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성경 | 예레미야 47장 1절 - 48장 10절 | 블레셋과 모압에 대한 심판

2024. 8. 7. 10:00성서유니온 매일성경/예레미야

목차


    예레미야 47:1-48:10

    찬송가 414장 이 세상은 요란하나


    블레셋에 대한 예언

    하나님께서는 46장에서 애굽에 대해서 말씀하셨습니다. 그 결론은 "내 종 야곱아 두려워하지 말라"였습니다(46:27, 28). 하나님 백성은 주변에 재앙이 내려도 두려워하지 않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을 끝까지 붙드시고 구원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이어지는 말씀은 블레셋과 모압에 대한 예언입니다. 

     

    1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에 블레셋 사람에 대하여 선지자 예레미야에게 임한 여호와의 말씀이라

     

    여기서 바로가 가사를 친 것은 므깃도 전쟁 다음에 일어난 일입니다(주전 608년). 이 일은 여호야김 제4 년 이전에 일어난 일입니다. "가사"는 예루살렘에서 애굽으로 내려갈 때 거쳐가는 도시입니다. 예레미야가 이 예언을 한 시기는 "바로가 가사를 치기 전"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76쪽).

    여기 "선지자"란 말이 예레미야에게 붙어서, 그의 말씀은 다만 하나님의 대언이라는 것을 밝힌다. "블레셋"은 애굽에 연속되어 있고, 그 족속은 애굽과 함께 노아의 둘째 아들 함의 자손인 것만큼(창 10:3, 14) 예언 순서에 있어서 애굽 다음에 나온다.

     

    애굽 족속과 마찬가지로 블레셋 족속이 함의 자손이므로 애굽에 대한 예언 다음에 블레셋에 대한 예언이 나온다는 박윤선 목사님의 통찰은 놀랍습니다. 여기서 우리는 하나님께서 나라를 어떻게 보시는지를 알 수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어떤 민족을 보실 때 통시적(通時的)으로 보십니다. 그 민족의 현재만을 보시는 것이 아니고 그들의 조상부터 지금까지를 다 보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대대로 예수님을 믿는 집안은 여러 가지로 복된 삶을 삽니다. 그런데 자만해서는 안 됩니다. 마찬가지로 믿음의 1세대라면 그것도 또한 의미가 있습니다. 내가 하나님 앞에서 어떻게 사는가가 후손들에게 좋은 영향을 미치는 시작점이 되기 때문입니다. 아브라함에게 맺으신 언약이 지금 우리 믿는 자들에게도 작동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그 복 안에 있습니다. 그 복 안에서 우리 후손들을 위해서 더욱 복된 씨를 뿌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물결치는 시내

    2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보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그 땅과 그 중에 있는 모든 것과 그 성읍과 거기에 사는 자들을 휩쓸리니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그 땅 모든 주민이 울부짖으리라

     

    물이 북쪽에서 일어나 물결치는 시내를 이루어 휩쓴다는 말은 북쪽의 바벨론 군대가 굉장히 빠르게 침공할 것을 비유합니다. 물이 빠른 속도로 흘러내려 오면서 주변 모든 것을 할퀴는 것처럼 바벨론 군대도 블레셋 땅을 그렇게 할퀴고 지나갈 것입니다. 홍수에 사람들이 부르짖으며 울부짖는 것처럼 바벨론 군대 때문에 사람들이 울부짖으며 고통을 호소할 것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78쪽). 

    블레셋 민족에게 이런 비참한 멸망이 임하게 될 것이라고 하는 선지자의 마음 가운데는, 그 민족이 하나님 백성의 숙적이라는 것이 생각되었을 것이다. 이스라엘을 오랫동안 압박하던 원수는 반드시 망한다는 것이다. 블레셋이 이스라엘의 숙적인 사실에 대하여는, 삿 3:31; 왕하 18:8; 겔 25:15; 왕상 15:27; 16:15; 대하 21:16, 17; 28:18을 참조하여라. 교회를 끝까지 박해하는 원수도 필경은 이렇게 멸절되고야 만다. 

    군마의 발굽 소리

    3   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가 진동하는 소리 때문에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의 자녀를 돌보지 못하리니

     

    바벨론의 군사 행동이 2절에서는 물이 빠르게 흐르는 것으로 비유되었습니다. 3절에서는 군마의 발굽 소리와 달리는 병거 바퀴 소리로 바벨론의 군사 행동을 구체적으로 묘사합니다. 그 소리가 얼마나 두려운지 그 소리 자체로 아버지의 손맥이 풀려서 자기 자녀를 돌보지 못한다고 합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78쪽).

    사람들에게는, 그들이 가장 사랑하는 자들(자기 자녀들)이라도 없는 듯이 생각될 정도로 공포(恐怖)의 한 때(심판 때)가 올 것이다. 그러므로 사람들은 그들(자녀들)에게 너무 애착심(愛着心)을 갖지 말고 미리부터 하나님만 중심하여야 한다(고전 7:29-31). 

     

    이 말씀은 옳습니다. 하지만 오해하면 안 됩니다. 자녀에게 적절한 돌봄을 제공하지 않고 믿음 생활이 우선이라고 하면서 자녀에게 여러 가지로 좋지 않은 영향을 준 부모들이 많기 때문입니다. 박윤선 목사님 말씀은 자녀를 양육함에 있어서도 믿음으로 해야 한다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 맡기신 자녀를 사랑으로 돌보는 차원이어야지 자녀가 우상이 되면 안 된다는 뜻입니다.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4   이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며 두로와 시돈에 남아 있는 바 도와 줄 자를 다 끊어 버리시는 날이 올 것임이라 여호와께서 갑돌 섬에 남아 있는 블레셋 사람을 유린하시리라

     

    블레셋 사람을 도와 줄 사람이 없을 것입니다. 심판 때에는 이렇습니다. 아무 것도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두로와 시돈"도 바벨론에 의해서 침략을 당할 것이고 블레셋을 도와줄 수 없을 것입니다. "두로와 시돈"은 무역으로 대대로 번성했던 도시들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블레셋은 그들을 의지했습니다. 그런데 그들도 망하게 될 것이기 때문에 이제는 그들을 의지할 수 없게 됩니다. "갑돌 섬"은 애굽 나일 강 하류에 있는 삼각주를 의미한다고 하기도 하고 그레데 섬을 가리킨다고 하기도 합니다. 여기서 요점은 블레셋 사람이 어디에 있든지 다 심판을 당한다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심판하실 때에는 그것을 피할 자가 없습니다.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5   가사는 대머리가 되었고 아스글론과 그들에게 남아 있는 평지가 잠잠하게 되었나니 네가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가사와 아스글론은 블레셋의 다섯 개의 주요 도시들 중 두 곳입니다. 대머리가 되었다는 것은 미천해져서 부끄러움을 당한다는 뜻입니다(렘 7:29; 16:6; 48:37; 미 1:16). 나라나 성읍은 여성으로 표현됩니다. 여성이 대머리가 된다는 것은 극히 부끄러운 일입니다. "네 몸 베기를 어느 때까지 하겠느냐". 블레셋 사람들은 자기 몸을 베면서 신들이 자기들을 동정해 주기를 바랐습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79쪽). 

    선지자는 여기서 그들의 그릇된 종교가 그들에게 아무런 도움을 주지 못하는 사실을 지적한다(왕상 18:28). 하나님 말씀은 언제나 종교 문제를 근본 문제로 지적한다. 인생의 흥망은 결국 종교에 달렸다. 그릇된 종교는 인생을 돕지 못하고 도리어 망하게 한다.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6   오호라 여호와의 칼이여 네가 언제까지 쉬지 않겠느냐 네 칼집에 들어가서 가만히 쉴지어다
    7   여호와께서 이를 명령하셨은즉 어떻게 잠잠하며 쉬겠느냐 아스글론과 해변을 치려 하여 그가 정하셨느니라 하니라

     

    하나님의 심판은 칼로 비유됩니다. 칼이 쉬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모든 것을 심판하시기로 작정하셨기 때문입니다. 이 부분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79쪽).

    블레셋이 국가로서는 아주 망했으나, 그 민족만은 그리스도의 복음을 받아 하나님께로 돌아오리라는 예언이 있다(슥 9:5-7). 우리가 여기서 깨달을 것은, 그렇게 악하여 국가로서는 아주 멸절되었으되, 그 나라의 남은 백성이 복음을 받아 영생 얻는 데는 다른 민족과 마찬가지라는 것이다. ... 나라가 아주 망하기까지 "칼"을 받은 것은 현세에서는 저주받은 불행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십자가 보혈 공로는 크기 때문에 나라를 잃은 민족도 믿음으로 구원받을 수 있게 된다. 

    모압에 관한 것이라

    이제 예언은 모압에 대한 것으로 이어집니다. 모압에 대한 심판 선고는 하나님의 백성과 상관 없는 것이 아닙니다. 모압은 교회의 원수이기 때문입니다. 가까이에는 모압 왕이 보낸 이스마엘이 그다랴를 죽임으로 유다에 남아 있던 백성들을 굉장히 혼란스럽게 한 일이 있습니다.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면, 이스라엘 백성이 가나안 땅을 향하여 올 때 모압의 왕 발락이 이스라엘을 저주하도록 발람을 고용한 일을 들 수 있습니다. 그 뒤에 모압 민족은 계속 이스라엘을 적대했습니다(삿 3:12-30; 삼상 14:47; 삼하 8:2; 왕하 3:4-27; 13:20; 대하 20:1 이하). 

     

    1   모압에 관한 것이라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되 오호라 느보여 그가 유린 당하였도다 기랴다임이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었고 미스갑이 수치를 당하여 파괴되었으니

     

    모압에 대한 예언에도 "만군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이라는 하나님 칭호를 사용합니다. 모든 군대의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의 하나님이시라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모압이 당하는 군사적인 정벌은 하나님께서 당신님의 백성을 위해서 이루시는 일입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84쪽).

    모압에 대한 예언은, 본서 48장 이외에 민 24:17; 사 15:1-7; 16:6-12; 25:10-12; 암 2:1-3 등에도 있다. "느보 ... 기랴다임" 등은 느보 산 주변에 있는 도시들이다. "미스갑"은 산지(山地)를 의미하는바 위의 두 도시를 포함한 지방 이름이다. 이 지방은 실상 모압의 요새지라고 할 수 있었다. 그런데 무엇보다도 이 지방이 장차 "유린당"하며, "수치를 당하여 점령"되며, "수치를 당하여 파괴"될 것이라 함은 모압이 당할 전화(戰禍)가 얼마나 참혹할 것인가를 생각하게 한다. 여기 우리 번역대로 "되었도다" 혹은 "되었고" 혹은 "되었으니"라고 한 과거사(過去事)들은 실상 미래에 될 일이로되, 그것이 하나님께서 그렇게 되게 하실 확실성 있는 일이기 때문에 이렇게 과거사로 기록되었다. 이런 예언 문체는 예언적 확신(Prophetic assurance)을 표시하기 위한 것이다. 이 예언과 같이, 후에 바벨론 왕 느부갓네살이 예루살렘을 파괴한 후에 모압으로 더불어 싸워 그 족속을 점령하였다. 이는 유대인 역사가 요세푸스가 증거한 대로이다. 모압이 이렇게 된 후 나라를 이루지 못하였다. 따라서 그 나라 이름은 그 후에 별로 역사상에 나오지 않으니 그 족속이 아라비아 족 가운데 포함되어 버린 것 같다(Delitzch). 

    모압의 찬송 소리

    2   모압의 찬송 소리가 없어졌도다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해하려고 악을 도모하고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맛멘이여 너도 조용하게 되리니 칼이 너를 뒤쫓아 가리라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에 의하면 "모압의 찬송 소리가 없어졌도다"라는 말씀은 "모압의 칭송이 이제는 더 없도다"라는 뜻입니다. 이것을 볼 때 모압도 그 교만 때문에 망하게 될 것입니다. 다음은 박윤선 목사님의 주석입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84쪽). 

    모압은 스스로 자기를 칭찬하는 교만이 대단하였다. 사 16:6에 말하기를, "우리가 모압의 교만을 들었나니 심히 교만하도다 그가 거만하며 교만하며 분노함도 들었거니와 그의 자랑이 헛되도다"라고 하였다. 교만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멸망의 압잡이가 된다(잠 16:18). 

    "헤스본에서 무리가 그를 해하려고 악을 도모하고 이르기를 와서 그를 끊어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자 하는도다". 헤스본은 모압의 국경도시인데(Delitzch), 바벨론 군대가 모압을 정복하기 전에 거기서 전략을 꾸밀 것이라고 한다. 이 전략은 물론 모압으로 나라를 이루지 못하게 하겠다는 것인데, 이것은 모압에 대한 하나님의 작정을 반영시킨다. 이 작정은 그대로 이루어져서 필경 역사상에 모압이란 민족은 국가 행세를 아주 못하게 되었다. 이 말씀을 보아도 하나님의 말씀이 얼마나 정확하게 성취됨에 대하여 놀라지 않을 수 없다. 

    "맛멘"(מַדְמֵן)이란 도시도 느보 산 주변에 있는 도시인데, 선지자는 그 이름 뜻을 가지고 여기서 그 장래에 당할 정막한 광경과 연관시킨다. "맛멘"이란 말 자체 속에 적막이란 뜻이 있다. 

     

    여기서 맛멘은 히브리어 도멘(דֹּמֶן)에서 나왔습니다. 도멘은 큰 짐승의 똥이라는 뜻입니다. 그러므로 맛멘은 똥이 쌓인 언덕이라는 뜻입니다. 이렇게 볼 때 맛멘은 더러움 때문에 사람들이 접근하지 않는 똥이 쌓인 언덕처럼 사람이 다 없어져서 조용해진다는 뜻입니다. 

     

    박윤선 목사님 말씀에서 우리는 교만에 대해나 말씀에 주의해야 합니다. "교만은 개인에게나 국가에게나 멸망의 압잡이"가 됩니다. 교만하지 않으려면 하나님 앞에서 자기 자신을 살펴야 합니다. 하나님 앞에서 우리는 무익한 종입니다. 그 어떤 것도 자랑할 것이 없습니다. 오히려 값없이 구원 받은 은혜에 감격할 것 밖에 없습니다. 내가 나를 높이고 있다면 이미 멸망의 길에 들어선 것입니다. 속히 거기에서 나와서 은혜에 감격하는 길로 진로를 수정해야 합니다. 

    호로나임

    3   호로나임에서 부르짖는 소리여 황폐와 큰 파멸이로다

     

    3절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85쪽). 

    "호로나임"은 남쪽으로 소알 가까이 있는 도시인데 평원 지대이다. 선지자가 모압의 멸망에 대하여 예언하면서 이렇게 많은 도시들을 열거하는 이유는, 모압에 미치는 전화(戰禍)가 너무 심하여 전국에 미치지 않은 곳이 없음을 지적하려는 까닭이다. 이렇게 모압은 전멸 상태에 빠질 것이라고 한다. "부르짖는 소리"는 그 땅 백성이 환난 가운데서 당하고 있는 모든 비참한 사실들을 슬퍼함이다. "황폐와 큰 파멸"은 전쟁으로 인하여 된 것이다. 

    선지자가 이렇게 모압에 관하여 비참한 사실을 거듭거듭 말하는 목적은, 듣는 자들로 하여금 인간들의 범죄 결과가 어떠함을 보여주려는 데 있다. 이런 모든 비참한 사실들을 보는 자들은 그것들을 가져오게 한 죄악이 보다 더 비참하였다는 사실을 기억해야 한다. 

    어린이의 부르짖음과 노간주나무

    4   모압이 멸망을 당하여 그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이 들리는도다
    5   그들이 루힛 언덕으로 올라가면서 울고 호로나임 내리막 길에서 파멸의 고통스런 울부짖음을 듣는도다
    6   도망하여 네 생명을 구원하여 광야의 노간주나무 같이 될지어다

     

    재앙은 약한 자들에게 더 가혹합니다. 어린이들의 부르짖음은 전쟁 때에 일어나는 비극 가운데 하나입니다. 여기 어린이를 칼빈은 "어린 아기"라고 해석합니다. 그러므로 4절은 아무 것도 모르는 아기들이 멸망 당한 모압에서 우는 장면을 묘사하는 것입니다. 이것도 사람의 죄 때문에 일어나는 일임을 깊이 자각해야 합니다. 

     

    5절의 "루힛"은 호로나임 근처에 있는 지대가 높은 지방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해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86쪽).

    "루힛"으로 올라간다든가 호로나임으로 내려간다는 말은, 그때에 피난민들이 남쪽 소알 지방을 향하여 가는 도중에 경험할 일들이었다. "광야의 노간주나무"는 로뎀 나무와 같은 나무로서 아무 소용이 없고 열매도 없는 것이니, 이것은 매우 불행하게 사는 사람을 비유한다. 그러면 예레미야가 이때에 내어다 본 것은, 장차 바벨론 군대가 정복함에 따라, 그 민족은 각처에 도망하여 아주 불행하게 될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하나님을 신뢰하지 않고 자기를 신뢰하는 자들이 마시는 쓴 잔이다(모압은 자기를 신뢰하였음). 렘 17:5-6은 말하기를 "여호와께서 이와 같이 말씀하시니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라고 하였다. 

     

    6절에서도 믿음으로 사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가 강조됩니다. 하나님을 믿는 백성은 자기 힘으로 살지 않고 믿음으로 삽니다. 믿음으로 사는 사람은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 회복시키실 소망을 품고 사는 사람입니다. 반면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는 사람, 즉 자기 스스로를 믿는 사람은 스스로를 고립시킵니다.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게 되는 것입니다. 노간주나무 같이 될 것이라는 말이 딱 그런 뜻입니다. 지금도 모압 지역에 가면 그렇게 고립된 채 유목민 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많이 있습니다. 이 예언도 정확하게 이루어졌습니다. 

     

    모압에 관한 말씀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7   네가 네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므로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요 그모스는 그의 제사장들과 고관들과 함께 포로되어 갈 것이라

     

    모압이 무엇을 의지하는지가 7절에 나옵니다. 모압은 자기의 업적과 보물을 의뢰했습니다. 그러므로 모압은 정복을 당할 것입니다. 그모스는 모압이 섬기는 우상 신의 이름입니다. 그모스와 그것을 섬기던 제사장들과 고관들이 다 포로가 될 것이라고 하십니다. 이에 대해서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86쪽). 

    여기에 모압이 멸망하게 될 원인을 보여 주었으니, 곧 그들이 자기의 "업적과 보물을 의뢰"하였다는 것과, 그모스 신을 섬겼다는 것이다. "네 업적과 보물"이란 말의 히브리 원어는 "네 일들과 보물"이라는 뜻이다. "일들"이라는 것은 그들의 모든 경영을 의미하나니, 자기들의 힘으로 국가를 유지하려는 모든 노력을 가리킨다고 볼 수 있다. "보물"은 재물과 부요(婦謠)를 의미한다. 

    하나님께서는 사람들이 하나님 외에 다른 것을 의뢰하는 것을 극히 미워하신다. 사람들이 하나님 밖에 다른 것을 의지할 때에, 1) 하나님께서는 저희의 의지하는 대상을 없애 버리심. 사 3:1-3에 말하기를 , "보라 주 만군의 여호와께서 예루살렘과 유다가 의뢰하며 의지하는 것을 제하여 버리시되 곧 그가 의지하는 모든 양식과 그가 의지하는 모든 물과 용사와 전사와 재판관과 선지자와 복술자와 장로와 오십부장과 귀인과 모사와 정교한 장인과 능란한 요술자를 그리하실 것이며"라고 하였다. 2) 하나님 밖에 다른 것을 의지하는 자를 그 살던 땅에서 없애 버리시는 일도 있다. 그러므로 우리 본문에 "너도 정복을 당할 것"이라고 한다.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죄가 하나님을 극도로 노엽게 하기 때문에, 그런 사람들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고까지 선지자 예레미야는 말하였다(17:5). 

    "그모스"는 모압 사람들이 섬기던 신인데(민 12:29), 암몬 사람들이 몰록을 섬기는 것처럼 모압 사람들은 아이들을 태워 그 신에게 번제로 바쳤다(왕하 3:27). 이렇게 악한 우상 숭배의 죄악도 필경은 그 민족의 멸망을 가져오는 원인을 성립시켰다. 그모스 우상 숭배만 어리석은 것이 아니라 모든 우상 숭배는 다 그러하다. 문명한 민족들이라 할지라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자들의 종교는 모두 다 어리석은 것이다. 그 이유는, 사람이 아무리 문명하여도 그리스도를 믿지 않는 한, 종교적으로는 그냥 어두워져 있도록 하나님의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고전 1:21). 그러므로 문명인들이 어리석은 우상 숭배를 하게 됨에 대하여, 우리는 "왜 그들이 저런 짓을 할까?"라며 놀랄 것 없다. 그들은 아담 하와의 범죄 이후 참 하나님을 모르도록 되는, 종교적 어두움의 벌을 받았기 때문이다.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를 것인즉

    8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를 것인즉 한 성읍도 면하지 못할 것이며 골짜기가 멸망하였으며 평지는 파멸되어 여호와의 말씀과 같으리로다
    9   모압에 날개를 주어 날아 피하게 하라 그 성읍들이 황폐하여 거기에 사는 자가 없으리로다

     

    파멸하는 자가 각 성읍에 이른다고 합니다. 한 성읍도 면하지 못할 것이라고 합니다. 모압의 모든 성읍이 하나도 빠지지 않고 파괴될 것이라는 뜻입니다. 이 예언처럼 바벨론 군대 앞에 파멸 당한 이후에 모압은 더이상 국가로서 존속하지 못했습니다. 나라가 없어져 버린 것입니다. 골짜기와 평지도 마찬가지로 다 파괴될 것이라고 했는데 말씀처럼 되었습니다. 9절에서 날개를 말씀하는 이유는 전국적으로 다 멸망할 것이기 때문에 날개로 날아서 피할 수가 없다면 그 환난을 피할 수 없다는 뜻입니다. 

    여호와의 일

    10   여호와의 일을 게을리 하는 자는 저주를 받을 것이요 자기 칼을 금하여 피를 흘리지 아니하는 자도 저주를 받을 것이로다

     

    10절은 바벨론에게 하시는 말씀입니다. 바벨론이 모압을 쳐서 멸망시키는 일은 "여호와의 일"입니다. 만약에 바벨론이 이 일을 소홀히 한다면 그들은 저주를 받을 것입니다. 박윤선 목사님은 다음과 같이 주석합니다(박윤선, 예레미야 주석, 588쪽). 

    얼핏 보면 이 말씀은 너무 잔인한 것 같이 잘못 생각되기 쉽다. 그러나 우리는 다음과 같은 사실을 생각할 때에, 그런 잘못된 해석을 가질 수 없다. 곧, 하나님은 사랑하시는 동시에 공의로우시다. 그가 사랑을 이방 민족들에게도 베푸시는 동안 그의 오래 참으심은 형용할 수가 없다. 그가 그렇게 오래 참으시며 쉬이 벌을 내리시지 않으시기 때문에, 그들은 하나님이 없다고까지 한다. 그만큼 그는 말할 수 없는 무시를 당하시면서까지 그들에게 인자를 베푸신다. 일례를 들면,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을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고 가나안에 왔을 때에 그에게 말씀하시기를 "너는 반드시 알라 네 자손이 이방에서 객이 되어 그들을 섬기겠고 그들은 사백 년 동안 네 자손을 괴롭히리니 그들이 섬기는 나라를 내가 징벌할지며 그 후에 네 자손이 큰 재물을 이끌고 나오리라 너는 장수하다가 평안히 조상에게로 돌아가 장사될 것이요 네 자손은 사대 만에 이 땅으로 돌아오리니 이는 아모리 족속의 죄악이 아직 가득 차지 아니함이니라 하시더니(창 15:13-16)"라고 하셨다. 이것을 보면 하나님께서 그의 택한 백성의 조상 아브라함에게 가나안 땅을 주실 작정으로 그를 가나안 땅에 데려다 놓으시고도, 그 땅 백성의 죄악이 관영할 때까지 400년 동안 그 약속을 실행치 않으시고 기다리셨다. 아브라함을 데려다 놓고도 400년을 기다리시는 그의 오래 참으심은, 죄악이 관영하기 전에는 그 땅 백성을 멸망시키지 않으시는 그의 크신 자비이다. 죄악이 관영한 자는, 그야말로 하나님의 크신 자비로도 용납하실 수 없고 멸망시켜도 아까울 것 없는 악한 자이다. 보다도 그런 자는 멸망시키지 않으면 안 될 자이다. 그런 자를 멸망시킬 사명을 받은 자로서 실행치 않을 때에 저주를 받으리라고 하였다. 

     

    박윤선 목사님은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에 대해서 아주 적절하게 설명합니다. 하나님의 심판은 하나님께서 오래 참으신 후의 일입니다. 이 세상 마지막에 있을 심판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을 경홀히 여기는 사람들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과 함께 동참하여 사랑으로 오래 참는 사람들입니다. 죄악된 땅에서 하나님의 사람으로서 오래 참음으로 사랑하면서 사는 사람들인 것입니다. 그러므로 믿는 사람은 하나님의 신원하시는 때를 기다리는 사람들입니다. 즉 예수 그리스도의 재림을 기다립니다. 이 땅의 죄악 때문에 여러 가지로 고난을 당하기 때문입니다.

     

    오늘 본문에서 중요하게 생각할 요점이 많습니다. 첫째, 하나님께서 우리를 보실 때는 통시적(通時的)으로 보신다는 것과 둘째, 교만은 패망으로 가는 지름길이라는 것과 셋째, 하나님 말고 다른 것을 의지하는 것을 하나님께서 노여워하신다는 것과 넷째, 하나님께서는 오래 참으신다는 것입니다. 다음으로는 하나님의 일에 소홀히 하는 것은 저주를 받을 일이라는 것도 있습니다. 각자에게 말씀하시는 대로 하나님께로 속히 돌이키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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