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48장 11-25절 | 모압에 대한 심판

2024. 8. 8. 14:45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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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차


    예레미야 48:11-25

    찬송가 204장 주의 말씀 듣고서


    이방 나라에 대한 예언

    46장부터 이방 나라에 대한 예언이 이어지고 있습니다. 먼저는 애굽에 대해서 예언했고(46:1-26) 그 다음에는 블레셋에 대해서 예언했습니다(47:1-7). 그 다음이 모압에 대한 예언입니다. 모압에 대한 예언이 이어집니다. 이방 나라에 대한 예언에서 핵심은 하나님께서 온 세상 나라의 역사를 하나님의 백성을 중심으로 이루신다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백성은 주변에 내려지는 재앙 때문에 두려워하지 않아도 됩니다(46:27-28).

     

    11   모압은 젊은 시절부터 평안하고 포로도 되지 아니하였으므로 마치 술이 그 찌끼 위에 있고 이 그릇에서 저 그릇으로 옮기지 않음 같아서 그 맛이 남아 있고 냄새가 변하지 아니하였도다
    12   그러므로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니라 날이 이르리니 내가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을 보낼 것이라 그들이 기울여서 그 그릇을 비게 하고 그 병들을 부수리니

     

    하나님께서는 모압을 잘 보관 된 술에 비유하십니다. 술이 잘 보관 된 것처럼 모압이 평안했다는 것입니다. 그런데 이제는 그 술이 옮겨지고 술병이 부서질 것이라고 하십니다(11-12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3쪽). 

    "모압" 나라는 지리적으로 외국의 침략을 받지 않도록 되어 있었다. 그 나라는 일부 산지(山地)로 되었지만 평원 지대도 있어서 농산물이 풍부하였다. 또한 그 나라 민족은 그때까지 외국에 포로 되어 간 적이 없었다. 선지자는 그것을, 양조하는 "그릇"에 "찌끼"와 함께 머물러 있는 "술"로 비유했다. 술은 그것을 양조하기 위하여 담았던 그릇에서 다른 그릇으로 옮기지 않는 한, 그 맛이 변하지 않는다고 한다. 그와 같이 모압 민족은 외국에게 침략을 당하거나 사로잡혀 간 일이 없었던 것만큼, 그 민족의 안녕 질서에 변동이 없었다. 

    본절 말씀도 역사 유다 사람들로 하여금 읽고 위로를 받도록 하기 위한 것이다. 하나님의 택한 백성인 유대인들이 저희는 늘 환난과 외국의 침해를 당하여 오는데도 불구하고 그들의 숙적인 모압은 항상 안전한 생활이 보장되어 있는 것을 볼 때에 상심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들은 생각하기를, '어찌하여 하나님의 택함을 받지 않은 백성이 도리어 우리보다 평안히 사는가?'라고 하였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선지자는 이제 그들을 위로하는 의미에서, 모압도 바벨론의 침략을 당하여 망할 날이 가까웠다고 하며 말하기를, "내가 술을 옮겨 담는 사람을 보낼 것이라"라고 한다(12절). 곧, 술을 양조하기 위하여 담았던 그릇을 기울여 다른 그릇으로 옮기는 것처럼, 이제 모압 민족을 그 나라에서 모두 다 소탕시키라는 뜻이다. 이 세상에서는 하나님의 택한 백성보다 도리어 불택자들이 평안히 잘 사는 일도 있다(시 17:14; 73:3, 12; 렘 12:1-2). 그러나 그것은 결코 그들에게 좋은 일이 아니고, 신령한 축복과 내세의 기업에 참예하지 못하게 되는 증표라고 할 수 있다. 이 점에 있어서 특별히 시 17:14-15의 내용을 대조하여라.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아버지이십니다. 아버지는 자식이 잘 되기를 원하십니다. 그렇기 때문에 자식을 징계하십니다. 믿는 사람은 자동적으로 평안하고 믿지 않는 사람은 재난을 당하고 그러지 않습니다. 오히려 반대의 경우가 많습니다. 우리에게 어려움이 닥치는 이유는 우리로 하여금 징계를 받고 돌이켜서 신령한 축복과 내세의 기업에 참예하도록 하기 위함입니다. 반면 불택자들은 평안하기 때문에 돌아올 기회가 주어지지 않습니다. 이것이 오히려 큰 저주입니다. 신자는 불택자들의 평안을 부러워하지 말아야 합니다. 

    그모스로 말미암아

    13   이스라엘 집이 벧엘을 의뢰하므로 수치를 당한 것 같이 모압이 그모스로 말미암아 수치를 당하리로다

     

    여기서 이스라엘 집은 북 왕국 이스라엘을 가리킵니다. 여로보암은 사람들이 성전으로 예배 드리러 가는 것을 막기 위해서 벧엘에 금송아지 우상을 세웠습니다. 이스라엘 집에 벧엘을 의뢰했다는 것은 벧엘에 있는 우상을 의뢰했다는 뜻입니다. 그 결과 그들은 수치를 당했습니다. 그것처럼 모압도 그들의 신 그모스를 의뢰하는 것 때문에 수치를 당할 것이라고 하십니다. 역기서 "수치"는 원어로 "실패"를 의미합니다(호 8:5-7, 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4쪽).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뢰하면 수치를 당합니다. 즉 실패합니다. 스스로 서려는 모든 노력은 실패합니다. 하나님을 의뢰하여 사는 삶만이 성공적인 삶입니다. 

    모압이 황폐하였도다

    14   너희가 어찌하여 말하기를 우리는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 하느냐
    15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께서 이와 같이 말하노라 모압이 황폐하였도다 그 성읍들은 사라졌고 그 선택 받은 장정들은 내려가서 죽임을 당하니
    16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고 그 고난이 속히 닥치리로다

     

    모압은 교만했습니다. 자기들은 용사요 능란한 전사라고 자긍했습니다(14절). 그러나 그 어떤 강한 용사도 "만군의 여호와라 일컫는 왕"의 손을 벗어날 수 없습니다. 여호와께서는 "만군의 여호와"이십니다. 모든 군대의 하나님이십니다. 군대를 이리 저리 움직이시고 승리하게 하시고 패배하게 하시는 주권자이십니다. 그 여호와께서 모압이 황폐하도록 하실 것입니다. 성읍들이 사라지게 하시고 장정들이 죽임을 당하게 하실 것입니다. 그렇게 모압의 재난이 가까웠습니다(15-16절). 

     

    박윤선 목사님은 "사람은 평안할 때에 교만할 것이 아니라, 도리어 교만이 가져올 수 있는 모든 불행과 비운을 내어다 볼 줄 알아야 한다"라고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4쪽). 또한 다음과 같이 말씀합니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은 아무리 먼 장래의 것이라 할지라도 확고 불변한 것이니만큼, 사람들은 그것을 눈앞에 있는 현실처럼 취급해야 된다. 그렇게 취급하는 것이 영혼에게 각성(覺醒)을 가져오는 지혜로운 일이다. 미래의 심판을 그렇게 취급하는 자로서는 교만할 수 없다. 교만은 우매(愚昧)에서 일어나는 법이다. 

     

    하나님께서 작정하신 일을 본문과 연결시켜서 생각해 본다면 무엇이 있을까요? 바로 우리 주님의 재림이 있습니다. 재림은 먼 장래의 일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그것은 확고 불변한 것입니다. 그러므로 그것을 눈 앞에 있는 현실처럼 취급해야 합니다. 우리 주님께서 오셔서 우리에게 "잘하였도다 착하고 충성된 종아!" 이렇게 칭찬하실 일을 그려봅니다. 오늘도 깨어 있어서 오늘 나에게 맡기신 일에 믿음으로 임해야 하겠습니다.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

    17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여, 그의 이름을 아는 모든 자여, 그를 위로하며 말하기를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 할지니라

     

    "그의 사면에 있는 모든 자"는 모압 주변 나라의 사람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어찌하여 강한 막대기, 아름다운 지팡이가 부러졌는고"라고 말한다고 합니다. 그렇게 모압을 위로한다고 합니다. 그만큼 모압이 쉽게 망할 것 같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여기서 막대기와 지팡이는 왕권을 비유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5쪽). 목자가 양을 보호할 때 막대기를 사용합니다. 그것처럼 왕이 백성들을 막대기로 보호하고 통치하는 이미지입니다. 그런데 그 왕권이 부러졌습니다. 부러져서 다시는 모압이라는 나라가 성립하지 못했습니다. 

    네 요새를 깨뜨렸음이로다

    18   디본에 사는 딸아 네 영화에서 내려와 메마른 데 앉으라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너를 쳐서 네 요새를 깨뜨렸음이로다

     

    여기서 "디본"은 모압의 수도입니다. 디본은 사해 동쪽, 아르논 강에서 북쪽으로 한 시간 거리에 있습니다(사 15:2). 산 아래 있는 평화로운 도시로서 오늘날 성벽의 유적들이 많이 발견되고 있습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5쪽). 디본에 사는 딸은 거기에서 평화롭게 살던 백성들을 가리킵니다. 그들은 영화로웠습니다(כָּבוֹד). 여기서 영화롭다는 말은 유복하고 풍족했다는 뜻입니다. 즉, 그들은 부유했습니다. 그런데 메마른 데 앉게 되었습니다. 왜냐하면 모압을 파멸하는 자가 올라와서 그들을 멸망시켰기 때문입니다. 그 주민들은 요새를 의지했지만 파멸하는 자의 침략을 막을 수 없었습니다. 사람이나 사람이 만든 것을 의지하는 사람은 다 이와 같을 것입니다. 반면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하는 자는 영원히 보전됩니다(시 20:7). 

     

    돈이나 군사력이 사람을 보호해 주지 못합니다. 물론 나라는 돈과 군사력을 잘 갖추어야 합니다. 가정도 마찬가지입니다. 미리미리 대비해서 지혜롭게 저축을 잘 해 놓아야 합니다. 그렇게 해서 여러 가지 어려움을 미리 방비해야 합니다. 그러나 돈이나 군사력이 완벽한 방어 수단이 될 것이라고 착각해서는 안 됩니다. 결국 의지할 이는 하나님밖에는 없음을 알아야 합니다.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19   아로엘에 사는 여인이여 길 곁에 서서 지키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을지어다
    20   모압이 패하여 수치를 받나니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며 아르논 가에서 이르기를 모압이 황폐하였다 할지어다

     

    19절의 "아로엘"은 디본과 아르논 강 사이에 있는 모압의 남쪽 도시입니다. 바벨론이 북쪽에서 침략해 들어오기 때문에 이재민들은 남쪽 도시를 향해서 몰려 내려갔습니다. 그런 "도망하는 자와 피하는 자"에게 무슨 일이 생겼는지 물어보라고 합니다. 피난민들은 모압이 패하고 수치를 받았기 때문에 너희는 울면서 부르짖으라고 합니다(20절).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6쪽). 

    이렇게 모압이 패전하여 황무하게 된 사실을 선전하라고 하는 목적은, 그것이 하나님의 작정으로 되는 일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의 작정으로 되는 일에 대하여 인생들은 전적으로 순종할 것밖에 없으며, 그 일을 부끄러워할 것 없고 도리어 당연하게 여겨야 한다. 그 이유는, 모압이 패망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에 합당하기 때문이다. 사람이 자기 죄 때문에 벌을 받을 때에 자기 자신이 그것을 당연하게 여겨 그 사실을 천하에 공개할 만한 공명정대(公明正大)한 심리를 가질 때에, 도리어 그 자신이 앞으로는 하나님의 축복을 받을 수 있다. 

     

    여기서 박윤선 목사님은 죄를 짓고 곤란을 당하는 사람의 심리에 대해서 잘 말씀합니다. 사람은 실수할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을 수 있습니다. 죄를 지을 때 사람은 그것을 숨기기 급급한 마음을 가질 수 있습니다. 이것이 사람의 심리입니다. 그러나 거꾸로 생각해야 합니다. 그 일이 다 드러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벌을 내리시는 것을 순순히 받고 그 일이 다 드러나더라도 괜찮다고 생각하면서 하나님께서 회복시켜 주시는 날을 기다려야 합니다. 다윗이 그렇게 했습니다. 압살롬 때문에 자기의 죄가 온 천하에 드러났을 때 다윗은 오직 하나님만 의지하고 회복시켜 주시기를 바랐습니다. 그는 시므온이 저주하는 것을 달게 받았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끝끝내 다윗을 다시 세우시고 그의 왕위와 모든 것을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믿는 사람은 이렇게 보통 사람과는 반대의 심리를 가져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살아계시기 때문입니다. 

     

    정확한 심판

    21   심판이 평지에 이르렀나니 곧 홀론과 야사와 메바앗과
    22   디본과 느보와 벧디불라다임과
    23   기랴다임과 벧가물과 벧므온과
    24   그리욧과 보스라와 모압 땅 원근 모든 성읍에로다
    25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 여호와의 말씀이니라

     

    21절에서 심판이 평지에 임하였다는 것은 아르논 북쪽에 있는 지대에 임하였다는 뜻입니다. 이 말은 모압의 전국에 심판이 임했다는 것과 같습니다. 22-25절에 열한 개의 도시가 등장합니다. 이 도시들은 모압의 대표적인 도시들입니다. 이 말씀이 예언이라는 것을 생각할 때 이 도시들 중에서 하나라도 무사하게 되면 예언이 틀리게 됩니다. 그러므로 이 예언은 사람이 발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께서 행하실 일이 확실하기 때문에 선지자는 도시를 일일이 열거할 수 있었던 것입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96쪽). 

    이 점에 있어서 우리가 또 한 가지 기억할 것은, 이렇게 모압의 모든 지방들이 전화(戰禍)를 당하게 되는 것을 보아, 그 나라가 전국적으로 죄악이 관영하다는 사실이 알려진다. 언제나 사람들이 당하는 심각한 벌의 배후에는 죄악도 심각하였던 것이 사실이다. 인생들은 그 당하는 벌(罰)이 과하다고 생각지 말고, 그들의 죄악의 심각성이 벌의 심각성보다 훨씬 더 심하다는 것을 기억해야 된다. 
    ...
    "모압의 뿔이 잘렸고 그 팔이 부러졌도다"는 것은 그 나라의 권세와 힘이 꺾였다는 뜻이다. 

     

    박윤선 목사님은 핵심을 짚었습니다. 그 핵심은 열한 개의 도시가 멸망 받은 것은 그 도시들 전부에서 죄악이 관영했다는 사실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재앙 내리기를 즐기시는 분이 아니십니다. 오히려 오래 참으시는 분이십니다. 자비와 긍휼이 풍성하신 분이십니다. 그런 하나님께서 모압의 도시들 모두를 심판하셨다는 것은 그 도시들 전부 죄를 넘치도록 지었다는 뜻입니다. 심판에 대한 말씀을 읽을 때마다 우리는 이것을 꼭 기억해야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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