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리고 진노를 내리시고 그 뒤로 칼을 보내실 것이라고 하십니다. 그렇게 해서 엘람을 멸망시킬 것이라고 하십니다(37절).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
38절에 보면 잘 이해가 되지 않는 표현이 나옵니다.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주고"라는 표현입니다. 이 말은 원어를 보면 이해가 됩니다. 원어를 살려서 번역하면 "내가 나의 보좌를 엘람에 둘 것이다"입니다. 동사로 "두다, 세우다, 위치시키다"라는 뜻의 숨(שׂוּם)이 쓰였습니다. 그러니까 이 말은 하나님께서 엘람에서 왕으로 다스리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왕으로 다스리시면서 하시는 일은 "왕과 고관들"을 그곳에서 멸하시는 일입니다. 그러나 이 심판은 영원한 심판은 아닙니다. "말일에" 소망이 있습니다. 그 소망은 "내가 엘람의 포로를 돌아가게 하리라"라는 소망입니다. 신약시대에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엘람 민족 중에서 택한 백성을 구원하실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은 사도행전에서 성취되었습니다. 사도행전 2장 9절은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우리는 바대인과 메대인과 엘람인과 또 메소보다미아, 유대와 갑바도기아, 본도와 아시아,
여기 엘람인이 있습니다. 이 말은 물론 엘람에 흩어져서 살던 유대인을 가리킵니다. 그런데 유대인이 거기에 살았던 만큼 회당이 있을 것이고 그 회당을 중심으로 예수 그리스도가 전파되었을 것입니다.
심판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 두려운 마음이 드는 것은 당연합니다. 그러나 우리 믿는 사람들은 두려운 중에도 소망을 가집니다. 심판의 말씀 끝에 "말일에" 어떤 소망이 성취되는지 계속 나오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말일에 있을 것이라고 예언된 그 일을 지금 경험하고 있습니다. 바로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를 믿어 하나님께 나아가 하나님의 나라를 누리면서 사는 일입니다.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께로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죄로 인해서 흩어졌다가 돌아온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살면서 이 은혜에 감사할 것밖에는 없습니다. 우리는 심판을 두려워하는 사람들이 아니요 믿음으로 범사에 감사하는 사람들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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